”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처음엔 가장 가까운 친구의 성공을 축하해주기는커녕 힘들어한다니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는 관계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이 문장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점점 이해되었다.
친구의 성공이 흔히 말하는 배가 아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데 주변 친구들은 하나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듯 무언가를 해내고 진행한다. 혹시 나만 헤매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흙으로 덮인 공터이고, 어떠한 길을 만들고자 해도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데, 친구들은 예쁘게 포장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만큼 노력을 안 한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의 성공을 보며 두려워한다. 실행하지 않는 데에서 나오는 불안만큼 바보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쓸데없는 불안은 넣어두고 나도 나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는 항상 불안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걱정하며 실천하기를 두려워했으며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보다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한 번에 읽기엔 내용이 조금 어려워 곱씹으며 읽어야 하지만 곱씹는 만큼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인어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 핀 책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서 그런 지 중간중간 놓치고 지나간 부분들이 많아 아쉬움을 느꼈다.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이 책의 시작부분이 계속 생각이 났다. ‘인어가 잠들어 있는 집’… 뇌사 상태의 사람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을 인어로 연상시킨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식이 없는 미츠호에게 자기 자극 장치를 연결해 움직이는 상황이 나오는데 나는 ‘마오’라는 인물이 미츠호의 에코 현상을 보고 도망치듯 나가기 전까지 난 이런 행위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도 들지 않았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제 3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본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전개되면서 주인공 부부들의 마음이 이해되었기에 그런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독자인 나도 책의 전개가 진행되면서 무뎌지게 되었는데 당사자는 더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딸 이기에 더욱 감정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집에서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숨쉬고 있는 딸을 보면 정말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 이어져 있는 것이 특히 좋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오래 보기 위해 했던 주인공 부부의 모든 행동이 단순히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기술의 발전에 비해 인류의 윤리적이나 사회적인 사고가 따라오지 못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티가 나지 않거나 숨길 뿐, 어느 부분에서는 미쳐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20세기의 예술가, 특히 록 음악가들은 어느 한 부분 혹은 여러 부분에서 단단히 미쳐있다. 그리고 미쳐있는 자신의 모난 부분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짐 모리슨은 오히려 더 미치고자 노력하는 편에 가깝다. 만약 내 주변의 인물이었다면 진작에 연을 끊었겠지만서도 절대 만날 일 없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서거한 미국의 젊은 음악가이자 시인의 위대한 발자취와 그 발자취를 남기기 까지의 수많은 일련의 과정들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저명한 음악 프로듀서 릭 루빈의 예술 에세이이다. 책을 읽은 후 그의 다채롭고 종잡을 수 없는 음악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술, 아니 창조를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높은 기준이 사라졌고 창조적 행위에 대해서 쉽게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책에서는 나태를 지양할 뿐 더러 꾸준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적 원천을 얻기 위해서 막연히 기다리기 보다는 그저 매일 매일 원천에 대한 문을 오픈한 채로 창조적 행위를 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창조적 행위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권장을,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
이 책은 SNS상의 홍보와 표지로 인해 읽게 되었지만 정말로 멋진 책이었다. 시대의 슬픔을 공부하는 자세를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인데, 시사, 영화, 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 나타나는 작가의 생각을 모은 산문집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문법을 해석해야하는 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기사와, 시, 소설을 읽으면서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급급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거나 나와 무슨 연관을 짓는 지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슬픔을 느끼는 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들의 슬픔에 무관심해지고 심지어는 본인의 슬픔마저도 무시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과 멀어진다. 슬픔을 기반으로 한 삶 속에 찾아갈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해야하는 건 슬픔이다. 누군간의 슬픔이 원인에 속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한다. 그 노력에 무엇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신형철처럼 글을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들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슬퍼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만큼 힘이 되는 일이 없을테니까.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은 뒤로 내가 보는 것들의 슬픔을 찾으려 노력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꾸준히 그 일을 해보려한다.
모모는 창녀의 아이들을 맡기는 라자 이모의 집에서 산다. 모모는 너무나도 빨리 세상을 배웠고 혼자서 자기 삶을 책임지게 됐다. 그런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몇 어른들마저도 그리 세상의 주류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모는 그들의 선함을 사랑해준다. 늙고 병든 라자를 보고 인간꼴이 아니라고 형용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책의 초반에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모가 묻는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냐고. 하밀 할아버지는 그에게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내용으로 해석된다. 창녀의 아이들을 적은 돈을 받으면서 보살피는 것은 결코 아이들의 사랑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온갖 고난을 겪고도 모모가 살아가는 건 라자이모의 사랑때문이다. 또, 모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위해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을 기한다. 정작 부모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니까. 모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쓰린 부분이 여럿 있었는데 그래서 사랑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왜 이 책의 제목이 ‘자기 앞의 생’일까 고민했다. 내 앞의 생이 누구의 것인지 물어보기 위한 것일까, 아님 작가 개인의 삶에서 비롯된 것일까. 결론을 내리기 힘든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에 놓여진 모모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모모가 자신의 어릴 적을 설명하는 구성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철학은 누군가의 생각이 이렇게나 깊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학문이다.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나랑 차원이 다른 생각들을 철학자들은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읽는 게 재밌다. 키르케고르는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다. ‘나’가 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실존주의를 생각하게 됐고, 기독교신자인 내가 신을 인정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거의 유일한 키르케고르를 좋아한다. 그리고 요즘 많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아보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주가 되는 것은 저자가 살아날 수 있었던 키르케고르의 생각들이 주를 이루지만, 키르케고르뿐만 아니라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조금씩 나온다. 그리고 인생에서 마주치는 많은 문제들을 키르케고르의 목소리를 통해 얘기해준다. 다 알던 이야기같지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말, 절망이 꼭 우울로 이어지지 않는 다는 얘기, 고통이 꼭 고통으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얘기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과연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하는 지 고민하게 되었다. 진실된 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아마 그 중에도 철학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모습일 필요할거라 예상된다. 끝으로 내가 겪는 고민들이 ‘나’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문유석 판사의 글은 간결하지만 유쾌했다. 누가봐도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썼다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독서라는 행위가 책의 제목처럼 쾌락을 위한 것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깊이 생각하고 싶어서 읽었던 이전의 독서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왔고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생각의 가지를 넓게 피면서 읽었던 것같다. 또한 판사라는 직업도 사람이 하는 것임을 실감했다. 판사는 이성적이고 논리에 의해서만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별 다를 게 없는 인간이고 (물론 학업에 있어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건 맞다.) 자녀문제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이며 책을 좋아하는 독자였다. 냉철하지만은 않고 세상의 문제에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판사가 말하는 다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앞으로 내가 독서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건 오래전이지만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양도 많고 어려워서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내용을 이해하는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듯하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에서 배우는 내용이 얕다고 생각하면서 느꼈던 갈증은 조금 풀 수 있었다. 서양철학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충분했던 것같다. 책의 좋은 점은 각 철학자의 생애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상이 정립되는 데에는 삶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생각이 시작된 지점도 그들의 삶이었고 철학자의 생애를 보면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측하는 재미도 있었다. 또한 시간이 무색하게 오늘날에도 실현되는 사상들을 보면서 신기했다. 기술적으로는 많이 변화한 세상일지라도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고전을 읽으라고 하는 게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