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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 단군 신화에서 곰이 ‘고난과 시련을 인내함’으로 요약되는 여성다움이라면, 호랑이는 ‘고생을 거부한 대가로 추방을 당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와 상상력, 그것들이 가진 함의가 이렇게나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왜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조차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릴리의 시점에서 쓰였지만,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는 릴리의 언니 ‘샘’이 되어 릴리와 할머니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마법에 걸린 순간은, 릴리의 할머니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마 나에게도 갓난아기 때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최근 그런 할머니가 어떤 두려움에 젖어 목놓아 우시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이후 ‘할머니’라는 세 글자는 나의 눈물 버튼이 되었는데, 정말 떠올리기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응해대는 바람에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도 수없이 책 읽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하간 그때부터 나는 어느샌가 릴리가 되어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호랑이와 그의 이야기들을 믿고 싶어졌다. 동시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간 내가 정말 두려움이 많고, 솔직하지 못했으며, 중요한 때 용기 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철저히 외면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릴리와 할머니가 각자의 두려움을 극복해 내는 것을 보며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부러움과 샘솟는 열망을 느꼈다.
줄거리를 생략한 대신에 나에게 인상 깊게 와닿은 몇 가지 메시지를 꼽아 보자면, 첫 번째로 ‘우리가 다들 하나 이상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내가 한창 비슷한 고민을 했을 때,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때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순간이 생각났다. 두 번째로 두려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어디에선가 용기를 내는 일은 두려움이 없어서 가능한 게 아니라, 두려워도 하는 것이라는 말을 보았다. 나는 이 말의 실체를 ‘조아여’였던 릴리가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 한 행동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어떤 두려움은 그에 맞설 용기를 준다. 세 번째로 ‘이 세상에는 좋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쁜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사실.’ 몇 년 전 참석한 영화 gv에서 한 배우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인터뷰어의 물음에,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지 않고 어두운 것도 함께 보는 사람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을 떠올렸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이것을 릴리가 마침내 깨닫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함으로써, 자신의 바람대로 할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할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에 맞서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금방 잊어버리거나 외면해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왠지 이 또한 호랑이 여인처럼, 맹렬하면서 부드러운 릴리의 할머니처럼, ‘조아여’라 불린 릴리처럼, 나의 내면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게 얽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