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펼치는 순간 단숨에 6,000년 역사가 읽히는)
전지적 푸바오 시점 (작은할부지 송바오가 전하는 푸바오의 뚠빵한 하루)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내 마음 제대로 들여다보는 법)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윈터에디션) (유영광 장편소설)
열두 발자국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불안의 서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인종주의 이데올리기에 의해 “낙인찍히고 배제당한 ‘인종화된 몸’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 속성’에 근거해 타자, 즉 비유럽인의 가치를 규정하는 근대 서양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 저자에게 인종주의는 타자의 ‘몸’에 관한 담론이다.
책은 인종주의 이론의 시작점인 18세기 유럽에서 출발한다. 식물분류학으로 유명한 린네는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백색, 홍색, 갈색, 흑색의 4가지로 구별했다. 미학자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문명을 서구 문명의 원류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하연 피부를 강조하묘 ㅌ채색된 상태이던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표백’했다. 해부학자 캄퍼르와 의학교수 블루멘바흐는 두개골의 형태를 분석한 후 백인 가장 이사적인 두개골을 지녔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피부색 및 골상학에 따른 인종분류는 19세기 들어 과학적 사실로 안착되며 비백인의 열등서을 설멸해 주는 이론으로 확대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종화된 몸’의 예들은 인종주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전문가의 내공과 명료한 문장은 어렵고 무거운 주제에 접근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인종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인종주의적 언어와 고정관념에 민감해지기, 소수자의 경험을 경청하기 등을 제시한다. 미국 역사가 이브라함 켄디는 미국사회와 제도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주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반인종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에서 반인종주의를 실처한느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우아한 거짓말
제목 : 세 가지 열쇠
첫 번째는 진실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한 14살 소녀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동생에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던 언니는 동생이 남긴 흔적을 살펴보고 숨겨져 있던 그 모습이 드러난다. 죽은자인 천지는 나레이션을 통해 그 동안 겪은 가슴 아픈 일들과 고통은 솔직하게 털어낸다.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만들어낸 희생자 천지는 자신에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진심이 담긴 쪽지를 다섯 사람에게 남겼다. 5개의 봉인된 실타래는 다섯 명의 주변인들에게 전달되었고,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숨겨져 있던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천지가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이다. 천지는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분명 언니와 엄마에게 내보였지만, 그들은 천지가 힘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말과 행동에 지금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 얻게 한다. 그리고 인물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가르는 것을 넘어서 인간관계 역학 자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에 끈을 놓지 않고 재생 가능성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 번째는 용서이다. 시작에 의해서 시작된 장난. 그 장난에 동조하는 아이들의 영악한 놀이 3년 동안 지속된 놀이가 오늘 천지를 죽였다. 우아한 거짓말은 한 청소년에 자살을 통해 보이는 학교 내 왕따 문제와 이 사회에 만연된 가시 문제를 꼬집고 있다. 왕따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죽은 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언니, 엄마 그리고 그녀의 학교 친구들을 통해 도대체 누가, 왜 그녀를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용서하는 사람은 누군지를 조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누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엄마와 언니가 조금만 더 천지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천지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남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도 만지와 천지엄마처럼 주위에 친한 누군가가 우리에게 도움에 소리를 냄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를 못 듣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적이 있지 않을까? 또 한 번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누구 한 명에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 만지, 엄마의 시선이 각각 나타나 있어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타래의 꼬인 매듭을 천천히 풀어나감으로 몰입도 있는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