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아가미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스트구조주의 시대’라고 불리며 해석하면 ‘구조주의 이후의 시대’라는 뜻이다. 이것은 구조주의의 사고방식이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 속에 아주 깊이 침투해 있고 책을 읽거나 이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 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자명한 것’, ‘자연적인 것’, ‘상식’으로 수용될 만한 사고방식이나 감수성의 모습이 어떻게 성장해온 것인지 밝혀내는 것이기에 ‘자명한 일’을 더욱 거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선 911 테러의 발생과 베트남 전쟁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 ‘상식’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 다른 나라의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고, 같은 나라 속에서도 지역과 세대가 바뀌면서 동일한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상식이라고 간주했지만 그 상식에 관해 의심해 볼 여지가 있는 상황은 없을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구조주의적’이며 구조주의적 견해를 이용하지 않고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힌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뜻이며 이는 구조주의 특유의 용어(시스템, 차이, 기호, 효과 등)를 말한다. 이를 ‘마르크스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급적으로 생각하며 인간 주체가 자기가 누구인가를 ‘생산=노동’의 관계망 속 ‘행동’을 통해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로이트는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생각하며 ‘억압’의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간 주체가 ‘자기는 무언가를 의식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화할 수 없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시각화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않고 자기가 속한 사회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라는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는 어떤 시대와 지역, 사회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또한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에 부딪히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제가 될 일도 없다고 덧붙여 설명한다. 하지만 한정적인 문화를 지녔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만 있다면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자율적인 판단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편견일 수 있으며 제한된 사고 속에서의 언행은 수용성에 대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치부한다.
최재천의 공부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 교수님은 이 책의 시작을 한국교육에 대한 아쉬움으로 시작하십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터무니없는 입시 공부를 해야만 했을 때 느꼈던 생각들과 같은 내용입니다. 현재 입시가 끝나고 어떻게든 대학교에 진학하여 한국교육에 대한 불만은 사실 많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한국교육에 대한 불안이 가득했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교육이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지기 너무나 힘든 징병제처럼 한국에 너무나도 깊이 자리 잡아버린 현재 한국의 입시 시스템, 그리고 교육방식은 제가 할머니가 될 때쯤에야 겨우 사라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