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장편소설)

우타노 쇼고의 소설은 언제나 기발하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방심한 순간, 쇼고는 허점을 뚫고 세상을 뒤집어 버린다. 절망적이고 섬뜩한 노트에 숨겨진 비밀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절망적이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허구와 진실이 마구 뒤섞인 노트는 머리 속을 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세계연극사

인간의 역사와 함께 변화와 확장을 거듭해온 연극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과 형식의 파괴를 거듭하며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1984

1984는 ‘자유‘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심각했다. 집 안에는 텔레스크린이 자리하고 있어 24시간 365일 동안 국민을 감시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체조를 하고 말하는 것, 먹는 것과 누구를 만나는 지까지 하나하나 감시 당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삶일 것이다. 사실 텔레스크린 앞에서만 그런 척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텔레스크린과 도청 장치가 그 나라 곳곳에 위치한다. 집뿐만 아니라 거리, 숲 속, 직장, 식당 등등 없는 곳이 없고, 한 번 당의 이목을 끌면 죽을 때까지 당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삶이다. 윈스턴 역시 7년 동안 당의 감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윈스턴이 사는 곳에서는 둘 더하기 둘은 다섯 혹은 셋이라는 정신을 주입 받는다. 간단한 팩트임에도 이것조차 당의 의지에 의해서 부정 당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모든 곳에 CCTV가 존재하고 SNS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고 있고 나날이 늘어나는 가짜 뉴스들도 우리의 생각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 오웰은 이런 시대를 예견했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점점 윈스턴의 피폐해져 가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 이야기의 문체도 정신 없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지 오웰의 소설은 특유의 느낌이 있다. 동물농장과 1984 모두 자신이 관심 있어 했고 직접 참여했던 정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비교적 정확하고 사실을 기반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기 편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영화 ’트루먼 쇼‘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영화 트루먼 쇼 역
시 태어날 때부터 짜여진 각본 속에 사는 트루먼의 이야기를 한다. 또한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은 방송 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윈스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윈스턴은 본인이 감시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루먼 쇼에서나 1984에서나 모두가 감시 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했고 그 예측대로 사회는 흘러가고 있다. 이 속에서 본인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을 해야 하는 가와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서 국가는 어디까지 자유를 보장 해주어야 할까 하는 문제가 뒤따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나 인권 보장 문제에서도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동물농장

<전체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동물들을 이용해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그려낸 책이다. 읽다보면 정말 이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돼지들은 계획을 세우고 머리를 굴려야한다는 이유로 배급을 더 받고 육체 노동은 다른 동물들이 다 한다.
특히 말 복서는 가장 불쌍했다. 가장 세뇌를 잘 당했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한다.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늘 그는 옳다는 생각을 했다. 보면서 한심할 때도 굉장히 많았다. 사실 끝으
로 갈수록 그런 감정은 더 심해졌다. 동물들이라 이전의 사상을 까먹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우리 사람들도 잘 잊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동물들의 지능이 낮아 이전의 일을
잊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사람이 처음에 정부가 이야기 했던 것들을 잊고 다시 세뇌를 당한다는 게 끔찍하기까지 했다.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킨 취지는 좋았다. 인간에게 착취 당하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인간을 몰아냈는데 결국에는 종만 다른 지배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지도자 자체도 흥미로웠다. 인간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돼지가 지도자가 된다. 대부분 동물들, 그중에도 가축들 중에서 지도자의 이미지인 동물을 생각할 때 돼지를 생각하는 사
람은 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지 오웰은 돼지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한 동물들도 지도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선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 기승전결의 구조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사고와 사고의 부딪침은 초반에 존재한다. 동물농장을 잘 운영하려고 했던 스노볼과 권력
을 독점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사고의 대립으로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쫒아내게 되고 독재 시대가 시작된다. 동물들이 처음 반란을 게획할 때는 마르크스의 사회 사상을 보여주
고 그것을 이용해서 점점 변질이 되어가는 시대적인 상황을 조지 오웰은 잘 반영했다. 또한 각 동물들마다 상징하는 바가 다르도록 설정해 놓았다. 양들은 선동하는 세력을, 말은
세뇌 당한 일반 서민 노동자 세력 등을 지칭한다. 가장 기억에 남든 동물은 양이다. 부지도자 스퀼러는 양들을 따로 모아 놓고 구호를 바꿔가며 다른 동물들이 의문을 가지려 할 때마다 구호를 외치도록 시킨다. 이 장면이 가장 충격이었다. 같은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다. 세뇌와 독재의 위험성을 너무나 여실히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오만과 편견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 때, 나는 그저 중학생에 불과했다. 어렸던 나는 단순히 ‘다아시는 오만해,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로 이분해 생각하였고, 그 생각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학생이 된 지금 다시 책을 펼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내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나는 오만한 다아시, 편견 가진 엘리자베스에 더불어 오만한 엘리자베스, 편견을 가진 다아시 또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오만과 편견’이란 제목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양분시켜놓은 것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구절이었던 것이다.

 초반의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자신이 절대로 끌려하지 않을법한 여자’라 단정짓고, 다시는 그녀와 마주칠 일 없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한 행동이었다. 다아시는 빠르게 엘리자베스에게 빠져들었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이미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말았고, 이는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다아시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종료된다.

 <오만과 편견>에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점차 걷어내면서 결국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주된 이야기로 스토리를 끌고 가지만, 그 사이에서 보여지는 감정선은 사랑이란 감정보다 더 주목할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고 자신의 친구 빙리에게 했던 엘리자베스의 가정에 가진 편견 가득한 충고를 후회한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절대 다아시와 가까워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며 다아시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 또한 보여준다. 이처럼 입체적인 두 사람의 모습은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작품을 더욱 견고하게 쌓아올린다.

 이 책에서 ‘오만’과 ‘편견’의 영향을 받는 인물은 단순히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뿐만이 아니다. 다아시의 옛 친구이자 지금은 원수 사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위컴은, 처음엔 둘도 없는 신사적인 인물로 비춰지지만, 도박으로 가진 돈을 다 날리고 결국 리디아와 도망가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걸어오는 길목에는 다양한 감정선들이 보여지고, 이것은 전부 오만과 편견의 영향을 받는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우리는 끝없이 오만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한 발짝 떨어져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모습을 보는 우리는 그 둘이 보여주는 오만과 편견에 대해 손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막상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보여주게되는 오만과 편견에 대해선 무지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할 것이고, 자신이 잘못됨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태도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치와 지배에 관한 논의를 담은 작품으로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 대한 전략과 원칙을 탐구합니다. 이 책은 정치적 리더십과 권력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제시하며 인간 본성과 정치적 현실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군주론은 민주주의나 도덕적인 가치보다는 권력의 확보와 유지를 우선시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통치자가 어떻게 권력을 확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을 다룹니다.

‘군주론’은 현실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타협과 힘의 사용, 상황에 따른 전략과 결단의 중요성을 인식시킵니다. 작가의 분석과 실제 사례를 통해, 독자들은 권력의 본질과 정치적인 세계의 복잡성을 더 깊이 이해할수 있습니다.

코스모스 (특별판)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지구의 탄생부터 우주의 기원, 인간의 역사와 과학적인 지식까지 탐구한 책 입니다.

세이건은 우주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과학자로서, 코스모스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와 더 큰 우주의 이해를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는 우주의 세계를 과학적인 사실과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알기 쉽게 전달하며 독자들에게 인간의 잠재력과 우주적인 관점에 대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과학과 철학, 역사와 문화, 지식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세이건은 암흑시대와 과학의 발전,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지식을 획득하고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비 딕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바다와 인간의 사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인간의 야망과 욕망, 운명의 힘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대자연과 인간의 복잡한 관계,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탐구하며 인간의 존재의 한계와 불가피한 운명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야망과 욕망, 파멸적인 운명의 힘과의 전쟁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우주적인 실재를 탐구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동기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도덕적인 갈등을 다룹니다. 또한 바다와 인간의 상호작용, 자연의 원리와 우주적인 실체에 대해 탐구합니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동물들의 혁명과 그 후의 전개를 통해 권력, 타락, 혁명의 실패를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은 동물농장에서 지배자였던 사람에 대항하여 동물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독립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물농장은 권력이 집중되고 타락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작가는 동물들의 이상적인 목표와 현실의 간극 그리고 권력의 남용과 타락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 소설은 혁명과 이상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독자들에게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