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이책으로 인해 처음으로 책에 빠지게 되고 글쓴이의 신념과 생각에 대해서 궁금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감각적인 일련의 체험은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섬세한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나에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다. 

동물농장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본사람은 지금껏 없을것이다. 하지만 읽은 사람 그리고 느낀 감상을 사회에 빗대어 설명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것이다 .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책의 사회를 현대사회에 빗대어 한번더 생각해보고 현대사회 힘의 균형과 권력의 쟁탈에 둘러 쌓여있는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도대체 뭔데? (메타버스 시대, 생존을 위한 투자전략! 투자와 NFT 렌즈로 바라보는 메타버)

메타버스 도대체 뭘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찾았다.
밀레니엄 세대를 살고 있는 나는 z 세대도 버거운데 다시한번 c세대를 받아드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경제 유튜브를 보다 보면 이제 메타버스가 떠오를 것이다. 가상화폐가 떠올랐다. 등등 여러 의견이 나와서 읽게 되었다.
이걸 읽으면서도 경제에 어떻게 적용을 한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었었다.
책을 다 읽더라도 속 시원히 해결된 답은 없지만 
가상과 현실의 심리스를 해결한다면 지금보다 더 편리한 세상이 올 것 같아서
요즘에는 메타버스 세상이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한다.

데일 카네기 성공대화론

데일 가네기의 성공대화론 데일 카네기의 저서는 언제나 흥미롭고 읽는데 지루함이 없다. 성공대화론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말은 남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난은 결국 시간만 더 낭비할 뿐 자신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스트 키즈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저 커플을 찍어요. 예술가들인가봐요. 찍어요”

“그냥 가자고”

“그냥 애들이야.”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예술가로서의 청년기와 운명같은 사랑을 패티 스미스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다.


둘은 1940년대 생으로 미국에서 비트 세대, 히피 등 반항적인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기에 유년과 청춘을 보냈다.

표면적으로 보면 참으로 멋지다. 특히 그들이 뉴욕에서 지낸 청년기에는 지미 헨드릭스, 루 리드 같은 인물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바가 있었고 시 낭독회를 통해 시인들이 출세 했고 새로운 예술적 시도가 빈번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 이면은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 사회의 분열, 모호해진 선과 악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했다.

패티의 많은 주변인들은 목숨을 잃었고 심지어 로버트는 늙지 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티와 로버트는 단순한 남녀커플의 개념을 넘어서

진정한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이해하고 의지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비극 같으면서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로버트는 죽을 때 까지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탐닉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의 뛰어난 어떤 작품보다도 그들의 사랑이 더 아름다웠다.


처음 책을 구매했을 때 그들의 사랑 보다는 그 당시 예술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구매 했지만

책을 다 읽을 쯤 에는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 최고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장편소설)

양귀자 저자의 소설을 처음 읽어 보았다.
페미니즘 소설로 유명한 이 소설은 애석하게도 페미니즘 소설로 규정 되기엔 그릇이 더 큰 책이다.
이는 모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고 일종의 차별에 맞서는 운동이다.
책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선악도 모호하고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하다.
모두가 상처 받았고 모두가 피해자면서 가해자이다.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정신과 의사였던 유태인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여러 번 경험했고 사람이 무엇 때문에 가장 힘들어지는지 느꼈다.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뭘까? 죽음 앞에서 삶의 의지를 꺾을 수 없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이 삶의 의미라 하였다. 죽음을 떠올리는게 당연한 처절한 상황에서 저자가 찾은 삶의 의미는 ‘사랑’이었다.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살아있을거라는 믿음 앞에서 저자는 고통 속의 삶을 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정신력이 강할 수 있는 이유가 ‘목표’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목표는 스스로 정한 가치로 세운 것으로, 의미를 가진 목표를 뜻한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뤄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삶의 빛이자 희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표는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목표를 세운 사람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냥 ‘성적 잘 받고 싶다’ 는 과정 중에 필요한 일이 될 수는 있지만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닥쳐도 이뤄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목표는 ‘세우자’하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내면을 돌아볼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왜 그것이 중요한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도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내 신념은 무엇인지 등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0초 정치사회 수업 (지금 꼭 알아야 할 필수 지식 원포인트 레슨)

정치 사회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도 기본이 없는 채로 사회 현상 만을 대하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내가 정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쉬워 보이는 책을 선택했다.
정치에 대한 개념을 알려주는 책 보다는 기본적인 용어 몇 개와 우리가 겪은 사건들에 대해 어떤 점이 시사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글이었다.
지나온 불공정한 일들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 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현대의 청년들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만 있기 때문에
내가 사회와 동떨어져서 걷고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네트로피 2.0 (이성의 칼 끝으로 최고의 나를 창조하라)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질서로 돌아가라’ 이다. 또한 이 책의 제목인 ‘네트로피’의 뜻 또한 ‘질서가 잡힌 상태’ 라는 뜻이다. 이때 네트로피(negative entropy, 혹은 negentropy라고도 불린다) 라는 용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엔트로피의 반대를 의미한다. 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는 그 뜻이 2가지 정도 있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서 ‘무질서한 상태’를 말한다. 네트로피는 그의 반대를 뜻하니, 점점 질서가 잡혀 있는 상태가 된다. 
  질서는 사회적 규율이 지켜져 있는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사물이나 형상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있는 상태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질서는 ‘사람의 의식을 흐르는 하나의 리듬이나 대들보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머릿속에 새로운 목표와 동기를 부여하고 그를 향해 매사 그의 의미가 있도록 행동하는 것 등등을 뜻한다. 이렇게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사람에 따라서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의 뇌는 엔트로피를 유지하려 하고, 이에 외부적 작용이 없다면 점점 무질서의 극단에 이르기 때문이다. 무질서한 엔트로피 상태로 흘러가는 것은 보통 즉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게 만든다.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행위나 쾌락, 편리를 좇게 되며 결국 점점 게을러지거나 집중해야 하는 일을 회피하고, 자신과 다른 주변을 보며 불안해하도록 만든다. 이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래 우리 뇌는 엔트로피 상태로 회귀하려는 본능을 가졌음을 인지하고, 자신은 무의미한 시간을 함께하는 가치 없는 행동으로 어떤 것을 하고 있었는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렇게 점점 무기력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네트로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엔트로피(entropy)라 하면, 열역학에서 말하는 ‘단열 조건 하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라는 엔트로피, 정보이론에서 말하는 ‘총 정보량의 평균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엔트로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엔트로피의 뜻을 알 수 있었으며, 엔트로피의 과학적인 정의밖에 몰랐던 나는 이 책이 어째서 인문학/철학 서적 중에 꽂혀 있었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본능은 점점 질서가 없는 쪽으로 가도록 만든다’. 나는 엔트로피가 이런 다른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줄은 몰랐고, 특히 이 책은 정말로 자연적인 현상을 인간의 뇌 상태나 심리적인 것으로 이어 설명하고 있었다. 자연이 무질서한 상태로 퍼지는 대로, 사람들 또한 자신의 본능과 1차원적인 행위에 휩쓸리며 점점 태도나 목표의식이 흐트러지는 동안, 흔히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이상적인 위인들은 그 무형의 흐름을 거스르고 네트로피를 유지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는 착각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낸 마음의 재해석)

첫 장의 모든 것은 뇌가 주관한다는 것은 꽤나 재밌는 주장이었다. 일단, 눈은 흑백 혹은 색만 구별하고 사물이나 사람의 모양을 ‘인지’하고 ‘그려’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가 한다는 게 신기한 주장이라 흥미로웠다.

또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감정을 뇌가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생체적인, 물리적인 반응을 통해 뇌가 감정을 ‘읽어’낸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감정은 화학적 작용으로 인해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반응을 하고 그 반응을 통해 뇌가 감정을 정교하게 추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로봇처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감정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2장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더 설명하는 것 같다. 책에서는 무의식의 과정으로 인해 의식이라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 무의식적인 과정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한다. 2장은 개인적은 의견으로는 1장만큼 재미가 있진 않아 열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1장에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것을 활용할지에 대해 설명해주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본 가치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