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내가 실존주의 철학을 알게 된 계기는 상당히 우연스럽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문학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대출해서 읽어봤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문학에 대한 책이 아니었고, ‘이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하는 생각만이 남았다. 궁금해서 사르트르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실존주의 철학을 처음 제시한(‘실존주의’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점점 실존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실존주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게리 콕스의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을 읽었다.
정말 흥미롭게도,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상이 내가 골몰하던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어째서 존재하는가?’등의 문제이다. 하나의 예시로, ‘죽으면 모든 것들이 무(無)로 돌아가는데, 굳이 열심히 해야 하나’같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고 본질이 후행하는데, 이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인간의 고정된 본질(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덕분에,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이 자유는 사실상 ‘책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유에 따라 항상 선택을 하게 되고,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자유와 책임은 비례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선택을 하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이기에,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가 인간의 삶이 지니는 가치 중 하나인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주요 개념으로 진정성과 자기기만을 꼽을 수 있다. 진정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기만은 비진정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기기만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가령, 자신의 시험 점수가 낮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자기기만이 될 수 있다. 결과를 인정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벗어나려고 한다면 말이다. 자신의 점수를 인정하고, 태만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노력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진정성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더 노력하는 것이 어째서 책임을 지는 것이냐고 반박할 수 있다. 앞 문단에서 이야기했듯이 시험을 보는 것에 대해 개인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시험을 보기로 선택했다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진지하게 시험에 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안 볼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실존주의자는 진정성을 갖고 삶을 살아야 하며, 자기기만을 피해야 한다. 앞 문단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자유와 책임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로움에 대해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진정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실존주의라고 느꼈다.
실존주의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실존주의의 발생, 실존주의 사상가들, 사상의 주요 개념들을 쉽게, 예시를 들어 잘 설명해준다. 텍스트도 난해하지 않고 적당하게 구어체로 쓰여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철학도 읽을 만 하구나! 해서 <역사를 읽는 방법>이라는 해석학 책을 읽고 있는데, 철학 공부는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정도였다.
또한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실존주의를 살피지만, 니체와 하이데거 등 다른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실존주의 전반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읽다가 자신이 끌리는 철학자가 있으면, 그 사람의 사상을 더 공부하면 된다. 나는 하이데거의 사상이 끌렸다. 하이데거의 진정성은 ‘죽음을 향한 존재’인데, 평소에도 죽음과 연관 지어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의 철학은 어렵기로 소문나서 나중에 공부할 생각이다…).
실존주의를 공부함으로써,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제 입문단계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정신적 문제들을 마주하게 될 텐데, 이 때 실존적 사고를 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질투, 슬픔, 사랑 등 많은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실존적으로 마주하여, 오직 나에게 극복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러한 각성의 요소가 실존주의 상담(실존철학으로 상담을 해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의인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자유를 인지하며, 죽음을 향해 존재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마음
고전이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에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일과 감정들이 녹아있다. 이러한 보편적 정서를 고대, 근대 등 다른 시대의 이야기로 들으니 재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읽은 <마음>이 특히 이런 점에서 재미있었다. 친구에 대한 경외, 사랑의 삼각관계, 신념의 문제들이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나타난다. 아직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죽지 않고 잘 살았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확장해서 읽을 수 있었다.
주제는 역시 ‘마음’이다. 제목이 <마음>인 만큼, 인물의 심리에 집중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3장 ‘선생님과 유서’이다. 이 장에서는 젊은 시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에 대한 경외, 그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그 둘이 사랑하는 여자와의 삼각관계가 주된 내용이다. 1장과 2장에서도 마음에 대한 묘사는 훌륭하지만, 3장이 가장 좋다고 느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나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배경, 생각,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표출하고,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테마는 모순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것이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숙부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횡령당해, 인간에 대한 의심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선생님도, 결국 자신의 친한 친구를 간접적으로 살해한 악한 인간이었다. 이 대목에서 인간 본성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이 극명히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착각하며 살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염증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항상 남에게는 각박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자기기만을 일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진정성,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죄의식이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소심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 우유부단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사실상 그 우유부단함이 선생님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앞날에 대한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털어놓을까 하다가도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마음의 동요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다.”라는 구절에서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나도 한 소심함 하는데, 털어놓을까 고민할 때 그냥 털어놓아버리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또한 모순을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고 본다. 소설의 배경이 개화기인 만큼, 지금처럼 이성과의 교제가 자유롭지 못했고, 인물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소설이 현대를 배경으로 쓰였다면, 서로의 마음을 확실하게 이야기해서 선생과 k 모두 자살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죄의식은 자신을 성찰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이는 행동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자신의 죄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행동을 신중히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소설의 선생님처럼,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의 죄의식을 갖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단 한 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인물의 감정이 잘 묘사된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의미는 ‘마음에 대한 진정성’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소세키에 대해 조금 알아보다가, 동양 근대 문학의 대표로, 일본은 소세키, 중국은 루쉰, 한국은 염상섭이나 이광수를 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루쉰이나 염상섭 혹은 이광수의 작품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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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라틴어 수업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우리 기억 속의 색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컸던 나는 색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어떤 색감이 눈을 편하게 하는지, 어떤 색감이 강조에 적절한지 등등 색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알게 된 지식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색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과 사례들을 볼 수 있었으며, 작가는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관한 질문도 던지며, 색에 관한 기억을 더듬게 했다. 책은 늘 우리에게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줄만 알았는데 허심탄회한 개인의 경험담들만 담은 이 책이 굉장히 새롭게 와 닿았다. 교훈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감정보다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 책을 통해 앞서 말했듯 나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 덕분에 나 역시 색에 관한 나만의 기록을 틈틈이 적고 있다. 이 말인즉슨 이 책은 나도 책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책은 교훈과 감동에서 끝나버리곤 했는데 이런 꿈을 안겨준 책은 처음이었다. 또한 혼자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서 클럽 팀원들과 함께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정말 유익했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각자가 경험한 인생이 다 달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매우 신선했다. 디자인 대학을 다니며 앞으로 색에 대한 경험들이 많이 늘어날 텐데 그럴 때마다 이 책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색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며, 꿈꾸는 설렘을 다시 느끼게 해준 이 책에 감사를 표하며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