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수선화

<피어라 수선화>는 공선옥 소설가의 데뷔 소설 등이 들어있는 소설집이다.
‘지금과 연관이 있지만 색다른 시대의 아주 옛날 것이 되어버린 30 여 년 전 소설’을 읽고 감상을 잘 남기기 위해선 내가 산 시대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왜 이 소설에서 도움을 얻었는가?’ 말하며 서평을 쓰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베풀며 살았다. 지금 죽어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늦은 여름의 코스모스가 만개할 때 보기는 예쁘나, 꺾이고 시들 땐 추하다.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에 추해지는 것이다. 꽃은 씨 뿌리고 스스로 죽으려 드는데 사람은 암만 압박을 받아도 쉽사리 죽지 않는다.’
보고 들은 것을 머릿속에서 짜 맞추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말이 되는 생각인지 평가질도 하면서 내가 사춘기 때 내렸던 생각이 이런 식이었다.
나도 철이 없지만 주변에 꺼내줄 사람 찾기도 힘들었다. 
60 세가 넘으면 한강 다리에서 자살하겠다고 농담이나 쑤시던 친구는 고등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가 코로나를 맞았다. 
내 앞에서 흥분하며 가족 흉을 보던 애는 얘기 꺼내기도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다. 
허울 뿐인 명문고에서 직사하게 고생하던 다른 애는 졸업할 때까지 쓴맛을 보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문학과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학 선생, 역사 선생한테 생각을 주입 받았다. 
교훈에 역사를 배우자는 말은 왜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열쇠를 삼킨 채 참거나 대들며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하고 보니 문득, 교과서에 실려있던 누구도 잘 공감 못하던 소설로 시험 문제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중2 때 국어 선생님의 고충이 떠올랐다. 
그 소설은 공선옥 소설가의 <일가>인데, 도서관에 데려가도 맨날 청소년 소설에서 야시꾸리한 부분을 찾아 읽고 까 뒤집는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애들을 데리고 소설을 읽히고 시험을 쳐야 하는 국어 선생님의 자괴감을 지금도 헤아릴 수 없다. 
아무튼 그 소설은 그 당시 교실의 분위기 때문인지 흥미로운 소설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공선옥 작가의 이 책을 보았을 때 꺼내 읽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같잖은 흥미 따위가 진지한 생각으로 바뀌는 조화였을 지도 모른다.

티비를 보면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PTSD’라는 개념조차 잘 모르던 90년대 초반의 광주직할시 사람들은 도대체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게 느껴진다. 가뭄 때문에 급수가 삼일제가 되어버리자 바께쓰 한 통이라도 물을 얻으려고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양동이를 대 놓았다가 예고도 없이 급수가 되어서 아랫집까지 물이 새는 일, 5월만 되면 자신이 ‘허깨비’같이 느껴지며 일도 잘 못하고 축 늘어지는 아저씨, 온갖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엄마가 그리워지는 미혼모 이야기까지 우리가 잊고 사는 90년대 사람들의 처지가 이 책에서 생동감 있게 나오기 때문에 상처가 많으신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는 데도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는 누구도 부럽지 않게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픔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조숙하다는 둥 철 좀 들라는 둥 다그치기 보다는 서로 의지가 되는 진정한 의미의 성숙을 도움과 함께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5.18도 내 삶의 안 좋은 기억들도 들러붙는 ‘구신’이 아니라 아픔으로 상처로 당당히 인정받을 것이다.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장편소설)

더 셜리 클럽은 ‘따뜻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미디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주인공 셜리(한국이름은 설희)의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멜버른 축제에서 ‘셜리 클럽’의 행진을 보게된다. 셜리 클럽이 자신과 같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들에게 매료되어 행진을 따라간다.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진 셜리는 이끌리듯 이들을 따라간다. 머뭇거리고 있는 셜리에게 운명처럼 보랏빛 목소리를 가진 S가 등장해 친구를 맺게 된다. S의 도움으로 임시 명예 회원 신분으로 셜리 클럽에 가입에 성공한다. 셜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임시 명예 회원인 셜리에게 사랑을 나눈다. 집에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터에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셜리들은 더욱 돈독해진다.
셜리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보랏빛 목소리 S와의 관계도 흥미진진하다. S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S의 목소리가 보랏빛이라는 사실만 존재한다. 하지만 셜리는 S의 목소리만 들으면 용감해진다. 그리고 S가 곁에 있기에 셜리는 나아 갈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이 사랑이라는 걸 알아 챘을 때, 이들은 한층 더 돈독해진다. 
나이도 인종도 관심사도 모두 다르지만 이름 하나는 같은 이들의 우정이 참으로 따뜻하다. 우리는 살면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몇 명이나 만날까? 그리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며 돈독해지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말 동화같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소설 속에 푹 빠지게 된다.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셜리고 모두 셜리를 아낀다. 셜리를 돕는게 이들을 돕는 일이니깐.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예민한 엄마와 청소년 우울증 딸의 화해와 치유를 향한 여정)

내가 먼저 읽기 전 할머니께 드렸는데 “이건 누구나 다 읽어야 할 책이다. 너, 동생, 엄마 누구 할 것 없이 읽어봐야 한다.” 라고 하셔서 한 방에 읽었다. 딸이 타이레놀 13알을 먹어 병원에 가게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 장면에서 너무 놀랐고 얼마나 이 아이가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됬다. 그래서 엄마와 딸의 사이가 좋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면.. 음 서로 대화를 않는, 상처를 서로 많이 갖고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여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청소년우울증은 자신의 우울증을 표현하지 않는다 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여서 “얘가 우울증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도 우울증을 겪기 때문일지, 현재 진행형이라서일지 마음건강바우처를 통해 두 사람 모두 이겨내기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둘은 대화를 통해서 쌓인 것들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 중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한 잘못들을 밝히고 사과도 하고, 원하는 점도 말하는. 그런 화해들이 필요하다는 딸의 말에 참 동의를 하기도 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부모 역시 자식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러나 이런 생채기를 부모는 생각치 않는다. 아랫사람으로 생각해서인지 자신이 자식에게 희생하는 것들 때문인지는 모른다. 부모는 우리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그냥 그대로 넘어가야 하는 그 아픔을 화해를 통해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책을 읽으며 딸이 말을 잘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횡단보도 비유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미 내가 간 길이니 따라오라고, 지시대로 하라고 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허둥지둥 따라가다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왜냐면 부모가 간 길은 이미 변화했는데 (구덩이가 생기든, 신호가 변하든) 그걸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지도 앱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길을 알려주는거 아니야?” 라고 엄마가 물어본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다르다. 어플은 나의 목적지를 ‘내’가 입력하기 때문이다.

카오스 (새로운 과학의 출현)

이 책은 카오스는 경제경영,생태학,의학,인문사회과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있음을 보여주며 그 뜻을 겉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내적으로 규칙성을 갖고있다고 풀이한다. 이렇듯 예시들을 통해 카오스의 이론을 설명해준다.

카오스 연구자들은 대류흐름,진자 등 물리학에서 명백하게 이해했다고 여긴 것에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내용에서 큰 충격을 먹었다마냥 물리학을 좋아한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초라고 하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도 우리는 왜 자연의 불규칙성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나의 오랜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준 책이었. 처음에 카오스를 그림으로 표현한 로렌츠끌개, 망델브로집합 등 프렉탈구조를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였는데 그 예시들인 나비 날갯질이 나중에 폭풍을 불러온다는 나비효과나 상기의 이론을 보며 카오스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기상예측이 카오스영향에 가장 많이 미칠 것 같다 생각했고 단순히 수학,과학분야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규칙적인 생체시스템도 카오스를 적용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이렇듯 천문학,기상학,생태학,정치학,경제학까지 많은 학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되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아주었다. 그래서 과학이 드디어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증명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러한 카오스가 불확실성이라는 점에서 양자역학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카오스의 역사는 과학계의 변방인 사람들로부터 나왔는데, 이걸 보고 과학계의 한 획을 긋는 것은 언제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세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

나는 항상 현재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성격이 다름에도, 또 어느면에서는 공통적인 심리들을 가지고 있는게 항상 궁금했다. 혼자 아무리 고뇌해도 답이 내려지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이 책을 접하고 나서 조금이나마 정답을 찾을 수 있게 되서 좋았던 것 같다.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본성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동물이나 곤충을 토대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한다. 그렇기에 이기적 유전자에서처럼 인간은 유전자의 기계이며, 우리가 사는 생활모습이 사실상 동물사회랑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갸우뚱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나름 전체적인 서술로 봤을 때,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어서 재미있게 보았다. 
책에 의하면 모든 것은 본성에 의한 것이며 그 본성은 내재된 DNA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DNA에 의해 과학적으로 계산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존제에 특별한 가치는 없으며 그저 세계를 살아가는 하나의 물결, 흐름일 뿐인 것이다. 즉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시원한 답변은 아니라 아쉬웠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르크스 씨,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죠?

이 책은 마르크스의 일대기, 그의 사상적 배경, 그의 사상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반이 된 헤겔철학, 애덤 스미스의 철학등을 통해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 이상의 국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자본가의 착취가 심해져가는데, 왜 우리는 그 탓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저항하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는 미디어폭력과 세뇌로 자본주의의 희생이 된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론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공산주의하면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대체로 인식이 안좋은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의 진실된 생각과 사상, 그 배경들을 알고나니 그 편견을 깰 수 있었.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사상이 지금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다르고 지금의 사회주의의 실패는 독재자의 실패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되었다. 내 생각에 그는 분명 모두 평등한 세상을 원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책 내용중에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들도 왜 스스로 계급을 나누며 자본가편을 드는지물었을 때, 자본주의에 대한 단점들도 수없이 많다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못했던 내게 성찰할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의 빈부격차가 싫었던 모양이다. 현대의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문제가 있음에도 우린 이것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인정하고 더 나은 보편적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마르크스는 이야기한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해 고민해오던 마르크스처럼 우리도 또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문제들 (인간과 철학)

철학하면은 일반인들에게는 무겁고 난해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철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관심이 갑자기 생기고 그럴꺼같진 않다. 이 책의 내용도 순수 철학만을 다루며, 그러한 철학내용들을 배우고, 그 내용들을 통해 현문제들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차는 총 15장으로 이루어져있고, 첫문장은 “이성을 가지고 사리에 맞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신할 수 있는 지식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러셀이 우리를 철학적 사고로 초대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책은 내내 너무나 당연한 수학공식들이나 상식들도 그게 정말 당연한지 되묻는다. 독자는 그 증명을 따라가면서 논리적인 사고 없이 믿을 수 있는 것들은 실상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물론 러셀의 입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이 마냥 철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면 왜 철학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무지한 것보다 나을 수는 있으나 하찮고 세세한 문제들을 따지는게 결국 무슨 쓸모가 있냐는 소리이다.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은 마지막에 ‘철학적 사유의 가치’를 언급하며  철학적 사유 방식과 성찰의 태도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모든 잘못된 것과 허위 의식의 정체를 어느 정도는 밝혀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독자의 감동을 더한다.

광장/구운몽 (최인훈 장편소설,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장이라는 작품은 남북 간 분단의 존재에 대해 근원적 의미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시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모두 자신이 원하는 광장이 없다는 걸 인식해, 절망하며 끝내 죽으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이명준이 바다에 뛰어내린 장면이다. 당시 희망을 가지고 월북을 하였지만 그마저 부자유한 분위기에 실망하고 다시 남한으로도 가기 싫은 이명준의 비참함과 혼돈을 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광장이라는 제목이 되게 심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니 광장이라는 제목이 당시 시대상황을 가장 잘 나타주고 당시 사람들의 희망통로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밀실이 필요하면서도 공공동체적 광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회적 삶의 공간을 뜻하는 광장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은혜 또한 그러한 광장이 이루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명준은 현실에서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쪽도 아닌 상황에서 끝내 투신자살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인해 한 지식인이 고통을 받으며 자신을 비관하는 모습을 보고 이 시대의 지식인의 시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이명준이라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자살은 하지않았을것이다. 일단 자기에게 맞는 광장 즉, 이상향을 찾기란 너무나 힘이 들었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또한 은혜의 아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저 버린 것이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나만의 광장이 과연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의 똑같은 목표아래 공부만 하는 나에게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