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군대에서 방구석 미술관이 진중문고로 선정이 되어서 방구석 미술관 1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미술에 문외한 저에게 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구석 미술관 2 저자님의 만남 강연을 시간이 안 돼서 보러 못갔는다. 이렇게 영상으로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책을 계속해서 써 주시면 사람들이 미술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킹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번에 읽기 전에 구병모 작가의 “상아의 문으로” 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꿈을 주제로 한 판타지 소설이다 보니 다소 문장이 길고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그 뒤로 판타지 소설에 대한 조금의 공포증과 판타지 소설은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 소설은 너무나도 술술 읽히는 소설 이었다. 마치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sf영화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졌는데 소설 하나하나가 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문장의 표현도 몽환적이며 예뻤던 소설들로 가득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은 “공생가설”이다. 공생가설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갓 태어난 신생아의 머릿 속에 오래전에 사라진 류드밀라 행성에서 온 “그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아기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길러준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아기들의 머릿속에 있는”그들”은 인간의 유년기에만 뇌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아기가 7살이 되면 아이를 떠나고, 이는 유년기 기억상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어렸을 때를 잘 기억하지 못 한다. 이는 당연히 “너무 어렸어서”라고만 다들 생각하는데, 작가는 이것을 “그들”의 존재 유무를 통해 새롭게 표현하였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창의력과 아이디어에 감탄 하고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 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의 단편소설들 제목을 보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공생가설”,”관내분실” 등 다들 소설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직관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스펙트럼”은 제목과 내용의 관계의 유추가 필요한 제목이다. 그래서 스펙트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을 해 보았다. 스펙트럼은 첫번째, 두번째 루이를 포함한 여러명의 루이가 그리고 간 그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루이가 계속해서 새로 왔을 때마다 루이가 그린 그림에는 다양한 색채와 비정형의 얼룩들이 있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그림이라고 책에 나와있다. 이 그림을 희진이 보았을 때는 스펙트럼과 같았고,  할머니가 된 희진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 그림이 행성과 루이의 유일하게 남은 흔적이기도 하고, 루이가 죽고 다음 루이가 등장하는 이러한 연속적인 흐름이 스펙트럼과 같아서 제목이 “스펙트럼”인 것일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스펙트럼”은 영화화도 확정이 되었다는데 영화에서 루이와 그 행성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독서클럽 활동 당시 교수님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과학교과서를 읽는 것 처럼 어려웠고 이해하려면 두번은 읽어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 좀 깜짝 놀랐다.오히려  나는 이 소설이 쉽고 빠르게 술술 읽혀 김초엽 작가가 역시 젊은 작가라 표현을 쉽고 재미있게 해놔서 그런거구나 했는데  교수님은 70-80년대 현대문학을 접하셨고, 그로인해  고전적인 표현과 어휘에 익숙해지셔서 이렇게 새롭게 변하는 소설 형식에 낯설어 하시는 것 같았다. 나와 교수님이 같은 소설에 대해 다르게 느꼈다는 점이 좀 신기했던 것 같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판타지 소설에 대해 낯설거나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중고등학교 이후 미술을 접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미술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대미술은 무언가 심오하고 어려워 보였는데 강의와 책을 통해 무척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현대미술의 매력과 한국의 현대 미술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

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의 제목이 매우 인상 깊었고 집에서 미술관을 즐긴다는 뜻인가? 생각했다저자와의 만남이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영상으로 작가님을 직접 뵐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매우 흥미로웠다. 또 강연만 하는 형태가 아니라 현장에 있던 학생들과 소통하며 강연을 진행하여 지루함 없이 시청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퀴즈를 푸는 활동도 직접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상 깊었고 단순히 책 소개가 아닌 작가님의 경험을 말하듯 풀어주셔서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직접 참여하여 듣고 싶다.

검은 꽃

 나는 대학에 오기 전부터 역사와 문학을 좋아했지만, 철저하게 역사를 고증한 문학을 잘 찾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문학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한 경험이 적어 늘 아쉬움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독서클럽에서 팀원이 이 책을 추천했을 때, 이 기회를 통해 책을 읽으며 역사를 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은 작가님이 생생한 묘사를 위해 직접 멕시코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는 인터뷰가 있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 책의 묘사는 가끔 잔인하고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진다.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것 같은 문화 유적지도 어느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당시 역사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고 팀원들과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등장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해석하다 보면 어느새 한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한 나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점은 역사 고증이 워낙 철저했기 때문인지 작품 내의 분위기가 내내 어둡고 우울하다는 것이었다. 보다가 지칠 정도는 아니지만, 워낙 어두운 시대를 반영하다 보니 책을 보며 웃음을 지을만한 가벼운 장면이 없었다. 그리고 초반에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물론 끝까지 읽으면, 각각의 등장인물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건너간 우리 동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며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끝까지 비교하며 읽으면 어느새 이 책의 배경에 나오는 짧은 역사를 이해하고 외운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 수업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작가의 자존감 수업은 ‘독서클럽’ 활동으로 인해 읽게 되었다. 심리에 관련된, 그리고 최근 많이 주목받고 있는 ‘자존감’에 관련된 도서이기에 해당 책을 독서클럽 활동 도서로 선정하게 되었다. 
 ‘자존감이 가장 강력한 스펙’ 이라는 주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온갖 방법과 글귀가 난무하지만 진짜 행복은 튼튼한 자존감에서 나온다건강한 자존감이야말로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 문장이 가장 인상 깊다이 말에 정말 공감하였으며 누군가에게 동요되지 않고 정말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굳건하게 믿는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진심으로 날 사랑하고 믿어주는 자존감을 키워보고 정신적으로도신체적으로도 정말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결정을 잘하기 위한 조건 세 가지를 읽고 결정을 잘했다못했다 나뉘는 것은 결정을 하고 난 후의 행동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해당 문구를 통해 결정을 할 때 전보다 더 용감해지고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자존감은 감정적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그리고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는 능력이다.’ 부분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같이 읽을 책을 정하는 과정부터 함께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과정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자존감 수업’을 읽고 친구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서 ‘책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읽는 방식을 새롭게 터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함께 이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견의 포인트들을 알 수 있는 활동이었기에 다음 번에도 참여하고 싶다. 

데미안 (세계문학전집 44)

보물지도 같은 도서, 데미안
  책 ‘데미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었고, 은유적인 표현을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이번 독서클럽을 통해 책 ‘데미안’을 다시 한번 접해보았고, 내가 느낀 의미는 상당히 변화되어 있었다.
  데미안은 총 8장으로 나뉘어있으며 각 장마다 제목이 다르게 지정되어있는데, 과거의 나는 제목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독서클럽을 통해 진행되는 반복되는 질의 응답에 ‘과연 작가가 제목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단지 은유나 각 장의 내용을 함축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성경이나 신화적인 내용 또한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제 3장의 제목은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인데, 혼자 독서를 할 때에는 단순히 ‘옳음’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인줄 알았다. 그렇지만, 독서클럽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가 성경의 내용을 은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과거의 나는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맥락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간의 악과 선의 기로에서 방황했던 싱클레어의 이미지가 눈 앞에 그려지고, 안개 마냥 뿌옇게 드리웠던 그림자를 모두 걷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데미안의 ‘존재’에 대해 포커싱을 맞춰 독서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성은 어떠하며, 데미안은 도대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또래 보다 성숙한지, 혹은 그저 ‘순수악’일지…… 8장에 걸쳐 독서하며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이 정의를 내릴 순 없는 존재이다. 다만 그간 읽은 내용으로 추론하자면,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이며, 자신의 힘듦과 고통을 나눠 짊어질 하나의 구세주인 것이다. 냉철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싱클레어에게 ‘해답’이 아닌, 질문으로써 빛으로 유도하는 데미안은 어쩌면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책 ‘데미안’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더욱 성장하는 도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는 책 ‘데미안’은, 혼자서 읽고 결론을 내리기엔 다소 편협한 시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서클럽’과 같이, 책을 읽고 이에 대한 의견들과 질문을 서로 공유하다보면, 내가 찾지 못한 숨겨진 의미나 새로운 표현들을 속속들이 찾을 수 있는 ‘보물지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다채로운 색을 가진 도서, ‘데미안’. 1년 후의 나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해 행복해 할지도 모른다.

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미술을 만나는 눈이라는 강연을 들으면서 제일 기억의 남는 말은 모나리자의 면사포를 예를 들면서 ‘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 였다. 이러한 말은 미술 강연이었지만, 미술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내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못해 모나리자의 면사포처럼 놓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 강연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것들을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쉬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새로운 시각들에 눈뜨는 것이 좋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나는 항상 미술 작품을 보기 전 사람들의 해석이나 설명을 보고 작품을 봤기 때문에 그 해석과 설명에 따라 작품을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님이 미술관은 지상 유일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놀이터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앞으로 미술 작품들을 보며 나만의 창의력, 논리력, 통찰력 등을 동원해 작품을 해석해보고 이를 통해 나의 지적 능력도 키워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공정을 논하기 전에, 우리 사회를 성찰해야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공정”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한다고 본다. 왜 우리는 허상에 불과한 형식만에 집중하고, 썩어 곪아가는 현실이라는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구조들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붕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대침체)와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촉발된 대봉쇄는 신자유주의와 양적완화가 자본주의라는 암덩어리가 주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진통을 하게 만드는 모르핀에 불과한 정책들조차, 효과도 없다는 걸 증명했으며, 대의제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들을 대표해야지만,  특정 집단과 이익만들 추종하는 정치인들의 기술관료화 덕분에, 브렉시트, 반지성주의 지도자의 탄생(트럼프, 보우소나로 등등)를 통해 무너졌다.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적 구조가 무너졌는데, 그 구조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 “공정”이라는 개념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공정에 대해 논할려면, 그 공정이 피어날 수 있는 사회부터 재건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샌델 교수도 이 점을 책에 나지막이 “노동의 존중”이라는 단어로 나타낸다. 나도 “노동의 존중”이라는 전체적인 흐름에는 동의한다. 근데, 난 무너져가는 구조에 기반한 정책들 예컨데, “금융소득세”, “대학추첨제”같은 세부적인 줄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그건 양적완화와, 신자유주의같은 모르핀에 불과하여, 그저 단기간의 효과만 보이고,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정책들이다. 난 그래서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바꾸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시급하다고 느낀다. 

일단,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불평등은 존재하나, 자유로울 것이고 그 어떤 것보다 공정할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자연적인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잘생긴 외모이던, 뛰어난 신체능력이던, 영민한 지능이든,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날 것이다. 그 능력을 주어진 대로 “자유”롭게 발휘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힘·능력”이라는 모호하고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자유보다 그것이 더욱 더 자유라는 개념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여태까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가치중립적으로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에 모든것을 맡겨놓아, 사회를 망치게 했다. 판단 할 수 없고 가치 중립적이지 않은 “능력”을 통해 판단할 수 있고 가치 중립적인 “가치”를 분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감성이 이성에 앞서야 하는가? 아니다. 판단할 수 있고, 정량화 할 수 있는 “욕구(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더욱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이성이 감성보다 앞서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논리와 이성은 “올바름”을 만들 것이며, 결국 그 바름은 “절대적인 공정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정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은 우리 삶과 사회의 원리가 아니다. 그저 원리에서 파생되는 곁가지 법칙이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원리는 “이성”이 되어야 하며, 그 이성은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끊임없이 고쳐나아가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공정”해지기 전에, 우리는 “이성적” 이여야한다. 우주라는 모름이라는 어둠속에 우리는 감성이라는 운보다는 이성이라는 등불에 의지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