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수학으로 밝혀낸 빅데이터의 진실)

도서 판매 사이트 과학 분야 랭킹 상위권에 이 책이 있길래 제목도 흥미로워 보이고 해서 독서클럽 책으로 선택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여러 알고리즘을 소개하고 그 알고리즘이 어떻게 편향되었는지 저자가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소개하는 알고리즘들이 비록 학부생 이지만 공대생인 나에게도 처음 보는 어려운 알고리즘들이 많았고 그나마 지도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교수님 말씀으로도 이 책이 어려운 내용이라고 하셨다. 또 이 책에서 알고리즘 분석에 쓰인 데이터가 옛날 자료 같다고 하셨는데 아마 책 출간 자체는 예전에 했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게 늦어져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도서 판매 사이트에 적힌 줄거리만 봤을 땐 철학적인 내용도 많이 있어 독서클럽 토론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알고리즘 설명과 조사내용만 아주 많이 나와 있다…

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집중이 잘 되고 재미있었던 강의였습니다. 감각을 일깨워 보는 법을 주로 설명해주셨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그만큼 눈으로 무엇이든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형태들에서도 가끔 감격스러운 느낌을 받는데 그래서 더 강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멋진 신세계 (문예세계문학선 2)

  <멋진 신세계>는 내가 좋아하는 SF 요소가 들어간 소설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나의 생각보다 어둡고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흠 없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계급을 나누는 설정을 보며 영화 가타카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후에 가타카와 연관지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우리의 삶과 행복, 과학기술과 인간 문명, 어떤 것이 살기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인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완전한 행복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완전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행복의 기준을 세우고, 행복을 바라고만 있으면 평생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행복이란 나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인생의 흠결을 받아들이고, 불편해도 좋으니 내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멋진 신세계에서 살지 않아도 좋다. 그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존중이 닿기를 바란다. 책 속의 야만인이라고 불리던 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첫 장부터 정해진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는 행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이러한 결말로써 확고히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보고있는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인 듯했다. 나는 그 마음을 받들어 끊임없는 경쟁사회에서 살더라도 내 안의 행복과 가치를 잊지 않으려 한다.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도서 감상문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과학문명이 발전한 미래사회를 담은 SF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오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앞부분을 읽었을 때는 이런 의문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책에서 나오는 세계관처럼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무섭고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누어져있는 계층 중에 알파가 아닌 낮은 노동의 계층으로 살아가는 것도 싫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흔한 등장인물처럼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며 세계에 물드는 나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 한 부분인 노동계급인 델타 아이들이 노동만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싫어하게 만들기 위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고 전기충격을 주고 책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상황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은 성인되어 다른 계급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델타는 전기충격을 받게 되며 책을 읽어야 하는 상위층 계급을 불행하게 여겼고 반대로 알파는 매력이 떨어지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하위층 계급을 불행하게 여겼다. 이런 상황들은 내게 매우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과학문명이 발전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존중받고 편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왔는데 자신이 통제된 삶을 살아가며 우매하게 살아가는 것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수의 독자들은 불행을 느끼지 않으며 책임 없는 삶이 행복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나는 무척이나 강압적이고 통제된 사회라고 느꼈는데 왜 행복한 사회인지 의문이 들었다. 계속해서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 세계가 자유로운 것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사회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는 책임감 없이 살아갈 수 있었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소마라는 약을 섭취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이타심과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잃어도 슬퍼하지 않아도 되었고 늙지도 병들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럽지 않는 삶을 원할 것이다. 나 또한 고통스러운 삶보다는 행복한 삶이 더 좋다. 그리고 단편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불행 없이 행복을 얻는 것이 더 좋다. 당연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책임 없는 자유와 욕구가 결국은 통제된 사회,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얻는 것이 반복되면 사람은 나태해지고 우울감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치킨을 좋아하는데 치킨을 그냥 먹는 것과 할 일을 끝내고 먹는 상황이 있다. 둘 다 먹었지만 할 일을 끝내고 먹는 치킨이 더 맛있고 좋았다. 처음에는 치킨을 그냥 먹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킨을 먹는 상황이 지속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치킨이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더 자극적이고 더 편한 상황을 찾게 되었다. 이런 점이 반복되었을 때 내 자신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맛있는 치킨을 먹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행복,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만이 축복인 것은 아니다. 슬픔, 분노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존의 어머니인 린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애도하지 않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과 다른 환경에 살아왔던 존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달라고 하였다. 이 부분에서 나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나도 우울할 때 울고 털어내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고 슬픔이나 분노 등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만 생각하며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존이 자신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달라고 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 중 불필요한 감정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나는 행복이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책 속은 행복한 사회라고 나온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은 불행했다. 린다는 문명사회를 동경하며 인정받길 원했지만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소마를 과섭취하여 사망했다. 존은 꿈에 그리던 문명사회에 왔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이상과 달라 고통스럽게 자살했다. 레니나는 살아왔던 문화가 달라 자신이 사랑하는 존과 이어질 수 없었다. 이처럼 린다의 관점에서 보면 문명사회에서 사는 삶이 행복하지만 존에게는 불행한 삶인 것처럼 행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나도 아직까지 행복이라는 의미를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한다면 그 정의에 내가 갇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내가 조금 다른 것처럼 나의 행복의 가치는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에 대해 한 가지를 말해보자면 나는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큰 행복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울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미래의 사회는 인간이 소외된 미래로 그려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옆 집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고독사와 관련된 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 속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삶에만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떤가. 그렇다면 조금은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장편소설,특별판)

독서클럽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주변 분들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요새 너무 바쁜 탓에 책 한권 읽기도 쉽지 않았었는데, 고민 끝에 재밌어보이는 책을 발견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나는 이 작품을 드라마로 처음 접했다. 드라마를 전부 본 것은 아니고 유튜브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것만으로 흥미로워서 원작 또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꽤나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고민과, 생각들을 판타지스럽게 담아냈을 뿐이다.
흥미로운 이 책을 독서클럽을 통해 토론도 함께하며 깊게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 오직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 말과 같이 이 책의 문체와 스토리 모두 솔직했고, 흥미로웠다. 
최근들어 책을 접하지 못해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의 능력주의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에 대하여 
이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능력이 우월할수록 더 많은 몫을 가지고 열등할수록 더 적은 몫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한국의 능력주의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는 위의 말이 맞는 말이고 ‘이것이 능력주의의 의미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말이 왜 잘된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정하다 말하는 능력주의에 거침없이 ‘아니다’ 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특정 기준, 시험에 통과한 소수에게 특권이 집중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저능력, 무능력자로 지목된 이들을 배제하거나 차별하여 모욕하는 것이 있다. 우선 첫번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능력주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과거제, 현 사회의 인재 선발 방식, 고시 제도 등 시험이라는 통제 수단을 이용해 왔다. 
이 단계를 거치면서 ‘과연 이 사람이 사회에 나갔을 때 잘 해낼 수 있는가?’ 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한다. 또한,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험을 치르기에 이 방식은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결과의 당연한 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공평할지라도 시험을 보기 위한 과정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집이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부유한 사람은 넉넉한 경제 상황이라 좋은 과외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같은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은 두 번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 방식과 이어지는데 위와 같이 좋은 혜택을 받고 누가봐도 성공한 삶이라 칭하는 상황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한 삶이고 소위 능력주의자들보다 자격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하며 이들을 향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나타낸다. 
책 속에 나온 예로, 한 수학 스타강사가 “수학 7등급은 솔직히 공부 안 한 거다. 그렇게 할거면 나중에 용접 배워서 호주로 가야 된다.” 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 후 대한용접협회에서 기술직 비하 발언이 분명하다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다음 날 그 강사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사과했고, 언론들도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동안 여파는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들의 의견이 다양했다. 강사가 한 말은 비하 발언이 맞다며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솔직히 공부 못하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옹호적인 의견도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능력주의는 일종의 계급차별, 인종차별으로 느껴지게 한다. 마치 사회에서 정한 능력의 기준에 미치지 않은 사람들을 비존재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약자와 소수자의 구조적 불리함을 조금이나마 교정하려는 실질적 기회균등 조치가 모두 ‘역차별’이고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혐오 표현으로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와 다르지 않다. 이런 능력주의로 인해 차별과 혐오의 죄의식을 경감시키고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공정’하다고 믿게 만다는 이 사태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 사회에 보여지는 능력주의의 다양한 예를 보여주며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물론 작가의 말이 다 옳고, 능력주의는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작가의 말도 모순되거나 너무 일방적인 의견이 들어있기도 하여 의견을 듣되, 걸러서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평상시 우리에게 익숙한 ‘능력주의’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

  이 책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던 종류의 대학 전공도서 같은 인문학 책이었는데,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서 소비의 사회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소비의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소비를 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다방면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도록 하여, 우리가 삶에서 소비하는 것이 단순한 사물만을 이야기하지 않음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팀원들과 교수님과 함께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생각을 넓히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은 육체라고 한 부분이다. 육체가 소비되고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치 못한 부분이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처음엔 인간의 육체를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과 독서클럽을 통해 토론하며 긍정적인 반응으로 바뀌었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소비하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나에 대해 많은 것을 투자한다는 뜻이고, 이로 인해 더 나은 나 자신을 발견하며 만족함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비 행위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회과학에 대해 잘 몰랐던 나에게 흥미로운 분야를 알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