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에 대하여
이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능력이 우월할수록 더 많은 몫을 가지고 열등할수록 더 적은 몫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한국의 능력주의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는 위의 말이 맞는 말이고 ‘이것이 능력주의의 의미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말이 왜 잘된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정하다 말하는 능력주의에 거침없이 ‘아니다’ 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특정 기준, 시험에 통과한 소수에게 특권이 집중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저능력, 무능력자로 지목된 이들을 배제하거나 차별하여 모욕하는 것이 있다. 우선 첫번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능력주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과거제, 현 사회의 인재 선발 방식, 고시 제도 등 시험이라는 통제 수단을 이용해 왔다.
이 단계를 거치면서 ‘과연 이 사람이 사회에 나갔을 때 잘 해낼 수 있는가?’ 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한다. 또한,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험을 치르기에 이 방식은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결과의 당연한 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공평할지라도 시험을 보기 위한 과정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집이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부유한 사람은 넉넉한 경제 상황이라 좋은 과외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같은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은 두 번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 방식과 이어지는데 위와 같이 좋은 혜택을 받고 누가봐도 성공한 삶이라 칭하는 상황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한 삶이고 소위 능력주의자들보다 자격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하며 이들을 향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나타낸다.
책 속에 나온 예로, 한 수학 스타강사가 “수학 7등급은 솔직히 공부 안 한 거다. 그렇게 할거면 나중에 용접 배워서 호주로 가야 된다.” 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 후 대한용접협회에서 기술직 비하 발언이 분명하다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다음 날 그 강사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사과했고, 언론들도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동안 여파는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들의 의견이 다양했다. 강사가 한 말은 비하 발언이 맞다며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솔직히 공부 못하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옹호적인 의견도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능력주의는 일종의 계급차별, 인종차별으로 느껴지게 한다. 마치 사회에서 정한 능력의 기준에 미치지 않은 사람들을 비존재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약자와 소수자의 구조적 불리함을 조금이나마 교정하려는 실질적 기회균등 조치가 모두 ‘역차별’이고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혐오 표현으로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와 다르지 않다. 이런 능력주의로 인해 차별과 혐오의 죄의식을 경감시키고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공정’하다고 믿게 만다는 이 사태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 사회에 보여지는 능력주의의 다양한 예를 보여주며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물론 작가의 말이 다 옳고, 능력주의는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작가의 말도 모순되거나 너무 일방적인 의견이 들어있기도 하여 의견을 듣되, 걸러서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평상시 우리에게 익숙한 ‘능력주의’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