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한국)

나는 항상 미술 작품을 보기 전 사람들의 해석이나 설명을 보고 작품을 봤기 때문에 그 해석과 설명에 따라 작품을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님이 미술관은 지상 유일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놀이터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앞으로 미술 작품들을 보며 나만의 창의력, 논리력, 통찰력 등을 동원해 작품을 해석해보고 이를 통해 나의 지적 능력도 키워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공정을 논하기 전에, 우리 사회를 성찰해야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공정”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한다고 본다. 왜 우리는 허상에 불과한 형식만에 집중하고, 썩어 곪아가는 현실이라는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구조들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붕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대침체)와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촉발된 대봉쇄는 신자유주의와 양적완화가 자본주의라는 암덩어리가 주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진통을 하게 만드는 모르핀에 불과한 정책들조차, 효과도 없다는 걸 증명했으며, 대의제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들을 대표해야지만,  특정 집단과 이익만들 추종하는 정치인들의 기술관료화 덕분에, 브렉시트, 반지성주의 지도자의 탄생(트럼프, 보우소나로 등등)를 통해 무너졌다.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적 구조가 무너졌는데, 그 구조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 “공정”이라는 개념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공정에 대해 논할려면, 그 공정이 피어날 수 있는 사회부터 재건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샌델 교수도 이 점을 책에 나지막이 “노동의 존중”이라는 단어로 나타낸다. 나도 “노동의 존중”이라는 전체적인 흐름에는 동의한다. 근데, 난 무너져가는 구조에 기반한 정책들 예컨데, “금융소득세”, “대학추첨제”같은 세부적인 줄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그건 양적완화와, 신자유주의같은 모르핀에 불과하여, 그저 단기간의 효과만 보이고,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정책들이다. 난 그래서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바꾸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시급하다고 느낀다. 

일단,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불평등은 존재하나, 자유로울 것이고 그 어떤 것보다 공정할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자연적인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잘생긴 외모이던, 뛰어난 신체능력이던, 영민한 지능이든,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날 것이다. 그 능력을 주어진 대로 “자유”롭게 발휘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힘·능력”이라는 모호하고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자유보다 그것이 더욱 더 자유라는 개념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여태까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가치중립적으로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에 모든것을 맡겨놓아, 사회를 망치게 했다. 판단 할 수 없고 가치 중립적이지 않은 “능력”을 통해 판단할 수 있고 가치 중립적인 “가치”를 분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감성이 이성에 앞서야 하는가? 아니다. 판단할 수 있고, 정량화 할 수 있는 “욕구(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더욱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이성이 감성보다 앞서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논리와 이성은 “올바름”을 만들 것이며, 결국 그 바름은 “절대적인 공정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정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은 우리 삶과 사회의 원리가 아니다. 그저 원리에서 파생되는 곁가지 법칙이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원리는 “이성”이 되어야 하며, 그 이성은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끊임없이 고쳐나아가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공정”해지기 전에, 우리는 “이성적” 이여야한다. 우주라는 모름이라는 어둠속에 우리는 감성이라는 운보다는 이성이라는 등불에 의지해 나아가자.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인간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질문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덮기 직전 나오는 옮긴이의 말이 정말 가슴에 와닿았다. 옮긴이는 이 작품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사형은 무력하다?’, ‘사형은 무력하지 않다?’ 이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완전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속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들으면 언제나 ‘진정한 속죄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라는 질문들이 연이어 나오며, ‘모순’, ‘위선’ 등 여러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면, 가해자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보며 ‘공허한 십자가’만큼 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속죄가 담기지 않은 십자가는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무게는 온전히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끔찍한 현실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을 하며 착잡한 기분도 들었던 책이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공정하다는 착각을 버릴 수 있을까?
학교를 다니면서 학년이 올라갈 수록 내가 다루는 정보의 양은 많아지고 내가 책임지고 말해야 할 사항도 많아져 갔다. 알아야 할 것에 따라가기 바쁘고 말할 책임에 급급하다 보니 ‘팩트’에 대한 집착이 커져 갔다. 여기서 문제는 ‘팩트’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다. 뭣 모르는 중학생 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다른 후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정보를 너무 많이 가지다 보니 오만한 태도를 가지게 되어서 결국 자기 인생을 나락으로 가게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냥’ 정보는 너무 많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는 것은 고단한 일이고 찾은 그 정보를 ‘자기화’해서 만들어진 인식과 철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공장의 생산 과정만큼 복잡한 일이다. 엘리트라고 해서 정보를 다루는 능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진 것은 아니고 어느 시대의 어떤 계층에서도 정보를 가지고 운 좋게 기회를 잡아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복잡한 사회 담론에 함부로 칼을 들이대도 괜찮은가?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질서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능력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능력으로 줄을 세우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 또 사람들의 능력대로 성과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 사람들의 능력대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 결국 능력 외 적인 요소도 반영하여 사람들을 줄을 세울 거지만 경쟁에 참여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보장한다는 주장까지 들으면서 ‘학업이나 직업에서 열심히 하고 잘 하는 것’과 ‘경쟁에서 성공하고 대우 받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모두에게 통용되는 가치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능력주의를 버리기는 힘들다. 그래도 여러 사상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이 능력주의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 등 가질 수 있는 것을 능력만 되면 모두 다 가질 수 있고, 휘두르는 것도 능력만 되면 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 때문에 말세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능력만 되면’이란 말이 실생활에서 가능한 말인가? 우연, 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생각조차 못할 수 있는 것일까? 우울한 생각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면 나부터 ‘공정하다는 착각’을 버리고 ‘능력주의의 폭정’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이번 독서토론에서 나는 ‘생존기계’라는 내용에 집중하여 글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초반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유전자로 이기적으로 태어났으며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생존기계일 뿐이다 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가며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초반에 책의 압축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글의 쓰임을 볼 수 있어서 앞으로 글쓴이가 어떤 느낌의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의 이 글을 전개해가는지 느낄 수 있어서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다. 또한 우리의 이기적인 본능을 다루는 내용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타적인 행동조차 사실은 우리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내용이 정말 나를 크게 뒤흔들었고 내가 이 책의 필자의 생각에 크게 이입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도 나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게 되어 있다는 본능이 나의 유전자에 내제되어 있다는 부분에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고 사실 내가 행하는 이타적인 행동또한 결국 깊게 그 본질을 생각해보면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 어느정도 내재되어 있다고 나의 행동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부모의 사랑조차 유전적이고 본능적인 부분으로 생각해보면 결국은 나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며 악어새가 청소하는 새를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상리공생적인 관계조차 서로가 자신의 이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관계라는 부분에서 우리의 삶과 관계조차 결국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서 인간은 결국 이기적으로 태어났으며 끊임없이 관계를 통해 남들과 이타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나가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결국 이 책을 읽게 되면서 느낀점은 우리는 태초부터 이기적으로 태어났으며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게 행동하지만 항상 이기적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였다. 만약 이기적인것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면 가장 이기적인 유전자가 우월했으며 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기적이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모든면에서 그렇지 않게 항상 노력해야하며 이타적으로 남들과 이타적이고 협력하는 마음을 공유하고 배려할때 우리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겠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추리소설을 처음 읽어봤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묻혀져 있던 진실들이 하나씩 공개되는 방식의 소설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소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인 사형제도를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의 관점에서 독자들이 공감하고 이입하여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낸 것 같다. 

책의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형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 과연 진정한 속죄가 사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진정한 속죄가 이루어지려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끊임없이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사형제도를 통해서는 진정한 속죄에 이르기는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 기억 속의 색

  ‘우리 기억 속의 색’은 미셸 파스투로가 195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약 60년 동안 색에 관하여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의 내용입니다. 부분적으로 자서전적이고, 인문학에 속합니다. 의복과 일상생활, 예술과 문학, 스포츠 분야, 취향과 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겪은 경험입니다. 어린 시절의 느낌들, 소소한 즐거움, 색에 대해 느낀 반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색을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므로 책을 읽으면서도 추상적이기도하고 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독서 클럽을 하면서 매주 독서하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고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서로의 전공이자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를 선정하여 읽을 수 있어서 전공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책을 읽는 시간이 흥미로웠습니다. 독서클럽은 매주 한 목차씩 읽으며 자기 생각, 의견을 경청하는 등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클럽의 가장 큰 장점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교수님도 책을 읽으시고 함께 토론을 진행하는 점이었는데 이를 통해 더욱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책과 연관된 교수님의 말씀도 듣고 다음 시간에 책을 읽으며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점에 대해서도 알려주셔서 책을 읽으면서 더욱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왜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이었을까?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듯 궁금했던 점이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던 궁금증에 대해 이번 계기로 생각해보고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합니다. 2학기에도 1학기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 같이 참여할 것이고 된다면 교수님도 함께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기억 속의 색

 책에서는 미셸 파스투로가 어떤 시각으로 색을 바라보는지, 색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색이라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여겨지고 이점은 미셸 파스투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색에 대한 절대적인 관점보다는 상대적인 관점을 부여하며 ‘나는 이 색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지?’라는 의문과 함께 흥미를 가져다 준다. 어찌 보면 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서 느슨함을 준다고도 볼 수 있을 거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일상생활’ 파트 부분에서 본인의 삶과 함께하는 색에 대한 언급이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 이야기를 구성하는 글쓴이의 모습과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마치 질문을 하는 듯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유년기 시절부터 청년기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나이가 된 미셸 파스투로는 색을 사랑한다. 그가 출판한 책만 봐도 색에 대한 애정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남다른 사랑이 독자에게도 다가오면서 이 책은 인상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다양한 시각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색. 당신도 글쓴이처럼 시대에 따라, 감정에 따라, 환경에 따라 색을 정의해보길 바란다.

우리 기억 속의 색

제목처럼 저자가 느낀 색에 대한 감정과 일상 속에서 묻어있는 색 들의 내용으로 흘러간다. 제일 흥미롭게 다가왔던 건 일상생활 파트였다. 미셸 파스투로 저자는 프랑스의 어린 기억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색과 관련되어 겪은 일들과 감정을 다루고 있고 과거의 색에 대한 인식을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은 무채색으로 느껴지는데 저자가 언급하는 그 색들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기 시작한다. 읽다 보면 나에게도 질문하게 되고 아 그래서 이렇게 쓰이는 구나 하는 깨닫게 되는 구간도 많다. 또한 프랑스 배경으로 서술 되기에 간접적으로 그 프랑스에서 이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가 여운이 길게 남기도 한다. 하지만 색 뿐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깊은 내용을 기대한다면 기대하지 않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저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정의하는 현대사회의 소비사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번역된 책이라 이해 안 가는 문장들이 많아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낭비는 항상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비축품을 태워버리게 하고 자신의 생존조건을 비합리적 행동에 의해 위태롭게 하는 일종의 광기, 착란, 본능의 역기능으로 간주된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낭비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소비 습관을 한 번 더 뒤돌아 보게 된 것 같아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