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처음보는 글이었다.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롭게 시작한 이야기의 끝에서 삶의 처연함과 쓸쓸함을 느끼며 눈물을 훔치게 되었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 이상 볼수 없는 소중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슬픔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소설이다. 그래서 좋다. 
 나는 이런 글을 난생 처음 읽어 보았다. 

쓸 만한 인간 (박정민 산문집)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듯이 술술 읽게 되었다.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글도 참 매력적이었다. 다 읽고 난 후 왠지 모르게 박정민이라는 사람과 친해진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알려면 그 사람 읽고 쓰는 글을 보아라’ 라는 말이 있다. 배우 박정민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저주토끼 (정보라 소설집)

 이 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을 가져와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 왔다. 아마도 리얼리티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한 현실을 믿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여러가지 단편집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서, 어쩌면 내가 될지도 모르는 추악한 인간의 얼굴들을 보았다.

시작의 기술 (침대에 누워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7가지 무기)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뻔하디 뻔한 말들을 담은 책들도 있고, 허황된 거짓을 담은 책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활자 낭비에 불가한 그런 책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 책은 말한다. 그냥 하라고.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잘하기를 원하는 그 일을 하라고 말이다.
사실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그냥 그것을 하면 된다. 축구를 잘하고 싶으면 축구를 연습 하면 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렇게 뭐든지 쉽게 얻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야비한 자기계발서들 속에서 이 책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을 덮고, 그냥 그 행동을 하라고 말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

   TV 강연프로에 나온 허지웅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만약에 내가 엉터리 같은 말을 하며 좋은 어른은 커녕 바보같은 어른이 되어간다면 
내 뒤통수를 때려줘라”.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을 근거로는 그의 뒤통수를  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들으나 마나한 달콤한 말들이 아니라, 젊은 세대를 연민하는 기성세대의 따뜻한 마음과, 삶을 버텨내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그것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직전까지 나아갔던 자가  치열하게 견디며, 몸소 체험한 끝에 다다른 지혜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허지웅이라는 좋은 어른을 발견했다.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장편소설)

며칠 전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칼럼에서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식물학 연구팀에서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의 성대나 청각기관과는 다르지만 식물도 그들만의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관이 감지할 수 없는 영역,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숨쉰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관점에서 백퍼센트 탈피할 수 없고 완전한 탈피가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자연의 입장에 서서 지구의 사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여기 그 귀중한 시선을 심어주는 책이 있다.
<지구 끝의 온실>은 일명 더스트 시대를 맞닥뜨린 2050년대와 더스트 종식 후 그 시대를 파헤치는 2129년 식물학자 아영의 이야기로 두 시대를 번갈아 통과한다. 
2050년대, 더스트 물질이 퍼진 지구에서 내성종이 아닌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기에 생존자들은 돔 시티를 찾아헤맨다.
나오미는 강한 내성종이었지만 아마라는 더스트에 취약했다. 두 자매는 여러 돔 시티를 배회하며 영양캡슐을 챙기고 위협자들로부터 숨어 다녔다. 그러다가 호버카(자동차같은 미래의 이동수단)와 맞바꾸어 한 좌표를 얻게 되고 ‘프림 빌리지’에 도착한다.
마을과 학교가 유지되고 유리 온실 속에서는 약간의 식물이 재배 되었기에 멸종으로 치닫는 황폐한 이 땅에서 프림 빌리지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돔 안이나 밖 모두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식량, 불안정한 개인은 충족을 위해 싸워 와해되기 마련이기에. 
결국 프림 빌리지도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프림 빌리지의 관리자로 여겨지는 지수는 각지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더스트로부터 보호해줄 식물 모스바나 씨앗을 건넨다. 씨앗을 심어서 각자가 있는 곳에 프림 빌리지를 만들자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정말 가능한 일인지, 흩어진 사람들이 살아 남을 수는 있을지, 그렇다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슬러 올라와 현재 2129년도, 더스트생태연구센터 연구원인 아영은 강원도 해월에서 유해 잡초가 이상 증식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 식물에서 푸른 빛이 나온다는 제보를 듣고 어릴 적 이웃 할머니 이희수가 말해주었던 푸른 빛의 식물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한 아영은 나오미를 만나 더스트폴과 그 직후의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 온실을 관리하던 레이첼과 지수의 이야기, 프림 빌리지를 떠난 이후 모스바나를 심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나오미의 증언을 토대로 모스바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희수씨가 지수와 동일인물인 것도, 프림 빌리지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모스바나를 심어서 더스트 1차 종식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됐다.
마지막까지 지수가 자신을 떠날까봐 감췄왔던 모스바나 씨앗을 내어주기까지 레이첼의 마음은 어땠을까.
소중했던 프림 빌리지를 떠나야했던 자매가 모스바나를 심고 알렸지만 차가운 비웃음을 샀던 순간마다 얼마나 허무했을까.
그러나 작은 선택과 행동이 지구를 구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모스바나의 가치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스바나는 생존하고 번성했으며 환경에 맞춰 변화했다. 인간이 바라는 완벽한 기술로 행해진 처방이 아닐지라도 그만의 방식으로 지구를 지켰으며,
그 사실을 믿고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그런 존재들이 지구 끝에서 지구를 받치고 있지 않을까.

어른의 문답법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우리는 자주 싸우곤한다. 아, 힘이 아니라 ‘말’ 이다. 힘으로 싸울 때는 그리 많지않지만, 대화로는 수없이 싸운다. 과거에도 싸웠고 요 며칠사이에도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말싸움을 많이한다.
 당신과 아예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과 그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포기와 단념? 아니면 폭언? 심하면 더 이상 아는 체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 손절이라고 불리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렇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그냥 말을 안하는 것이다. 싸움의 주제거리가 되기 쉬운 갈등문제를 아예 입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대화를 삼가고 말을 피하기만 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친구들과, 직장동료들과, 심지어 연인, 배우자와도 말다툼을 하는 일이 생긴다. 이럴 때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 간결하고 바른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대화를 하는 습관을 어느정도 지켜가며 말하는 것과 아예 무지한채로 툭툭 내뱉는 공격적인 말은 하늘과 땅차이인 법이다. 
 평소에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있고, 이것을 개선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스포있음] 
 사랑은 지워질 수 있다. 사랑은 감정이고, ‘감정’은 상황의 느낌이자 기억이니까.
그렇다. 사랑은 사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린 기억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아픔을 준다.
 주인공은 자신의 앞자리에 있는 다른 학생을 왕따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맞서다, 패거리들에게 제안을 받았다. 특별반(장애인특수반을 지칭하는 것 같다.)에 있는 ‘히노’에게 고백을 하고오면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주인공은 직접 고백하러갔고, 패거리들은 의외로 순순히 약속을 지키며 시작하는 이야기.
 히노가 당연히 거절할줄 알았으나 고백을 받았다.
남자는 히노와 사귀는 대신 조건을 제시받는다. 조건은 그랬다.
“학교가 끝난 뒤에는 말을 걸지 않는다.”
“연락은 짧게한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지 말아야한다.”
 어째서인지 남자도 그 말에 응했다. 히노에게는 와타야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자연스레 셋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남자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히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조건을 생각하며 히노에게 좋아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히노는 선행성 기억장애를 앓고있음을 털어놓는다. 말그대로 기억이 하루단위로 사라져 기억이 나질 않는 것. 히노의 기억은, 남들이 나아갈 때 자신은 제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히노가 남자의 고백을 받아준 것은 그런 일상에 대한 발버둥이었다.
 진실을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진심을 고백하고 그녀의 곁에 남는다. 장애를 자신이 감당하며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기를 채워주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인해 기억력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알려준다. 이 때문에 그녀는 크로키를 시작했다.
 순조롭게 일본 청춘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마지막 챕터 제목인 ‘마음은 너를 그려’를 보고 나는 결말을 직감했다. 실제로 여러 책들을 읽어보며 접해온 그 ‘촉’이 솟아올랐다. 
 남자의 그녀를 향한 마지막 부탁은 자신을 잊는 것이었다. 더이상은 기억하지 말아달라는 것. 남자는 심장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공허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르기 시작한 그제서야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가 결여되어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가 알려준 ‘크로키’, 그것이 그려진 공책을 찾아보다 그려진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차올라 넘쳐흐르는 그 기분은 그를 기억해내는 트리거가 되었다.
 
 모두가 그를 잊어갈 때, 그녀만큼은 그를 기억에서 되짚어낸다.
 사실 이 이야기를 다 읽어가며 떠오른 소설은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였다. 행복한 청춘을 보낸 남녀의 둘 중 한명은 어딘가 아프고, 그 결말은 비극이지만 승화해낸다는 것. 엔조이식, 분위기식이 아닌, 이런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그런 로맨스 소설의 느낌은 일본특유의 소설에서 이따금씩 실감이 된다. 실제 장애의 우울감을 그렇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금 따듯한 우울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거장은 어떻게 글을 쓰며 살아갈까, 한껏 기대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별게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샐러드를 먹고 잠에 든다. 그리고 다시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샐러드를 먹고 잠에 든다. 낭만적인 예술가의 삶을 기대했는데, 그곳엔 글쓰는 업무가 주어진 공무원 아저씨 같은 삶이 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을 읽게 되면 실망할 떄가 많다. 그곳엔 언제나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매일 매일 자신의 성과를 쌓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라고 다르겠는가. 예술도 그저 밥벌이, 직업이다. 매일 매일 꾸준히 하는 것, 그게 답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골든아워 1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이책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시스템 속에서, 바보인 채로 꿋꿋하게 옳다고 믿는 일을 해내온 사람의 기록이다. 
힘겹게 써 내려간 한 글자 한글자가 한국의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책이 출간된지 2년 후, 결국 그도 떠났다.
필요할 때만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는 병원에 대한 역겨움과 살리지 못한 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견뎌내며 악착같이 버티던 그가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선 여전히 옳은 일을 해내고 있는 바보들이 희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