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학교 동계 방중 독서클럽에 참여하여,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게 되었다.
팀원 중 하람누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접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눈이 머는 전염병에 감염되고 그 중 한 명만이 앞을 볼 수 있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컨셉에 더욱 큰 호기심으로 첫 장을 넘겼다. 재미를 기대하고 독서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은유들이 많이 담겨있어 감탄하면서 독서했다. 해석이 곧바로 되지 않는 은유들 덕분에 물 흐르듯이 페이지를 넘길 수는 없었지만 작가의 의도를 하나씩 파헤치며 상상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31페이지에 나오는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단지 관용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을 따랐을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감정은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좋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이 남자보다도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후반부를 읽으며 차를 훔친 남자에 대해 알게 된 나로선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그는 이후 매춘부를 성희롱하다 그녀의 구두에 정강이가 찍혀 큰 상처가 난다. 하지만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다리가 썩게 되고, 군인에게 항의하다 총에 맞아 결국 죽고 만다. 차를 훔치고, 성희롱하는 이런 전형적인 악인인 그가 관용과 이타심을 가지고 눈이 먼 남자를 도우러 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는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 이들이 눈 먼 남자를 도우러 갔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은 부분이었다. 47페이지에 언급되는 “인간 정신에는 꼬불꼬불한 길들만 있을 뿐 직선의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다면..(생략)” 경찰관과 매춘부의 대화 부분에서 나온 문장이다. 두 인물의 복잡한 심리 상태와 생각들이 잘 묘사되어 인상깊었는데, 인간 정신에는 꼬불꼬불한 길들만 있다는 표현이 나의 감상을 관통한 듯 느껴져 더욱이 인상깊었다. 눈 먼 의사가 보건부의 전화 교환수에게 간절히 애원한 끝에 연결된 하급공무원에게 긴급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상관과 통화를 원한다고 했던 부분이 기억난다. 답답한 전달 과정은 고사하고, 빈정거리는 공무원의 말투에 내가 더 짜증났던 기억이 난다. 또한, 남편이 구급차에 실려갈 때,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하고 함께 구급차에 올라탄 아내가 인상깊었다. 망설일 법도 한데 자신의 신념이 있는 듯이 곧바로 행동해서 놀라웠다. 또, 그 결정으로 인해 이후 병동에서의 그녀의 역할과 서사가 진행되기에 이 소설의 중요한 사건으로도 생각된다.
독서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우리는 주제를 선정하여 주차 별로 토론을 하였다. 1주차 토론 주제는 “공공의 안전 VS 개개인의 인권, 격리는 옳은 선택인가” 였다. 다음 문장 부터는 나의 주장이다. “격리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개개인의 인권만을 우선시하여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그 말 자체로 모순이 된다. 감염성이 큰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데 감염자 또는 감염 예상자들을 격리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의 자유를 뺏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격리조치를 취하되, 완벽한 격리가 보장되는 한, 그 격리자들에 대한 최대한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 안에서는 문화생활은 무시하거니와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조차도 지키지 않는다. 따라서 격리조치는 필요하지만 이야기 속 격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주차에도 마찬가지로 토론을 진행했다. 2주차의 토론 주제는 “중심인물 중 안과의사의 아내의 선택에 대한 생각은”이었다. 눈이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눈이 먼 척 하고 격리시설로 입소한 아내의 선택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다음 문장 부터는 나의 생각이다. “나는 그녀가 눈이 먼 남편이 걱정되어 눈이 안 보이는 척 한 것 같다. 하지만 자신도 정말 감염되어 실명될 수도 있기에 두려웠을텐데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곧바로 구급차에 올라탄 그녀의 행동이 용감해보였다. 또 그녀의 선택으로 병동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소설의 전개 상으로도 의미있는 결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또 눈이 보이는 사람은 아내 뿐이었는데, 아내가 눈이 보이는 사실을 숨김으로서 병동 내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눈이 보이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면 그녀에게 협박하여 편리함을 채우려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171페이지의 “…노인이 환대에 답례라도 하듯이 말했다. 나한테 라디오가 있소.”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라디오는 소통이 단절된 병동에서 처음으로 바깥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 장치이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는 라디오가 있다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또,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사람들이 천천히 주위에 모여들어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시각을 잃어버린 이들이 귀를 기울이며 모여드는 장면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또한 187쪽에 언급되는 “기타를 가져올 생각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부분을 읽고 이런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음악이 있었다면, 이후 발생하는 야만적인 행동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다. 의사의 아내가 오염된 물이라도 찾아서 음식을 얻기 위해 눈 먼 깡패들에게 갔던 불면증에 시달리던 여자의 주검을 닦아주고자 하는 모습 또한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신의 피와 남자들의 정액을 닦아내고, 그녀를 정결하게 해준 후 땅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모두가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으며,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여자의 주검을 그대로 매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고 물을 구해 그녀를 정결하게 닦아 매장해주었다. 인간성이라곤 사라진 야만적인 정신병원에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아직 눈이 멀지 않은 단 한 사람, 바로 의사의 아내라는 점에서 그녀가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의사의 아내가 자신이 실명 상태가 아닌, 앞이 보인다는 사실을 공개하려고 고민하는 점이 인상깊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았다. 남들은 어차피 그녀가 앞이 보인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녀를 노예처럼 부릴 수도 있기에 그의 남편의 말처럼 숨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혼자만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이점이기에 그녀가 그 점을 활용해서 들키지 않고 잘 살아남길 바랬다. 하지만 앞이 보여도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상황들과 그녀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눈 먼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볼 수 있기에 효과적으로 식량을 옮기거나 배분하여 규율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고 눈 먼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게 될지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이번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서 군인들이 모두 사라진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눈 먼 이들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자신들에게 해를 입힐 것 같으면 무분별한 살상을 서슴치 않던 이들이었는데 과연 이들도 눈이 멀어 철수했을지의 여부도 관심이 갔었다. 이번주 분량의 끝자락에는 사람들이 정문을 통해 탈출한다고 서술되는데, 그렇다면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결국 눈이 멀게 되는 건지도 궁금했다. 마치 현재의 가장 심각한 전염병인 코로나19가 연상되기도 했다.
3주차 토론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와 의사가 잠자리를 가진 것을 본 의사의 아내의 행동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나누기”로 진행하였다. 다음 문장 부터는 나의 생각이다. “깡패들에게 협박을 받은 직후 여러 사람들이 잠자리를 가졌다. 그 상황 속에서 의사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잠자리를 갖게 되었다. 의사는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며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의 침대로 갔고 그녀는 저항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이는 잠자리 직후의 의사의 말, “용서해 주시오, 나도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와 같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며 마무리된다. 인간성이라곤 점점 살아져가는 비참한 정신병원 안에서 나는 의사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여 끝까지 잘 버티기를 바랐지만 작가는 보란 듯이 남편의 외도를 그렸다. 마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일어나 색안경을 썼던 여자에게로 가는 것을 묘사하며 말이다. 또한 이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는 의사의 아내를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의사의 아내에 비해 의사의 비중이 줄어드는 점이 인상깊었다. 의사로 인해서 의사의 아내가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의미들은 의사의 아내의 심리상태와 행동들을 통해서 전달된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나와 도시를 마주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처참한 도시의 풍경을 마주하는 아내의 감상을 묘사하는 문장이 한번도 본 적 없는 황폐화된 거리를 내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396 페이지의 내용이다. “우리가 모두 눈이 멀었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오, 비가 얼마나 심하게 쏟아지는지. 비는 그들의 젖가슴 사이를 간질이며 흘러, 어두운 치골에 머물다 사라졌다가, 마침내 허벅지를 흠뻑 적시며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주요 인물들 중 세 여성들 즉, 의사의 아내, 검은 색안경을 낀 여자,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가 빗물을 맞으며 몸을 씻는 장면에서 서술된 내용이다. 작 중 그들은 정신병원에 격리된 순간부터 한번도 제대로 청결을 유지한 적이 없다. 심지어 깡패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기도 했으며, 오물이 가득한 시설에서 오랬동안 생활했다. 이후 도시로 빠져나온 뒤에도 시체들과 오물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왔다. 그런 이들이 숙소에서 나와 발가벗은 알몸인 채로 비를 맞는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온갖 악취와 비위생적인 악조건들을 묘사했으며 깡패들에게 당한 모욕적인 일들을 표현했기에, 빗물이 각 신체에 흘러 몸이 깨끗해지는 과정을 묘사한 문장은 단순한 청결함을 넘어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음은 397, 398 페이지의 내용이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중략…)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중략…)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는 앞을 볼 수 없는 검은 색안경을 낀 여자가 의사의 아내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면에 서술된 문장이다. 검은 색안경을 낀 여자의 말은 비록 과장된 것이지만, 그녀의 말은 의사의 아내에게 눈물을 보이게 만든다. 이는 전염병 때문에 결국 처참하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어버렸지만,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또는 사람의 말이 아직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 중에는 속담과 관습에 대한 언급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속담과 관습은 과거의 상징이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의 과거는 사람들이 모두 앞을 볼 수 있던 시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를 의미하는 속담과 관습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인물들의 말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이 대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4주차의 토론 주제는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의 세계와 현 시대의 인터넷 속 익명 세계는 어딘가 유사하게 느껴진다. 익명이 보장된 상황에서 폭력성, 비도덕성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존재할까” 이었다. 다음은 나의 주장이다. “익명이 보장된 상황에서 사람들의 폭력성과 비도덕성을 드러나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모든 이들이 완벽히 도덕적이고 올바른 행실을 가지고 있진 않다.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는 비도덕적인 생각들과 폭력성이 존재하지만 타인 앞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이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길들여졌다. 하지만 익명이 보장된 상황에서조차 앞서 설명한 상황과 동일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사회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 상황보다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사람들을 교육했다. 따라서 모든 이들이 눈이 멀게 되는 세계 또는 이와 유사한 인터넷 속 익명 세계가 있는 현 디지털 시대에서는 익명성을 전제로한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아, 청소년들을 위한 단순 형식적인 익명성에 대한 교육이 아닌, 부모의 인식을 변화시켜 가정에서의 교육관부터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동계 방중 독서클럽으로 기간을 정하여 독서하고, 팀원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어 즐거웠다. 요즘 독서를 자주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기간을 정해서 독서하니 한 권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했다. 또한 독서를 하여도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땅치 않은데, 이렇게 한 주제에 관해 의견을 공유하니 팀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의 다양성이 넓어지는 것 같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