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Blindness)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이후, 약 7년 후 22살이 되어 다시 읽어보게 된 도서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이 책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마침표나 반점 외에 다양한 문장부호가 등장하지 않는 독특하고 실험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때문에 지문과 대사의 경계가 가시적으로는 쉽게 구분이 되지 않고, 대화 장면에서는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주체를 구별하기 또한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방식 덕분에 글을 더 세심히 읽게 되고,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책의 초반, 우리의 양심은 결국 피의 색깔과 눈물의 소금기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문장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내가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양심을 지키며 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양심을 지키는 데에 피와 눈물이 동반되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어느새 불문율처럼 자리잡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심을 버리는 것이 더 살기 편하고, 양심대로 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렸다는 것이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백색의 실명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눈’의 역할을 되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고 말한다.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고, 그렇기에 우리의 의도대로 가릴 것은 가리고 거짓을 꾸며낼 수 있는 ‘말’과 달리,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보여주며 의도가 개입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여지는 것’에 노력을 가한다. 어느 누군가가 속은 아주 문드러지고 비열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보여지는 모습에 대한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양심을 유지하며 돌아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눈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책 속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눈이 먼 것의 진정한 공포를 알 수 있다. 눈이 멀어버림으로서 잃게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남들 눈에 보기 좋을 이유와 위생.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인간이 인간이기를 유지해주는 최소한의 조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눈먼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잃었고, 잃어간다. 말 그대로 잘 보일 것 없다는 데에서 오는 안심이라 부르기 민망한 안심과 이미 잊혀진 위생 관념의 사이에서, 눈먼 자들은 변소까지 가지도 않고 거의 습관적으로 안마당에서 배설을 하기 시작한다. 백색 실명이 전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퍼진 이후로는 길거리조차 배설물 천지가 되고 만다.  타인의 시선의 존재를 잊은 채 변소조차 가리지 않고 지내는 이들의 행동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자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드러내는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말하려한다 생각했고, 그 진실한 모습은 대부분 매우 추악할 것이라고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 또한 그러한 작가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눈먼 자’에 대해 이중적 의미가 떠오르기도 했다. 돈에, 권력에, 가십거리에 등등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이성을 잃는 사람을 향해 우리는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곤 한다. 책에서는 ‘우리는 이미 눈이 멀어있었다.’라는 이야기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우리가 눈이 멀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애초 추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고, 또 각종 이유들에 눈이 멀어 점점 양심을 잃어간다는 것을 전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것들에 눈이  멀어가고, 그 결과로 추악하고 또 볼품없는 본성을 통제하는 데에 기울이는 노력을 점차 지워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말의 존엄성, 인간성 뿐인데도, 우리는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을 쫒기 위해 우리가 유일하게 소유한 존엄성과 인간성을 내던지고 만다. 그렇게 짐승이 된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짐승이.
“우리 내부에는 이름이 없는 뭔가가 있어요, 그 뭔가가 바로 우리예요.”
이제는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과연 우리는, 아직 눈이 멀지 않았을까?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더는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길그레이트북스 81)

  2021년 동계방중 독서클럽을 계기로 접하게 된 책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저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독서클럽 활동을 위해 책을 선택할 때,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형성해 볼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사회적 인식의 문제점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선정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우리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의 성향이 사이코패스일 것이다혹은 관상이 범죄자 상이다라고 말하는 경향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범죄를 일으킨 자들에 대한 공통점을 만들어 이들을 원래부터 그러한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정말 예외인 상황도 있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이전에는 평범한 삶을 살던, 너무나도 평범한 존재였던 사례인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들을 보면서 악이 정말 독특한 배경을 가진 이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일까와 악을 평범한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섣불리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사회에서 사람들이 범죄와 범죄자를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점을 느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려해서 우리에게 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찾고자 했고, 악은 평범한 곳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읽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이 이스라엘로부터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나치 집권 당시 독일의 상황과 그 시기 유대인을 향한 차별 정책부터 이후 강제 추방, 수용, 학살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유대인 학살에 도움을 주었던 유대인 장로 등 유대인 고위층의 폐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히만이 친위대로서의 일대기와 이후 예루살렘에서의 재판 과정을 통해 이 책의 핵심 내용인 악의 평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초반부터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의 위험성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사유는 스스로 사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명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 표현이 아이히만의 일대기를 보면 볼수록 무사유의 의미와 위험성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한 무사유는 아이히만으로부터 악의 평범성이 나오게끔 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한 요인으로써 악의 평범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이러한 무사유라는 표현을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아서 한나 아렌트가 독자들에게 무사유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나치 집권 당시 유대인 관련 문제에 대한 독일의 모습과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의 특성은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먼저, 나치 집권 당시에 독일 내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감이 만연했던 것처럼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특정 인물에 대해 혐오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은 집단 등에 대해 혐오성 악플을 달거나 ()’이라는 표현을 이용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유대인 학살을 최종 해결책으로 바꿔 썼던 것처럼 아직도 현대 사회에서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대체하는 언어 규칙을 만들어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해고할 때(물론 해고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으나), 해고가 아닌 경영 합리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현대 한국 사회에 책에 나타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내용과 책 안에서 지적하는 문제점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여 바라볼 때,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형식이라 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나치의 사례와 아이히만의 사례는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와 완벽한 궤를 이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치 집권 당시 독일의 상황과 아이히만의 사례와 유사한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통해 제2의 아이히만이 나타날 수 있는 출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혐오문화나 언어규칙 문화 등을 당연시 여기거나 이를 통해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행동의 그릇됨과 위험성을 알고 이러한 문제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올바른 관점을 형성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나아가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능력을 기름으로써 아이히만과 같은 무사유의 상태를 사전에 방지해야 제2의 아이히만과 같은 악의 평범성의 사례가 또 다시 나타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레버리지 (자본주의 속에 숨겨진 부의 비밀)

이 책은 지인에게서 추천받아 읽으려고 사두었지만 막상 다른 일들에 치여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방학 독서모임을 하며 발제하고 토의하는 방식으로 함께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책의 마지막까지 보람차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다. 레버리지는 내가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가치, 비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심하여 보고 각자의 핵심결과영역에 집중하여 레버리지 할 것을 권하는 책이다. 중간 중간에 공감되고 배울 점들이 많았으나 특별히 기억나는 부분은 ‘시계추는 중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요즘은 워라밸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이 좋은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보통은 일과 삶을 분리하여 균형점이 그 가운데에 위치하기를 원하지만 저자는 시계추의 예시를 들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 인상깊었다. 이 책을 읽으며 경영이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보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와 진로를 정해나가는 대학생시절에 내가 초점을 맞출 것들을 고민해보며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장편소설)

평소 구병모 작가의 호흡과 섬세한 표현력을 좋아해서 신간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동계방중 독서클럽의 테마 도서로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나온 내용 일부만을 보고 흥미진진한 판타지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과는 180도 다른 내용에 책을 읽으면서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이 책은 꿈이 현실로 출몰하여 일상을 장악해 버리는 ‘꿈 증상’이 바이러스처럼 도시 곳곳에 퍼지면서 시작된다. 특별한 줄거리나 서사보다는 ‘꿈 증상’을 겪는 ‘진여’라는 인물의 시선과 심리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30~40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에도 쉬이 끝나지 않는 긴 문장과 난도 높은 단어, 난해한 표현들을 만날 때마다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두세 번은 반복하여 읽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두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꿈 증상’을 겪고 있는 ‘진여’의 입장을 그대로 느껴 보게 하기 위해 의도한 서술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는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진여’가 맞닥뜨린 모든 상황을 꿈을 대하듯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진여’가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그 끝에 도달하기까지, 이 책은 평소에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또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꿈 증상’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통해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팀원들과 같이 책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공유하거나 심지어는 의미 부여를 하면서까지 능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레버리지 (자본주의 속에 숨겨진 부의 비밀)

책 [레버리지]는 경영/경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수한 경제 언어 혹은 경영 언어가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은 경영/경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지 않았다. 책 [레버리지]는 독자에게 목표와 비전, 우선순위를 명확하기 상기시킴으로써 더 높은 수준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에 책에서는 독자에게 수많은 질문을 한다. 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일과 삶의 균형이 잘 맞는지 등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들 혹은 이미 누구나 깨달은 질문들을 다시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현재 상황을 상기시켜주었다. 이 책에서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당신의 문제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행복과 성취를 절대 나중으로 연기하지 않고 지금을 즐기도록 돕는다. 끊임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과 희생의 규칙을 깨뜨리고, 관습과 일을 수행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중복과 시간 낭비를 배제하며 높은 수준의 성공과 성취로 향하는 현실적인 지름길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작가 롭 무어는 대학 시절 몇 차례 사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빚이 손 쓸 수도 없이 불어나 파산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깨닫고 레버리지 기술을 터득했다. 실제 이 책에서는 그의 개인적인 일들을 담아냄과 동시에,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를 다양하게 담고 있다. 그냥은 알지 못한 기업가들의 생각과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 경영에 대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경제에 관한 내용을 쉽게 도표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서 선정한 예상 독자는 기업가라고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학생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철학을 담은 이 책은 내 현재 위치를 파악하게 해줌으로써 성장을 돕게 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질문하고 있는 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타인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여행지를 가서도 자기 일을 놓지 마라, 오디오 북을 들어라 등 어찌 보면 누구나 알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을 심어줄 뿐만이 아니라,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는지에 관해 물어보고 있다. 이에 대학생인 내가 간명 깊게 읽은 부분을 소개한다.

P.33 당신이 하는 일이 돈을 벌고 변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체감할 때, 열정이 곧 직업일 때, 도전과 만족을 동시에 느낄 때, 그 일은 더 이상 일이 아니게 된다.
P.34 포기가 나약함으로 여겨진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p.46 당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P.78 그들은 보상을 얻기 직전에 포기하고 방향을 바꾼다. 생각해보라. 씨앗을 심은 다음 날에 ‘내 나무가 어디 있지?’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없다. 과일을 얻으려면 먼저 나무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우연히 2022년 1월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이 책의 질문을 통해 올해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3월에 개강하기 전, 어떤 한 해를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멋진 신세계

  좋은 기회로 독서클럽에 참가하게 되었다. 독서 클럽에서 활용할 책은  「멋진 신세계」 였다. 처음 이 책을 사고 제목만 봤을 때는 굉장히 희망찬 결말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결말과는 반대로 존의 자살 이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끝났다. 이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 이라는 표어를 앞세워 사람을 계급화하여 다룬다는 것이었다.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에는 계급 있으며 각자의 위치에 만족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다들 진정으로 만족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통해 감정을 통제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할까.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2022년 1월의 후반은 대선이 채 5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각 후보는 저마다의 공정한 사회로의 도약을 약속하고 나섰다. 무엇이 공정이고 불공정인지에 대해서는 제각각 다른 의견을 내비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작년부터 모든 언론과 정치권에서 가장 화두가 됐던 주제는 ‘공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된 공정은 통상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인국공 사태’라 일컬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만 봐도 가히 그러하다.
  마이클 샌델은 책을 통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능력주의의 신화가 결국 극단적으로 세상을 분열시켰다고 지적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건 결국 개개인의 재능과 운에 의해 결과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 필연적이며, 이 재능과 운에 대한 가치 보상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고스란히 개인의 능력 혹은 열등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삶의 결과들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주의는 결국 승자에게 아첨을, 패배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를 고착화시켰다. 샌델은 해당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개인의 업적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평가와 보상 체계에 대한 철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세상을 망쳐놓은 것이 ‘똑똑한’ 이들이며, 특히나 대학은 이 똑똑함을 공인해주며 그간 권력이 돼버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학이 우리 모두를 경쟁의 고통 속에 빠트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학생부종합전형의 각종 문제점과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참고하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학력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숙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존엄하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조건이 평등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개입이 필요하다.
  샌델의 주장에 한계도 존재한다. 샌델은 사회적/경제적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운의 작용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소통하며, 공동선에 기여해야 함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는 능력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시킬 수 없다. 구조적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당연하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능력주의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 여겨지는 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것을 보니 4주간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기분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빨리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공론의 장이 더 깊게, 더 넓게 확대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길 바란다. 특히나 과도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20대, 30대 등의 청년층에게 이 책을 권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Blindness)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익명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인물들 각각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더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있어서 더욱 집중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 초반에 눈이 먼 사람들은 감염병 환자로 분류되어 정부의 조치에 따라 정신병원에 격리된다. 이 격리는 상당히 처참한 모습으로 이뤄졌는데, 공공을 위한 조치이더라도 그 방식의 적절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실명 증상의 확산세가 감염병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판단 아래 환자들에게 격리를 행한 것은 분명 옳은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이지만, 그 인권 또한 공공의 안전을 비롯한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져야 보장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중에서는 다소 소량의 식량 배급을 제외하고는 복지와 치안 등을 포함한 어떤 것의 제공도 이루어지지 않아 격리 시설 내에서 많은 갈등과 사고가 생겨난다. 이는 개개인의 인권을 논하기 전에 공공의 안전에서부터 어긋나버린 방식의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격리시설 속에서 일어나는 폭행 및 성추행을 비롯한 갈등과 부상자에 대한 연민 등 여러 사건과 감정들을 보며 시력을 잃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의 모습 자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느꼈다. 또한,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본질이 사회의 모습 내지는 성격을 규정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 것 같았다.
작중 안과 의사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진료했는데,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정확한 병을 진단할 수 없었기에 집에서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눈이 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거울에 마주선 장면에서 “그의 비친 모습은 그를 볼 수 있는데, 그는 그의 비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론 살아가면서 노후와 가정을 비롯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가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를 위한 삶과 시간을 잃는다면, 의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동안 해왔던 노력과 최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짐을 가르쳐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했고,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나서 처음에 모인 인원끼리 대화를 나눌 때, 사팔뜨기 소년은 자신의 눈에 대한 결함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결함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런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은,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신체적 결함보다 내면적 결함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판단할 때에 외적인 것을 꽤나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본인들 조차도 타인에게 쉽게 보여지는 외적인 것에 대해 신경을 더욱 쓰게 되고, 내면의 발달은 점점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눈’의 방향성을 새로이 잡아야 함을 일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검은 안대의 노인을 필두로 ‘눈이 머는 순간에 보았던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딱히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지도 않는데, 유독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을 읽으며 갑자기 침대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한 것, 유튜브에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것, 어제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 등을 되짚어 보는 나를 발견했다. 현재 우리 가까이에 있고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장면이었다.
격리시설 속 깡패 무리는 식량을 무력으로 차지하고 다른 병동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데, 식량에 대한 여성들의 성 상납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자신의 아내는 절대 못 간다고 선포하자, 의사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대사를 한다. 작중 작가의 말처럼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없으며,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을 수 있다. 또한, 아내의 성 상납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남편의 당연한 도리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과 같은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의사의 모습에 놀랐고,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임에 읽으면서도 절망적으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물론 이러한 비인륜적 행위를 통해 식량을 독차지하는 깡패 무리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다만 더 큰 갈등을 빚는 살인을 저지른 아내의 행위는 복수심에 지나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게 검은 안대의 노인의 대사는 소위 말해서 한 방 먹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 굴로 들어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 존엄을 바탕으로 한 수치심에 따른 행동이 우리의 배를 불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말의 수치심이 남아있다면 우리의 권리는 주장할 수 있어야 함을 느끼게 해준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작중에서는 눈먼 이들이 떠나고 남은 노파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이 떠남으로써 식량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고요 속에서 노파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는 식량을 포함한 물자는 확보했지만, 홀로 남음으로써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앞선 이야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인간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담은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사람들의 시력이 돌아오고,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의사의 아내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라는 말을 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이 있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악한 면도 존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알고 있어도 보고싶지 않은 악의 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만일 갑작스레 실명 상태가 된다면 책의 인물들처럼 본능에 충실히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눈’이 있음으로써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욕구의 절제가 유지되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당신은 이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100%의 노력으로 성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단 1%일지 몰라도 개인의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해당 도서는 능력주의의 이면을 들추어 보며 현대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도서는 능력주의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이며 사회적 지위의 획득과 일종의 계층 이동, 학력주의, 성공에 대한 운의 작용, 능력주의의 폭정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기회의 평등에 대한 대답은 결과의 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도 공정하고 존엄하게 삶을 살 수 있는 출발점, 조건의 평등에 있음을 시사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큰 대우를 받고 보다 큰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준 책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책의 구성은 “대학입시의 모순”으로 시작해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한 공정과 보상의 모순, 미국의 리버럴들이 트럼프에게 진 이유, 사회 모순을 개인의 능력으로 돌리는 “학력주의”, 성공과 윤리의식, 학벌대학철폐, 일의 존엄성에 대해 주제별로 챕터를 분류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우리 사회는 능력을 토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며 얼핏 보면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천적인 요인과 경제력 등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기회의 평등으로 인해 많은 불평등이 가려지고 모두가 공정하다고 여긴다. 또한 능력주의로 인해 사회 상층부는 자신의 노력만이 자신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오만해지고 하층부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굴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문제의식을 제기하여 학력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것이 능력주의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해 능력주의의 인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