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노벨라 07)

지난 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먹는 상상을 하다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종종 돌아봤다.
 소설의 양도 양이지만 꿀떡꿀떡 넘어가는 문장들에 매혹되어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사채업자들의 구타에 ‘구’가 죽고 육신마저 ‘채무변제’란 명목으로 갈갈이 찢길 상황에서 ‘단’은 구를 먹기로 한다. 손톱 하나, 체모 한 올 남김없이 먹으며 울다 그리워하다 추억을 더듬는다. 그렇게 구를 다 먹고 단은 오래오래 살아남아 구를 누구보다 오래 기억 해 두려한다. 성인이 된 후 부모가 버리고 간 빚으로 제 존재를 지우기 위해 살아간 구를, 단은 글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내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사람을 먹는’상상의 시작점은 달콤하고 평범하다. 애인과 살결을 맞대고 있으면 냄새맡고 깨물어보기도 한다. 그런 앙증맞은 경험은 소설 속 구와 단이 주변인들의,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목도해가는 과정에서 눈물겨운 최후의 수단이 된다. 단은 울며 자신이 드디어 미친건가 생각하고, 죽은 구는 애처롭게 자신의 몸을 뜯어먹는 단을 안쓰러워한다. 결국 사랑이야기이다.

사생활의 천재들

 난 고독한 두 사람이 만나 적응을 말하기보다 저항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미래를 가져다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이건 사랑과도 같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약속, 너를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 사랑 안에 이런 맘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겠지.
 우리가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그리워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얼굴이 되어갈 수 있어. (…)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 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네가 나를 살려주었어. 인간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자꾸 자기 안에 갇혀. 나는 요즘 내 안에 갇혀있어. 그런데 네가 해준 이야기는 나의 맘을 열게 했어. 이상하지? 살려고 마음을 닫았는데 마음이 닫히면 죽을것 같은 거야. 희망이 보이질 않으니까.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열리면서 살 것 같아. 난 이제 도요새를 보러 가기 위해 살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 도요새를 보러 가자.”
 내게 축하한다는 말은 고맙다는 말이나 같아.
  저항군이 되는 것은 중요해. 저항군들의 구호는 하나야. ‘다시 시작해보자.’ 그 구호는 필사적이고 절실해야만 해. 그리고 그 구호 아래서 우린 각자에게 별로 존재하는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가 되자. 미래가 되기 위해서 현재에 같이 있는 거야.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것이야. (…)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비밀뿐이지. 그런 우리에게도 신이 준 은총이 하나 있어. 우리가 무의미와 허무에 빠지지 말라고 준 은총이지. 자포자기하지 말라고 준 은총이지.
 그건 사랑을 알아보는 힘이야. 몇번이고 다시 만나도 만날 때마다 사랑에 빠지는 관계가 있어. 우리의 멋진 친구, 시인 심보선이라면 사랑을 ‘다시 알아봄’이라고 표현할 것 같아. 우리가 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했단 것은 뭔가를, 특히 사랑할 만한 것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아. 물론 자기 자신도 다시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해.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느껴야 합니다. 낙엽 하나가 떨어져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듣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싫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나요?”란 질문이 가능함을. 그리고 그 질문의 힘을.
 우린 보통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움직임은 확신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옵니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이 몸으로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이것이 자유의 질문입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질문입니다.
 욕망은 (…) 내가 욕망하는 것이 내게로 다가오기를 원하게 된다, 이때 중력의 한 가운데에 서서 그 대상들이 내게로 빨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사랑에 있어 모든 것은 움직임 자체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 대상에게 가서 그 안에 존재하려 한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타인을 향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탄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슬아 서평집)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왜냐하면 나는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지거든. 일도 하고 너랑도 놀아야 해서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몰라.
 어쩌면 책 읽기는 나의 테두리를 극복해보려는 노력 같다. 내 신체와 역사와 기억과 쩨쩨한 자아로 세워진 그 테두리는 부단히 애써야 겨우 조금 넓어진다. (…) 나를 채우는 독서 말고 나를 비우는 독서도 있다. 어떤 책들은 과거의 나를 점점 줄여나가도록 돕는다. 새로운 나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자고 등을 쓸어준다. 그래봐야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아침마다 물어보곤 해. 여전히 나를 좋아하냐고. 너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나는 어째서 정기적으로 확인하려 드는걸까. 마음이 빈곤한 사람처럼 말이야. 그런 나에게 네가 이렇게 말했어. 
” 그럴 땐 좋은 방법이 있어.”
“뭔데?”
“그냥 먼저 사랑을 주는 거야. 주면서 알게 되거든.”
그래서 너는 아침마다 말없이 나를 꽉 껴안았던 것일까? 안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사랑이 있지. 걸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체력과, 싸우기 전에는 낼 수 없는 힘도 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말야.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도교는 안정과 변화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계를 걷는다는 것은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이고, 신성한 중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삶의 길을 걷는 것이 행복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고 특이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내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주저하게 된다.
사람들은 신념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 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꿈은 이성이 접근한 적 없는 어둑한 곳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장편소설)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를 말할 수 있습니까? “ – p.165

 “ 그리고 마야는 의혹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물의 먹이가 되어 혼란의 위벽
안에서 녹아가고,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들과 한 몸을 이룬다. 부재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자 모든 것이다. “
– p.210

인생에서
한 번, 그것이 비록 꿈속이더라도 명료함과 달콤함을 끌어안아본 사람이라면, 도래하는 불확실과 예약된 무미함 속에서 살기 어려워진다. 삶의 당도와
명도를 올리기 위해, 인슐린 부족으로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밑도 끝도 없이 설탕을 퍼서 주둥이에 들이붓고, 눈이 멀 때까지 빛을 응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 꿈 증상을 그대로 앓으면서 사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고 할 수 …… 있나? “
– p.111

 

 ‘상아의 문으로는 꿈이 현실로 출몰하여 사람들의 일상을 장악하는 꿈 증상이 도시에 질병처럼 퍼져 있는 상황에서, ‘진여라는 인물이 왜 꿈 증상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등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처음 읽을 때는 문장들이 길고 표현들이 난해해서 어렵게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가 꾸는 꿈들이 그 어떠한 맥락과 논리가 없듯이 그저 지나치듯 읽어나가며 소설의 흐름 속에 나를 차츰 맞춰가자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깊은 꿈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실을 위협하는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구병모 작가의 신선한 묘사들로 뒤로 갈수록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는 비유적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자주 나오는 숫자, 인물들의 특정 행위, 인물들 주변의 각종 사물들, 주변환경 묘사 등들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등장인물들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들이 오히려 책을 읽을 때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무엇보다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모호함이 있어서 독자에 따라 해석도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살면서 한번쯤 시간을 들여 생각해볼만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도 던져보는 시간이 되어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독서클럽을 통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게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으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싶은 허클베리와 주인으로부터 도망쳐 자유를 얻고 싶은 흑인 노예 짐의 모험 이야기이다. 짐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모험에서 짐은 도망 노예인 것을 들킬 뻔하기도 하고 청년과 노인에게 사기를 당해 다시 노예로 팔려버리기도 한다. 허클베리는 백인으로서의 본인이 흑인 노예의 해방을 돕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가지며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려보낼까도 고민하지만, 짐과 모험하면서 서로 따뜻한 우정을 지닌 친구가 되며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허클베리와 톰의 모험을 다루는 태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허클베리의 모험과 톰 소여의 모험은 매우 다르다. 잡혀간 짐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톰은 판자만 뜯으면 구출할 수 있는 걸 곡괭이로 땅을 파서 구출한다거나, 죄수의 느낌이 나도록 얼룩뱀과 쥐들을 풀어 환경을 구성한다거나 짐의 피로 글씨를 쓰게 하는 등 아슬아슬하고 복잡한 계획을 세운다. 당장 짐을 구출해도 모자랄 판에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톰 소여는 본인의 쾌락을 우선시하고 마치 연극처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상황은 별로 신경쓰지 않아 보인다.
반면 허클베리는 본인의 이상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배려한다. 짐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본인의 양심의 가책을 버리면서까지 최대한 도와준다. 윌크스 집안 사건 때도 메리 제인을 위해 본인이 죽을 위기에 처할 뻔 했는데도 온갖 수를 쓰며 그녀를 도와준다. 이렇게 톰 소여의 모험은 재미있는 판타지 모험이라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조금은 현실적인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허클베리의 모험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방학 때 뭐라도 해보고자 독서클럽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명작이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에 읽어도 무관할 가벼운 이야기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원들과 토론을 해보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생각하게 되고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닌 인종 차별 등 사회적으로도 깊이 접근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길그레이트북스 8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 전까지는 아이히만이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책에서 한나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의 무지와 무능, 무사유를 지적하였다.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 아이히만의 입장과 그를 분석한 한나 아렌트의 글을 접하면서 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는 ‘여지 없이’ 무능한,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다양한 측면이 있고 비판할점과 배울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히만은 본인이 주도한 몇몇의 행위도 있었고, 또 무고한 사람들을 전혀 타당할 수 없는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가면서 학살했다는 것은 여지없는 악행이고 그런 사람에게서 배울점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명령에 응했을 뿐’이라는 말도 결코 영리한 말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또 아이히만과 같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사회 속 모두에게 해당되고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예시로 들 수 있는 역사적 상황이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대를 살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립운동을 하고, 누구나 일제에 저항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창씨 개명을 하고, 독립운통가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은 언제든지 발현할 수 있고 인간은 자기생존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스스로 경계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고와 판단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나의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느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 특정한 아이히만이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악행과 모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길그레이트북스 81)

  도서를 읽으며 아이히만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는 ‘희대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엄청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집안 형편, 학력 등 여러 면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보잘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악의 평범성’은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다. 이 개념은 우리 안에 내재된 악함을 들추고선 악인은 특이한 사람도 사이코패스도 아니며,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악인이 되는 걸까? 책에서 찾은 이유는 ‘무사유’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가장 큰 이점은 다른 생물에 비해 높은 수준의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해 토론할 수 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답을 도출해낼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인간의 큰 장점이다.
  사고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무능함은 곧 말하기의 무능함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타인 이해의 무능함으로 이어진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언어 능력도 퇴화하고 공감 능력도 상실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1930년의 아이히만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일까? 현대 사회는 갈수록 짧고 가벼운 것을 추구한다. 심도있게 생각해보고 진지한 견해를 나누는 것은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여긴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쫓아다니며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점점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일수록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이자 악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인 ‘사고(思考)’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집)

 나는 이 책이 사랑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계나 인공지능 등 과학적인 요소를 통해 차갑고도 외로운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차가움 속에 잠재된 어떤 따뜻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미래 과학 쪽의 요소를 많이 가졌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술술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판타지와 감성 소설이 섞여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1인칭을 주로 사용하지만 매 챕터마다 글의 구성이 비슷하지 않았다. 어떤 챕터는 편지의 형식이었고, 어떤 챕터는 일기 같은 구성이었다. 다양한 구성과 가양한 연출이 책의 재미를 더 크게 만들어준 거 같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Classic,세계문학전집 6)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렸을 때부터 자자하게 들었던 책의 이름이라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책을 선정하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난 이렇게 유명한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허클베리핀은 마크트웨인의 대표작이며 세계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라와 있는 작품이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읽자하니 미국의 현대 문학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내용이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 특유의 필체로 미국 사회의 어두운 배경을 들춰내기에 충분했고 흔히 말하는 비행소년인 허클베리핀이라는 캐릭터 역시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줄거리라고 한다면 그저 모험 이야기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이 더욱 찾고 그 문구 속의 의미를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