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읽어주는 여자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 찾는 법)

패션에 대한 책은 사실 많다.
패션 에세이, 패션의 역사, 스타일링등에 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책 등등…
그러한 책들도 매우 흥미롭지만 패션 필드와는 살짝 동떨어져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패션 읽어주는 여자>는 패션, 명품, 스타일링 등 타 패션 관련 책과 비슷한 얘기를 하는 동시에 조금 더 구체적인 저자의 경험, 특히 필드에서의 경험이 담겨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파리 컬렉션에서의 일, 동대문에서 돌아가는 방식 등은 타 패션 관련 책에서 쉽게 볼 수 없었기에 흥미로웠다.
그리고 중간중간 들어 있는 디자이너들의 생각들도 너무 유익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정욱준 디자이너의 인터뷰 내용으로 나의 리뷰를 마친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 그래서 남과 다른 나만의 옷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야말로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얘기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오늘날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는 인터넷의 무분별한 사용이 우리의 사회, 경제,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뇌과학 이론을 통해 보여준다. 잠시라도 디지털 기기가 주변에 없으면 불안 증세를 보이는 현대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습관처럼 SNS를 들락거리고, 디지털 미디어를 소비할 때 우리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과거에는 중요한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뇌에 정보를 저장했다면, 오늘날에는 모든 정보가 집합된 인터넷의 하이퍼링크들 사이에서 어떤 정보를 읽을지 골라내는 작업과 해당 정보가 어떤 웹페이지에 저장되어 있을지 찾아내는 것에 특화한 뇌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를 뇌에 저장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의 IT기기들이 우리 뇌의 기억력을 대신하고 있다.

 줄글로 이루어진 종이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심지어는 책도 전자기기에서 읽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몰입하는 읽기가 아닌 단순히 문서를 스캐닝하는 방식의 읽기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 이리저리 검색하고 대충 훑는 수준의 얕은 읽기 방식은 우리가 더 이상 긴 글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읽어나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페이지를 주의 깊게 읽는 대신 산만하게 클릭하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하이퍼텍스트를 읽은 이들은 무엇을 읽고읽지 않았는지를 기억해내지 못한다다시 말하면 웹서핑이 뇌를 산만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도 확실히 종이책으로 몰입하는 독서 상태가 되면 고요하고 깊게 사고하는 느낌을 받은 반면, 인터넷을 할 때는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좀처럼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전자책으로 인해 기존의 종이책이 사라질 것인가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전자책과 인터넷 독서 플랫폼이 쏟아져 나오고, 온라인 서점에서는 종이책과 함께 e-Book이 판매되고 있다실제 종이책과 e-Book의 가격은 크게 다르지 않고심지어 e-Book이 더 비싸게 판매되기도 한다. 전자책이 도서 시장에  등장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자책을 사용해 본 내 경험에 의하면, 일단 전자책은 끝까지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 대부분 인터넷이 가능한 전자기기에서 e-Book 읽기란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각종 알림과 인터넷의 유혹을 이겨내며 책을 끝까지 정독하기란 매우 어렵다. 주로 전자책을 이용하면 스캐닝 방식의 읽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자책 읽기가 힘들어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오디오북의 경우 틀어놓고 두 손과 눈이 자유롭기 때문에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책을 집중해서 완독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그 때문에 나는 몰입해서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 몰두해서 읽기보단 스캐닝 방식의 읽기나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읽기를 원하는 경우 전자책을 이용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력과 기억력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어, 앞으로 인터넷 사용에 있어 경각심을 가지고 적절히 사용해야겠다고 느꼈다. 빠르고 자극적인 매체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고요하게 독서 또는 사색을 갖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뇌에 꼭 필요한 시간이지 않을까..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책을 읽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 보고자 한다.

공간의 미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팬데믹 코로나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공간`의 변화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관, 공연장은 문을 닫고 학교조차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이후 공간의 의미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졌다. 또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건축과 교수님인 유현준 작가님의 이 책을 알게 되었고 독서토론 모임을 통해서 읽을 기회가 생겼다.

건축학과 교수님인 만큼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었다. 특히 공간과 권력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나의 학창 시절 교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수십 명의 학생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 그 앞에는 선생님 한 분과 큰 칠판이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가 권력을 만들어내며 지금의 교육실태를 만들어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구조를 통해서 고도화된 형식의 수업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주입식 교육`이라는 적폐가 나타났다. 3장에서 나온 `천 명의 학생 천 개의 교육 과정`처럼 개개인에게 맞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육 과정은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어디서든 수업할 수 있고, 그곳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권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에 거리를 둠으로써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생길 수 있고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계속해서 바뀌는 교육 환경에 깊은 유대관계 형성과 적응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 느꼈다. 이처럼 모든 교육 방식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또한 지금 우리는 현재의 교육과 나아가야 할 지점 어딘가에서 교차점을 찾아내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필요한데 이 책은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 교육을 바라보고 있어서 인상깊었다.
교육뿐만 아니라 물류에 관한 시각도 새롭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 유현준 작가님을 알게 된 것도 물류 관련 강의하는 영상을 통해서였다. 코로나 이후 물류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강의였는데 되게 인상 깊었었다. 이 책에서도 나온 물류의 미래를 위해서 지하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6장 `지상에 공원을 만들어 줄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 챕터에 나온다. 사실 나는 미래 물류를 생각했을 때 `드론`이 먼저 떠올랐었다. 그리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지하 물류 터널`이 새로우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뚫고 나서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완성된 것처럼 저자는 21세기의 경부고속도로는 대도시 내 지하 자율 주행 로봇 전용 도로망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실현이 된다면 도로에서 물건을 운송하는 교통량을 모두 지하로 내려보낼 수 있고, 지상의 도로는 인간을 위해서 쾌적하게 쓰일 수 있다. 그야말로 지상에는 사람만 다니는 것이다. 매일 출퇴근길에 교통체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바쁘디바쁜 현대사회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미래의 공간이 어떻게 변화가 될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미래 모습을 되게 이상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미래는 꿈꾸는 자들이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과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편이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문화적, 사회적으로 건축이 되게 많은 영향을 끼침을 배울 수 있었다. 공간을 통해 바라본 시각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저자가 주장한 것과 같은 방향으로 공간의 미래가 나아간다면 마음이 여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공간의 미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와 환경, 우리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짧은 시간에 가져왔다. 그렇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고 앞으로 우리의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할까? 이 책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해 회사, 상업시설, 주거시설 등의 다양한 공간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우선 작가는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공간의 기능과 힘에 대해 통찰력 있게 잘 보여주었다. 특히 종교시설이나 회의실에서 공간이 만드는 권력의 힘과 코로나가 만든이에 대한 해체, 그리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화상 미팅에서 권력자가 취하는 자세 등이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중간중간 작가가 말하는 미래의 공간에 대한 부분이 살짝 허황되게 들렸다. DMZ 공간을 활용해 남북의 청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든다거나 지하 도로를 건설해 지상의 도로를 공원화 시키자는 이야기는 코로나가 만든 공간의 변화와는 연관성도 떨어져 보이고 실현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였다. 하지만 평소 아무런 생각없이 이용하던 각종 공간의 힘과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책이라 생각된다.

사고 정리학 (뒤죽박죽된 머릿속부터 청소하라!)

 누군가 낳은 지식에 대한 공부를 뛰어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게 만드는’ 훈련법
표지의 <사고정리학, 뒤죽박죽된 머리속부터 청소하라!> 라는 문구에 바쁘고 혼란한 마음과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책일 것이라 생각할 여지가 있는데, 이 책은 오히려 창작과 배움에 대해 끊임없이 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색을 하게 된다. 배워왔던 교육 방식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를 벗어나기위해 발버둥 쳐야한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세상과 저항하는 일이다. 괴로운 일이 될 것이지만, 험한 길이라도 걸어야만 하는 내면의 당위가 있다면 반드시 걸어가야 하지않을까. 누군가 이미 소화해낸 정보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사색과 인내로 얻어내는 지식과 요령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기존의 소설과 다른 내용 구성과 소름 돋는 결말이다. 
처음 부분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매체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기존의 소설과 다른 로맨스 소설이다.’ 혹은 ‘ 나중에 보라색 부분을 읽어봐라’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나 또한 이 소설을 읽을 당시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처음 부분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소설이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장면부터 사실 어렵게 다가왔다. 미리 사전에 조사하고 읽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그렇게 1장의 챕터가 종료되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무비스타’부터 읽어보았다. 무비스타에는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인공이 왜 그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머니에게  ” 죽지마”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무비스타 당시 주인공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연민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부분을 읽고 갑자기 든 생각은 저 “죽지마”의 대상이  어머니가 아니라 주인공 본인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 이후 ” 내가 처음 당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부터 주인공과 여자의 만남이 시작된다. 여자는 첫 등장부터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로 자존감이 굉장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백화점에 일하면서 ‘요한’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요한은 겉으로는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후반부에 자실시도를 할 만큼 그 내면에 슬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과 여자는 요한에게 의지했지만, 요한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다. 요한이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라는 말을 남긴 채 세번째로 자살 시도를 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요한은 주인공과 여자에 비해 어머니와 관련된 상처를 가지고 있으나 극복한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요한이 세상이 마치 거대한 고아원 같다는 말이 의지할 사람 없이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각해주기에 그의 자살시도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주인공 또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대상이 아닌, 말 그대로의 <그녀>와 <요한>이었다.”라는 말을 한 것처럼 주인공도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동등하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상처받은 세 사람 이야기를 다룬 것 같다. 각자 다른 상황이지만 자세히 보면 주인공, 요한, 여자 모두 “외모”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과연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교수님께서 이러한 질문을 하셨을 때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혹은 대다수의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했을 때 아름다움은 외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기에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나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쯤은 모두 이 책을 읽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정말 한 편의 오래된 로맨스 드라마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독서클럽을 진행한 덕분에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독서클럽을 통해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첫 부분을 읽었을땐, 내가 오랜만에 읽어서 내용을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며 반복하여 다시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려운 책일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인내하고 뒷 부분으로 넘어갈수록 그는 어떤인물인가 요한은, 그녀는 어떤 인물일까 추리하면서 읽는데 매료되어 금방 읽었던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그’ 처럼 유명배우의 숨겨진 아들, ‘요한’처럼 부자의 첩의 아들인 경우는 많이 다뤄진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은 거의 다뤄지고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주는 여운은 굉장했다. 어찌보면 우리도 당연하게 외모지상주의에 일조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삶이란 무엇이고, 못생김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해보는 책이었다. 마지막엔 반전으로 마무리 하면서 내용을 너무 급하게 끝낸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소설이 주는 특징이라고 생각해서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시도한 책이지만 잘 짜여진 내용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 결정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일상 인문학 005)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 있어서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것을 자기 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자기 결정이 한계에 부딪히거나 실패하는 것은 자아상과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에 있어서 성숙해지고 자립적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고 믿게끔 속이는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대해 잠들어 있던 촉을 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스토아적 냉정함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주장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감정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에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고무공이 되지 않는 것, 그리고 감정이 가진 권력을 우리 안에서 휩쓸고 돌아다니는 이물질로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긍정된 정신적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느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무의식의 판타지라는 깊은 기저에서 온 것일 때라야만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큰 매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여기를 쓰는 사람은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삶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막스 프리쉬
자기 인식은 정신적 사실들애 대한 접근이 아니라 삶에서 서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가능한 한 많이 부여해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의 발전이며, 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도 이해하게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발전이란 심층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고 창조해내어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를 앞으로 진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게 만드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에 대한 진실 같은 것은 없을 것이며 내가 본래 누구인지와 누구로 보이는 지의 차이를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존엄성과 자유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다른 방식이 아닌 내가 보는 바로 그 방식으로 이해한다.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퓰리처상 수상작)

  처음 <, , >를 읽기 시작했을 때, 과연 이 두꺼운 책을 완전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겁이 먼저 났던 것 같다.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는 완전한 이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환경을, 세상을 바라볼 필요성과 흥미를 느끼는 것에 목적을 두었고, 그러고 나니 책을 읽는 것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책의 내용은 예상대로 여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으로 가득했다. 막연히 왜 세상은 흑인보다 백인이 우월하다 생각하는 것이며, 이러한 차별은 어떤 과정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환경적, 지리적 측면에서 납득 가능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특히 인간이 생존을 위해 농경을 시작하고,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를 환경이 인간을 키운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도 아주 다르지 않은 부분인 것 같다. 지금 인간은 발전된 문명 하에 살다 보니 코로나라는 큰 위기를 맞이했고, 현재 우리 대다수의 문화는 코로나에 의해 빠르게 변동, 재탄생 되고 있기 때문이다. <, , >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일들을 현재로 끌어와 생각해볼 거리를 던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