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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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15,은희경 장편소설)
선량한 차별주의자
지식인의 옷장 (알고 입는 즐거움을 위한 패션 인문학)
나를 사랑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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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15,은희경 장편소설)
언젠가 마음을 잡고 제대로 독파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분명 지루할 것이라 짐작하게 만드는 표지와 분량이었으나 그건 책을 여간 읽지 않던 나의 속단이었다. 서사의 두드러지는 장면에서 나는 연신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와 글이 너무 훌륭해!’ 라는 마음보다 화자 진희의 옆에서 또는 어깨 위에 앉아 사건에 집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만큼 집중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와 너무 훌륭해!’를 대변하는 것일까.
화자 진희는 여느 어린이처럼 천진하지 않은, 냉소적이고 건조한 시선으로 지붕아래 식구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은밀한 내막을 전한다. 그 모습이 어른으로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보다도 어른스러워 보이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이이다. 그런 진희의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어린 나이의 진희가 그런 태도를 지향하게 된 데에 스스로가 약점이라 부르는 것들을 감추려는 마음이 기반이 된 점이 안타깝기도 했다(진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멍청했던 스스로의 유년기와 그 때의 나를 미워하는 편이라 진희의 그런 면모가 부러웠다.
그런 진희의 모습도 작가가 그린 인물이기에 그런 성정이겠지. 언젠가 만화에서 나름 못된 역의 인물에게 주인공이 조리 있는 말로 제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코멘트 란은 ‘와 주인공 정말 말 잘한다, 주인공 말 빨 최고.’와 같은 말들로 도배돼 있었다. 그 가운데 ‘여러분, 말 빨이 쩌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님이에요.’를 보고 나는 탄복했다. 이야기를 담은 영상물이나 문학을 볼 때 아득한 기분을 종종 느끼는데 이 기분은 그 이후에도 이어져 몽롱하게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코멘트를 떠올림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듯 새의 선물을 읽다 두통이 오면 ‘이것도 그저 작가가 쓴 글이다.’를 진통제 삼았다. 하지만 새의 선물은 그 안에 이입 되어 정신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어도 나쁘지 않은 기분을 주었기에 그 코멘트는 자주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