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이 책은 사람들의 본능에 의한 근거 없는 생각들과 주장들에 대해 비판하는 책이다. 본능을 자극하는 원인들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책이다. 사람들은 본능에 의해 살기도 하지만 본능에 의해 잘못된 생각과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양한 언론들과 매체들을 근거 없이도 막연하게 믿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세상이 좋아짐을 보지 못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에게 총 10가지의 본능이 있다고 설명하며 우리의 본능과 직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한 본능 등이 있는데 제일 인상깊었던 본능은 일반화 본능이었다.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잘못된 일반화로 고정관념을 갖곤 한다. 이와 같은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집단 간의 차이점, 공통점 등을 생각해보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통계자료와 근거들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또한 보여지는 것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세상을 바라봐야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영상 미디어를 유해한 매체라며 경계하고, 문해력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는 논리를 가진 이분법적인 책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을 포함하여, 이미지 및 영상의 이해와 활용을 위한 리터러시 전반에 대하여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대담이 담겨 있다. 매체에서 막연히 ‘문해력의 위기‘와 같은 소식을 들은 적은 있지만, 리터러시에 관해 이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면밀히 살펴본 책은 처음이었다. 우선 문자의 이해 능력으로만 알고 있었던 리터러시가 생각보다 더 큰 개념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리터러시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성찰이 인상 깊었다.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란 결국 삶에서 적절할 때에 적절한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으로 연결된다. 리터러시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하여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리터러시 능력에 어떠한 우위를 매기며 패쇄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활용에 있어서도 소통하는 사람 간의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당초에 정보라는 것은 모두 맥락과 상대성을 지니기 때문에 정확한 이해와 전달을 위해서도 너그럽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나도 누군가와 소통을 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정보만 절대적인 것처럼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의해 문자 매체가 위기를 맞은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결국 두 매체가 공생하여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길임을 알 수 있었다. 매체는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와 감각기관은 접하는 매체에 맞게 자동적으로 발달해 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매체를 편식하기보다는 정보의 특성에 맞는 매체로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가 도서 시장의 지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무조건 어느 한쪽을 배척하여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이 책 자체도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대담 형식의 책이라 새로운 매체라 할 수 있는데, 읽으면서도 새로운 형식의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향상된 느낌이 들었다. 개인은 의식적으로라도 다양한 형식의 정보를 접해보고, 교육기관에서는 여러 매체를 자연스럽게 융합하여 정보를 제공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 (이왕이면 뼈 있는 아무 말을 나눠야 한다)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삶을 바꾸고 미래를 혁신하는 빅데이터의 모든 것)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 (이왕이면 뼈 있는 아무 말을 나눠야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초반에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해야할 일, 성공을 하기 위해 해야할 일 등을 전달하고 있고 후반에는 자신의 가족과 관련하여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독자가 30대로 선정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직 20대인 나에겐 잘 와닿지는 않았지만 미래에는 저렇게 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너무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책 제목이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을 전부 수용하진 않고 이런점에선 아닌 것 같다고도 생각하면서 읽었다. 30대가 되어서 다시 이 책을 읽어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15,은희경 장편소설)
어렸을 적의 나는 실수를 하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와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길에서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 길을 계속 걸었다. 그리고 마음껏 길을 잃었다. 출발하기 시작한 원점과 끝에 이르고 싶었던 도착점의 지도를 읽지 못하겠으니까, 그냥 마구 걸었다.
책이 너무 길어서 솔직히 짜증났다. 인물들이 돌아가며 구구절절 사연이 있었다. 진희의 시선으로 그들을 훑으면서 적당히 변호하는 내용이다. 진희는 어떤 인물을 흉보기도,칭찬하기도 한다. 흉을 볼 때에는 자신이 인생과 사람에 대해 모두 통달하고, 그런 일을 자신은 저지르지 않을 양, 상처 받지 않을 양.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결국 열두살짜리 여자애 다운면모를 드러낸다. 사실 진희가 성장할 것 같은 부분이 나오고 나서를 제대로 못 읽었는데, 성장해서도 비슷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사람들이 실수하고,원점으로 돌아갔다가, 나아갔다가, 진희도 마찬가지로 적당히 실수하거나, 잘못하거나 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진희가 첫경험을 빠르게 경험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왔다. 사실 이때 흥미가 확 떨어졌다. 책이(사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내가 생각했던 것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진희를 열두 살로 설정했다. 열두 살의 앞날은 대부분 창창하니까, 실수를 해서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작가는 진희에게 부모님의 부재라는 과거를 부여했다. 마냥 밝고 명랑하고, 어리석은 애는 아니라 성숙하긴 했지만 또 가끔은 감정적이며 삐끗삐끗했다. 열두 살 어린아이의 시선이라고 쐐기를 박았지만, 책을 읽는 내가 스물네 살이라 진희는 스물 네 살이다. 만약 읽는 이가 마흔이라면, 진희는 마흔이다.
버스 앞에서 어물거리던 광진 테라 아줌마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여기서는 더 이상 돌아가거나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군이에게 기대를 쏟아 붓는 장
군이 엄마처럼,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걸 안쓰럽게 쳐다보면서도 적당히 실수하는 진희처럼, 우리는 살면서 적당히 실수하고, 잘못한다. 어린아이의 앞날만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앞날은 모른다. 어쩌면 목표점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