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팩트풀니스를 읽으면서 부제 말 그대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우리는 세상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던 책이라 읽어보자라는 마음가짐만 가졌지, 책의 겉표지로 인해 장벽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 한스 로슬링이 저자인 이 책을 오랜시간을 들여  두고두고 읽어 보았다. 첫 장부터 퀴즈를 풀어보라고 문제를 내는데 나는 처음에 70%이상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문제만 맞추어서 이 문제의 의도를 파악 했던 것 같다. 일부로 많이 틀리게 문제를 내는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내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지한가?”라는 생각을 많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 중 아무래도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1장 ‘간극 본능’이다. 아무래도 도입부를 맡고 있고, 내용의 중심이 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이 파트에서 소득수준으로 세상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바라보는게 아닌 1단계부터 4단계로 나누는 방법을 새로 제시해서 가장 인상에 깊었다. 간극 본능을 이해하면 뒤에 마지막 11장 사실충실성까지 내용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팩트와 의견을 구분하는 것 이다. 적어도.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을 팩트가 아니라 의견일 뿐이다. 극빈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만 가지고 총체적으로 ‘좋은 세상’, ‘괜찮은 세상’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기준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서, 어떤 기준이 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가치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떄문이다. 따라서 이것을 다른 통계적 자료에 뒤섞여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팩트인척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팩트풀니스를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더 깨어있는 사고를 해야한다. 이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알아가기 위해.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이 책은 우리 본능에 의한 근거 없는 생각들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본능을 부추기는 요인들에 대해 하나하나 저격한다. 나는 처음에 사람의 본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에서 만난 사람의 다양한 본능들을 보고 해결책을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쉽게 변할 수 있냐는 질문에 사람은 쉽게는 변할 수 없지만 많은 노력을 한다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형벌을 받고 감방에서 나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며 새로운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한다. 나쁜 사람이 평생 나쁜 사람으로만 낙인 찍혀 살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이 적으면 안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그만큼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超.殺人事件)

이 책은 단펼소설을 주제로한 책이다. 기존의 책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살인사건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살인을 하는것이 아닌 작가의 자아나 신념이 살해당한다는 등 주제가 신선했다. 특히 가장 흥미로웠떤 ‘예고소설 살인사건’이 작가와 범인이 범죄를 타협하는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작가가 이건 아닌것 같다며 범인에게 자백하라 하지만 무명 작가였던 그는 갑작스러운 인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결국 범인과 손을 잡고 범인이 말하는대로 소설을 써 범죄를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마무리를 주인공이 자살하게끔 만들어 범인을 직접 작가가 죽이려한다. 결국 한 남성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람마다 누가 죽었는지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다. 기존의 알던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과는 다른틀의 소설이라 더욱 흥미롭게 보았고, 읽는 내내 다양한 생각을 접해볼 수 있었던거 같아 활동하는 내내 뿌듯했다. 

이갈리아의 딸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누군가 이 책을 읽으며 느껴야 할 감정은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우월감이나 통쾌함이 아닌,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과 혐오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래야 하는 것은 어느 한 성별의 독재가 아니라 평등이다. 성별에 대해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배르그가 책을 통해 전하려 했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성별에 편파되는 것이 아닌, 권력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평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책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고 이러한 방향으로 생각하며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자존감 수업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자기개발서 책을 제대로 읽어본적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어떤 내용일지 굉장히 궁금증을 안으며 책을 읽었다. 특히 이책은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닌 실제로 자존감이 하락했을떄 어떤 방식을 취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여러가지들을 알려주어서 더 인상이 깊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는것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무조건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한다고 배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인간의 이기적임을 인정하고, 그후 내가 타인에게 배려를 하는 것은 어떤 대우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만으로 하는 것이기에 진정한 배려라는 것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떤일을 하든 결과보다는 내가 후회없이 최선을 다한 노력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가 조금 좋지않더라도 노력한 자신을 알기에 긍정적으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존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어떻게 타인을 대하면 좋을지,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여러 방안들을 알려줘서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이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超.殺人事件)

처음 책을 읽기 시작 했을 때에는 추리소설로 알고 선택한 이 책이 내가 생각했던 추리소설이 아니어서 불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편소설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 뿐 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추리소설의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기도 해서 다행이었다. 
독서클럽답게 모여서 서로 감상을 나누고 토론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할 수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이 되었고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서 행복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2021년 1학기 독서클럽 도서로 쇼코의 미소를 읽게 되었다. 쇼코의 미소는 여러 챕터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인데 짧게 짧게 끝나는 이야기라서 더욱 여운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1. 쇼코의 미소
주인공과 쇼코는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주인공, 쇼코,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서로 아는 사이이지만 혈육인 손녀와 할아버지는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이이고 쇼코와 할아버지가 오히려 더욱 속내까지 털어내며 친하게 지낸다. 가까이 있고 깊게 연결된 사이여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존재하고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슬펐다. 가끔은 생판 모르는 남에게 별로 긴밀한 사이가 아닌 사람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후련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챕터였다.
2. 씬짜오, 씬짜오
주인공의 가족과 투이의 가족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외딴 나라에 와서 적응을 잘 하지 못 하던 주인공의 엄마에게 투이의 엄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그러나 베트남과 한국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주인공의 아빠가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는 듯 이야기하며 두 가족은 사이가 멀어진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여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기분을 고려해주며 사과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처 받은 사람은 정직한 사과를 원할 뿐 어떠한 가식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라는 그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존심을 굽힐 때가 있어야 함을 배웠다.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주인공과 순애 언니는 서로를 도우며 힘들 때 의지해주던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서로를 너무나 지극히 여기던 나머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정체된 두 사람의 사이는 시간의 간격에 따라 더욱 멀어질 따름이다. 친하다는 것과 서로를 편하게 여기는 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무리 옆에 가까이 지내고 오랜 시간 동안 봐왔다고 해도 너무 존귀하게 여기면 오히려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가슴이 아팠다. 나 또한 누군가를 무척 조심스럽고 소중히 대하는 바람에 인연을 놓친 적이 있어 순애와 주인공의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는 서로 뜻과 타이밍이 맞을 때 연결된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 챕터였다.
4. 한지와 영주
가족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 한지와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영주, 그 둘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며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다.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급속도로 친해졌지만 그 친해진 시간이 짧았던 건지 성급하게 다가갔던 건지 어느 날부터 한지는 영주를 피하기 시작한다. 한지가 영주를 왜 피했는지 한지가 어떤 마음이였는지 왜 사람들이 영주만 욕했는지는 아직까지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짐을 영주에게 짊어지게 하기 싫었을까, 아니면 영주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부담으로 다가왔을까, 아무튼 간에 친하게 지내던 사이에서 하루 아침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지내기로 결정한 한지가 조금은 미웠다. 영주에게 몰입하며 읽었던 챕터여서 그런지 이별의 아픔이 더 크게 와닿았다.
5. 미카엘라
여자의 딸 세례명과 여자가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친구 손녀딸의 이름은 같다.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서로의 아픔은 연결되고 보듬어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여자의 과한 친절이 오지랖처럼 보일지라도 사회에서 이런 따뜻한 손길과 시선이 없다면 차가운 고독만 남은 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친절을 베풀고 그로 인해 인연이 쌓인다면 사회는 더 발전하고 약자에 대한 보호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사건, 개인적 사건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될 것이다.
6. 비밀
지민이가 죽은 사실을 철저히 시키려는 영숙이와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민이를 기다리는 지민의 할머니. 할머니와 손녀간의 사랑 관계가 눈물짓게 만들었다. 지민이가 갓난아기였을 시절부터 키웠기 때문에 지민이에게 더욱 큰 애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을 덜 챙기고 손녀에게 더 입히고 더 먹이기 위해 사랑을 쏟는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로 보이기도 했다. 내리사랑은 정말 한 사람의 가슴에 따뜻한 모닥불을 피우면서도 그 불로 인해 가슴을 후벼파는 상처같기도 한 것 같다. 그만큼 사랑이 깊을 수록 이별의 크기도 점점 커지기 때문에 지민이를 잃은 것을 알았을 때 할머니께서는 과연 상처를 어떻게 이겨내실지, 감당하실 수 있을지 염려되어 영숙이가 지민이가 죽은 사실을 숨긴 것도 이해가 갔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던 챕터였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로 독서클럽을 진행하면서 깊이 있고 풍부한 한 학기를 보낸 것 같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니 생각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 쇼코의 미소라는 책을 통해 스스로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도 생각해보게 되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씬짜오, 신짜오에서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라는 구절을 읽고 관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에게 나는 굳이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것인지를 구분 짓는 것 보다 관계가 끝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시간이 흘러서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관계가 끝나는 이유를 우리 스스로에게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굳이 그렇게 애쓰지 말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은영 작가는 일상 속에서 지친 우리를 발견하고 그런 우리에게 조금 힘을 빼고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종교. 각 종교의 교리를 보아도 인간(그 범위는 다 다를 수 있지만)과 관련된 내용, 인간을 위한 것임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빼곡하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종교는 인간에게 있어 분명 유익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옛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을 위해 생겨난 종교는 서로 갈등과 다툼의 연속이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상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도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역시 이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경우나 정치적 입장 등을 반영하여 종교 간 갈등 관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적절한 자세가 아니다. 각 종교 간 갈등을 이해하고 바로 잡기 위해서는 그 종교의 역사와 함께 특징을 알고, 이것을 바탕으로 종교 간 갈등 속 복잡한 이해관계를 하나하나 풀어 나아가야 한다.

  책 <세 종교 이야기>는 앞서 말한 자세를 기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목표는 오래전부터 갈등과 다툼이 지속되고 있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특징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나아가 세 종교의 갈등 관계를 함께 파악해 봄으로써 세 종교를 알아보고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먼저 세 종교의 특징을 각각 다룬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세 종교의 탄생 배경, 세 종교의 특징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세 종교 이야기>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종교가 어떤 점에서 서로 갈라지게 된 것이고, 이후 어떠한 이유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세 종교를 비교분석해 보며 세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세 종교 간 갈등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세 종교 이야기>는 세 종교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앎과 동시에 갈등의 흐름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 상황에 빗대어 바라보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 보는 기회를 준다. 이외에도 각 종교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는 경험 또한 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에게 이슬람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매체를 통해 어두운 면, 자극적인 내용을 위주로 이슬람교를 접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 아직까지 이슬람교를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이슬람교에 대해 배우면서 이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지울 수 있었고, 새롭게 그 종교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다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사람과 사회,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종교에 우열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전의 편견, 고정관념 등을 버리고 새롭고, 평등한 시각에서 세 종교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단순히 세 종교의 특징, 갈등의 역사를 보는 것을 넘어 지금도 발생하는 종교 간 갈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해 사람을 위한종교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다.

  종교에 우열은 없다. 종교는 얼마나 더 대단한 종교인가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종교는 사람들의 믿음, 평화, 안정 등을 위해, 즉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종교가 과거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홀로코스트’,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같이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열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종교 간 갈등의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갈등과 다툼이 아닌 평화와 안정, 존중 속에서 각자의 종교에 대해 올바른 믿음을 표할 때 종교는 제 역할을 하고, 가장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법의학 앞에서는 거짓이 없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방송을 접하면서 문경 십자가 사건에는 숨겨진 배후가 있을 것이다 라고 오랜 기간 생각해왔는데, 법의학을 근거로 하면 자살이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