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장편소설)
이도우 작가님의 이번 강연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수강해 본 강연이었다. 비록 온라인을 통해 참석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나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연에서 ‘독서 근력’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어보았다. 독서에도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독서보다 쉽고 빠르게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콘텐츠가 널려있기 때문이었다. 매번 하는 변명이면서도, 매번 할 수밖에 없는 변명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남이 추천하는 것만 보다 끝나는 인생’이라는 말을 잔잔한 톤으로 해 주시는데, 이때 정신이 퍼뜩 들었던 것 같다. 원래 하루하루를 살고 경험을 쌓아가며 나만의 취향을 점차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무엇 하나 명쾌하게 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것이 취향 자체가 넓은 나의 특성 때문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직 내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여러 장르, 여러 사람을 좋아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 나에게 ‘사람의 흔적을 주체적으로 따라가기’라는 말은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취향이란 것이 이것저것 많은 종류를 좋아하기만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많은 것들 속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며 이는 결코 빨라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그때 느끼게 될 신기함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강연 내내 작가님의 말씀은 잔잔하게 톤으로 이어졌는데, 그 잔잔한 어조의 말들로 인해 강연의 경험이 더욱더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비대면 사회 속에서 첫 20대를 겪으며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에 우울한 마음이 드는 요즘이었다. 이도우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소소하지만 확고하게 스며드는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연은 삶에 있어 예상치 못한 일이 길어질 때, 그것을 감수하는 법을 배우는 하나의 단계가 되었다.
빛의 제국
남한에 파견된 기영은 조장 이상혁의 숙청으로 줄이 끊어져 남한에 15년 동안 살아간다.
사무실에서 일상의 무료함을 느끼던 기영은 의문의 전화를 받는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다음 날 4시까지 북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전달받는다.
빛의 제국은 기영과 주변 인물의 하루를 1시간을 기준으로 묘사한다.
갑작스러운 복귀 명령에 당황하는 기영을 표현하는 필력과 생각하지 못한 외설적인 이야기 때문에 강의도 듣지 않고 읽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빠진 에피소드는 평양의 힐튼호텔과 마리의 불륜이다.
책을 읽으면서 ‘힐튼 호텔이 평양에 있다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영은 침투조로 뽑히고 평양 시내에서 운전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을 나무로 막아놓은 버스에 탑승한다.
버스는 평양 시내를 여러 번 빙글빙글 돌고 나서 알 수 없는 장소로 내려가고 거대한 문이 열린다.
남한의 골목길, 호프집, 은행, 경찰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과 분위기 속에서 조장 이상혁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말하며 등장하는 장소가 평양의 힐튼호텔이다.
기영의 부인 마리는 20살 어린 법대생과 만남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퇴근길에 저녁을 먹으면서 일전부터 부탁해오던 일을 고민한다.
나는 처음에는 성관계를 부탁한다고 생각했으나 정상 범주를 벗어나는 요구였고 ‘이걸 왜 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는 이 행위를 허락하게 되는데, 마리의 감정과 성적 욕구가 달아오르는 치밀한 묘사를 읽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못 할 것 같았다.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로 정말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세밀한 문장 묘사와 신선한 창의력이 담긴 문장을 보게 되면 감탄을 하게 된다.
읽기 어렵고 깊은 책에 지쳤을 때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읽어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