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가기 두려운 요즘, 우리는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간접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상을 보면 특정 나라의 특정 지역이거나 혹은, 국내의 여행지라도 그 지역의 맛집이나 관광명소만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뮤지엄x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은 좀 더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옹플뢰르의 에릭사티 뮤지엄과 베를린의 유대인 뮤지엄이었다.
에릭사티의 뮤지엄은 인물 뮤지엄으로 인물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뮤지엄의 경우, 생전 사용한 물건, 업적 등을 통해 인물의 삶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영상 속, 에릭사티의 뮤지엄은 그동안 보았던 박물관의 모습과는 달랐다.
방문객들에게 그를 소개하는 첫 번째 모습은 100개의 우산과 84개의 손수건이다. 이는 생전, 에릭사티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으며 이 외에도 하얀 음식 만을 먹을 정도로 음식 편력이 심한 그를 서양 배에 조명을 단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발견 당시, 온 집안이 쓰레기장이었던 에릭사티의 집안 풍경을 묘사하기도 하는 등 그의 음악이 아닌 그의 삶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에게는 썩 좋지 못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뮤지엄에는 에릭사티의 음악적 특징 또한 보여주고 있다.
에릭사티는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당시, 바로크 음악의 유행 시절, 바로크를 듣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자신의 음악에서는 바로크를 사용하지 않았고 클래식한 음악을 창조하여 시대를 앞서나가며 뉴에이지 음악의 영향을 준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이 대치 된 그의 음악 철학 또한 해당 뮤지엄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작곡한 음악의 제목을 설명하며 관람객들에게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작곡한 제목은
‘바짝 마른 태아’
‘짜증’
‘계란처럼 가볍게'(안단테 등의 빠르기를 표현)
‘중병에 걸린 것처럼’ 등 제목만 듣는다면 무슨 음악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그의 음악과 삶을 보고 난 후, 마지막 공간은 반전이었다.
하얀 방에 하얀 피아노가 놓여져 있으며 그곳에서는 에릭사티의 음악이 흘러져 나오고 있다. 마치 사티의 영혼이 연주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특히 지금까지 모든 작곡가의 선입견을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이 공간이 해주고 있다.
하얀 방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아마 나중에 그의 이름이 나올 때, 이상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그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그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가졌던 편견은 사라지고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그의 음악이 흘러나옴에도 여전히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뮤지엄은 베를린에 위치한 유대인 뮤지엄이다. 이 공간의 경우 건축공간 만을 두고 보았을 때도 훌륭하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처음 뮤지엄의 건물 구조를 접한 나는 다소 의아했다.
지그재그 모양의 건물과 ㄷ자 형태의 건물로 이루어진 곳이 도대체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 뮤지엄은 관람객들이 내부 공간에 들어설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유대인 뮤지엄의 한 공간의 경우, 안으로 걸어 들어 갈 수록 기둥의 높이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으며, 또한 관람의 첫 출발에 섰을 때, 중앙에는 모서리의 벽을 기준으로 두 갈래의 길이 나누어져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전시 공간의 평면도 또한 친절하지 않은 편이다.
뮤지엄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들에게 마치 왜 보러 왔냐는 듯한 물음을 전시 관람 내내 날카로운 뮤지엄의 공간이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평화로운 일상을 살던 유태인들이 나치의 습격으로 세상의 따가운 시선, 즉, 날카로운 사선 기둥처럼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됨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왜 이 뮤지엄이 건축적 측면에서 훌륭했다고 찬사를 받은 곳임을 깨닫기도 하였다.
이 곳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공간은 바닥에 이스라엘 작가가 만든 낙엽의 모양이 놓이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며 한줄기의 빛만 존재하고 있는 공간이다.
낙엽의 경우, 사람의 얼굴과 쇠의 날카로운 소리를 관람객들이 해당 공간을 걸음으로서 느낄 수 있다. 이 또한 유대인들이 느꼈던 심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한줄기 빛이 들어옴은 끝까지 유태인들이 놓지 않았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뮤지엄은 잔인한 장면, 역사적 사실보다 공간으로 유태인들의 그 시절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동안 직사각형의 구조로 유리 벽에 막혀있는 전시품을 감상하는 형식적인 곳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박물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완전히 그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박물관이 지루하고 딱딱한 곳이 아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의도를 파악하고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는 박물관을 설계할 당시, 박물관의 주제에 얼마나 부합하였는지가 핵심이 된 것 같았다. 만약 오늘 소개된 모든 박물관이 단층의 건물이나 직사각형의 건물이었다면 아마 박물관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주고자 했던 경험과 공감은 50%도 채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소개하고 전시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공간 활용을 할 것인지, 보여지는 미관과 배치 구조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