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범죄 심리 소설은 나에게 친근한 존재는 아니다. 주변에서 재밌다고 추천해주는 책들은 주로 일본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이 한글이 아니면 읽다가 중간 중간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7년의 밤’은 한국 소설이다.
덕분에 내가 범죄심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정말 몰입을 굉장히 많이 했던 책이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 하나 하나에 다 만약 나였다면,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몰입을 해서 읽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에필로그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영화나 책을 볼 때 재밌다, 잘 만들었다 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은 다 악역의 감정선을 잘 그려놓은 것이다. 분명 누가봐도 악인이지만 그들에게 어쩐지 안타까움이 들고 이해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이 소설 또한 나에게 주었다. 솔직히 독서를 잘 하지 않는 나에게 이 독서클럽 활동은 일상의 자그마한 힐링 시간을 갖게 만들어 주었고 그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도록 이 책을 추천해준 조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7년의 밤

 소설 7년의 밤. 독서클럽에서 이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눠보자고 결정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고, 영화가 나온 지도 몰랐었다.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면 아예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이 소설은 나의 첫 도전이자 시작이었던 것이다. 
 ‘7년의 밤’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이 7년의 밤인지 알 수 있는 제목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던 최현수와, 그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았던 아들 최서원.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오영제, 이 모든 일의 시초인 오영제.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오영제는 처음부터 ‘악인’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지, 아님 오영제의 부모와 환경에 의해 그렇게 된건진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분명한 건 그는 폭력을 저지르고 그것을 ‘교정’이라 부르며 합리화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 소설이 유명해진 데에는 오영제의 캐릭터가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님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을 보고 ‘이때는 이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지?’,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등의 돌발적인 질문을 해도 깔끔하게 대답이 가능한 만큼 등장인물의 배경설정이 탄탄하다. 주요 등장인물 외에, 세령의 엄마였던 문하영, 서원의 엄마였던 강은주 등의 과거까지 나오며 전체적으로 소설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멍한 기분이 들며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화나고, 안타까웠고, 마음 졸였던 순간이 한 순간의 꿈처럼 느껴지는 결말이다.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지고 불쾌감이 들었을 정도의 실감나는 장면, 필력이 좋아 그 잔인한 장면마저 상상이 너무 잘되는 게 이 소설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모든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장면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하고 싶지만, 최고의 명장면을 뽑으라면 역시 기승전결 중 ‘결’부분이 아닐까 싶다. ‘전’부분 역시 재밌었지만, 내 기준 너무 잔인해서 ‘결’부분을 말하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영제의 복수가 승환과 서원에 의해 끝이 났을 땐 ‘그래도 이 소설이 끝이 나긴 나는구나. 잔인했던 오영제의 만행이 끝이 나긴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느라 바빠서 결말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었지만, 처음에 이 책의 줄거리를 찾아보았을 때 자세하게 결말 부분이 설명되어 있는 리뷰가 없어 어렴풋이 배드엔딩이나 열린 결말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통쾌한 결말일 줄 몰랐다. 아마 리뷰를 쓴 사람들도 우리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자세히 쓰지 않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마지막에 최현수는 교도소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것이 맞어떨어진다면, 운이 따라준다면, 우린 이 기나긴 밤을 끝낼 수 있는 것이지.” 내가 뽑은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대사를 읽었을 때 오는 소름과 머릿속이 한번에 정리되는 느낌은, 소설을 읽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작가님이 주는 선물이다. 또한 소설을 읽고 나면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생각할 정도로 머릿속에는 엄청난 사건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슬슬 더워지는 요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무언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양장본 HardCover)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제목부터 끌리는 이 책은 4번의 독서클럽 활동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소설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원작을 읽어봤을 경우에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읽어본 책은 ‘피가로 3부작’, ‘돈 후안’, ‘메데이아’, ‘오만과 편견’, ‘제인에어’ 였다. 
 특히, 제인 에어는 예전에 작은 아씨들과 더불어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었다. 두 책을 그때는 이유도 모르고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 에어에 대한 설명하는 걸 보니 두 책의 주인공은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한 제인과 조의 매력에 이끌려서 두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책을 앟읽어서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책이지만 관심이 갔던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내가 나중에 해외 여행을 간다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이 프라하인데, 이 책의 배경이 ‘프라하의 봄’이다. 그리고 작가도 체코사람이었다. 1980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프라하로 향했다고 하는 걸 보니 나도 프라하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외에도 이 책에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문학책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읽는 모든 책이 문학책이었고 ‘책은 문학이지!’가 내생각 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기 위한 활동들을 하다 보니 문학보다는 무언가 얻는 게 있는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진로를 정하고 그 진로와 관련된 쪽으로만 계속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책에서 얻는게 없었다. 분명 지식은 얻었지만 느끼는 게 없었다. 느끼는 게 없다보니 정한 진로가 내가 하고 싶은 거인지도 잘 모르겠었고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상상력 인재학부에 합격한 뒤로 내가 하고 싶은 트랙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보았지만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 특히 가정과 여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독서 클럽을 하면서 다른 선배와 동기의 의견도 듣고 교수님의 의견도 들으니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진로를 정하기 위해 읽어야하는 책들은 지식만 주기보다는 이 책처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소개된 책을 읽고 나서 한번 더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그때는 또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데미안

  그래요, 누구나 모두 알을 깨고 나오는 상황을 겪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참 많은 방황이 있었고 절대적인 하나의 답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싱클레어에게 계속 스스로를 대입하는 저를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책은 그렇게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도록 만든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싱클레어는 본인의 인생에 답을 찾아갑니다. 하루종일 망상에 빠져있기도 하고, 심하게 병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싱클레어 처럼은 아니지만 다른 고통을 받았고. 또, 정반합과 같이 언제나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때 많은 독서를 하고, 자기관찰일기를 작성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친구들에게 괴짜소리를 몇 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그런 것을 추천하면 시간 아깝게 그런 것을 왜 하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하고 나니 저는 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데미안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본인으로 살지 않고 흘러가는 파도처럼 살아갑니다.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닫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장의 진통을 겪지 않고 진통제를 먹어버립니다.
결국 싱클레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 안에 있는 데미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모든 이가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더 귀 기울이고, 흘러가기 보단 거슬러 올라가기를 바라며 독후감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바우하우스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의 미술 발전을 과거의 역사와 관련지어 전개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디자인은 많은 연관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강의였다.
과거의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학적 개념을 차용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정교성과 장식성을 자의적으로 첨가했으나 그리스에 비해 질적으로 열등했었다. 허나 로마 문명은 응용력과 기술력, 혁신성과 공학적 성취, 조직력과 시스템적 사고라는 강점을 이용하여 규모가 큰 토목 공사와 광대한 인테리어 공간 형성, 그리고 공공시설을 발달시키면서 아치, 볼트, 돔, 콘크리트를 발명하여 콜로세움과 판테옴을 세우는 등 건축공학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듯 디자인의 선택이 인간문화 발전 수준에서 질적인 차이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며 ‘어떤 요소를 끌고 가느냐에 대한 선택’이 디자인에서 제일 중요한 안목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편 디자인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 없이 인류사에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에 따라서 퇴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은 반달리즘으로 인해 로마 제국 말기의 노예나 빈곤층 그리고 후대의 예술가와 로마의 보통사람의 손에 더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 그리스 양식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로마시에 있던 오래된 건축물에서 기둥 등을 가져다가 약간 손을 보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옛 로마”를 파괴한 이는 로마인 자신이었다. 물론 일부 예술가(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는 그러한 행위를 비난했지만, 대부분 무시를 당했다. 이후에 나온 양식인 고딕 양식도 로마 문화와 예술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융화를 꾀한 고트족이었으나 교양 없고 야만스럽고 풍류도 없으며 촌스럽다는 뜻으로 경멸의 의미를 내포하게 만들었다. 디자인 요소의 선택의 차이에 따라서 문화적 수준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맞으나, 당시 시대상으로 이뤄진 인간의 그릇된 사고가 서로 다른 결로 높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양식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현대사회의 우리 또한 그릇된 사고로 인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디자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면 시간의 흐름과 관계 없이 문화적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위험의 경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와 같이, ‘현대사회인들이 디자인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갖추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도 독서아카데미 프로그램에서 다룰 수 있었다면 더 뜻 깊은 강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려주는 것 또한 의의가 충분할 수 있으나 더 나아가서 이 정보를 통해서 후에 갖출 수 있는 시선과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씩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면 더 유익하고 기억하기 쉬운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우하우스

그리스 문명이 로마 문명의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디자인학과 학생이 아니거나 관심이 없었다면 찾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인데 강의를 통해 설명해 주셔서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스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앞에서 보면 직선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곡선으로 건축되었다. 그리스 문명의 완벽하고 이상적인 건축 형태의 표현을 위해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의 조상은 아니지만 수천 년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해서 신전을 건축했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리스 문명 때 지어진 신전들을 완벽한 모습으로 볼 수는 없지만 백색이라고 배웠었고 사진으로 봤을 때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백색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전이 백색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복원된 사진을 보면 다채로운 색을 지닌 건축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조잡할 수도 있고 복잡해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사실을 알고 나서 왜 나는 여지껏 백색인줄 알고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사실 학교에서 배울 때 사진을 보고 끝냈던 것 같다. 집에 가서 궁금증이 생겨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되었다. 현대에서 예쁜 카페나 건축물중에서 아치구조를 많이 보았다. 나는 이 아치구조를 고등학교 기술시간에 배웠던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다리와 비슷해 아치구조를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처음으로 발명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개인적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아치구조는 사실 이집트오 그리스에서 먼저 알고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고 로마문명에 들어서야 아치구조의 잠재력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치구조의 아름다움은 이집트와 그리스문명에서는 아름다운 기준에 미달하는실용적 기술에 불과한 방법이라 생각하여 한정된 곳에만 사용했다. 이집트문명과 그리스문명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로마인들은 아름다운 아치구조를 통해 콜로세움을 건축했으며 사교모임을 같는 공공목용장 등 많은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 이 아치구조가 로마인들에 의해 늦게 재조명 받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현대에서 보는 아치구조를 보지 못했을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을것 같다.

바우하우스

저번의 <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 – 디자인 : 문명의 관점에서 생각하다> 1차시 활동에 이어 2차시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저번 차시에 끊겨버린 청동기 시대부터의 문명과 디자인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였다. 이에 이어 해양 문화의 특징을 가진 미노스 문명과 평면의 진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리스의 신전, 파르테논 신전과 그의 변종들 등을 살펴보았다. 파르테논 신전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반으로 만남의 광장이 되었으며, 편집증적 착시 교정을 위해 곡선을 사용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외부에서 봤을때 직선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그리스의 신전 건축은 형태미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며, 덕분에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이 강의를 들으며 이전에는 신경써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큰 조형물이나 건물을 볼 때 위로 갈수록 곡선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기둥과 지붕의 면 등을 곡선으로 제작할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너무 흥미롭고 대단했다.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내용은 로마의 문명과 그에 관한 디자인이었다. 고대 로마는 ‘도시와 국가를 초월한 제국’이라고 불릴 만큼 영토가 너무 많아 많은 싸움 후 결국 좁은 영토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위기의 씨앗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로마 문명은 ‘실용주의’라는 정체성을 띠게 되었고,  이 정체성을 토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로마인들이 아치 구조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이었다. 아치 구조는 개구부 상부를 반원형 기타의 곡선 모양으로 한 것의 명칭이며, 이들 문명에게 있어서 아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미달이었지만, 실용적이었기에 이 아치구조는 건축물의 내부 등 한정된 곳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이 아치가 많이 사용된 건축물로는 콜롯세움이 있는데, 이 건축물은 80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고, 평소 디자인과 문명 등과 접할 일이 없던 터라 이번 활동은 정말 만족스럽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독서 아카데미 활동이 또 생겨 다양한 지식을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는 bau(건축)+haus(집)이라는 독일어로 이루어진 이름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세워진 예술기관이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설립되었지만, 이후 나치에 의 폐교되었다)
바우하우스는 좋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장식성을 털어내고 단순한 형태에서 미적 완성을 이루는 것을 추구하였다. (대표적으로 말하자면 바우하우스의 영감 오브젝트는 원과 세모, 네모였다)
모던 디자인의 시작인 바우하우스의 design 4가지 요소는 심미, 대중, 대량생산, 기능성이였다.
이러한 점에서 엿 볼 수 있는 것은, 바우하우스는 앞서 말한 것 처럼 디자인만 중요시 할 뿐만 아니라 실용성도 중요시 하였다. 
문명에 맞춰 실용적인 예술정신을 이어간 것이다.
디자인을 문명의 관점에 맞춰 바라 본 예가 한가지 더 있는데, 흔한 어린 아기가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시라.
떠올려봤다면 아이의 모습이 어떠한가? 흔히 볼 수 있는 아기용 의자에 앉아, 앉아 있는데 큰 불편함 없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시대에선 흔한 이 광경이 불과 얼마 전 까지만해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장면이였다.

아동 인권이 존중 받지 못하던 시절에는 어린 아이들을 다 자라지 않은 노동력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그저 빨리 자라서 노동력을 공급해야 할 자원으러 바라봤기 때문에 그 당시엔 어린이들을 배려해준 디자인 설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신체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높낮이 조절도 되지 않았던 디자인에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색상이 알록달록해지고, 높낮이 조절, 수납 등 기능적으로도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의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시대에 영향을 주기도한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지만 결국 자신의 작품으로 동시대 사람들, 사회, 문명에까지 영향을 주게된다.
다시금 디자인과 문명의 영향령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바우하우스

 이번 강연을 통해, 디자인을 문명에 관점에서 보며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저 알고만 있는 사실들로 둥둥 떠다니던 머릿속이 강연을 보고나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독립문과 프랑스의 개선문에 대해, 강연을 보기 전에는 둘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어느 나라가 참고를 한걸까? 아님 그냥 텔레파시가 통했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했었는데, 듣고나니 한국이 프랑스의 개선문을 참고한거고, 완전 똑같이 따라한 게 아닌 오리엔탈적인 면도 추가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프랑스의 개선문이 최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이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라고 한다. 디자인이 과거 한 시점에서 끊기고 다시 시작되고 끊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디자인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자인을 문명의 관점에서 보다’라는 이번 강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재밌었던 강연내용은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에 관한 얘기였다. 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낙오되어 멸종됐을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들이 멸종한 이유는 식량원, 가족범위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더 나은 불, 더 나은 도구, 더 나은 집, 즉 좀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을 통해 신체적 핸디캡을 만회했다는 점이었다. 이와 반대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지능, 상상력, 욕망 등 정신적 측면에서 부족했다.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강연내용은 피라미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저 피라미드는 사각뿔 모양으로 생긴 무덤인줄만 알았는데 시대에 따라 수많은 모양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독서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해 보고 싶은 테마주제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내용이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도 더 알아보고 싶은 단원이었는데, 수박겉핥기식으로만 안 것 같아서 더 알고싶다. 인간은 본성은 선한지, 악한지, 아니면 선도 악도 없어 자라면서 교육에 따라 바뀌는 성무선악설인지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다.

바우하우스

 원초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디자인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디자인’이라 하면 조형적, 심미적인 것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현재 사회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디자인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디자인의 상징적, 문화적 차이를 넘어 인간의 DNA에 의해 전수되는 원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오벨리스크, 독립문, 불상의 사례로 동서양의 문명이 혼합된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영감의 원천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문화적 유전자가 우리의 곁에 있다는 말 또한 인상 깊다.
 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의 역사를 통해 현재 디자인의 원형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재밌다. 석기 시대에 도구를 개발함으로써 공간성이 확장되고 자연스럽게 공간적 지각, 공간적 체험이 확장되었다. 제품 디자인이 우리에게는 단순히 제품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사용처에 대한 인식, 사용처에 대한 발전,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부분을 통해 결국 디자인의 영역에 제한을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존을 위했던 개발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또 다른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청동기 시대까지의 디자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피라미드 디자인의 변화, 이집트 문명의 디자인에 대한 내용은 강연을 통해 처음 접했다. 압도적인 크기의 디자인 섬세하고 화려한 디자인의 결과물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나에게는 고도의 발전된 디자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 프로그래밍 기술, 심미적인 것, 기능적인 것을 토대로 현대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강연을 통해 문명의 관점으로 디자인을 다시 바라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뜻깊었다.
 디자인은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테마가 계속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