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책을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읽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코라는 새로운 감각기관을 사용하며 읽었다.
작가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어투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주인공은 이 세상에 1번 나올까 말까 한는 아주 예민한 코를 가진 존재이다.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반면, 아주 미묘한 냄새를 맡으며, 냄새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만든다. 한 번 맡은 냄새는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며,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기 까지의 냄새를 제작한다.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사람’의 냄새를 아주 지독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작가가 꼭 인류에 대한 경멸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혹여나 작가가 표현한 적랄한 섬세한 좋지 못한 냄새가 날까 걱정이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였다.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스릴감과 즐거움. 막상 목표를 달성하면 찾아오는 허무함.
인생의 물레방아가가 아닐까? 라는 물음이 나왔다.
여운이 강한 소설이다.
sf적 소설을 기반으로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게하는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두번째 지구라는 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환경오염을 경계하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우선 일반적으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밝히고 이에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보통 환경오염의 규모는 엄청나며 우리가 공감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환경을 위한 행동과 생각을 가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환경오염의 피해를 우리 일상에 예시를 들어 설명하거나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피해가 닥칠것인지를 현실감있게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점이 여태까지 봐왔던 환경운동가들과는 차별화된 점이라고 생각했고 읽는 내내 집중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환경보호에 대해 우리에게 너무 먼 것이 아닌 일상에서의 변화가 변화를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경제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이 책을 읽고 줄어들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 독서클럽 도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로 결정하였다.
저번 학기 독서클럽은 <총, 균, 쇠>라는 다소 어렵고 두꺼운 책으로 진행했다보니 이번에는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하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영화화 된 <향수>를 읽기로 했다.
나의 예상과 달리 <향수>는 범인이 누구인지 맞추는 추리소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재미가 가득 들어있었다.
가장 큰 재미는 쥐스킨트가 주인공 그르누이를 묘사하는 방법이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연쇄 살인범으로 태어날 때 부터 악한 인물이다. 인물이라고 하기에도 망설여질만큼 인간보다는 감정이 없는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통 악역은 악해진 사연이 있거나, 가슴아픈 개인사가 있고, 악역의 숨은 약한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그르누이는 감정도 없이 완벽하게 ‘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인물로 표현된다. 더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르누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점이다. 이건 아마도 쥐스킨트가 그르누이를 악한 행위를 하지만 악하지 않은 인물로 설정하고 인물을 그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작가의 의도는 모르지만 연쇄살인범에게 ‘와 진짜 나쁘다!’라는 감정이 들지 않은 건 이번에 처음이었다.
두번째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챕터 마다 뚜렷한 전개 분류이다.
독서클럽은 총 4주차로 진행되었고, 마침 책이 4장까지 있었으므로 우리는 1주에 1장씩 읽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바로 각 장 마다 그르누이의 다짐과 이야기 전개가 특색이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혼자 책을 읽었더라면 이런 점을 눈치 채지 못했을텐데 다 같이 천천히 뜯어 읽으니까 더 맛있게 느껴졌다. 1장은 그르누이의 성장배경을 2장은 그르누이의 홀로서기와 인간 향수를 만든 후 달라지 그르누이의 자아, 3장과 4장은 아름다운 향기를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모든걸 이룬 그의 선택 등 각 장 마다 특색이 있어 재미있었다.
그르누이를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줬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다 읽을 때 까지 영화 <향수>를 일부러 검색해보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는 그르누이의 모습 그대로 책을 읽고 싶었다.
독서클럽을 통해 재미있는 책을 하나 하나 뜯어 가며 곱씹어 읽어서 더욱 즐거웠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독서 방법 중 ‘발췌’를 이용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최종 선택지인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 국가로서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예민하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으로서(?) 이 사람은 자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물론 일부만을 읽어서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인생을 살다가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문구를 봤다. 특히나 삶의 그래프를 볼 때, 좋은 순간보다 나쁜 순간이 더 많으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 어떤 방법들을 동원해도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없다거나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아예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아마 사람들도 모두 그러하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감정이 먼저 앞설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 또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됐다.
고등학생때 수행평가를 위해 글을 쓰려고 바삐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이번 독서토론에서 이 책을 통해 토론을 하게 되어 영광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생각 없이 쓰는 언어 습관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이 약간 작가의 경험만을 가지고 쓴 책은 아니고 약간의 msg를 친 책이라고 느껴졌다. 뭔가 중간중간 공감이 조금 힘든 이걸 왜 책에 담을까 하고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이 좋은 기회로 평소 아무나 할 수 없는 기회를 얻어서 사람들과 대화한다는게 좋았다. 코로나로 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할수있을 만큼 노력하며 4주동안 열심해 해왔다는 것 자체에 큰 만족감을 얻었다.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마음속에 두고 언제나 주변사람들에게 비언어적인 표현이든 언어적인 표현이든 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다.
내가 평상시에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하고 버리는 것들이 환경을 오염 시킨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