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1. 사피엔스에게 상상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사피엔스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현존하는 인류는 당연히 사피엔스가 아니였을 것이며 인류의 발전 또한 더 진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다른 종들과 차별화를 가졌던 사피엔스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면 어쩌면 다른 뛰어난 개체에 의해 인류가 사라져 버렸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만약에 인류가 계속 유지 되었어도 지금의 우리와의 생활 방식은 물론 인체 구조 또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농업이 사피엔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개선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감하는가?
농업이 사피엔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은 논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물론 이전에 하지 않았던 농업에 대한 노동으로 인해 사피엔스가 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를 주장하기 전에 농업 발달에 본질을 생각해보자. 농업을 발달시킨 이유는 사피엔스의 생존과 직결된다. 사피엔스는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을 발달시켜왔다. 농업 발달이 없었다면 아마 사피엔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는 농업으로 인한 삶의 힘들어짐 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안정이 확보되지 않은 삶에서 사피엔스들은 그들의 종, 즉 인류의 유지 및 발전에 힘쓸 수 있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3. 인류의 역사에 방향성은 있을까?
역사에 방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수천 수만년에 걸쳐, 여러문화들이 모여 복합적인 문화가 생겨났다. 이렇게 생긴 복합적인 문화에 방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전에 존재했던 작고 단순한 문화들에 대해 연관성 및 방향성이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에는 인류가 거의 동일한 경제, 지정학, 법, 과학체제를 이루고 있다는 의견이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의 모임들이 방향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규제가 갑작스럽고 빠르게 등장해 인류에 스며든다면 어떨까? 이것이 기존에 존재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한 방향성을 예측 및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새로 쓰여질지는 현재 체제로 해석을 하면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 하겠지만 체제라는 것이 언제 변화할지 모르고 언제까지 유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방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4.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주체인가, 노예인가?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주체이다. 애초에 인간이 더 잘 살려고 개발한 과학기술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노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욱 풍요롭고 나은 삶을 위해 개발한 과학기술에 대해 인간이 그것에 휘둘리는 것에 대해 노예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이렇게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노예다 라는 주장 또한 더 낫고 진보된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충분히 무마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보다 훨씬 발전된 과학기술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이 문제점들은 하나 둘 없어져 나갈 것이며 결국엔 인간이 과학기술 혁명의 노예다 라는 생각 또한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혁명은 인간에 있어 이전보다 훨씬 낫고 발전된 문화를 이끌었을 뿐 그것의 노예는 아닐 것이다.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또한 나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노예가 아닌,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어디에 주로 사용되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와 항상 함께 생활하는 세탁기, 청소기, 자동차 등과 같이 우리가 숨쉬듯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것들을 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세탁과 청소, 이동등과 같은 행동들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쩌면 당연시하게 해야하는 것들이다. 과거에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행동들을 힘들게 도구없이 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편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당연한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것에 대한 결론이 바로 저러한 과학적 산물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과학기술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편의성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이뤄낸 성과 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라는 책은 작년 필수 교양시간에 처음 접한 책이다. 그때는 시험을 위한 수업의 교재로 사용되었기에 정독을 할 수 없었고 우리는 이번 상상독서 프로그램을 통해서 작년의 아쉬움을 덜어보고자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사피엔스에서 저자인 유발하라리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간은 과연 인간의 생각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가, 모든건 계락에 의한 조종은 아닌가 등의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저자의 말에 공감하기도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누군가의 의한 삶을 살고 밀에게 조종당하고 과학기술의 노예로 살아가고 그렇게 수동적인삶을 주체적인 삶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생긴다. 그래서인지 토론에서도 저자의 생각에 반대되는 의견을 많이 피력하게 된것 같다. 이렇게 친한 사람들과 의미있는 책을 읽으며 토론을 진행하니, 이 책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듯하다. 매우 좋은 기회였고 다음에도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세계문학전집 88)
위대한 개츠비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오만과 편견 (세계문학전집 88)
도서명 : 오만과 편견
팀 명 : 김교수님과 다섯 제자
한지민 1512090
일 시 : 2019.10.01. ~ 2019.11.05.
나의 주차별 활동
1주차
오만과 편견을 중심으로: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담화 분석
크게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제인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그에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엘리자베스는 진취적이며 능동적이고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제인은 착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지만 빙리와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이 아닌 주변 상황과 인물에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제인을 통해 작가는 당시 18세기의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고생각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를 본다면 다아시는 오만의 캐릭터이며 엘리자베스는 편견의 캐릭터이다. 하지만 다아시가 베넷가를 폄하하는 부분은 다아시가 오만과 편견을 둘 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둘의 관계를 통해 우리도 인간 관계에서 충분히 의도하지않아도 오만과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2주차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의 결혼관: 가족, 결혼, 부와 권력, 여성성에 대해
여러 여성 인물들의 다양한 결혼관 중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롯 캐릭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샬롯은 훌륭한 성품과 지성을 소유한 여성상으로 그려지지만 외모와 재력 등에서는 내세울 것도 없기에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한 콜린스 목사와 결혼한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콜린스와의 결혼이 경제적으로 보장되어있음에도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만의 주관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쉽지않았을 것이다. 또한 샬롯의 선택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 보장되어있지 않음에도 물질적인 여유와 부유한 생활의 보장으로 내린 선택면으로 말이다. 하지만 책 속에선 행복과 미래는 불투명하더라도 당시 권력과 지위는 재력으로 이어지던 18세기 시기에선 샬롯이 한 선택이 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3주차
오만과 편견에 반영된 사회상 비교: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사회인식 및 여성주의를 중심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대부분 결혼 또는 결혼의 조건이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들로 등장한다. 당시 결혼은 현대와 같이 평등한 관계에서이루어지는 사랑의 결실이 아니며 여성들이 본인의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시대상이기에조건에 의한 불평등한 계약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제인 오스틴은 이를 주제로하여 작품을 그려냈고 당시 여성들의 결혼에 이르는 현실적인 선택과 과정을 잘 그려냈다. 엘리자베스, 제인, 샬롯 등 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선택, 여성성 그리고 스스로 인식하고 극복해 가는 모습을 통해 작가 제인 오스틴의 여성주의에 대한 의견을 작품과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주었다.
4주차
소설과 영화의 비교 고찰: 함께 영화 관람 후 비교 고찰
확실히 책에서 보여주는 스토리를 영화에 다 담아낼 수 없다. 등장인물 구성 또한 차이가 있었며 스토리또한 영화에 맞추어 더 흥미롭게각색된 부분이 많았다.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요구하여 오로지 장면은 우리의 상상력으로만 채워지지만 영화는 영상 속 실제 인물에 시대적 배경 또한 우리 눈으로 입체감과 명도를 확인 할 수 있어 둘의 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또한 원작 소설에선 다양한 복선과 세세한 전개사항을 모두 열거 하지만 영화의 오만과 편견에선 관람객의 긴장과 시선을 사로잡아야하기에 좀 더 불필요한 전개사항이 추가되지않았나느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나는 이를 읽으며 나의 삶과 인물들의 삶의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하며 그 공통적인 부분으로도 위로를 받게됐다.
반면에 미카엘라는 과거 ‘세월호 사건’을 담은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는 세월호에 대한 대중들의 변해버린 차가운 반응들, 또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보였다. 그들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여전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은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나의 태도들도 돌아보게 됐다. 또한 엄마와 딸의 관계로 나와 엄마의 관계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솔직히기 힘들어하며 상처주는 말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가 떠나간 뒤 많은 후회를 한다. 이 미카엘라를 읽으며 가까운 사람에게 애정을 품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