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이번 학기에 서비스운영관리 수업을 듣게 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서비스 기업에 대해서 기업분석을 하고, 서비스 산업에 활용되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중에 이 책이 지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 발달의 양면성, 인공지능의 발달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굉장히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정리되어 있어서 읽는 데 별로 어렵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Chapter 9망각 없는 세상,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지식을 아웃소싱하게 된다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이미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지식 저장고로서의 뇌의 기능을 많은 양 분담하고 있고 미래에 인공지능은 우리 몸 밖에 꺼내 둔 뇌처럼 될 것이다.

데미안 (세계문학전집 44)

  유명한 현대문학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데미안이 우리 집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데미안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다. 300쪽도 안되는 책이라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철학적인 구절들이 너무 많아, 책을 읽으며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데미안을 읽을 때에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여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딱히 책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 속의 내용을 어떻게든 나와 결부시켜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책이 나에게 주고 있는 깨달음과 교훈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소설 덕분에 앞으로 어떠한 문학작품을 읽든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연관지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데미안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 해 보고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출판했다고 한다. 다른 작가라면 자신의 명성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기를 원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헤르만 헤세는 작가로서의 면모가 뛰어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데미안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궁금증에 때문에 평론가 코로디가 데미안 문체 분석을 통해, 이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것이라고 밝혀내기까지 하였다.

 

  데미안은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이원론적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데미안의 화자인 에밀 싱클레어는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중년의 싱클레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싱클레어크로머라는 친구에게 협박을 당한 뒤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음을 느꼈고, 어둠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하며 이것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처음, 이 부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에 아이들이 누구도 해결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일들도 어른들이 봤을 때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 고민거리가 있다면 혼자서 앓지 말고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라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장면은 싱클레어가 온전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처음 갖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지배하기에는 너무나 큰 어둠의 세계에 순종하며 살고 있던 중, ‘데미안이라는 학교 선배를 만났다. 데미안은 나이에 비해 사뭇 어른스러워 보이는 학생이었다. 그는 싱클레어의 고민을 알아차리고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버리며 타인에게 순종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순종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듯하다. 나는 데미안의 말을 읽고 곰곰이 생각을 한 뒤, 앞으로 원치 않는 순종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같이 데미안의 말들은 내가 많은 사고를 하도록 유도 했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

  데미안을 만난 이후로 싱클레어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자아를 원해왔고, 첫 번째로 베아트리체라는 자아와 마주했으며, 두 번째로는 아브라삭스와 마주했고, 세 번째로는 에바 부인과 마주했다. 여기서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는 내면적 자아와 외부 세계를 뜻한다. 모든 개인들이 내면적 자아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접점에는 반드시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아는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싫든 좋든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기업이나 제도의 혁신은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아의 혁신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 이상, 목표 등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면적 자아만 추구 하는 사람들은 외부세계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외부세계에 조금만 위협이 가해져도 금방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리곤 한다.

  외부세계의 갑작스러운 위협에 겁먹지 않으려면 사력을 다해 끊임없이 낡은 세계의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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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 강의 1차   
 저는 평소에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디자인의 역사와 다양성에 대한 자료를 유튜브나 인스타에 검색해 보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된 유익한 이번강의를 통하여 더욱 전문적이고 세세한 디자인의 역사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디자인의 역사가 흐르며 많은 계산과 시행작오의 결과로 지금, 현재의 라이프디자인과 기술이 발달하였으리라는 생각도 종종들었습니다.  인간의 생존 변화부터 고대 이집트문명의 이야기 까지 뻗어나가는 강의 흐름으로 지루하지 않고, 평소에 정말 무지했던 부분들도 나름의 지식으로 내세울 수 있는 영역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디자인 전공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고 새로운 관심사를 찾게될 수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디자인과 역사 둘다 관심이 있었기에 내용을 융합하여 이해하게 되었고, 쉽게 잊지 않게되는 내용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에서 소개된 디자인의 역사와 본질은  고대문명에서는 오로지 신과 하늘에 충성하고 ‘기록’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던 예술과 건축이였다면, 현 시대에는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마음껏 분출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발전하며 다양한 분야와 쉽게 융합하고 협업하며 대중적인 영역이 되었습니다. 현 시대에는 세대와 계층의 허물없이 대중적이고 유익한 정보와 표현으로 탄생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많은 정치적요소와 가치관이 시대를 타고 변화하며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있지만, 아마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또한 더더욱 다양해지고 자유가 늘어나며 자연스레 확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강의를 통하여 이러한 디자인의 초기적인 역사와 시초를 알게되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지금 현 시대에서 살아가는 제 자신이 너무 안정적이고 안일한 방향의 길로만 디자인을 인식하고 이해했던 것 같다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되는 강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앞으로의 디자인 커리에 있어서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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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테마독서아카데미 강연을 듣고 난 후, 작성하는 글 입니다. 
 테마가 있는 독서아카데미의 강연을 신청 하여, e클래스에 탑재된 동영상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았더라면 강의실에 대면하여  들을 수 있었겠지만, 동영상으로도 유익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오래전 역사 문명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관점으로도 나누어서 차근차근 알게 되는 정보들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10대 학창시절 한국사 시간과 미술 이론시간에 교과서에서 스치듯이 보았던 생활양식과 예술작품들이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디자인 세계에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분석과 연구관찰의 흐름을 타고 전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제가 관심있게 보았던 부분은   서양의 고대 -중세 시대에 건축 되었던 신전에서 찾은 디자인 요소들 입니다. 백색의 신전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이것이 각각 차이가 있음으로 오묘한 매력을 준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작은 교과서 속 사진으로 볼때는 다 비슷비슷한 모양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을 건축양식이라고 생각했지만, 강의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더욱 관심사로 추가되는 정보로 자리 매김하였습니다.  현재 실존하는 건축물들의 소개도 종종 등장 하였는데, 지금현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해외여행의 출입국이 통제되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 사태가 나아지고 회복된다면 꼭 강의에서 소개된 건축물을 실제로 눈에 담아 보고 그 웅장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고 싶습니다. 
특히 창의적인 구조물로 소개되어진 ‘판테온’신전의 구조가 가장 생생하게 보고싶은 건축물 중 하나 입니다.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햇빛에 우뚝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건축물들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되고, 그것을 토대로 발전해온 디자인의 세계에 감탄하게 되는 강의였습니다. 문화생활에도 제약이 생긴 시국이기 때문에 ‘테마독서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문화예술을 접하게 되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데미안 (세계문학전집 44)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이 책의 명언이며 책을 읽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이 구절을 알고있다. 고등학교 1학년 이 책을 처음 접할때 새의 상황이 공감되어 단순히 이 구절이 명언이라고 생각하였다. 대학교 입학 후 독서 클럽 활동을 통해 다시 한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약 3년만에 책을 다시 읽게되었다.
  책의 주내용은 주인공 싱클래어가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만나 성장해가는 내용이다. 싱클레어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으로 같은 나이 또래의 평범한 아이이다. 어느날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친구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어 자신이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크로머라는 소년이 이것을 약점으로 잡고  싱클레어를 협박해갔다. 이 과정에서 집이라는 빛의 세계에 있던 싱클래어는 어둠의 세계를 겪게된다. 그 중 데미안이라는 소년을 만나고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존재가 되며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존경해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학업으로 인해 데미안과 헤어지며 그곳에서 방황을 한다. 이때 싱클레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여인을 보게되고 그녀를 그림으로 그려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인후 그녀를 숭배하는 등 남이 만들어준 성스러움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성스러움에 대해 방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느 날 싱클레어은 데미안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 아프락사스에 대해 혼란을 겪지만 교회에 있던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 의지를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데미안과 다시 헤어지게 된다. 이후 부상으로 인해 병원에 있던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보살피지만 일어나보니 데미안은 떠나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그와 닮아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싱클레어는 평범한 한 아이였다. 그러나 주변 인물을 통해 자신을 성장하게 해주었으며 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처럼  싱클레어가 펑범한 아이였던 점에서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 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데미안 같은 존재로 새워 성장해나갔다. 아마 고1때 처음 읽었던 것보다 현재 감흥이 더 나는 이유는 그사이 나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깬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진정한 ‘나’라는 존재를 찾진 못했지만 사회에 나가기전 대학교4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새로운 세계를 깰 수있는 존재로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7년의 밤

범죄 심리 소설은 나에게 친근한 존재는 아니다. 주변에서 재밌다고 추천해주는 책들은 주로 일본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이 한글이 아니면 읽다가 중간 중간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7년의 밤’은 한국 소설이다.
덕분에 내가 범죄심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정말 몰입을 굉장히 많이 했던 책이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 하나 하나에 다 만약 나였다면,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몰입을 해서 읽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에필로그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영화나 책을 볼 때 재밌다, 잘 만들었다 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은 다 악역의 감정선을 잘 그려놓은 것이다. 분명 누가봐도 악인이지만 그들에게 어쩐지 안타까움이 들고 이해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이 소설 또한 나에게 주었다. 솔직히 독서를 잘 하지 않는 나에게 이 독서클럽 활동은 일상의 자그마한 힐링 시간을 갖게 만들어 주었고 그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도록 이 책을 추천해준 조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7년의 밤

 소설 7년의 밤. 독서클럽에서 이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눠보자고 결정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고, 영화가 나온 지도 몰랐었다.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면 아예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이 소설은 나의 첫 도전이자 시작이었던 것이다. 
 ‘7년의 밤’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이 7년의 밤인지 알 수 있는 제목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던 최현수와, 그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았던 아들 최서원.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오영제, 이 모든 일의 시초인 오영제.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오영제는 처음부터 ‘악인’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지, 아님 오영제의 부모와 환경에 의해 그렇게 된건진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분명한 건 그는 폭력을 저지르고 그것을 ‘교정’이라 부르며 합리화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 소설이 유명해진 데에는 오영제의 캐릭터가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님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을 보고 ‘이때는 이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지?’,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등의 돌발적인 질문을 해도 깔끔하게 대답이 가능한 만큼 등장인물의 배경설정이 탄탄하다. 주요 등장인물 외에, 세령의 엄마였던 문하영, 서원의 엄마였던 강은주 등의 과거까지 나오며 전체적으로 소설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멍한 기분이 들며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화나고, 안타까웠고, 마음 졸였던 순간이 한 순간의 꿈처럼 느껴지는 결말이다.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지고 불쾌감이 들었을 정도의 실감나는 장면, 필력이 좋아 그 잔인한 장면마저 상상이 너무 잘되는 게 이 소설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모든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장면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하고 싶지만, 최고의 명장면을 뽑으라면 역시 기승전결 중 ‘결’부분이 아닐까 싶다. ‘전’부분 역시 재밌었지만, 내 기준 너무 잔인해서 ‘결’부분을 말하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영제의 복수가 승환과 서원에 의해 끝이 났을 땐 ‘그래도 이 소설이 끝이 나긴 나는구나. 잔인했던 오영제의 만행이 끝이 나긴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느라 바빠서 결말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었지만, 처음에 이 책의 줄거리를 찾아보았을 때 자세하게 결말 부분이 설명되어 있는 리뷰가 없어 어렴풋이 배드엔딩이나 열린 결말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통쾌한 결말일 줄 몰랐다. 아마 리뷰를 쓴 사람들도 우리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자세히 쓰지 않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마지막에 최현수는 교도소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것이 맞어떨어진다면, 운이 따라준다면, 우린 이 기나긴 밤을 끝낼 수 있는 것이지.” 내가 뽑은 최고의 명대사이다. 이 대사를 읽었을 때 오는 소름과 머릿속이 한번에 정리되는 느낌은, 소설을 읽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작가님이 주는 선물이다. 또한 소설을 읽고 나면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생각할 정도로 머릿속에는 엄청난 사건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슬슬 더워지는 요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무언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양장본 HardCover)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제목부터 끌리는 이 책은 4번의 독서클럽 활동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소설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원작을 읽어봤을 경우에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읽어본 책은 ‘피가로 3부작’, ‘돈 후안’, ‘메데이아’, ‘오만과 편견’, ‘제인에어’ 였다. 
 특히, 제인 에어는 예전에 작은 아씨들과 더불어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었다. 두 책을 그때는 이유도 모르고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 에어에 대한 설명하는 걸 보니 두 책의 주인공은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한 제인과 조의 매력에 이끌려서 두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책을 앟읽어서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책이지만 관심이 갔던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내가 나중에 해외 여행을 간다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이 프라하인데, 이 책의 배경이 ‘프라하의 봄’이다. 그리고 작가도 체코사람이었다. 1980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프라하로 향했다고 하는 걸 보니 나도 프라하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외에도 이 책에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문학책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읽는 모든 책이 문학책이었고 ‘책은 문학이지!’가 내생각 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기 위한 활동들을 하다 보니 문학보다는 무언가 얻는 게 있는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진로를 정하고 그 진로와 관련된 쪽으로만 계속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책에서 얻는게 없었다. 분명 지식은 얻었지만 느끼는 게 없었다. 느끼는 게 없다보니 정한 진로가 내가 하고 싶은 거인지도 잘 모르겠었고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상상력 인재학부에 합격한 뒤로 내가 하고 싶은 트랙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보았지만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 특히 가정과 여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독서 클럽을 하면서 다른 선배와 동기의 의견도 듣고 교수님의 의견도 들으니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진로를 정하기 위해 읽어야하는 책들은 지식만 주기보다는 이 책처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소개된 책을 읽고 나서 한번 더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그때는 또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데미안

  그래요, 누구나 모두 알을 깨고 나오는 상황을 겪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참 많은 방황이 있었고 절대적인 하나의 답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싱클레어에게 계속 스스로를 대입하는 저를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책은 그렇게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도록 만든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싱클레어는 본인의 인생에 답을 찾아갑니다. 하루종일 망상에 빠져있기도 하고, 심하게 병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싱클레어 처럼은 아니지만 다른 고통을 받았고. 또, 정반합과 같이 언제나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때 많은 독서를 하고, 자기관찰일기를 작성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친구들에게 괴짜소리를 몇 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그런 것을 추천하면 시간 아깝게 그런 것을 왜 하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하고 나니 저는 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데미안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본인으로 살지 않고 흘러가는 파도처럼 살아갑니다.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닫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장의 진통을 겪지 않고 진통제를 먹어버립니다.
결국 싱클레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 안에 있는 데미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모든 이가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더 귀 기울이고, 흘러가기 보단 거슬러 올라가기를 바라며 독후감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바우하우스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의 미술 발전을 과거의 역사와 관련지어 전개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디자인은 많은 연관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강의였다.
과거의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학적 개념을 차용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정교성과 장식성을 자의적으로 첨가했으나 그리스에 비해 질적으로 열등했었다. 허나 로마 문명은 응용력과 기술력, 혁신성과 공학적 성취, 조직력과 시스템적 사고라는 강점을 이용하여 규모가 큰 토목 공사와 광대한 인테리어 공간 형성, 그리고 공공시설을 발달시키면서 아치, 볼트, 돔, 콘크리트를 발명하여 콜로세움과 판테옴을 세우는 등 건축공학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듯 디자인의 선택이 인간문화 발전 수준에서 질적인 차이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며 ‘어떤 요소를 끌고 가느냐에 대한 선택’이 디자인에서 제일 중요한 안목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편 디자인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 없이 인류사에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에 따라서 퇴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은 반달리즘으로 인해 로마 제국 말기의 노예나 빈곤층 그리고 후대의 예술가와 로마의 보통사람의 손에 더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 그리스 양식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로마시에 있던 오래된 건축물에서 기둥 등을 가져다가 약간 손을 보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옛 로마”를 파괴한 이는 로마인 자신이었다. 물론 일부 예술가(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는 그러한 행위를 비난했지만, 대부분 무시를 당했다. 이후에 나온 양식인 고딕 양식도 로마 문화와 예술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융화를 꾀한 고트족이었으나 교양 없고 야만스럽고 풍류도 없으며 촌스럽다는 뜻으로 경멸의 의미를 내포하게 만들었다. 디자인 요소의 선택의 차이에 따라서 문화적 수준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맞으나, 당시 시대상으로 이뤄진 인간의 그릇된 사고가 서로 다른 결로 높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양식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현대사회의 우리 또한 그릇된 사고로 인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디자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면 시간의 흐름과 관계 없이 문화적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위험의 경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와 같이, ‘현대사회인들이 디자인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갖추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도 독서아카데미 프로그램에서 다룰 수 있었다면 더 뜻 깊은 강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려주는 것 또한 의의가 충분할 수 있으나 더 나아가서 이 정보를 통해서 후에 갖출 수 있는 시선과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씩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면 더 유익하고 기억하기 쉬운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