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서비스운영관리 수업을 듣게 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서비스 기업에 대해서 기업분석을 하고, 서비스 산업에 활용되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중에 이 책이 지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 발달의 양면성, 인공지능의 발달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굉장히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정리되어 있어서 읽는 데 별로 어렵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Chapter 9의 ‘망각 없는 세상,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지식을 아웃소싱하게 된다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이미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지식 저장고로서의 뇌의 기능을 많은 양 분담하고 있고 미래에 인공지능은 우리 몸 밖에 꺼내 둔 뇌처럼 될 것이다.
데미안 (세계문학전집 44)
유명한 현대문학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데미안’이 우리 집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데미안’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다. 300쪽도 안되는 책이라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철학적인 구절들이 너무 많아, 책을 읽으며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데미안을 읽을 때에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여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딱히 책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 속의 내용을 어떻게든 나와 결부시켜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책이 나에게 주고 있는 깨달음과 교훈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소설 덕분에 앞으로 어떠한 문학작품을 읽든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연관지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데미안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 해 보고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출판했다고 한다. 다른 작가라면 자신의 명성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기를 원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헤르만 헤세’는 작가로서의 면모가 뛰어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데미안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궁금증에 때문에 평론가 ‘코로디’가 데미안 문체 분석을 통해, 이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것이라고 밝혀내기까지 하였다.
데미안은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이원론적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데미안의 화자인 ‘에밀 싱클레어’는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중년의 ‘싱클레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친구에게 협박을 당한 뒤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음을 느꼈고, 어둠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하며 이것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처음, 이 부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에 ‘아이들이 누구도 해결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일들도 어른들이 봤을 때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 고민거리가 있다면 혼자서 앓지 말고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라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장면은 싱클레어가 온전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처음 갖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지배하기에는 너무나 큰 어둠의 세계에 순종하며 살고 있던 중, ‘데미안’이라는 학교 선배를 만났다. 데미안은 나이에 비해 사뭇 어른스러워 보이는 학생이었다. 그는 싱클레어의 고민을 알아차리고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버리며 타인에게 순종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순종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듯하다. 나는 데미안의 말을 읽고 곰곰이 생각을 한 뒤, 앞으로 원치 않는 순종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같이 데미안의 말들은 내가 많은 사고를 하도록 유도 했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
데미안을 만난 이후로 싱클레어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자아를 원해왔고, 첫 번째로 ‘베아트리체’라는 자아와 마주했으며, 두 번째로는 ‘아브라삭스’와 마주했고, 세 번째로는 ‘에바 부인’과 마주했다. 여기서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는 내면적 자아와 외부 세계를 뜻한다. 모든 개인들이 내면적 자아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접점에는 반드시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아는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싫든 좋든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기업이나 제도의 혁신은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아의 혁신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 이상, 목표 등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면적 자아만 추구 하는 사람들은 외부세계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외부세계에 조금만 위협이 가해져도 금방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리곤 한다.
외부세계의 갑작스러운 위협에 겁먹지 않으려면 사력을 다해 끊임없이 낡은 세계의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