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After the Fall
Miller는 단순히 본인을 한 인물에 투영시켜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Holga와의 대화를 통해서 개인은 결코 사회와 분리될 수 없고 또 개인과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사회문제라 할지라도 개인의 잘못이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누군가’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알아가며 자아추구적 모습이 나타납니다.
“After the Fall”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고심하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고민과 상처가 단순히 슬픈것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잘못된 점을 수용하고 변화하여 다음에 있을 선택과 판단에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 정치 경제학
유전자란 무엇인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잔잔하고 따듯한 내용의 동화와 같은 소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소시민의 어려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과 같이 어둡고 복잡한 내용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난장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여기선 난쟁이란 117cm 밖에 되지 않는 김불이라는 한 가족의 가장을 낮잡아 부르는 그의 또 다른 이름표이다. 그는 벽돌공장 뒤 허름한 집에서 아내와 영수,영호, 영희라는 3명의 자식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집을 철거하라는 철거계고장이 날아왔다. 이에 난쟁이는 실의에 빠지고 세상과 맞서지도 못한 채 점 점 멀어져 가는 이상을 쫓아 자살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불이의 첫째 아들 영호는 그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이 세상에 의문을 가졌고 이에 맞서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말렸다. 그냥 이 삶에 순응하며 살자고, 하지만 그의 어머니조차 영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영호는 은강 공장의 부당한 대우에 맞섰고 사장과 닮은 사장의 형제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채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고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매우 많은 감정이 오갔다.
맨 처음 느낀 내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왜냐하면 소설이 비극으로 시작하여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마치 영호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끝나지 않는 비극,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비극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은 그 비극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것이 제일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쇠공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난쟁이의 바램을 담아 난쟁이가 그리 가고 싶어 했던 달로 쏘아 올린 쇠공이 힘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것이 난쟁이의 희망이 추락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그저 어둡고 칙칙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어둡고 칙칙한 소설을 읽고 나서 많이 생각이 파도에 쓸려오는 것처럼 마구 쏟아졌다. 다시 한번 소외 받은 사람들에 서글픔과 이상과 현실의 크나큰 차이로 인한 절망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막연히 이책을 어둡고 칙칙하다고만 정의하면 안될 것 같았다. 우리도 이 책과 같이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야매 득도 에세이)
맥베스
욕망과 파멸, 그리고 선택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그렇다.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 그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많은 선택을 했다. 무엇을 입을 것인지,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선택의 내용이고, 그 결과물의 연속이 오늘 하루를 완성시켰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선택을 초래하는 것일까? 무의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먹을 것인지 선택할 때, 우리는 무심코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선택하였지만 그 선택은 우리의 무의식의 반응의 결과이다. 양자 택일의 상황에서 무의식 속 두 음식에 대한 어떤 경험에 대한 기억들 혹은 감정들이 잠자고 있다가 일어나 우리가 선택하는 과정에 영향을 준 것이다.
무의식에 영향을 받은 선택. 바로 이 것을 맥베스와 연결시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맥베스는 욕망이란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다가 결국 재만 남게 되는 파멸에 이른 인물이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를 그러한 선택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를 비인간적인 선택으로 이끈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파멸한 것으로 보았다. 바로 ‘권력에 대한 무의식’이다. 어쩌면 마녀들의 예언이 있기 전 이미 그의 무의식 속에는 ‘권력’이란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깊게,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의 무의식의 형성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중세로, 군인으로서 통치력이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는 것이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권력이란 싸워서 이김으로써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그의 무의식 속에 권력이 제 1의 가치로 자리잡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대단히 전투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은 그의 권력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부인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작품의 첫 부분에서 자신의 부인에게 상당히 의존적이고, 부인의 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인다. 부인에 대한 인식이 그의 권력에 대한 무의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식했길래 ‘진행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그녀의 말에 의해서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녀를 ‘자신의 권력에 유용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맥베스 부인이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맥베스라는 인물을 무의식과 선택에 집중하여 풀이해 보니 그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이해해 볼 수 있다. 무의식을 조심하라. 작가는 이 책 표지의 색상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