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덕선생전

예덕선생전에서 찾아보는 조선사람들의 모습

예덕선생전은 연암 박지원 선생의 소설 중 하나이다. 그는 실학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실학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만큼 그의 소설은 이용후생을 지향하는 성향과 그 당시 성리학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예덕선생전또한 양반의 허위허식을 비판하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과 벗을 사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내면과 덕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덕선생전은 읽어야할 고전 중 하나이자 앞서 말했던 교훈을 집중으로 감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이 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엄행수라는 똥을 처리해서 먹고 사는 분뇨처리업자를 통해 드러냈을까? 이 질문에 독자들은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고전의 교훈에만 집중해 이 이야기의 이면을 못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 담긴 조선사람들의 실생활과 박지원의 의도에 집중해 감상문을 써보려 한다.

예덕선생전을 보면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다리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 오이, 수박, 호박등 농작물들이 나온다. 왕십리, 이태인(이태원)등 이런 지역들은 성저십리에 포함된 곳이다. 성저십리라는 것은 한성부의 외각 지역을 뜻한다. 이 소설을 통해 유추해보았을 때 이 지역은 한양 도성 내에 각종 채소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성저십리 지역은 근교농업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반면 한양성 내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서울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즉 수도,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한양성 내부에는 주로 양반과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도성 내부는 더 활발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성저십리 지역이 도성 내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게 되면서 상업적인 근교농업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근교농업이 성행하게 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비료의 중요성도 커져갔다. 예덕 선생전을 보면 엄행수라는 인물이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고 그것을 성저십리 지역에 팔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똥, 즉 비료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엄행수는 인분 외에도 닭똥, 개똥, 소똥 등 여러 가축의 똥도 수거한다. 그는 종본탑의 동쪽에 살았다 했는데 종본탑은 도성 내에 위치한 곳이다. 따라서 그가 도성 내 마을에서 얻은 똥을 근교농업지에 팔았으며 도성 내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비료를 만들어 팔아 해마다 6,000전이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것에서 거름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 당시 분뇨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직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지원 그가 엄행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제목을 예덕선생전이라고 한 것은 그 당시의 현실의 모습을 반영한 까닭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실학자로서 일반 민중들의 삶의 풍요와 생산의 발달을 지향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글을 통해 드러냈다. 따라서 그가 엄행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똥이라는 것이 농사를 짓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예덕선생전을 통해 실학적인 그의 생각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예덕(穢德)이라는 것은 더러울 예자와 덕 덕이라는 자를 사용해 더러운 것으로부터 덕을 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지원은 엄행수라는 인물을 통해 아무리 더러운 똥을 치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고전은 사실 문학적 가치에 집중하며 읽기보다는 문학이라는 하나의 과목이라는 틀 안에서 암기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고전을 문학 그 자체로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읽는 소설과 다름없이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고전문학을 꺼내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제목 : 합리적인 개인주의의 힘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특히 개인주의라는 단어에서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항상 개인주의자를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개인주의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집단주의 문화이며,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었을 때,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에게 부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회적인 나가 되려면 개인적인 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속에는 진정한 사회적 관계의 의미는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함께 들었다.

 집단(사회)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못하지 않음을 보이고 싶어 한다. 또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 하며, 싫은 것도 싫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행 쪽으로 더 얽매이게 하는 행동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자신(개인)의 의사나 감정, 취향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개인은 자신만의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고 자기 자신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본다. 이와 같이 자신이 얻게 되는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라면(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겨져야만 한다는 인식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자신의 의사, 감정, 취향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사, 감정, 취향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게 된다면, 이것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개인주의의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의사, 감정, 취향이 서로 존중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와 현세대는 각각의 세대를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며 그들의 의사, 감정, 취향을 싫어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 하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나 현세대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식이 달랐고, 서로가 속한 세대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 대부분은 자신만의 현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처음 생각한 개인주의의 의미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현재도 함께 생각해 보고 있는 어떤 누군가도 존재할 것이다. , 자기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현재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른 누군가의 상황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두터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합리적 개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짓눌렀던 자신의 마음을 또는 어느 누군가 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을 과시하느라고 짓밟았던 타인의 마음을 서로가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달래주며 더 건강하고 진실된 사회적 관계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장편소설,Central Park)

학창시절 내가 주로 읽었던 책의 작가이다.

저번주 주말에 알바하면서 간만에 이 작가의 책을 읽었다.

눈치가없는 탓일까.?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일수도 있지만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반전의 반전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

역시 기욤뮈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인 것(비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결말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나에게 비현실적인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몰입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책을 읽고나서 어린시절 읽고 나서의 그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겹쳐졌다.
학창시절 읽은 느낌, 지금의 느낌
아무래도 소설이지만 받아들이는데 전보다는 깊이가 있었다.
(성숙해졌음을 느꼈고 보는 안목도 생긴거 같아 내심 뿌듯했다.)

오랜만에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매우 추상적인 느낌도 회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변하지 않는 성격이 묻어나 있는 탓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에게는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닌 책을 통해 과거 회상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거의 1달에 걸쳐서 읽은 책이다.

두께도 어마어마하고 내용은 두께보다 더욱더 위대했다.

‘스티브 잡스’

솔직히 읽기 전에 위대한 인물들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지 의문투성이였다.
아이폰, 맥북 … 혁명을 일으킨 제품인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다른 중국의 마윈이나 테슬러 대표 등등 많은 혁명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많은데 그정도 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스티브 잡스가 일찍 사망해서인것 같다.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니깐 사람들은 없은 존재에 대해 더욱 열망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인것 같다. 
마치 예술가가 죽은 뒤 작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 처럼…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지 않는다는것은 아니다. 잡스는 분명 누구에게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를 앞서나가는 통찰력,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리더쉽. 
이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선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그의 대중적으로 드러난 부분 말고 다른 깊은 곳을 알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인성에 가끔 안좋은 인식을 갖고 있고, 나도 과거에 그랬지만 책을 통해 깊은 면을 들여다 보니 겉으로 비춰진 모습을 통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도 기업가 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내면속으로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사람들이 다들 읽기에 읽어본 책 이지만 뜻밖으로 많은 것을 얻어갔다

오만과 편견

글을 읽다 정말 마치 나에게 글쓴이가 충고해 주는 듯한 구절을 발견했다.
“세상의 눈들이 무서워서 사랑을하면서도 그 마음을 숨기는 것도 좋지만 그러가가 상대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거라고 오해하여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돌린다면 그 사랑을 다시 되돌리시엔 힘들거야.”
난 정말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누군가를 좋아할때 내 마음이 확실한지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질문하고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호감이 가도 마음을 숨기기에 바빴다. 이러면 상대방이 떠나갈것 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일단 나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기적인 생각이였다.
일단 내가 내 자신에게 그 사람이 좋은지 질문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이었다. 흠….이것을 진작에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래도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겠다.

책에서 베넷부인은 너무 답답했다. 왜 딸들의 인생인데 엄마가 관여해서 딸들의 인생을 결정하려고 하는지…. 
또한 마치 우리나라의 부모님들과 비슷한 면이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다. 자식의 인생.. 부모로써 적당한 조언과 충고는 필요하지만 부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식의 강요는 잘못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롯… 그녀는 기회가 오자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감정까지 내팽개쳐 버린 인물이다. 처음 글을 봤을때 샬롯의 태도에 대해 비난을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기회주의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한 현실, 처한 상황이라는 것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말은 이상적이니깐

창의성의 또다른 이름 트리즈 (TRIZ)

제작년 1학기 때 창의적 설계라는 수업을 통해 트리즈라는 것의 개념을 배우고 실질적으로 적용해 보는 활동도 했었다. 그때의 활동이 떠오르면서 트리즈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폈다.
이 책은 트리즈의 정의와 사례 등에 관하여 서술되어 있다.  

몇가지 팁이 있었다.
‘어떤 강력한 아이디어 이수록 간단한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았다. 이 아이디어를 도출해낸 근본적인 배경에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 있었다.’
생각의 틀.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제일 쉽기도 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인간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으니깐…

‘창조 = 창의 + 도전’ 새로운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도전이 합쳐질 때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BY 알츠슐러)
창조를 통해 실패를 하거나 성공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성공과 실패 그 어느것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만한 열정이 없었던 사람인 것 같다.(말로만 도전하지…)
하지만 알츠슐러의 말과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들은 나를 자극시켜 주었다.
“행동에 옮겨라.” 
실패를 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아직 젊기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말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극복한 사례는 정답은 아니지만 명답이다.” 명답 명쾌하다. 오히려 정답보다 의미있는게 명답이지 않을까? 싶다. 명답이라면 정답보다는 범위가 넓고 많은이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테니깐.

메모해 두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수업시간에도 배웠지만)
– 기술적 모순 : 40가지 발명의 원리
– 물리적 모순 : 분리의 원리

이 책은 트리즈의 정의와 사례들을 말해주지만 중간중간 트리즈라는 원리를 삶에도 대입시켜 보도록 해줬다.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해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아이디어 뿐만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게해주고 삶의 지혜도 알려주는 책 이였다. 
또한 같은 내용이 많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어보니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지루하지 않게 썼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부족했던 지난 학기의 강의를 완성한것 같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제목이 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폈다.
책을 폈을 때 책 속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연구와 스마트폰과 기계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실태에 관해 서술되어있었다. 

또한 책은 여러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파트마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을 통해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 인상적인 구절***
니체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

-> 뇌와 뇌를 통해 가능한 사고 변화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 사용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점을 작가는 얘기하고있다.
솔직히 나는 워드프로그램을 통해 정보를 입력하고 피피티를 이용하여 발표를 준비하는것 이것에 대해 단지 매우 간편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획득은 굳이 도서관에가서 어렵게 학술지를 찾아보지 않게해 주어서 세상이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정보입력과 검색에 대한 수용은 정말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지만 이것 또한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다.
(단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고 변화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사고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생각해 봐야겠다.)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서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유익하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책은 그 이상적인 매체 즉 더 싸고 빨리 많은 양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말은 책은 인터넷을 통해 책에관한 단순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 요약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문학작품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글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는 위대하고 글을 읽었을 때의 울림은 단순히 인터넷을 통해 파악한 줄거리를 보면서 느끼는 울림과는 비교도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글을 읽었을 때 단순히 책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읽은척 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변치않을 것 같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있다.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현대인의 사고 구조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뇌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 부분은 현재 인간의 뇌에 관한 글쓴이의 생각을 말한 부분이다. 나는 전에 가면갈수록 인간의 뇌는 발달하고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짧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사고하는 방식과 정보를 찾고 습득하는 방식이 바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현재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SNS을 이용하면서 기억을 저장하고 공유한다. 하지만 SNS는 1회성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깊이가 깊지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통해 잠깐 소통하지만 단지 그 시간에만 사용되는 것이고 다른사람들의 방대한 사진과 글이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잊혀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SNS에 올리는 목적이 단순히 성찰이라는 느낌보다는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SNS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 책을 읽음으로써 더욱 와닿았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존 컬킨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들이 우리를 만든다.’

인공지능.. 적당히 사용할 경우에 아무에게나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너무 치중하다보면 영화 HER과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날 것 같다. 적당히.. 적당히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진짜 좋을 것 같다.(적당히가 어렵겠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나 자신도 얼마나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느꼈다.
글쓴이가 말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기계에 의존해 점점 더 수동적이게 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제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설정한 것 같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평전 스티브잡스 VS 빌게이츠 (세상을 바꾸는 두 영웅의 도전과 성공)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처음 왜 다른인물들도 많은데 굳이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비교했을 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책을 폈다.

이 책은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의 생애 시절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모습이 경영, 인물, 도전, 열정이라는 4가지의 타이틀로 서술되어 있다. 먼저 경영적 측면 에서 CEO의 능력, 예견능력, 매니지먼트 능력, 인물의 측면에서는 성장환경, 인간성, 인재확보 능력에 관하여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도전의 측면에서는 신상품 개발능력, 협상능력, 라이벌 대응능력 마지막으로 열정의 측면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마케팅 능력, 업무에 몰두하는 힘이 서술되어있다. 이러한 과정을 읽어감에따라 작가가 왜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를 비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위대한 인물의 경우 비슷한 경영방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경영방식이 같은것이 아니라 경영에 관한 도전과 열정에 있어서 누구보다 앞서는 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였다.

이 둘의 자서전을 읽고나서 조금 두 인물에 관해 실망한 점이 있었다. 전에 마윈에 관한 자서전을 읽었을 땐 마윈의 인간적인 모습과 경영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에 감명받고 존경해야 될 인물이라고 마음속 깊숙히 생각했다면 이 둘은 인간적인 모습에 있어서는 마윈에 미음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둘의 성격은 사교적이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회사 직원의 작품을 빼앗기도 하고 회사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도 했다.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위해 다소 비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비록 직원들에게는 후한 대접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표했지만..
이러한 둘의 모습을 통해 이렇게 위대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런식으로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해야 되는것 인가?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은 사람들을 단지 부속품의 하나로 생각했던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 이지만 그래도 마윈처럼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경영을 할 순 없는것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했으면 안되는 것 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글쓴이는
‘경영은 원래 사람과 물자, 돈 등의 자산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회사를 얼마나 성장시키고 사회에 공헌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정의했다.

그래도…복잡한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한 그들… 또 어떻게 보면 가질 수 있는자를 이용했지만 다른 약자를 위해 공헌하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그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들이 과연 옳은 경영을 하고 존경받을 만한 경영을 했다고 마냥 칭찬만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또한 글 중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잡스가 투병하던 중 자신의 위독한 몸상태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이 부분을 글쓴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잡스 자신도 애플의 상품인 것이라고 했다. 잡스가 애플의 상품이라… 주객전도가 된 표현이다. 잡스 자신은 좋아서 한 일이고 그 일에 누구보다 더한 열정과 흥미를 갖고있었지만 너무 빠지는 바람에 자기 자신을 잃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애플은 가졌지만 많은것은 놓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이 둘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고 삶에 혁신을 일으킨 위대한 인물이지만 다른 자서전과는 달리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전에 ASD코리아 기업탐방을 했었을 때 대표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신 책이다. 또한 이 책을 여러번 추천받아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았다.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나 자신이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되는지 설명된 책 이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나는 위대한 기업으로 가기위한 과정으로 경영에 대한 방법 법칙 등을 기대했었는데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을 이룬 사람들은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의 기업이 완성될 수 있었다 했다. 
“버스에 적합한 사람들을 태우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거의 없고 단지 이해와 교훈을 찾으면 된다.” 적합한 사람들을 태우는 것. 이 책에서 제일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외활동에서 사람들은 대표님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하지만 주로 경영에 대한 부분, 아이디어에 대한 부분, 대표님의 목표에 대한 부분을 많이 질문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후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것 인가? 아니면 적합한 사람을 태우는 방법을 알아서 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합한 사람들을 태우는 방법을 잘 모르고 어떤 기준이 옳은지 정확히 모르기에 다음 방문에서는 대표님께 이러한 방법을 질문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사기가 꺾긴, 정말 현실적이게 깨닫는 부분이 있었다. 
“단지 우리가 그 일에 능숙하다고 해서 단지 우리가 그 일로 돈을 벌어 성장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그 일에 최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말이다. 곧 컴공과를 전공할 예정이고 창업을 연계전공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성적을 잘 받고 취업을 잘 한다해도 창업을 한해도 최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다. 솔직히 이런 말을 전문적이고 이상적이지 않은 냉철한 저자에게 들으니 사기가 많이 꺾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써 과거 약간은 이상적인 부분도 있던 나에게 현실적으로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여튼…그렇다.)

경영모델에 대한 이해와 통찰. 솔직히 아직 경영학에 대해 많이 부족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단어가 생소했다. 그리고 아직도 익숙하진 않다. 따라서 이 부분은 공부를 더 해봐야 되는 부분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방법 뿐만아니라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한 대표의 태도 또한 말해줬다. 
“진실은 조용하게, 스스로 말을 하는 법이다.”
겸손하라는 말이다. 겸손하지 않고 과시하기에 바쁜 사람들을 보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실증이 많이 났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감정이 이입되고 겸손한 사람이 성공했음 좋겠다라는 바램도 섞여서 이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정도로 몰입도가 높았고 내용을 정말 냉철하게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신뢰도있게 썼다.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이유를 알았다. 또한 기본적으로 경영학에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단순히 경영학만을 강조하지 않고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는 포괄적인 측면에서 서술하였다. 따라서 단순히 경영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아닌 대학생이라면 읽어봐야 될 책으로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지난 학기에 경영학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한 학기동안의 수업보다는 이 책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큰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인문학에 관련된 강의는 교수님의 주관적인 생각을 무의식중으로 강요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이성과 감성으로 과학과 예술을 통섭하다)

동생의 필독서 목록에 미술관에 간 화학자라는 책이 있는것을 보았다.
어릴적 꿈이 화가였고 공학도의 길을 걷고있는 작가와 나는 비숫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공대교수이면서 미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미술책보다 내가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갖고 책을 폈다.

이 책은 여러 화가들의 삶과 미술속 재료들에 관해 쓰여있다. 그 중 인상깊었던 구절과 부분이 있었다.

먼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부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작품을 통해 후대의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주었고 사람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한건 알고있었지만 또 한번 피부로 위대한 천재라는 사실을 느꼈고 왠지 소름이 돋았다. 

작가는 관람자가 펴는 상상의 너비와 깊이가 크면 클수록 더 위대한 명화라고 했다.
다빈치의 작품을 통해서 다빈치의 작품이 왜 명화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이 명화고 위대하다라는 기준 이 기준이 과연 옳은 것 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그냥 작품 그 자체로써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작품을 과연 값어치를 매길 수 있을까? 단지 돈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라 높은 값어치를 매겨서 값이 나가는것이 아닐까? 그래서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후대에게 물음표를 남겨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그렸는데 사람들의 생각대로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또 아직은 미술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든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술에 관한 작품이나 책을 더 읽어보고 싶고, 읽을 것이다.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은 혁명에 이용된 다비드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깨달음을 적은 구절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인류에게 오히려 해가될 수 있으며, 얼마나 잔혹한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뭔가 사랑, 정의 이 두가지가 합쳐졌다는게 신기해서인가?! 아님 사랑에 관한 나만의 정의를 지어봐서 그런가?! 그냥 이유없이 좋은 구절이다.

‘쇠라의 정지는 밝고 화려한 붓으로 쓴 한편의 시다.’ 그림을 통한 시라… 되게 생소한 표현이였지만 와닿았다. 예술이란…… 울림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었다. 보슈의 쾌락의 동산이라는 작품이다. 보슈의 그림은 추상적이게 그렸지만 알고보면 되게 구체화 된 그림이다. 그림의 조각은 부분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그 조각을 맞추면 중요한 본질을 알려준다. 본질은 인간에 대한 본질인데 내가 요즘 사람에 관한 것을 많이 생각해서 인지 이 그림이 되게 끌렸다. 직접 가서 보면서 나만의 조각으로 맞춰보고 싶다.

보티첼리의 비너스 작품을 보고 작가가 쓴 구절은 아름다웠다. 
‘ 이 그림은 수많은 변증법적 철학을 담고 있다. 순결이 대립되는 쾌락과 만나 아름다움이 되고, 대지가 봄바람을 맞아 꽃이 피는 봄이 되고, 신성과 인성이 만나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처럼 성화한 비너스가 되고, 하늘과 대지가 만나 진리가 완성된다. 마치 가설과 반증을 조화시켜 결론을 이끄는 과학을 닮았다.’
이 구절을 읽고 과학과 미술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감탄스럽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봄, 비너스, 진리의 또 다른의미를 느꼈다. 이 구절은 아무리 계속 읽어도 여운이 남는다.

대부분의 옛날 미술가(특히 고흐와 고갱)들은 삶을 마감한 후 작품의 가치가 생존했을 때보다 더욱더 높이 평가됐다.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작가 살아있었을 때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삶을 마감한 후에 더욱더 높게 평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으로만 작가의 삶의 가치와 작품을 보답한다는 것은 한없이 부족한 것 같다. 흠.. 너무 슬프다.

이 책은 미술작품의 재료나 표현기법을 통해 화학적인 부분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다. 하지만 완전히 화학적으로 작품을 해석하지 않았고 주된 내용이 화학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과학적인 부분이 많이 언급돼서 화학을 통한 미술작품의 이해 혹은 화학과 관련된 것을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겨줄 수 있는 책 인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미술관에 간 화학자라는 이름보다는 과학적인 측면이 많아 미술관에 간 과학자라는 이름이 더 나을 것 같다.
책을 통해서 많은 미술작품을 화가들의 삶, 시대적인 배경, 추구하는 가치들을 알게 돼서 의미있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과학과 예술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둘은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합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책의 내용이 아닌 이 부분을 통해 내 마음 속 깊은곳에 숨어있는 미술을 하고싶다는 마음을 끌어 올려주었다. 나도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