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시키는 일 (꿈과 행복을 완성시켜주는 마음의 명령)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질 때 대부분의 사람이 답하는 행복”. 크게 놀랍지가 않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거니와 이미 꽤나 많이도 들었던 질문이고 대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다.’라는 지식이 아니고, 이러한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얻는 지혜인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지식을 가진 사람 중 이를 실천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구나 자신만의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다. 이를 알며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이를 아직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사람들 중 전자는 이를 무시하려는, 후자는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소위 공무원 시대’. 공무원 경쟁률이 거의 100 : 1에 가까운 수준이다. 청년들은 왜 공무원에 달려드는가. 그들의 꿈은 모두 공무원인가? 물론 국가에 헌신하는 것이 정말로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가슴에서 우러나와 이를 선택하는 소수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이유 대부분은 불안정한 사회 속 직업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직무 후 개인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퇴직 후 연금이 제공되기 때문에’. 이들은 과연 공무원 합격 후의 전반적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까? 일부는 그럴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8시간 잠을 자고, 8시간 개인시간을 갖고, 8시간 일을 한다. 인생의 1/3이 일을 하는 시간인데 이 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수면시간을 제외하고서는 이미 절반짜리 인생이 아닌가.

 

 ‘가슴이 시키는 일이 책은 이와 같은 독자들에게 행복을 실천하는 지혜를 전달한다. 이성이 아닌 감성, 머리가 아닌 가슴, 이로 인한 행복. 책 안에는 각자 자신들의 가슴이 시키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성공하여 행복을 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실패 속에도, 악조건 속에도 가슴이 하는 말, , 꿈을 좇으며 끊임없이 노력하여 목표를 달성한 그들. 가슴이 시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를 때마다 오는 기쁨이 있기에 실패 속에서도 행복해하는 그들.

  이 책을 접하고, 가슴이 하는 말을 따른 사람들의 삶을 접하고, 그들이 느낀 행복을 접하고. 내게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일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이 질문 속에서 스스로 나는 ‘NO’라는 답변에 주저하지 않았다. 내 꿈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나 역시 지식만 있을 뿐 지혜는 없었던 것이었다.

 

  지식조차 없었던 그 옛날의 나에서 이 책을 접하기 전의 나까지.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좀 더 지혜로워지고자 한다. 행복을 알고만 있던 에서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로서 말이다.

 

  이 책은 행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고 작가의 생각을 일반화하여 서술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까이 있는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가슴 뛰는 삶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서서히 꿈의 의미, 행복의 의미를 찾게끔 만들고, 행복의 지식이 아닌, 행복을 실천하는 지혜를 느끼게끔 할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작가의 말이 생생히 들린다. 행복이란 머리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쥐어야 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즐겁다 (합본,흐릿하지만 섬세했던 유년의 기억)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기 전,
가볍게 읽으면 힐링이 되는 책 
책을 좋아하는 여덟 살 아이인 ‘다이’와 친구들의 일상을 그려낸 책.
다이와 친구들의 삶은 우리와 완전히 같진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유년 시절은 분명 우리의 유년 시절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지금의 저는 유년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좁은 동네에서 친구네 집에 매일 놀러 가던 모습, 짝사랑하던 모습, 소풍 갔던 일, 어린 마음에 문방구에서 군것질을 훔쳤던 친구들, 친구와 우리만의 아지트 만들기, 인사도 못 하고 이사 가버린 친구들, 반장 선거하던 모습, 같이 앉는 짝궁을 정하던 일과 같이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다이의 어머니는 병으로 입원해 계시고, 아버지는 그런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무뚝뚝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이는 다정하고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한 아이로 자랍니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머니의 병세 변화가 오고 그런 변화에서 아버지는 상황에 맞춰 다이를 위해 또 변하게 되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본 아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고 이뻤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 중에서도 그 땐 몰랐지만, 지금 어른이 되고 보이는 아이들의 상처들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그려내면서도, 예리하게 그런 상처의 순간들을 포착해 표현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그 시절, 나와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하고 나아가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풍경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인체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도가 ‘해부도’라고 한다면, 
심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도는 책 ‘사람 풍경’ 있다
감정을 억누르고, 대학만 보며 달려온 우리. 대학 입학에 성공한 스무살 청춘들. 그런데 이젠 일이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만은 않습니다. 친구 관계도 삐꺽댑니다.
스무살 이후 살다보니 가끔 ‘내 마음이 왜이러지?’ 같은 물음이나 머리로 현상은 이해하는데 가슴이 답답한 경험을 가져 본 독자라면 공감하고 치유가 되는 책이 될겁니다.

저자는 사람 몸이 아프면 해부도를 보며 아픈 곳을 분석하듯, 정신이 아프면 볼 해부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것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심리 에세이는 여행 또는 일상 이야기에서 얻은 깊은 통찰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저자의 외국 여행 이야기와 맞물려 여러 감정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책의 부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자면, 첫 번째 부분은 인간이 태어나서 갖게 되는 기본적인 감정. 두 번째 부분은 그 감정들을 다루는 방법. 세 번째 부분은 성인이 된 후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긍정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루는 것을 쭉 나열 해 보자면 무의식,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투사, 분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자기애, 자지 존중, 몸 사랑, 에로스, 뻔뻔함,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 변화, 자기 실현 입니다.
우리가 아는 단어도 있고, 조금 감이 안 오는 단어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아는 단어, 감정이라고 해서 우리가 다 아는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은 더욱 자세히 알게 되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저도 모르게 작용되던 것들도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게다가 가을겨울). 사실은 감정에 휘둘리는 과정은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빠르게 훅 지나가죠. 그래서 지나고 나서도 ‘조금 찝찝하네’라고 생각만 하고 넘어가거나 뒤 늦게 그 때 그 감정을 똑디 인식하게되어 반성하고 다음엔 더 나은 결정을 할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이 그것을 도와줄겁니다!
끝으로 저는 책을 다 읽고, 제일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이 부분이었던거 같습니다.

‘자기 마음에 고요히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 수 있다.’ 인간의 부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모두 그러하다는 자각과,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예덕선생전

예덕선생전에서 찾아보는 조선사람들의 모습

예덕선생전은 연암 박지원 선생의 소설 중 하나이다. 그는 실학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실학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만큼 그의 소설은 이용후생을 지향하는 성향과 그 당시 성리학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예덕선생전또한 양반의 허위허식을 비판하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과 벗을 사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내면과 덕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덕선생전은 읽어야할 고전 중 하나이자 앞서 말했던 교훈을 집중으로 감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이 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엄행수라는 똥을 처리해서 먹고 사는 분뇨처리업자를 통해 드러냈을까? 이 질문에 독자들은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고전의 교훈에만 집중해 이 이야기의 이면을 못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 담긴 조선사람들의 실생활과 박지원의 의도에 집중해 감상문을 써보려 한다.

예덕선생전을 보면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다리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 오이, 수박, 호박등 농작물들이 나온다. 왕십리, 이태인(이태원)등 이런 지역들은 성저십리에 포함된 곳이다. 성저십리라는 것은 한성부의 외각 지역을 뜻한다. 이 소설을 통해 유추해보았을 때 이 지역은 한양 도성 내에 각종 채소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성저십리 지역은 근교농업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반면 한양성 내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서울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즉 수도,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한양성 내부에는 주로 양반과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도성 내부는 더 활발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성저십리 지역이 도성 내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게 되면서 상업적인 근교농업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근교농업이 성행하게 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비료의 중요성도 커져갔다. 예덕 선생전을 보면 엄행수라는 인물이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고 그것을 성저십리 지역에 팔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똥, 즉 비료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엄행수는 인분 외에도 닭똥, 개똥, 소똥 등 여러 가축의 똥도 수거한다. 그는 종본탑의 동쪽에 살았다 했는데 종본탑은 도성 내에 위치한 곳이다. 따라서 그가 도성 내 마을에서 얻은 똥을 근교농업지에 팔았으며 도성 내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비료를 만들어 팔아 해마다 6,000전이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것에서 거름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 당시 분뇨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직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지원 그가 엄행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제목을 예덕선생전이라고 한 것은 그 당시의 현실의 모습을 반영한 까닭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실학자로서 일반 민중들의 삶의 풍요와 생산의 발달을 지향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글을 통해 드러냈다. 따라서 그가 엄행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똥이라는 것이 농사를 짓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예덕선생전을 통해 실학적인 그의 생각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예덕(穢德)이라는 것은 더러울 예자와 덕 덕이라는 자를 사용해 더러운 것으로부터 덕을 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지원은 엄행수라는 인물을 통해 아무리 더러운 똥을 치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고전은 사실 문학적 가치에 집중하며 읽기보다는 문학이라는 하나의 과목이라는 틀 안에서 암기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고전을 문학 그 자체로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읽는 소설과 다름없이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고전문학을 꺼내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제목 : 합리적인 개인주의의 힘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특히 개인주의라는 단어에서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항상 개인주의자를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개인주의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집단주의 문화이며,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었을 때,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에게 부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회적인 나가 되려면 개인적인 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속에는 진정한 사회적 관계의 의미는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함께 들었다.

 집단(사회)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못하지 않음을 보이고 싶어 한다. 또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 하며, 싫은 것도 싫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행 쪽으로 더 얽매이게 하는 행동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자신(개인)의 의사나 감정, 취향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개인은 자신만의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고 자기 자신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본다. 이와 같이 자신이 얻게 되는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라면(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겨져야만 한다는 인식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자신의 의사, 감정, 취향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사, 감정, 취향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게 된다면, 이것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개인주의의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의사, 감정, 취향이 서로 존중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와 현세대는 각각의 세대를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며 그들의 의사, 감정, 취향을 싫어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 하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나 현세대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식이 달랐고, 서로가 속한 세대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 대부분은 자신만의 현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처음 생각한 개인주의의 의미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현재도 함께 생각해 보고 있는 어떤 누군가도 존재할 것이다. , 자기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현재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른 누군가의 상황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두터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합리적 개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짓눌렀던 자신의 마음을 또는 어느 누군가 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을 과시하느라고 짓밟았던 타인의 마음을 서로가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달래주며 더 건강하고 진실된 사회적 관계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장편소설,Central Park)

학창시절 내가 주로 읽었던 책의 작가이다.

저번주 주말에 알바하면서 간만에 이 작가의 책을 읽었다.

눈치가없는 탓일까.?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일수도 있지만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반전의 반전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

역시 기욤뮈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인 것(비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결말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나에게 비현실적인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몰입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책을 읽고나서 어린시절 읽고 나서의 그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겹쳐졌다.
학창시절 읽은 느낌, 지금의 느낌
아무래도 소설이지만 받아들이는데 전보다는 깊이가 있었다.
(성숙해졌음을 느꼈고 보는 안목도 생긴거 같아 내심 뿌듯했다.)

오랜만에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매우 추상적인 느낌도 회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변하지 않는 성격이 묻어나 있는 탓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에게는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닌 책을 통해 과거 회상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거의 1달에 걸쳐서 읽은 책이다.

두께도 어마어마하고 내용은 두께보다 더욱더 위대했다.

‘스티브 잡스’

솔직히 읽기 전에 위대한 인물들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지 의문투성이였다.
아이폰, 맥북 … 혁명을 일으킨 제품인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다른 중국의 마윈이나 테슬러 대표 등등 많은 혁명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많은데 그정도 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스티브 잡스가 일찍 사망해서인것 같다.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니깐 사람들은 없은 존재에 대해 더욱 열망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인것 같다. 
마치 예술가가 죽은 뒤 작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 처럼…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지 않는다는것은 아니다. 잡스는 분명 누구에게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를 앞서나가는 통찰력,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리더쉽. 
이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선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그의 대중적으로 드러난 부분 말고 다른 깊은 곳을 알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인성에 가끔 안좋은 인식을 갖고 있고, 나도 과거에 그랬지만 책을 통해 깊은 면을 들여다 보니 겉으로 비춰진 모습을 통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도 기업가 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내면속으로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사람들이 다들 읽기에 읽어본 책 이지만 뜻밖으로 많은 것을 얻어갔다

오만과 편견

글을 읽다 정말 마치 나에게 글쓴이가 충고해 주는 듯한 구절을 발견했다.
“세상의 눈들이 무서워서 사랑을하면서도 그 마음을 숨기는 것도 좋지만 그러가가 상대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거라고 오해하여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돌린다면 그 사랑을 다시 되돌리시엔 힘들거야.”
난 정말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누군가를 좋아할때 내 마음이 확실한지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질문하고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호감이 가도 마음을 숨기기에 바빴다. 이러면 상대방이 떠나갈것 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일단 나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기적인 생각이였다.
일단 내가 내 자신에게 그 사람이 좋은지 질문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이었다. 흠….이것을 진작에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래도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겠다.

책에서 베넷부인은 너무 답답했다. 왜 딸들의 인생인데 엄마가 관여해서 딸들의 인생을 결정하려고 하는지…. 
또한 마치 우리나라의 부모님들과 비슷한 면이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다. 자식의 인생.. 부모로써 적당한 조언과 충고는 필요하지만 부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식의 강요는 잘못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롯… 그녀는 기회가 오자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감정까지 내팽개쳐 버린 인물이다. 처음 글을 봤을때 샬롯의 태도에 대해 비난을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기회주의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한 현실, 처한 상황이라는 것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말은 이상적이니깐

창의성의 또다른 이름 트리즈 (TRIZ)

제작년 1학기 때 창의적 설계라는 수업을 통해 트리즈라는 것의 개념을 배우고 실질적으로 적용해 보는 활동도 했었다. 그때의 활동이 떠오르면서 트리즈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폈다.
이 책은 트리즈의 정의와 사례 등에 관하여 서술되어 있다.  

몇가지 팁이 있었다.
‘어떤 강력한 아이디어 이수록 간단한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았다. 이 아이디어를 도출해낸 근본적인 배경에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 있었다.’
생각의 틀.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제일 쉽기도 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인간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으니깐…

‘창조 = 창의 + 도전’ 새로운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도전이 합쳐질 때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BY 알츠슐러)
창조를 통해 실패를 하거나 성공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성공과 실패 그 어느것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만한 열정이 없었던 사람인 것 같다.(말로만 도전하지…)
하지만 알츠슐러의 말과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들은 나를 자극시켜 주었다.
“행동에 옮겨라.” 
실패를 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아직 젊기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말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극복한 사례는 정답은 아니지만 명답이다.” 명답 명쾌하다. 오히려 정답보다 의미있는게 명답이지 않을까? 싶다. 명답이라면 정답보다는 범위가 넓고 많은이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테니깐.

메모해 두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수업시간에도 배웠지만)
– 기술적 모순 : 40가지 발명의 원리
– 물리적 모순 : 분리의 원리

이 책은 트리즈의 정의와 사례들을 말해주지만 중간중간 트리즈라는 원리를 삶에도 대입시켜 보도록 해줬다.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해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아이디어 뿐만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게해주고 삶의 지혜도 알려주는 책 이였다. 
또한 같은 내용이 많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어보니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지루하지 않게 썼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부족했던 지난 학기의 강의를 완성한것 같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제목이 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폈다.
책을 폈을 때 책 속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연구와 스마트폰과 기계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실태에 관해 서술되어있었다. 

또한 책은 여러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파트마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을 통해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 인상적인 구절***
니체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

-> 뇌와 뇌를 통해 가능한 사고 변화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 사용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점을 작가는 얘기하고있다.
솔직히 나는 워드프로그램을 통해 정보를 입력하고 피피티를 이용하여 발표를 준비하는것 이것에 대해 단지 매우 간편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획득은 굳이 도서관에가서 어렵게 학술지를 찾아보지 않게해 주어서 세상이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정보입력과 검색에 대한 수용은 정말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지만 이것 또한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다.
(단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고 변화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사고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생각해 봐야겠다.)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서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유익하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책은 그 이상적인 매체 즉 더 싸고 빨리 많은 양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말은 책은 인터넷을 통해 책에관한 단순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 요약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문학작품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글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는 위대하고 글을 읽었을 때의 울림은 단순히 인터넷을 통해 파악한 줄거리를 보면서 느끼는 울림과는 비교도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글을 읽었을 때 단순히 책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읽은척 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변치않을 것 같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있다.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현대인의 사고 구조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뇌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 부분은 현재 인간의 뇌에 관한 글쓴이의 생각을 말한 부분이다. 나는 전에 가면갈수록 인간의 뇌는 발달하고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짧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사고하는 방식과 정보를 찾고 습득하는 방식이 바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현재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SNS을 이용하면서 기억을 저장하고 공유한다. 하지만 SNS는 1회성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깊이가 깊지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통해 잠깐 소통하지만 단지 그 시간에만 사용되는 것이고 다른사람들의 방대한 사진과 글이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잊혀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SNS에 올리는 목적이 단순히 성찰이라는 느낌보다는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SNS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 책을 읽음으로써 더욱 와닿았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존 컬킨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들이 우리를 만든다.’

인공지능.. 적당히 사용할 경우에 아무에게나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너무 치중하다보면 영화 HER과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날 것 같다. 적당히.. 적당히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진짜 좋을 것 같다.(적당히가 어렵겠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나 자신도 얼마나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느꼈다.
글쓴이가 말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기계에 의존해 점점 더 수동적이게 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제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설정한 것 같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