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월 1일, 칠레의 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한 ‘인민전선’이라는 동맹이 101가지 행동 강령을 발표했다. 그중 제1항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할 경우,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칠레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많은 아이들의 영양실조였다. 1970년 9월 드디어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36.5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칠레 내부에서는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아옌데는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가 필요했다.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게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고 제값을 주고 사려고 했다. 그러나 1971년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 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다.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을 선택하고,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네슬레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고 수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이 이 정도까지 커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자신만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문뜩 네슬레 회사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네슬레 회사의 사장이라면 어땠을까? 네슬레가 칠레 민주 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한 이유를 두 가지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시대적 상황이다. 저 시점은 냉전시대이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미국과 소련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서구에 본사가 있는 네슬레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옌데는 공산주의를 채택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그들의 연결고리를 막은 것이다. 두 번째는 네슬레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아옌데의 공약은 네슬레에게 오히려 불안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 정책은 시간이 지나 안정화가 된다면 네슬레의 독점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네슬레 말고 다른 다국적 기업들의 분유 시장 개입 허용, 독점에 대한 강력 규제, 자국 분유 기업 격려 정책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네슬레는 미래에 자신들이 지금의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칠레에 대한 협력을 거부한 것이다.
물론 네슬레가 협력을 거부함으로 인해 수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얼핏 보면 한 사람의, 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것처럼 보인다. 협력을 거부한 두 번째 이유 또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네슬레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한 것이다. 네슬레가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 당시에는 없었던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있는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결국 우리는 네슬레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현재에 우리의 판단들이 이데올로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단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기아, 빈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판단, 선택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