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15,은희경 장편소설)

  냉소와 집착사이  어딘가
  
  최근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참 일희일비하지 않는거 같아, 좋은 일이 생기든 안좋은 일이 생기든지 항상 똑같애. “예전부터 종종 듣는 이야기라 어떠한 새로운 느낌도 없었다. 나 역시 스스로 냉소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삶에 대하여. 모든 것엔 이유가 있듯이, 나의 이런 성향 역시 여러 일들을 겪으며 형성되었다. 딱딱한 연필을 잡을때마다 아프던 중지 손가락에 이내 굳은 살이 생겨,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에 내성이 생겼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일이 생기면 이 다음은 안좋은 일이 생길 차례인것만 같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못했다. 물론 이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들킨다면 그들에게 연민을 사겠지만, 사실 난 이 점에 대하여  나름 자랑스러워했다.  삶 속 대부분의 내용들을 통찰할 수 있는 것만 같고,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한 것 같다는 점에서.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진희가 한 말이다. 진희 역시 삶에 있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 12살짜리 초등학생인 진희는 본인을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나누고,  자신에게 생기는 일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다. 42살의 어른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나는 그 사람을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진희는 고작 12살이다.  물론 나도 고작 22살이지만.  우리는 고통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며 객관화 시키고, 아픔을 실수한 편지지처럼 구겨 그저 마음 속 휴지통에 모아 놓는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기면 그 기쁨 속으로 들어가 흠뻑 즐기는 것 대신, 한 발짝 떨어져 기쁨과 나란히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다. 뭐랄까 삶을 영화라고 한다면, 내가 그 영화의 연출, 각색, 촬영, 의상 등에 모두 관여했지만 배우는 다른, 나의 삶이라는 영화에서 다른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것을 그저 카메라를 통해 바라만보는 느낌이다. 고통의 순간이 오면 감독인 내가 아닌 저 배우가 겪고, 기쁨의 순간 역시 저 배우가 만끽한다.
   
   여기서 한가지 의심가는 것이 있다. 과연 정말 나는 냉소적인 것인가, 아니면 냉소적으로 보이는 것인가. 솔직히 절대 뚫리지 않을 것만 같던 철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문풍지로 만들어진 문이었던 것처럼 가끔씩 내 안에서 쉽게 구멍이 생기는 것을 봤다. 쏟고싶어도 답답할정도로 나오지 않던 눈물이 부끄럽게도 예상치못한 공간, 시간에 나오기도 하였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꼴보기 싫을정도로 들뜬 적도 있었다. 즉  남들의 눈 앞에서는 냉소적으로 보였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삶에 딱 달라붙어 집착하는 모습을  봤다. 아무래도 나는 이 삶이라는 영화의 감독이라기보다,  이 영화에서  ‘영화 감독’ 역할을 맡은  주인공인 것 같다.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간계로도 고통과 슬픔을 피해 갈 수 없고,  만일 성장이 순수가 오욕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에 익숙해지고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성장을 완료할 수 없다. 살아 있는 한 어떤 비참 뒤에도 또 다시 찾아오는 희미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따위는 없다.’
 

    결국 삶에 대한 냉소는 삶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 같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사랑에 냉소한 편이다. 나는 나를 던질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걸 두려워한다. 나는 상대에게 나를 던져도 상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설령 서로가 서로에게 푹 빠지더라도 언젠가 만나게 될 이별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랑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태도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누군가 나무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얼마나 달콤한지 알고 싶어 도서실에서 무작정 ‘사랑’을 쳐보았다.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에 눈이 갔다. 제목이 파격적이기도 했고, 저자가 이렇게 파격적인 제목을 붙인만큼 안에 내용 역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리라 기대했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밎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책에서 가장 먼저 나온 글은 역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전혀 달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비관적이었다. 글을 읽다보니까  어디선가 읽은 경험이 있는 듯,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지나가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처럼 잠깐 스치는 곳에서 봤으리라 짐작해본다. 나라면 그 당시에도 저 문장을 보면서 격하게 공감하는 한편, 격하게 부정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느끼는 행복을 느껴본 적 없기에 지금 감정에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행복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내내 가시지를 않았다.
 처음에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작가는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렇게 달콤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풀어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작가 자신조차 그것이 실수였음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데, 나는 여기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나는 이러했다, 이걸 읽는 그대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나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삶의 양분이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라는 작가의 메세지가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여전히 사랑에 대해 설레거나 낭만적인 느낌은 들지 않지만, 적어도 사랑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원조이고, 가장 깊고 일목요연하게 풀어낸 해설서이다. 기독교에서 교리라 함은 성경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단기간에 명확히 알기에는 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기독교 교부들이 힘을 합쳐 정리해 놓은 기독교의 핵심되고, 중요한 가르침을 말한다. 또 교리를 작성한 다른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균형없이 개인의 사리사욕에 맞춰 해석하는 이단과 당시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구분하고, 또 지키기 위해서 발행했다. 이 교리를 펴내고 유지하기 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다. 필자 우르시누스는 이 교리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통해 도출해 냈고, 이 교리가 간단히 설명하지만, 성경 전체의 유기적 구조 안에서 한 문답 마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해설한다. 인간의 참된 위로는 하나님과 성자라고 가르치며,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 비참한 중에 큰 좋은 소식이 있음을 시작으로 요리문답을 시작한다. 문답은 기독교에 대한 교리를 질문과 대답을 통해 현장감 있게 가르치기도 한다. 이 책은 처음 혼자서 공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공부해 나간다면 정말 좋은 시간이 될 것이고, 현대의 기독교의 위치도 알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을 공부하는데 어려움과 시간이 많이 들지라도, 탄탄하고, 견고한 신앙을 위해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기독교강요 상 (1559년 최종판)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당시 칼빈이 카톨릭과 이단의 핍박과 바른가르침을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 사도바울, 초대교부들의 견고한 교리를 유지하기에 힘쓴 흔적이 보인다. 기독교 교리의 진수라고 불리는 이 책은 성경과 함께 같이 공부하기에 필수적이다. 탁월하고 깊은 학문을 연구한 칼빈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가르치고자 쉽게 풀어썼다. 칼빈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 위에서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알기에 힘쓰되, 인간의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의 영역은 그대로 믿음안에서 보존해야함을 경고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속성과 공유하시는 속성을 성경 안에서 가르치며, 성경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가르침을 설명한다. 인간의 원죄를 전제하기에 본인보다 성경이 인간과 개인을 더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당시 루터교와 카톨릭과 상치된 교리에 대해서도 성경에 근거하여 반박하여 성찬의 교리를 풀어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한 아주 중요한 책이다. 성경 다음으로 기독교에 대해 바르게 알고싶다면 많은 책중에 이책을 권하고 싶다.

인형의 집 (세계문학전집 248)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주인공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종달새’, ‘나의 부인’이라는 식으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꽤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서로의 애칭인데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일어내려갔다. 이 책을 덮을 때, 그런 점이 작가가 지적하고 자 하는 요소였다는 것을 깨닫고 살짝 놀라웠다.
 인형의 집은 187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1879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강화도 조약을 맺으며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개항하는데 허덕이던 국가였다. 이런 곳에서 여성의 인권은 논외 대상이었다. 유교 사회의 특성상 여성은 남성에 비해 등한시 된 점도 있지만, 여성 인권외에도 굵직한 사건을 수습하느라 여성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전한 다른 서양 국가에서는 정치와 외교과 어느 정도 안정화를 찾았고, 여성의 인권에도 눈길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역사책으로만 읽었을 때는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 당시를 살았던 작가가 쓴 작품을 접하니 확 와닿았다. 작품의 주인공처럼 남성들은 여성을 소유물로 느꼈고,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치, 법, 외교등에 여성을 억지로 껴맞췄다. 그렇게 억지로 맞춰진 여성은 처음에는 남성의 기준에 맞추고자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강해지게 된 것이다.
 2세기 정도 늦은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여성의 인권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특별하게 지칭한다. 하지만 명칭이 새롭게 생겼을 뿐이지,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논쟁은 과거부터 있었음을 본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본질이고, 지향해야 하는 점이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페미니즘 운동이 긍정적이라는 의견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까지 쓰기 시작하면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이 점에 대한 의견은 생략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요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을 소비하는 태도이다. 남자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이런 것이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서본다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성들이 누리는 혜택도 있다. 가령 어떤 곳에서 여성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준점을 낮춘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여성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서 이해해줘야 하는 ‘여린 존재’로 여기는 태도가 기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기존에 누리고 있던 혜택을 최대한 내려놓으면서, 남성이 여성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지위의 사람으로 여기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즘이고, 현 대한민국의 숙제이며, 2세기 전 서양에서 한차례 겪었던 사건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은 일종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먼저 이런 현상을 겪은 서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스트와 섹시스트(비교적 차별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와 페미니스트 내의 비판적 목소리를 통해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회색 인간

  학교 학술정보관에서 주최한 독서 프로그램인 ‘비경쟁 독서토론’에 참여하기 한 후 책에 독서토론의 준비를 위해 책 ‘회색인간’을 읽게 되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책 겉표지와 책의 이름 등 만 보고 막연하게 늑대인간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회색인간은 총 2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 단편 소설집이다. 각 단편들은 미래나 우주, 외계인, 괴물 등 상상속에서만 등장할 법한 이야기 소재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소재들이 등장하여 벌어지는 소설 내용 또한 자극적이고 극적인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주어  책 속에서 나오는 상황들은 허구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상황들이 왠지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비경쟁 독서토론’은 토론 진행자 한 분에 8~10명정도의 조를 이루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원래 토론이라고 하면 딱딱한 분위기에서 경쟁적으로 상대방과 나의 의견을 내가며 팽팽한 기류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된 비경쟁 독서토론은 이야기에 주제에 대한 작은 생각부터 큰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진행자 선생님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셨다. 다음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

회색 인간

도서관에서 비경쟁 독서토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토론을 하면 사람들끼리 공격하고 경쟁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해 되도록이면 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비경쟁이어서 어떻게 비경쟁으로 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신청을 했던것 같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고자하는 책은 김동식 작가님의 ‘회색인간’이라는 책이었다.  내가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어서 책을 받고 하루 이틀은 그냥 집 한 구석에 놔두었다. 책을 받고 삼일째 되던날에 집에서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어봤는데 단편으로 된 내용이 여러편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첫 장의 회색인간 부터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인간이 바닥까지 떨어지면 어떠한 일이 펼쳐질까 하는…대부분의 책의 주제가 이런 식이었다. 보통 나는 책을 읽을때 내 기준에서 조금만 길어진다 싶어지면 어느순간 내용을 안보고 글만 읽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회색인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는 한번도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 없이 술술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가장 감명깊게 본 단편은  인간들이 동굴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때 , 또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444번 채널의 방송으로 보여주었을때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게 들어왔다. 맨 처음에 동굴에서 사람들은 여기가 어딘지, 나가는 방법도 모른다. 심지어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하루빨리 나가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나갈 방법을 강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각자 편을 나눠 서게 되고, 인간의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자, 식인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게된다. 이러한 모습을 필터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니, 바깥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444번으로 고정된다. 모든 이야기의 이슈가 444번 채널의 이야기로 집중되며, 동굴 안의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이 된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죽여, 결국 마지막에 한명의 생존자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반전으로 그 사람이 카메라를 향해 응시하며 채널이 꺼진다. 마치 원래부터 카메라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러한 반전으로 끝이 난 444번 채널은 여운이 조금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까마득히 잊혀지게 된다. 이것을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하나는 인간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의 모습을 보고 나도 과연 저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살면서 동굴에 안갇힐거라는 보장은 없다. 과연 나도 동굴에 갇혔을 때 식인을 하면서까지 살려고 했을까.. 그거는 그때의 상황에 맡기고 싶다. 두번째는 바깥 사람들의 태도가 딱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떠한 것 하나에 꽂혀 엄청나게 열광하지만, 그게 끝이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지금 우리도 그렇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때 상업적으로 활용해도 잘 풀리고, 그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광고를 하면 더 이익이 있지만, 철 지난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그닥 많이 있지 않다. 그저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지.. 재밌었는데..’ 이러한 정도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프로그램에 참석하니, 내가 하고싶었던 말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 생각했던 것을 비교해보며 한 가지의 주제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비경쟁 독서토론이라 반박, 반대는 전혀 없고, 당신은 생각은 이러한데 나의 생각은 이렇다. 라는 인정을 하니깐 부담없이 말을 할 수 있었고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교내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앞으로, 비경쟁 독서토론 같은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회색 인간

<회색 인간>은 김동식 작가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매 단편 극적인 상황이 설정되고, 그 안에서 인물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김동식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더불어, 극적인 반전과 사회 풍자, 그외에도 작가가 담고자 했던 메세지들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상상독서 프로그램으로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회색 인간>에는 사회의 본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신의 소원’ 중,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명목으로 신은 인간 한 명을 지목한다. 사회는 사형선고를 받은 잭부터 인류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부자 스크류지까지 온갖 이유를 만들어 그들을 죽인다. 여기서 나는 사회의 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식인 빌딩’이라던가, 한명이 죽으면 랜덤으로 한명이 더 죽은 ‘사망 공동체’ 같은 평소에 생각조차 안해봤던 기묘한 설정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전개를 가진 이 소설은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나는 각 단편을 읽고 수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독서 아카데미 2차 <비경쟁 독서토론 (실습)>에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그 전에도 독서토론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책을 읽고 인물 하나하나, 논제 하나하나 파고들어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토론을 진행했어야 했다. 평소에 토론에 부담감을 느꼈던 사람으로서 그 당시의 독서토론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강사님이 계속 “토론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말을 해도 괜찮다” 등의 말을 하면서 학생들의 부담감을 덜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전보다 편안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회색 인간

 특정한 상황 속에 몰아넣어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며 무엇을 느낄 것 인가?
학술정보관에서 진행한 비경쟁 독서 토론에서 소설 ‘회색 인간’을 주제로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나 혼자만의 리뷰 시간을 가졌더라면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을 다시 고민하여 내 시각을 넓히고 책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찬반 토론과는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의 토론을 통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찬성 또는 반대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회색 인간’은 김동식 작가의 단편집으로 평범한 사람이 쉽게 상상하지 못할만한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 그 속에 존재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작가의 단편집은 사건의 전개를 치밀하게 쌓아 올리기보다는 사건을 대범하게 발생시키고 사람들을 특정한 상황에 몰아넣어 그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비추는 데에 더 초점을 둔다. 분명 각각의 단편에서 일어난 상황 자체는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일상을 그대로 녹여낸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사회현상들이 극단적인 상황을 만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전개하는 이야기의 결과는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고 희극이 되기도, 또 다른 무언가가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던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재 사회와 그곳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토론을 진행하는 중에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였다. 토론자 각각의 가치관과 경험이 다르기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혼자 책을 읽고 리뷰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비경쟁 독서토론은 함께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틀린 의견이 없는 이 토론에서 사람들은 각각의 가치관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주제를 바라보고 자신만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사람들의 사고를 더 유연하게 해주어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그곳에서 출발해 또 다른 시각을 가지는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비경쟁 독서토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회색 인간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토론이 있을까? 비경쟁 토론은 가능했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와 눈빛이 토론 내내 완연했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논제 범위 안에서라면, 누구든지 떠오른 생각을 웃으며 공유했다.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었다. 기존 토론의 핵심인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가 완벽한 답변이 사라지자 모든 게 가능했다.

  토론은 자유 논제와 선택 논제로 진행됐다. 회색 인간은 재밌는 줄거리의 단편 소재를 토대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 결말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되 적당한 해결책 없이 끝이 난다. 즉 열린 결말이다. 그래서 이번 비경쟁 토론에 적합한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장 인상 깊은 논제는 [신의 소원]이었다. 신은 임의로 인간 대표자를 정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한다. 연쇄 살인마 잭을 비롯해 장애인 마르크스와 평범한 사내 김 군, 그리고 세계적인 재벌 등이 차례로 지목됐지만, 인류는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전부 죽인다. 이런 행동을 어떻게 봤는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1. 대표자로 지목된 사람은 본인이 아니기에 고민 없이 결정을 쉽게 내렸다.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문제이다.

    2. 선동하는 사람과 선동당하는 사람의 결과물이다. 몇몇 무지한 사람들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판단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

    3. 이야기일 뿐이지만 현대 사회 현상과 비슷한 면모가 있으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듯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하는 친구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서 식견을 넓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내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 있게 말문을 여는 시도가 가능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색다른 토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도 개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