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워셔의 기독교에 대한 가르침 시리즈 3탄으로서 복음,회심에 이어서 ‘확신’이다. 확신이라 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갖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의 행위나 성품에 의해서 그 구원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구원의 근거가 있음을 얘기하면서 성서르 잘못 받아들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확신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가르쳐준다. 또한 그와 동시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아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혹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변화들이 분명히 있음을 가르친다. 이 변화와 현상을 독자 본인들의 삶에 적용하여 과연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모습이 나에게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한다고 말한다. 반면, 현대 기독교에는 지금까지 1,2,3탄의 가르침이 부재함으로 발생되는 문제점, 부재하는 이유, 부재함을 채워넣은 다른 사상과 가르침은 무엇인지 집요하다고까지 느낄정도로 짚어나가는 저자의 이 책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 동의하게 한다. 기독교의 신앙을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온 초대교회, 교부들, 종교개혁, 청교도의 가르침을 이 현대에도 지켜가기 위해서 애쓰고 부르짖는 이 저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회심 (복음의 부름에 대한 참된 반응)
폴 워셔의 복음 (베스트 라이브러리)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딱 보자마자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이었다. 왜지? 왜 하필 스물아홉이지? 서른 살이 되기 싫은 걸까? 등등 많은 의문점을 들게 했던 제목,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읽을 수밖에 없게끔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애인에게 차이고, 불안정한 파견사원에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본인이 살쪘다고 생각하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29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다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1년 후에 죽기로 다짐한다. 그때 주인공 아마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세상을 보며 1년 뒤에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죽기로 결심한다. 라스베이거스를 가겠다는 목표를 정한 후 돈을 벌며 열심히 사는 아마리에게 과거의 무기력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행을 정하고부터 지금까지 1분 1초도 헛되이 보낸 적은 없었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계속 달리다 보면 딴생각할 겨를도 없고, 옥죄어 오는 불안에 발목 잡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오직 목표만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던 11개월, 정말이지 나는 휴식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마리는 1년 후 죽는다고 생각하니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고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1분 1초의 여유도 없는 치열한 삶은 사는 아마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인생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리는 30살 생일에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아마리가 무기력했던 날들을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닥치는 대로 부딪치고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 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다. 나도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많았다. 지레 겁먹고 시작 전부터 포기했었다. 그런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데 정말 안했으면 어쨌나싶을 정도로 활동하는 것도 재밌고 다른 학교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편협한 사고를 확장시켜주었다. 정말 저 구절처럼 안 해본 일이라고 지레 겁먹고 포기부터 한다면 앞으로 살면서 경험했으면 좋을 다양한 일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1학기 때 나는 학교생활에 충실하기 즉, 성적관리하고 비교과점수를 어느 정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잡은 후 내 인생에 안정적인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마리가 정한 목표인 라스베이거스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목표를 정한 것 하나만으로도 내 삶에서 온전히 그 목표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평화는 잠시였고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찾아온 동시에 나는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던것 같다. 1학기 성적과 비교과점수에 대한 목표는 만족할 만큼 달성했지만 1학기가 지나서 끝나게 된 시한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삶에서 갑자기 목표가 사라지고 할 일을 해야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찾아왔더니 방황이 시작되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자신감도 생겨 그 후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떠한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향해가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리가 다시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목표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의 과정을 즐긴다면 더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이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오늘에 집중하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는 곡
형태가 없는 곳에 잠겨 지내지만, 모순적으로 기차역이라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진 다자키 쓰쿠루. 그는 색체가 있는 네 친구들에 속해있었다. 아니 속한 것 그 이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영혼적으로.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와 오우미(靑海)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과 구로노(黑埜)로 각각의 이름 속에는 색채가 들어있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도 그 그룹은 쓰쿠루에게 10대의 전부였다. 시로의 주장에 의해 쫓겨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 시로(시라네)의 꼼꼼한 성격에 맞게 늘 조율이 잘되어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게 윤기를 띤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창으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늘어뜨리는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테이블 위의 찻잔. 뒤로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악보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길. 건반 위에 놓인 열 개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페달을 밟는 두 발은 평상시 시로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힘차면서도 적확했다. 그리고 종아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연주를 부탁하면 그녀는 곧잘 그 곡을 쳤다. ‘르 말 뒤 페이’.”
시로(시라네)는 다른 친구들에게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경멸과 두려움이 가득한 시로의 눈을 보고 친구들은 그녀의 말을 안믿을 수 없었고, 그렇게 쓰쿠루는 그룹에서 쫓겨난다. 얼마 후 시로는 혼자사는 본인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녀의 방안엔 범죄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노란 끈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시로. 하지만 점점 그녀 자신의 윤기를 잃어가던 시로. 그녀의 안에는 무엇이 떠다녔기에 자신을 잃게되었을까. 이는 그녀 자신도 모르고 쓰쿠루 역시 알 도리가 없었다.
재활용목공 인테리어 (삶을 바꾸는 톱질)
우리 옷 이천 년
쥐 (합본)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일본인 여학생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일본인의 만행을 드러내는 내용의 책이지만 일본인 작가가 썼다는 점이 놀라웠다. 일본인 작가지만 책을 읽으면서 전혀 편향되지 않고 사실을 왜곡 없이 전부 담아내려고 한 점이 느껴졌다. 이 책을 판매하는 일본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이런 사건에 대해서 허구라고 생각하는 네티즌들도 다반사이다. 일본정부에서는 위안부 문제 자체를 묻으려고 하고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와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도 아직까지도 새로운 책을 읽을 때 마다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생한 할머니의 체험담을 듣는 것이 버겁고 울컥할 때가 많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할머님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책은 소녀들이 위안부에 끌려가게 된 각각의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 과정 속에서도 나타나는 하나의 공통점은 모든 피해자들이 강제성을 띄고 끌려갔다는 점이다. 끌려가는 것조차도 아무런 이유도, 이해도 없이 갔지만 그 이후에는 그보다도 더 비인간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격적인 모독과 폭행뿐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음 강간을 당한 평균 나이는 14에서 16세, 요즘으로 치면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할 중학생이다. 대학생인 내가 느끼기에는 한 없이 어리고 투정부릴 나이이기도 하다.
피해자는 김학순 할머님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신 분이다. 김학순씨의 연설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들을 때마다 화가 나고 일본 정부에 대한 감정이 더 증오스러워 진다.
일본이 패전한 후 피해자들은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마저 대한민국의 비난과 창피하게 보는 시선, 성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태어나 단 한 번도 여성으로써 삶을 산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그 한이 남아있다고 하셨다. 한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필리핀의 ‘위안부’ 실상도 만만치 않았다. 필리핀 여성단체인 보고에 따르면 일본군의 만행은 필리핀 전역에 걸쳐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문제 해결 촉구를 외치고 있다. 일본정부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인정한 뒤 교육시키고 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또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책의 표지에서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이라는 문구를 보고 끌려서 바로 읽게 되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모임에 가면 온 몸의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든다. 밖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산책하거나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학교생활, 아르바이트, 대외 활동 등 각종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어 학기 중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이처럼 사회생활의 힘든 문제는 아마도 인간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책 제목처럼 싫은 인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한번 싫어진 사람이 다시 좋아지기도 힘든 법이다. 특정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를 담은 책이기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불신을 느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싫어 진 계기와,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인간관계가 불편한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관계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과도하게 신경 쓴다. 이런 예민함은 작은 자극이 감정적으로 크게 요동치게 만들어 인관관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작가는 이런 인간 알레르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한 확대해석을 멈추라고 하였다. 전혀 상관없는 일을 내가 두려워하는 결과로 해석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즉 ‘인간알레르기’현상을 내면의 문제로 보고 심리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대인관계의 갈등을 야기하고 스스로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 알레르기’현상이 나 자신 외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섣불리 불편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내면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책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신선했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한 것이 흥미로웠다. 책 제목에 대한 100% 확신할 수 있는 답은 아닐지라도, 한번쯤 나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