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참된 확신 vs 거짓 확신,나의 구원 확신은 진짜인가?)

폴워셔의 기독교에 대한 가르침 시리즈 3탄으로서 복음,회심에 이어서 ‘확신’이다.  확신이라 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갖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의 행위나 성품에 의해서 그 구원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구원의 근거가 있음을 얘기하면서 성서르 잘못 받아들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확신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가르쳐준다. 또한 그와 동시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아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혹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변화들이 분명히 있음을 가르친다. 이 변화와 현상을 독자 본인들의 삶에 적용하여 과연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모습이 나에게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한다고 말한다. 반면, 현대 기독교에는 지금까지 1,2,3탄의 가르침이 부재함으로 발생되는 문제점, 부재하는 이유, 부재함을 채워넣은 다른 사상과 가르침은 무엇인지 집요하다고까지 느낄정도로 짚어나가는 저자의 이 책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 동의하게 한다. 기독교의 신앙을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온 초대교회, 교부들, 종교개혁, 청교도의 가르침을 이 현대에도 지켜가기 위해서 애쓰고 부르짖는 이 저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회심 (복음의 부름에 대한 참된 반응)

폴워셔의 책 시리즈 1탄 복음에 이어, 2탄 회심이다. 복음을 들은 자라면 자연스레 회심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성서에서 말한바 ” 회개하고 돌이켜 복음을 믿으라” 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는데, 정확하게 1탄에서 말하는 복음을 믿기 전 선행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에서 말하는 회개, 즉 회심일 것이다. 과연 회개가 무엇인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에서,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말하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현재 교회의 회개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짚어내며 기독교 성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회개를 야기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회개를 ” 다른 사람에게 피해줘도 기독교의 신에게 기도하면 용서받는다” 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결코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그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또 현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자신의 범죄함을 시인하는 것으로 회개한다라고 가르치지만, 이 책에서 교회(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회개라 함은 한번의 시점의 시인하는 것으로, 마치 고해성사같은, 회개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에서 부터 등을 돌리고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지속적이며 시인과 동시에 자신의 성품과 행위에 있어서도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이 회개를 할 수 있는 힘, 원동력을 성서에 근거하여 설명함으로써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준다.

폴 워셔의 복음 (베스트 라이브러리)

폴워셔의 복음은 현대 기독교의 핵심을 짚어내면서,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의 교회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준다. 기독교의 정통과 진수를 잃어가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한국교회에게 다시 기독교가 무엇이고, 무엇을 믿는 것인지, 기독교의 성서인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얘기한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기존의 상식적이고 진실과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기준들이 해체되고 있다. 그 가운데 폴워셔는 시대정신을 읽어가면서 그 가운데 잃지 않아야 하는 기독교의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성자이신 예수가 어떤 존재이며, 2000년 전 인물이 과연 나와 어떤 관계인지 성서에 근거하여 드러낸다. 저자 폴 워셔는 법학과를 졸업한 학생답게 아주 논리정연하게 밝혀내며, 근거와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펼쳐간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고,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읽고자 한다면 이 글을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고전이라 함은 시대에 걸친 명작이라고 할 것인데, 왜 이 작품이 기독교 고전으로 야기 되는지 이 책을 조금만 읽어 나가도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혹은 기독교를 다니지만 어떤 것을 믿는 종교인지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책일 것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딱 보자마자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이었다. 왜지? 왜 하필 스물아홉이지? 서른 살이 되기 싫은 걸까? 등등 많은 의문점을 들게 했던 제목,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읽을 수밖에 없게끔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애인에게 차이고, 불안정한 파견사원에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본인이 살쪘다고 생각하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29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다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1년 후에 죽기로 다짐한다. 그때 주인공 아마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세상을 보며 1년 뒤에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죽기로 결심한다. 라스베이거스를 가겠다는 목표를 정한 후 돈을 벌며 열심히 사는 아마리에게 과거의 무기력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행을 정하고부터 지금까지 11초도 헛되이 보낸 적은 없었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계속 달리다 보면 딴생각할 겨를도 없고, 옥죄어 오는 불안에 발목 잡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오직 목표만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던 11개월, 정말이지 나는 휴식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마리는 1년 후 죽는다고 생각하니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고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11초의 여유도 없는 치열한 삶은 사는 아마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인생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리는 30살 생일에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아마리가 무기력했던 날들을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닥치는 대로 부딪치고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 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다. 나도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많았다. 지레 겁먹고 시작 전부터 포기했었다. 그런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데 정말 안했으면 어쨌나싶을 정도로 활동하는 것도 재밌고 다른 학교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편협한 사고를 확장시켜주었다. 정말 저 구절처럼 안 해본 일이라고 지레 겁먹고 포기부터 한다면 앞으로 살면서 경험했으면 좋을 다양한 일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1학기 때 나는 학교생활에 충실하기 즉, 성적관리하고 비교과점수를 어느 정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잡은 후 내 인생에  안정적인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마리가 정한 목표인 라스베이거스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목표를 정한 것 하나만으로도 내 삶에서 온전히 그 목표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평화는 잠시였고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찾아온 동시에 나는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던것 같다. 1학기 성적과 비교과점수에 대한 목표는 만족할 만큼 달성했지만 1학기가 지나서 끝나게 된 시한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삶에서 갑자기 목표가 사라지고  할 일을 해야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찾아왔더니 방황이 시작되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자신감도 생겨 그 후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떠한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향해가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리가 다시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목표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의 과정을 즐긴다면 더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이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오늘에 집중하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는 곡

 형태가 없는 곳에 잠겨 지내지만, 모순적으로 기차역이라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진 다자키 쓰쿠루. 그는 색체가 있는 네 친구들에 속해있었다. 아니 속한 것 그 이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영혼적으로.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와 오우미(靑海)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과 구로노(黑埜)로 각각의 이름 속에는 색채가 들어있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도 그 그룹은 쓰쿠루에게 10대의 전부였다. 시로의 주장에 의해 쫓겨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 시로(시라네)의 꼼꼼한 성격에 맞게 늘 조율이 잘되어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게 윤기를 띤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창으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늘어뜨리는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테이블 위의 찻잔. 뒤로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악보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길. 건반 위에 놓인 열 개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페달을 밟는 두 발은 평상시 시로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힘차면서도 적확했다. 그리고 종아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연주를 부탁하면 그녀는 곧잘 그 곡을 쳤다. ‘르 말 뒤 페이’.”

  시로(시라네)는 다른 친구들에게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경멸과 두려움이 가득한 시로의 눈을 보고 친구들은 그녀의 말을 안믿을 수 없었고, 그렇게 쓰쿠루는 그룹에서 쫓겨난다. 얼마 후 시로는 혼자사는 본인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녀의 방안엔 범죄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노란 끈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시로.  하지만 점점 그녀 자신의 윤기를 잃어가던 시로. 그녀의 안에는 무엇이 떠다녔기에  자신을 잃게되었을까. 이는 그녀 자신도 모르고 쓰쿠루 역시 알 도리가 없었다.  

 
  
  구로(구로노)를 만나기위해 쓰쿠루는 핀란드로 떠났다. 그녀가 핀란드인을 만나 결혼한 후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도자기를 빚으며 살고 있었다. 남편의 도자기는 색체 조화가 아름답고 균형미가 넘쳤다. 그의 아내 구로의 도자기는 다양한 색체를 쓰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었고, 정형화된 틀의 도자기가 아닌 조금은 삐뚤하고 균형이 맞지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쓰쿠루가 느낀 구로 역시 그랬다. 구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도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그는 오랜만에 텅 빈듯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그의 속에서 줄 곧 있던 텅 빈 감정을 오랜만에 ‘인식’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쓰쿠루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애당초 텅 비었던 것이 다시 텅 빌 따름이 아닌가. 누구에게 불평할 수 있단말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와 그가 얼마나 텅 빈 존재인가를 확인하고, 다 확인한 다음에는 어딘가로 가 버린다. 그 다음에는 텅 빈, 또는 더욱더 텅 비어 버린 다자키 쓰쿠루가 다시금 혼자 남는다. 그 뿐이지 않은가.”

 
  
   무색무취라고 ‘주장’하는 다자키 쓰쿠루,  그의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구멍들이 있었다. 외로움, 형태가 없는 곳에서 형태를 쫓는 ,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어딘가,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의 사이에서 그는 무언가를 보았고 느꼈다.    오늘도 그는 리스트가 연주하는 르 말 뒤 페이를 조용히 듣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 시로를 위해 순례를 떠나는 길이기에.

사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뭐라 할말이 없다. 무슨 교훈을 얻은 것도 아니며, 큰 감탄이 나온 적도 없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색채따위 보이지 않았다. 단 이 책을 읽고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나 말을 맞딱뜨리면 그냥 애매모호하다고 넘겨버리거나 애써 무시했다면,  이제는 그 애매모호함 자체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과거엔 그냥 이상한 일로 치부해 버렸다면, 이젠  그 상황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변화 그 자체일 것이다.  즐거운 일이 딱히 없었지만 행복하다면 그냥 행복한 것이고, 딱히 슬플일도 없었지만 괜시리 울고 싶다면 그냥 울고 싶은 것이다. 누구보다 담담한 다자키 쓰쿠루를 보며 나 역시 그를 닮아가는 것 같다.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전원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

재활용목공 인테리어 (삶을 바꾸는 톱질)

  살고 있는 집안을 바꾼다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집안에서 자리를 크게 차지하는 가구들을 처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무거운 것을 들고 좋은 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어렵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감이 있다. 이 책에서는 안 쓰는 나무 가구의 목재를 이용해서 집안에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물품으로 재탄생을 시킨다. 집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돈 안 들고 새로운 가구 만들기. 이 책의 제목인 <재활용목공 인테리어>와 딱 맞는 내용이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초보자들도 굉장히 알기 쉽게 풀어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표지와 가구를 만들기 전 상상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책에서 주로 다루는 나무는 자연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 이런 재료의 특성에 맞게 책 표지도 따스한 느낌의 색상을 주고 감성이 느껴지는 글씨체를 사용했다. 또 가구를 만들기 전에 무슨 가구를 만들지 예상도를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데, 그 그림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꼼꼼함이 느껴지지만 부드러워서 보는 내내 편안함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림과 책의 디자인을 보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저자가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책이 정갈하고 보는 즐거움을 준다.
  또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도 굉장히 친숙했다. 나는 ‘집에 있는 재료’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먹다 남은 연어’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사가 “집에 있는 재료들로 간단한 요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어제 먹다 남은 연어가 재료라며 꺼내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어 말고도 값이 나가서 ‘저게 정말 집에 남아돈다는 걸까?’ 싶은 재료들을 꺼내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보는 사람의 사정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이 책에서는 정말로 집에 있을 법한 물건들을 이용해서 실용적인 것들을 만들어낸다. 코너 부분에 놓을 수납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에 있는 볼을 이용하는 모습이 굉장히 친숙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설명도 굉장히 자세하고 친절하여 손재주가 없는 나조차도 어느 순간 내용을 따라 하며 가구 하나를 만들고 있을 것만 같다.

우리 옷 이천 년

  나는 우리의 전통 의상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곡선미와 화려하고 고운 색감, 화려하게 펄럭이는 천, 재봉선이 없어 자연스럽게 주름지는 어깨 부분,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것 같은 헐렁한 바지 주름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런 우리의 전통복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히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크다. 그러나 우리 옷들을 그릴 때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한복은 다양한 종류가 많고 옷을 제작하는 방식이 현대와 다르다 보니 요즘 옷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자잘한 장신구들의 사진을 구하고 싶어도 이름을 모르니 검색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내 창작에 가까운 옷들이 그려질 무렵,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우리 옷 이천 년>이다.
 <우리 옷 이천 년>은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책이었다. 한복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옷의 구조와 명칭을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았는지 모른다. 또 찾기 어려운 삼국시대 의상 자료도 있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읽다가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는데, 이 책이 과거 옷만 알려주는 것이 아닌 미래 의상의 예상도도 알려준다는 점이다. 미래 한국의 옷은 이럴 것이라며 옷에 컴퓨터가 붙어있는 사진을 올려두었고, 그것을 본 나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우리 옷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목표였지만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 내가 보기엔 낯부끄러운 면도 있었다. 미래 의상을 넣기보다는 옛날 옷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는 편이 책 표지의 느낌과 더 잘 어울리고 책의 방향성도 조금 더 확실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부분은 책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큰 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전통 의상을 잘 알고 싶다면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쥐 (합본)

  매체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전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드라마, 영화, 만화에서 전쟁은 위험하고 잔인하며,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묘사된다. 전쟁으로 인해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을 죽이고 눈앞에서 가족들이 죽는다. 이런 장면들은 보는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안겨주지만 실제로 전쟁 시에 느끼는 참혹함을 전부 알려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매체에서 다루는 시대물들에 있어 고증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현재 사람들 눈에 너무도 혐오스럽고 무서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평화로운 삶에 기준이 맞추어진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모습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전쟁을 소재로 창작을 할 때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요소와 긴박감을 주는 전투 장면 조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쥐>의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대인 아버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얘기를 듣자마자 저자의 아버지가 어떤 일을 겪었을지 바로 눈치챌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가 전쟁 전부터 전쟁 후까지 겪은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책을 읽으면 마치 내가 저자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쟁을 먼 예전 일로만 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전쟁의 참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말해주는 것이다. 전쟁 전의 평범했던 삶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으며 전쟁 후 여전히 그 상처가 어떻게 남는지를 말이다. 그 일들을 적나라하게 알려주어 내가 알던 전쟁의 모습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서글픈 느낌을 준다.
  책의 내용은 보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하는 일이 조금 안 풀리고, 손끝이 종이에 베이고, 복통이 30분만 있어도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외치는 내 모습이 저들에게는 얼마나 사치일까. 저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생명이 경의로웠고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 잔혹스럽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스실에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스실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방법 중 가장 애용하는 방법이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 수용자들에게 목욕을 시켜준 다는 것처럼 속여서 방안에 넣어두곤 유독가스를 주입시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죽인다. 이 일화가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가스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팔이 제 몸길이의 두 배가 되었다는 증언과, 그 증언을 덤덤하게 블라덱 슈피겔만에게 전하는 수용자의 모습, 그리고 목욕이라는 말을 굳게 믿은 수용자들이 옷을 곱게 접어 의심 없이 들어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이 전쟁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것이 읽으면서 너무도 슬펐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 많다. 제대로 몰랐던 전쟁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 가능성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알게 된 계기가 전쟁이라는 점에서 숙연함을 느꼈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 여러 번 읽고 구매도 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좀 더 많이 접하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느끼고 깨닫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일본인 여학생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일본인의 만행을 드러내는 내용의 책이지만 일본인 작가가 썼다는 점이 놀라웠다. 일본인 작가지만 책을 읽으면서 전혀 편향되지 않고 사실을 왜곡 없이 전부 담아내려고 한 점이 느껴졌다. 이 책을 판매하는 일본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이런 사건에 대해서 허구라고 생각하는 네티즌들도 다반사이다. 일본정부에서는 위안부 문제 자체를 묻으려고 하고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와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도 아직까지도 새로운 책을 읽을 때 마다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생한 할머니의 체험담을 듣는 것이 버겁고 울컥할 때가 많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할머님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책은 소녀들이 위안부에 끌려가게 된 각각의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 과정 속에서도 나타나는 하나의 공통점은 모든 피해자들이 강제성을 띄고 끌려갔다는 점이다. 끌려가는 것조차도 아무런 이유도, 이해도 없이 갔지만 그 이후에는 그보다도 더 비인간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격적인 모독과 폭행뿐이었다. ‘위안부피해자들이 처음 강간을 당한 평균 나이는 14에서 16, 요즘으로 치면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할 중학생이다. 대학생인 내가 느끼기에는 한 없이 어리고 투정부릴 나이이기도 하다.

피해자는 김학순 할머님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신 분이다. 김학순씨의 연설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들을 때마다 화가 나고 일본 정부에 대한 감정이 더 증오스러워 진다.

일본이 패전한 후 피해자들은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마저 대한민국의 비난과 창피하게 보는 시선, 성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태어나 단 한 번도 여성으로써 삶을 산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그 한이 남아있다고 하셨다. 한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필리핀의 위안부실상도 만만치 않았다. 필리핀 여성단체인 보고에 따르면 일본군의 만행은 필리핀 전역에 걸쳐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문제 해결 촉구를 외치고 있다. 일본정부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인정한 뒤 교육시키고 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또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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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에서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이라는 문구를 보고 끌려서 바로 읽게 되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모임에 가면 온 몸의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든다. 밖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산책하거나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학교생활, 아르바이트, 대외 활동 등 각종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어 학기 중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이처럼 사회생활의 힘든 문제는 아마도 인간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책 제목처럼 싫은 인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한번 싫어진 사람이 다시 좋아지기도 힘든 법이다. 특정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를 담은 책이기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불신을 느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싫어 진 계기와,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인간관계가 불편한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관계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과도하게 신경 쓴다. 이런 예민함은 작은 자극이 감정적으로 크게 요동치게 만들어 인관관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작가는 이런 인간 알레르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한 확대해석을 멈추라고 하였다. 전혀 상관없는 일을 내가 두려워하는 결과로 해석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인간알레르기현상을 내면의 문제로 보고 심리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대인관계의 갈등을 야기하고 스스로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 알레르기현상이 나 자신 외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섣불리 불편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내면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책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신선했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한 것이 흥미로웠다. 책 제목에 대한 100% 확신할 수 있는 답은 아닐지라도, 한번쯤 나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