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동백꽃
내가 “동백꽃”이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는, 두어 개의 문단들이 수록되어 있던 고등학교 교과서 작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작품을 읽고 공부했을 때와는 달리, ‘상상 독서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읽으니까 주인공들의 심리와 동백꽃을 왜 작품의 제목으로 지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주인공 점순이와 ‘나’인 소년이 마냥 어린 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나이대임을 알고 난 후, 작품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김유정 작가가 궁핍하고 빈곤이 극에 달했던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해 놓은 것 또한 고려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점순이는 억세고 심통 맞은 끈질긴 성격으로 해석할 수 있고 반면에 ‘나’인 소년은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에 언급한 힘들었던 시대상과 그들의 사춘기 시기를 고려해본다면, 점순이는 위기를 극복한 당차고 씩씩한 소녀로, 점순이가 갑인 반면 ‘나’는 소작농의 아들로 을의 상황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소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시대상에서 살던 점순이었다면 점순이처럼 당차고 씩씩하기보다 의기소침하고 매일을 우울하게 보냈을 지도 모른다. 반면에 점순이는 철도 일찍 들고 먼저 소년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보아 낙천적이고 용기가 많은 아이 같아 이런 면에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작품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눈여겨보았던 점은 작품과 작품의 제목과의 연관성이었다. 왜 김유정 작가가 ‘동백꽃’이라는 꽃을 작품의 제목으로 지었을까 찾아보다가 ‘동백꽃’의 꽃말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작품 마지막 부분에 점순이와 나 둘이서 동백꽃에 떨어지는 장면이 있고, 서로를 좋아하는 설레는 감정을 봄에 피는 동백꽃에 비유했음을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해석해본다면 동백꽃의 꽃말인 기다림은 점순이가 소년 ‘나’에게 계속해서 장난을 걸던 매 순간마다 소년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린 것과 연관성이 없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뒷이야기에서 아마도 소년‘나’는 소녀 점순이의 마음을 알아채고 먼저 다가갈지도 모른다. 또, 그들이 어른이 되고, 동백꽃이 핀 봄이 올 때마다 서로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젊은 날의 초상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시간적 배경은 1960대 이야기로 주인공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유적’이라고 표현한다. 가정을 이룬 서른을 넘은 젊은이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자신이 겪었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화자가 회상하는 추억이 유적인 것이다. 연작 소설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장편 ‘젊은 날의 초상’은 중편 소설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 세 편이 모여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었다. ‘하구’는 고등학교를 중퇴하여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이고,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대학에 입학하여 자퇴하기 전까지이며 ‘그해 겨울’은 대학 자퇴 후 산골 술집에서 일하다 자살하기 위하여 바다로 갈 때까지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주인공 ‘나’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주인공이 성장하고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과 삶에 대한 고찰 등을 나타냈다.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아무래도 30년이 된 책이다 보니까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읽기 싫은 표지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 30년 전의 단어들이 쓰여있으니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두루 있고, 또 지금과는 시대상이 다르다 보니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표지는 그렇게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모르는 단어는 대부분 인터넷에 쳐보면 나오기 때문에 내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게 될 정도로 재미있다. 게다가 재미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에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을 때 철학적인 부분이 나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철학적이다 보니 좀 심오하고 어려워서 싫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철학적인 내용에 좀 관심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흙과 신성에 비유한 몸과 영혼의 그 가치, 불꽃의 움직임에 비유한 노력과 열정 등은 읽으면서 정말 적절한 최고의 비유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날의 초상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인 구보는 하루종일 계획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경성 시내를 배회한다. 고독과 일상의 행복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다 옛 친구도 만나고 전에 선을 보았던 여자도 만나면서 시덥지 않은 생각들을 한다. 그러다 늦은 시각에 일상적 행복과 어머니의 소망을 들어드리기 위해 결혼을 마음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것이 낯설어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박태원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였다는 것과 한국인으로서의 생활이 탄압받는 상황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읽어보니 이해가 갔다. 박태원 작가는 소설 속 구보 씨를 자신의 분신으로 설정하고 의식의 흐름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보 씨의 내면 세계를 잘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더 공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유고시집, 1955년 10주기 기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0년 일제강점기의 서울을 배경으로 소설가 구보의 하루 일상을 쓴 책이다. 26살의 소설가 구보는 동경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문학인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정오쯤 미혼과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며 종로 거리로 나선다. 구보는 스스로 신경쇠약에 눈도 나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신체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집을 나와 무작정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에 올라탄다. 전차 안에서 예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하지만 망설이는 사이 헤어진다. 전차에서 내려 조선은행 앞 다방에서 혼자 차를 마시며 돈만 있으면 행복할거라고 생각을 한다. 지난 사랑을 추억하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경성역 삼등대합실로 가지만 거기서 병자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고 씁쓸함만 느끼게 된다. 또 길거리에서 옛 친구를 보는데 그의 초라한 행색에 그냥 지나가려다가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중학생시절 자기 뒤에만 있던 친구가 미녀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그 친구가 금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미녀가 친구의 돈을 보고 좋아하는 거라 생각한다. 혼자 또 다방에 있다 예전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자 기자인 친구를 만나 그가 돈 때문에 일에 매달리는 것을 알고 씁쓸해한다. 구보는 다방 구석에 있는 연인들과 중앙에서 혼자 있는 자신을 비교하며 질투와 외로움을 느낀다. 다시 다방을 나와 여자를 임신시키고 버린 적이 있는 유부남 친구와 종로의 술집에서 여종업원들과 술을 마시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정신병자라고 여기고 싶어 한다.(여종업원들에게 여러 이름의 정신병 이름을 말한다.) 그러면서 예전에 한 여자가 ‘여급대모집‘을 물어봤던 일을 회상하며 가난함을 안타까워한다. 구보는 성냥을 가져다준 술집의 어린 여종업원에게 다음날 만남을 제안한다. 여종업원이 난처해하자 종이와 펜을 주며 승낙이면 O를 거절이면 X를 적어 달라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안보겠다고 한다. 새벽 2시쯤 술집에서 나와 친구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종이를 펼쳐보니 ‘X‘가 적혀있었다. 구보는 어머니의 걱정에 대해 신경 쓰기로 결심하며 귀가를 한다. 1930년대의 일제강점기 시대의 세태풍속을 구보의 하루를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표현하는 전형적인 모더니즘의 소설이다.
구보씨는 일제시대에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표현하지 못 하고, 삶에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주변과 자신의 차이에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구보씨가 지식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물질적인 가치에만 목을 메달아 가며 살아갔다. 그에 구보씨는 그러한 당대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하면서도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구보씨가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저 마음이 허전하여 그런 것만이 아니라 행복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구보씨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성찰해보면 일제 때와 같이 압박을 당하지도 않는 현재에 나는 구보씨보다도 못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구보씨처럼 삶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노력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을 찾아다닌 구보씨가 찾아다닌 행복은 사실 매우 주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했을 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고 구보씨와 같이 주위를 돌아보며 이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것에 의미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이에 대해서 생각의 시발점을 준 이 책은 나의 선생님과 같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