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이 온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이 책은 미래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서술했다. 저자는 구글에 소속된 미래학자로서 미래를 연구한다. 비록 저자의 예측 중 많은 내용이 과학분야로 흘러가고 있지만, 내가 살아가야할 미래를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문대 학생인 나에게 이러한 과학적인 내용이 어렵게 다가왔으나 과학용어를 검색하면서 최대한 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숙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미래사회가 어떠한 발전양상을 띠울지 알게 되었다는 점, 인문학적 교양을 기르게 될 내가 미래의 인공지능 산업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맡게 되고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독서에 충분한 의의를 느꼈다. 인문학적 공부에서 나아가 과학지식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앞당긴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천문학이나 물리학같은 과학에 흥미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이러한 호기심이 다시금 생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은 단순히 뉴런의 복잡함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인간만이 보유한 인간의 무형적인 고유물인지였다. 이 호기심은 인공지능의 학습에서 비롯됐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하기 전에는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아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실패경험과 성공경험을 쌓아가면서 성공적인 행동에 관한 습관화를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전개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은 감정밖에 없을 뿐더러 다른 쪽은 오히려 인공지능이 호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위에 있다. 여기에서 또한번의 호기심이 생겨나게 되는데, 감정이라는 것은 추상적인지 아니면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뇌의 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는 감정은 화학작용에 의한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뇌에 감정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인 도파민 등을 추가한다면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이 인간의 것과 똑같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인공지능이 오직 효율성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지만 감정을 느끼는 요소를 추가한다면 인공지능에게도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보니 과학적 지식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유전학 분야인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라는 책을 통해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싶다. 과학적 지식을 쌓는 것은 교양있는 사람이 되는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극락컴퍼니 (하라 고이치 장편소설)

책이 출시된 지는 7년이 넘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책이다. 회사밖에 몰랐던 겐조와 기리미네가 은퇴 후 무료한 삶을 지내다 ‘극락컴퍼니’ 라는 이상적인 모조 회사를 세워 회사놀이를 하고 겐조의 아들인 신페이는 이것을 자신의 사업으로 끌고 가려고 하다 기리미네에게 배신을 당해 극락컴퍼니가 절망 속에 내려앉다 다시 희망을 찾으며 끝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 더 넓게는 할아버지 세대로 대표되는 스고우치 겐조와 우리 세대 조금 더 넓게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신페이는 특히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말은  “겐조 세대는 제로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빚을 껴안은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라는 것이다. 왜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그렇게 회사에 목을 맸는지 또 우리를 왜 이해하지 못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그동안 TV프로그램중 ‘썰전’이라는 프로를 통해서 , 많은 이들에게 정치와 정부의 하는 일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해준 전 정치인이자 작가가 이 책을 썼다. 많은 이들에게 폭넓은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 이 시대의 지식인 저자는 뛰어난 말 뿐만 아니라 전달력 높은 글을 쓰는 작가 였다. 이 책을 통해서 글을 쓰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유익을 가르쳐 준다. 단지 임시방편적인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 또 글쓰기의 중요성과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잘 쓴 글이란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쉬운 글이다’ 라는 모토를 바탕으로 본인이 직접 그 가르침을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사례를 통해서 잘못된 글쓰기를 수정해 나가며 가르쳐준다. 또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독해력이 중요함을 말하며 이 능력들을 배양할 수 있는 힘을 설명해준다. 현대에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입, 취업, 업무 보고 등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이 책은 유대인 정신과의사인 저자가 독일의 포로수용소의 생활에서 생존한 후 직접 지필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죽음 앞에 놓은 사람의 본성을 보며, 또 인간의 잔인함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신비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먼저는 한 지도자를 통하여 개인들의 이기적인 내면을 이용하여,  절대 해서는 안될 참혹한 행위를 그들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또 심지어 환호하며 행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죽음앞에 놓인 인간의 정신과 피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처참한 죽음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싶어하고, 갖을 수 있는 인간의 알 수 없는 정신과 내면을 봄으로서 큰 통찰력을 가르쳐준다. 이 책을 통해서 정신과 저자의 아주 분석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될 수 있었으며, 사회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환경을 탓하며 또 유전자를 탓하며 내 자신을 늪 속으로 몰고 가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게 해주는 책이였다. 인간의 잔혹함으로 비극적인 상황이 되었음에도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다른 면을 발견하는 저자를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보고 내용을 추측했었다. 직관적으로 다가온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원하는대로 사는, 그리고 조금은 남들을 신경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그런 내용일꺼라 추측이 되었다. 그 후 책장을 넘겼다. 일단 책이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였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책에 대한 그림을 그렸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현재의 모습과 병폐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각 개인이 대체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 우리나라의 전체주의적인 모습들, 군대문화로부터 사회의 많은 부분에 미친 집단주의적 문화와 계서제적인 사회 모습을 가리켰다. 이를 지적하며 저자가 주장했던 바람직한 방향은 ‘합리주의적인 개인주의’ 라는 것이였다. 이는 곧 각 개인의 인격과 자체를 서로 존중하며, 내가 행복하기 위해 이타적인 자세도 필요함을 강조한 모습이다. 또한 각 개인은 본인과 타인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견지하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토대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분석한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다 보니 자학하는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었다. 판사인 저자는 많은 소송을 통해 각 사람들을 보고, 극단적인 상황과 인간의 본성을 목격하여서 그런지 성악설에 가까운 인간의 본성을 전제로 주장을 펼쳐나간다. 성악이라면 모든걸 체념하는 것이 아닌 ‘최악보다는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개인의 선택의 원리에 따라서 삶의 양극단의 문제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나가야 함을 사례와 근거를 통해서 주장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솔직하게 들여다 보며, 사회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그래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좋은 책이 될거 같다. 

오로지 먹는 생각 (먹보 애주가의 음식 탐구 생활)

   먹는 것들을 생각하는 행위는 매일 같이 하는 일이라,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고 가끔은 따분 해질 때도 있지만 나는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작가이다. 먹을 것에 관심이 많은 화가가 소개하는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 펼쳐져 있는 책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요리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짧은 글은 요리에 둘러싼 이야기와 함께 레시피 까지 소개해주고 있다. 글로만 써진 레시피는 생각보다 자세해서 머리 속으로 요리 과정을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다. 냄비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도마위에서 나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니. 덧 붙혀 작게 그려진 거친 스케치도 마음에 든다.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구절이나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살짝 접어두고는 하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해먹어보고 싶은 요리를 접어두었다. 다양하지만 간단하게 준비해서 먹을 수 있는 3분 안주요리와 미국식 도시락 그리고 디저트를 사랑하는 내가 꼭 먹어보고 싶은 바나나 플람베까지. 음식을 그냥 아무생각없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을 때가 많아 아침에 먹은 음식도 가끔가다 까먹는 나 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의 식사는 인상깊게 남을 때가 많다. 나중에 그 음식을 마주 했을 때 그 때의 생각을 떠올리면서 웃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들은 평소에 먹는 음식들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오래 머물게 된다. 물론 먹고 난 뒤에 체하거나 탈이나 좋지 않게 기억되는 음식들도 있어, 아직도  그 음식들은 먹지 못하곤 한다.
    작가처럼 한 가지 요리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요리는 버터고구마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소개하고 싶은 요리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읽는 중에 작가가 이미 이 요리를 소개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나의 요리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는 점이 아주 살짝 다르다. 사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10분이면 완성되는 음식이다. 작은 프라이팬에 버터 한 조각을 올린 뒤 고구마를 적당하게 썰어 올려 굽는다. 구워지는 동안 한 쪽에 소금을 뿌리고 적절하게 고구마가 구워져 군데군데가 갈색으로 변 하면 뒤집어 소금을 한 번 더 뿌려서 구워주면 완성 이지만 남은 오 분은 식히는 시간이다. 고구마를 뒤집는 것도 귀찮은 나는 프라이 팬을 마구 흔들며 익히는 편이다.  뜨거울 때 바로 먹는 것보다 조금 식혀 먹는 것이 짭짤하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먹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귀찮 음이 더 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간단한 요리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해먹고 있다. 뉴욕에 갔을 때 사이드로 비슷한 요리가 나와서 꼭 다시 해먹어보리라 마음을 먹고 집에 돌아와 자주 해먹고 있다.

변신

100년전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의미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노숙자, 독거노인, 사회 부적응자 등등 이제는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의 얼굴을 100년 전에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다. 그가 쓴 ‘변신’ 이라는 소설은 인간이 벌레가 되었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가족을 최고의 가치,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국가와는 달리 그레고르의 가족은 돈을 벌고 받는 이해관계로 이루어졌다. 그레고르는 경제적 능력을 잃고 식구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며, 비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여동생 그레테, 아버지, 어머니 모두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기겁했지만, 그레테는 밥도 챙겨주며 그레고르를 배려해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은 쓸모없는 그레고르를 잊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레고르의 방을 창고로 쓰고, 하숙인이 왔을 때 숨겼다. 그레테가 바이올린 연주를 하던 도중 그레고르가 나오자 하숙인들이 놀랐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치우느라 급급했다. 이 일로 하숙인들이 집을 떠나자 그나마 챙겨주었던 그레테가 먼저 그레고르를 처리하자고 했다. 인간이 쓸모가 없어졌을때, 가족이라도 외면당할 수 있다. 그레고르가 떠난 후에 그레테도 자라 팔리게 된다. 그레고르의 부모님은 여전히 돈에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 가족의 이면에도 돈에 대한 욕심과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레고르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벌레로 변신되어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다 벌레인채로 삶을 마감한다. 인간이 벌레가 되었다는 파격적인 설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그레고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돈버는 기계, 일벌레로 살아가며 쓸모가 없는 것들중 유일한 것, 벌레로 변신되었다. 결국 작가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강조하려 했다. 주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의미는 사람의 존재와 실존의 여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죽음을 맞은 일이 우리사회에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인간을 어떠한 가치의 척도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은 실존과 존재 상태를 떠나서 그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이다.


에브리데이

영화 ‘뷰티 인 사이드’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줄거리가 영화와 비슷해서 읽어보았다. ‘뷰티 인 사이드’와 비슷하지만 아예 다른 설정이었다. ‘에브리데이’를 읽으면서 놀랐던게 나는 어렸을 때 종종 이런 상상을 하며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A’의 삶은 내가 어릴 때 상상하던 삶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존재 자체를 아무도 몰라준다는 것,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라는 것,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이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나를 잃어버리지않게 노력해야하는 것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A’는 사랑하는 그녀를 보내주었다. 결말이 살짝 열린결말로 끝난 것 같아서 아쉽긴하다.(내가 이해를 못 한 것 일 수도…) 얼마 안 있어서 ‘에브리데이’가 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과 공장의 등장, 대량생산 등으로 경제적, 문화적, 예술적으로 꽃을 피웠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좋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벨 에포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양한 오락의 탄생, 사치, 그리고 풍요로움과 함께 빈부격차와 사회의 불안 또한 이시기를 지배했다.  이시기는 수많은 발명품이 탄생하기도 했다. 기차와 비행기, 백화점 등 은 이시기를 대표하는 화려한 것들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벨에포크 시대의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했고, 자신의 고향에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고향의 그리움을 화폭에 담기도했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애잔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시기에 급격해진 빈부격차는, 귀족과 가난한이를 아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떤 예술가는 귀족들의 사치스런 삶을 그려 귀족들에게 되팔기도 했고, 어떤 예술가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사는 매춘부들의 성병검사 현장을 그리기도 했다.  
벨에포크 시대는 화려하고 눈부시도록 빛이나는 시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겁고 칙칙하기 그지없는 암울한 시대였다.
책의 저자는당시  벨에포크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았는지를 이야기한다.
윌리엄 이글리의 ‘런던 승합차의 모습(1859)’은 당시 계급간의 질서를 보여준다. 승합차란 마차를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신분에따라 이용할수 있는 교통수단도 달랐던 과거와는 달리 근대로 접어들어 신분에 상관없이 같은 승합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계급은 짙게 존재했기에, 승합차에 탄 사람들은 서로 잘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불편한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 
산업화로인해 이시기의 밤문화는 더욱  활기를 띄었다. 술과 음악, 춤을 추는 사람들은 이시기의 작품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물랭루주’는 19세기 파리 밤문화의 중심에 있던 댄스홀이었다. 앙리 드 틀루즈로트레크의 ‘잔아브릴(1893)’는 툴르즈로트렉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잔아브릴을 위해 그린 포스터이다. 잔아브릴은 당시 유명했던 댄서이자 가수였는데, 로트레크는 그녀에게 자신과 같음을 느끼고 연민의 감정을 가졌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문에게 부끄러운 존재로 낙인찍혔던 그는, 무대에서는 화려한 댄서였지만 기댈 사람 없었던 아브릴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었다. ‘물랭주루에서 나온 잔 아브릴(1893)’을 보면 무대에서 빠져나와 힘없이 걷는 아브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색의 자켓과 치마를 입은 그녀는 시선을 바닥에 내린 채 걷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무대가 끝나면 조용히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고 한다. 로트레크와 아브릴은 감정적 결핍, 정신적 소모라는 면에서 닮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몇십개의 그림들을 가지고 19세기말 유럽을 표현한다. 그곳엔 화려한 밤의 불이 반짝이지만, 구석에서 결핍을 호소하며 신음하던 애잔한 이들도 있었다.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가진자와 없는자의 간격은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벌어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건 발전하는 사회속에서 생겨나는 격차의 씁쓸함이 아니었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로 유명한 소설가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가미 되지 않은 따뜻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소설이다.
3명의 강도가 물건을 훔치고 나서 경찰을 피해 숨을 곳을 찾은 곳이 바로 나미야 잡화점인데, 거기서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그들 중 한명이 잡화점 앞에 나갔다 오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상담 편지를 발견하고는 그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편지에 대해 답장을 해주는 것에 대하여 의견이 나뉜다. 왜냐하면 잡화점 문을 열어두면 현재의 시간이 멈추고 과거로 부터의 편지가 날아오고 
문을 닫으면 원래대로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중 한명은 잡화점에 숨어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서 순탄하게 도망 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 중 한명은 답장을 써서 편지함에 두고 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지를 두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바로 답장을 받고 그들은 꾸준하게 답장을 보낸다. 상담자는 조언을 해준것이 몇십년 전 운영했던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 인 줄 알고 보낸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그의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먼 훗날 인터넷 상에 나미야 잡화점이 열린다고 게시 하라고 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동네 꼬마들의 시시콜콜한 고민들 까지도 들어줬던 따뜻한 사람이라서 그를 잊지 못한 사람들이 또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들을 계속해서 강도들은 답장을 보내게 되고 그로 인해 상담자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 세 사람도 상담자의 편지 내용에 의해 감동을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기적을 가져다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