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의 이론과 현실

현대 사회에서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건 점점 더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샵, 웹툰, 웹소설 등 창작 시장은 점점 넓어짐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 [먹고 살기 힘든 창작자]라는 인식을 벗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는 미약한 저작권의식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저작물을 지키고, 어떻게 해야 행여라도 저작권을 침해하여 창작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는지를 공부하고자 하였다.
해당 저서는 저작권을 지적재산권과 인권을 통해 소개하며 한국에서의 저작권법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해외의 경험들보다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빗대어 우리가 공감하기 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더불어 한국의 경험만 이야기하여 편협한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해외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여 우리의 저작권 의식을 객관화 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현재 사이버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점점 더 타인의 저작물이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공개된, 다시 말해 프리소스와 같이 저작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밤토끼나 마루마루 등과 같은 불법 복제만화 사이트의 가입자 수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가면 갈 수록 예술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고 옳지 못한 루트로 창작물을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은 이 책을 꼭 한 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서민 독서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어렸을 적 나는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니, 평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약간은 조용하면서 너드(nerd) 한 아이였다. 중학생 때까지는 책을 나를 위하여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책을 읽으면서 나고 모르게 바뀌어 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소설을 주로 읽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소심하고 조용하고 약간은 교만했건 내가 어느 순간부터 남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하였고 꾸준히 책을 읽고 책 읽기를 전파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학술정보관에서 게시판을 살펴보다가 서민 독서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서민 교수님은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라서 많이 들어봤지만 나는 그분이 기생충에 관한 책 만을 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서민 교수님이 쓴 서민 독서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이 짧았구나를 알게 되었다. 서민 교수님은 서민 독서에서 시작하는 말로 독서가 나를 구원했다라고 한다. 그 순간부터 서민 교수님이 아 나와 같은 것을 느끼신 분이시구나!’라고 느꼈다. 그러니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교수님의 직설적인 말투에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 교수님은 책을 읽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이유는 공감능력을 향상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나도 이에 100% 아니 1000% 동의한다. 사람이 살면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체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하여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책은 그림보다는 글이 주를 차지하고 있기에 글을 이해하려면 나의 머릿속에서 내가 직접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그런 훈련을 많이 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이러한 부분을 경험했기에 이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그리고 2부 책 읽기의 힘에 나오는 12가지 주제들에도 전부 다 공감을 하였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요즘은 책의 지식도 모두 다 옳은 지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서 책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책에 나오는 지식들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지식을 접하기가 쉬운 시대에 살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만약 깊이 생각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독서는 삶을 살아갈 때 아주아주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책들도 많고 개인적인 의견에 치우쳐서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책들도 있다. 이러한 책들을 잘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나의 가치관을 세워가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 물론 좋은 책을 찾고 내것으로 만드는 노력은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장편소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우선 김려령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던 작가님이다. 완득이의 저자이시기도 한데, 완득이를 알기 전에 이 작품을 먼저 접하였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문체에 빠져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되었었다.

   『완득이우아한 거짓말모두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 2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겨우 2시간도 안 되는 영상으로 담아낸 것에는 생략된 내용이 많았고, 한국 영화 특유의 개그코드가 심어져 있었다. 영상과 글의 장단점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는데, 둘 다 책을 너무 재밌게 읽어 역시 원작은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상보다는 글을 더 좋아한다. 영화로 접하는 문학작품은 그 주인공이 배우 안에 갇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주인공의 외형적인 요소나 목소리 등은 상상하며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꽃답고 어리디 어린 중학생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 천지와 그를 자살로 밀어 넣은 친구 화연. 그리고 이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천지의 언니 만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친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버린 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학교 폭력과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닌 것 같은 아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이라 더 안타깝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자살이란 주제를 김려령 작가님은 몰입력이 강한 필력으로 풀어낸다. 그 몰입감으로 책을 읽으며 나까지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구성, 치고 빠지는 대사, 절제된 서술은 감정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지기만 했다.

   계획된 자살과 마지막의 주인공이 꾸는 꿈. 주인공이 죽기 직전 든 생각인 그 꿈은 자살하기 직전, 엄마와 언니가 자신의 자살을 막고 위로해주는 꿈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의 후회와 그 가족이 받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느꼈는데, 삶을 살아가는 작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이 책은 내가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처음 읽어본 책이다. 사막에 숭숭 뚫린 구덩이 안에 들어가 있는 소년들이 그려진 표지와 <구덩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재미없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한 책을 보고 이런 상반된 생각을 하는 건지 흥미로워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초반 내용은 스탠리 옐내츠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유명 야구 선수의 신발을 손에 얻게 된다. 건물에서 떨어진 신발을 소년이 줍게 된 것인데, 이를 절도로 오인한 사람들은 스탠리를 ‘초록 호수 캠프’라는 소년원으로 보낸다. 이곳은 잘못을 저지른 소년들에게 사막의 땅을 깊게 파도록 시킨다. 도무지 평범한 소년원으로 보이지 않는 이곳은 사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주인공과 그 캠프에서 알게 된 ‘제로’라는 친구 역시 그 비밀과 깊게 얽혀져있었다.
  <구덩이>에서 주로 다뤄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우연처럼 보이는 운명이다. 주인공 스탠리의 가족들이 어째서 그렇게 운이 없었는지, 초록 호수 캠프는 사막임에도 어째서 초록 호수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는지, 왜 사막에 땅을 파고 있었던 건지, 그곳에서 만나게 된 제로와의 관계 등, 책에서 다루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전부 과거와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소설이나 만화같이 만들어지는 스토리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많이 넣는다. 독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것들, 우연으로 치고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 알고 보니 모두 연관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반전 요소로써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런 이야기들은 만화와 책을 읽으며 자주 보았는데 이 책에서 본 전개가 가장 흥미로웠다. 하나하나 밝혀지는 이야기를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덤덤히 밝히는데 그를 보며 독자는 ‘아, 이게 이거와 연관이 된 거였구나!’라며 납득을 한다. 이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고 즐거워서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책의 작가인 루이스 새커의 대표작이자 상도 여러 개 수상한 <구덩이>. 별거 아닌 책처럼 보이지만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내용에 집중하고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표지를 보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책이 지금은 내게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 삶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과거부터 얽혀져 내려온 어떤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인공 소년이 겪은 극적인 모험과 성장을 내 삶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신 나를 이루는 작은 우연들과 인연을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즐거워지고는 한다.

우리 궁궐의 비밀 (그들이 말하지 않는,광화문 해태 앞다리는 누가 부러뜨렸을까)

  단순히 한복 입고 놀러 가던, 그저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우리 궁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벌써 10년이 지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당시 뉴스로 접했던 그 사건은 가히 충격이었다. 당시 화재 진압이 매우 어려워 점점 커져만 가던 불길은 뉴스로 보고 있던 초등학생의 눈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숭례문은 국보 1호지 않은가. 국보 1호를 불태운 이유가 다 큰 어른의 개인적인 화풀이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나는 사실 아직도 궁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책을 통해 몰랐던 혹은 이미 들어봤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관심 갖고 다시 접하게 되니 또 새롭게만 느껴졌다. 이 책은 인문교양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우리 궁궐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의 역사는 수난과 극복의 기록이라고 한다. 조선 왕조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광화문은 200년 뒤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 사라졌고, 270여 년 동안 폐허로 존재했다고 한다. 왕조의 중흥을 꿈꾸며 추진해 중건한 광화문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허물었다고 한다. 그 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립하기 위해서였는데, 완전히 없애려고 하였으나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그러지 못하고 이전시킨 광화문은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화강암 기단만 남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조선총독부를 가리기 위해 광화문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처음에 기리기 위해라고 잘못 보고 두 눈을 의심했었지만 다행히 잘못 본 것이었다.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는 복원뿐만이 아니라 현판과 해태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궁궐에 숨겨져 있는 오류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수정할 것을 문화재청에 요구하는 내용으로, 비판적인 시각이 흥미를 돋웠다. 무교인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스님이 저자인 것을 보고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이 인문교양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우리 문화재를 이렇게밖에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많이 씁쓸하기도 했고,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을 땐 화를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역사 시간에 배우지 못한 역사를 궁궐을 통해 바라본 것이다. 앞으로 문화재와 관련된 청원이나 기사를 쉽사리 지나치지 못할 것 같으며, 나조차도 문화재에 관심이 많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우리 문화재에 작더라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확신 (참된 확신 vs 거짓 확신,나의 구원 확신은 진짜인가?)

폴워셔의 기독교에 대한 가르침 시리즈 3탄으로서 복음,회심에 이어서 ‘확신’이다.  확신이라 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갖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의 행위나 성품에 의해서 그 구원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구원의 근거가 있음을 얘기하면서 성서르 잘못 받아들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확신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가르쳐준다. 또한 그와 동시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아 믿음을 갖고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혹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변화들이 분명히 있음을 가르친다. 이 변화와 현상을 독자 본인들의 삶에 적용하여 과연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모습이 나에게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한다고 말한다. 반면, 현대 기독교에는 지금까지 1,2,3탄의 가르침이 부재함으로 발생되는 문제점, 부재하는 이유, 부재함을 채워넣은 다른 사상과 가르침은 무엇인지 집요하다고까지 느낄정도로 짚어나가는 저자의 이 책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 동의하게 한다. 기독교의 신앙을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온 초대교회, 교부들, 종교개혁, 청교도의 가르침을 이 현대에도 지켜가기 위해서 애쓰고 부르짖는 이 저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회심 (복음의 부름에 대한 참된 반응)

폴워셔의 책 시리즈 1탄 복음에 이어, 2탄 회심이다. 복음을 들은 자라면 자연스레 회심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성서에서 말한바 ” 회개하고 돌이켜 복음을 믿으라” 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는데, 정확하게 1탄에서 말하는 복음을 믿기 전 선행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에서 말하는 회개, 즉 회심일 것이다. 과연 회개가 무엇인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에서,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말하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현재 교회의 회개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짚어내며 기독교 성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회개를 야기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회개를 ” 다른 사람에게 피해줘도 기독교의 신에게 기도하면 용서받는다” 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결코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그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또 현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자신의 범죄함을 시인하는 것으로 회개한다라고 가르치지만, 이 책에서 교회(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회개라 함은 한번의 시점의 시인하는 것으로, 마치 고해성사같은, 회개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에서 부터 등을 돌리고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지속적이며 시인과 동시에 자신의 성품과 행위에 있어서도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이 회개를 할 수 있는 힘, 원동력을 성서에 근거하여 설명함으로써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준다.

폴 워셔의 복음 (베스트 라이브러리)

폴워셔의 복음은 현대 기독교의 핵심을 짚어내면서,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의 교회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준다. 기독교의 정통과 진수를 잃어가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한국교회에게 다시 기독교가 무엇이고, 무엇을 믿는 것인지, 기독교의 성서인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얘기한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기존의 상식적이고 진실과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기준들이 해체되고 있다. 그 가운데 폴워셔는 시대정신을 읽어가면서 그 가운데 잃지 않아야 하는 기독교의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성자이신 예수가 어떤 존재이며, 2000년 전 인물이 과연 나와 어떤 관계인지 성서에 근거하여 드러낸다. 저자 폴 워셔는 법학과를 졸업한 학생답게 아주 논리정연하게 밝혀내며, 근거와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펼쳐간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고,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읽고자 한다면 이 글을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고전이라 함은 시대에 걸친 명작이라고 할 것인데, 왜 이 작품이 기독교 고전으로 야기 되는지 이 책을 조금만 읽어 나가도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혹은 기독교를 다니지만 어떤 것을 믿는 종교인지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책일 것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딱 보자마자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이었다. 왜지? 왜 하필 스물아홉이지? 서른 살이 되기 싫은 걸까? 등등 많은 의문점을 들게 했던 제목,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읽을 수밖에 없게끔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애인에게 차이고, 불안정한 파견사원에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본인이 살쪘다고 생각하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29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다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1년 후에 죽기로 다짐한다. 그때 주인공 아마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세상을 보며 1년 뒤에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죽기로 결심한다. 라스베이거스를 가겠다는 목표를 정한 후 돈을 벌며 열심히 사는 아마리에게 과거의 무기력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행을 정하고부터 지금까지 11초도 헛되이 보낸 적은 없었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계속 달리다 보면 딴생각할 겨를도 없고, 옥죄어 오는 불안에 발목 잡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오직 목표만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던 11개월, 정말이지 나는 휴식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마리는 1년 후 죽는다고 생각하니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고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11초의 여유도 없는 치열한 삶은 사는 아마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인생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리는 30살 생일에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아마리가 무기력했던 날들을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닥치는 대로 부딪치고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 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다. 나도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많았다. 지레 겁먹고 시작 전부터 포기했었다. 그런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데 정말 안했으면 어쨌나싶을 정도로 활동하는 것도 재밌고 다른 학교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편협한 사고를 확장시켜주었다. 정말 저 구절처럼 안 해본 일이라고 지레 겁먹고 포기부터 한다면 앞으로 살면서 경험했으면 좋을 다양한 일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1학기 때 나는 학교생활에 충실하기 즉, 성적관리하고 비교과점수를 어느 정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잡은 후 내 인생에  안정적인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마리가 정한 목표인 라스베이거스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목표를 정한 것 하나만으로도 내 삶에서 온전히 그 목표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평화는 잠시였고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찾아온 동시에 나는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던것 같다. 1학기 성적과 비교과점수에 대한 목표는 만족할 만큼 달성했지만 1학기가 지나서 끝나게 된 시한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삶에서 갑자기 목표가 사라지고  할 일을 해야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찾아왔더니 방황이 시작되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자신감도 생겨 그 후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떠한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향해가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리가 다시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목표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의 과정을 즐긴다면 더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이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오늘에 집중하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는 곡

 형태가 없는 곳에 잠겨 지내지만, 모순적으로 기차역이라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진 다자키 쓰쿠루. 그는 색체가 있는 네 친구들에 속해있었다. 아니 속한 것 그 이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영혼적으로.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와 오우미(靑海)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과 구로노(黑埜)로 각각의 이름 속에는 색채가 들어있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도 그 그룹은 쓰쿠루에게 10대의 전부였다. 시로의 주장에 의해 쫓겨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 시로(시라네)의 꼼꼼한 성격에 맞게 늘 조율이 잘되어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게 윤기를 띤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창으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늘어뜨리는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테이블 위의 찻잔. 뒤로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악보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길. 건반 위에 놓인 열 개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페달을 밟는 두 발은 평상시 시로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힘차면서도 적확했다. 그리고 종아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연주를 부탁하면 그녀는 곧잘 그 곡을 쳤다. ‘르 말 뒤 페이’.”

  시로(시라네)는 다른 친구들에게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경멸과 두려움이 가득한 시로의 눈을 보고 친구들은 그녀의 말을 안믿을 수 없었고, 그렇게 쓰쿠루는 그룹에서 쫓겨난다. 얼마 후 시로는 혼자사는 본인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녀의 방안엔 범죄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노란 끈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시로.  하지만 점점 그녀 자신의 윤기를 잃어가던 시로. 그녀의 안에는 무엇이 떠다녔기에  자신을 잃게되었을까. 이는 그녀 자신도 모르고 쓰쿠루 역시 알 도리가 없었다.  

 
  
  구로(구로노)를 만나기위해 쓰쿠루는 핀란드로 떠났다. 그녀가 핀란드인을 만나 결혼한 후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도자기를 빚으며 살고 있었다. 남편의 도자기는 색체 조화가 아름답고 균형미가 넘쳤다. 그의 아내 구로의 도자기는 다양한 색체를 쓰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었고, 정형화된 틀의 도자기가 아닌 조금은 삐뚤하고 균형이 맞지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쓰쿠루가 느낀 구로 역시 그랬다. 구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도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그는 오랜만에 텅 빈듯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그의 속에서 줄 곧 있던 텅 빈 감정을 오랜만에 ‘인식’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쓰쿠루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애당초 텅 비었던 것이 다시 텅 빌 따름이 아닌가. 누구에게 불평할 수 있단말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와 그가 얼마나 텅 빈 존재인가를 확인하고, 다 확인한 다음에는 어딘가로 가 버린다. 그 다음에는 텅 빈, 또는 더욱더 텅 비어 버린 다자키 쓰쿠루가 다시금 혼자 남는다. 그 뿐이지 않은가.”

 
  
   무색무취라고 ‘주장’하는 다자키 쓰쿠루,  그의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구멍들이 있었다. 외로움, 형태가 없는 곳에서 형태를 쫓는 ,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어딘가,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의 사이에서 그는 무언가를 보았고 느꼈다.    오늘도 그는 리스트가 연주하는 르 말 뒤 페이를 조용히 듣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 시로를 위해 순례를 떠나는 길이기에.

사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뭐라 할말이 없다. 무슨 교훈을 얻은 것도 아니며, 큰 감탄이 나온 적도 없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색채따위 보이지 않았다. 단 이 책을 읽고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나 말을 맞딱뜨리면 그냥 애매모호하다고 넘겨버리거나 애써 무시했다면,  이제는 그 애매모호함 자체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과거엔 그냥 이상한 일로 치부해 버렸다면, 이젠  그 상황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변화 그 자체일 것이다.  즐거운 일이 딱히 없었지만 행복하다면 그냥 행복한 것이고, 딱히 슬플일도 없었지만 괜시리 울고 싶다면 그냥 울고 싶은 것이다. 누구보다 담담한 다자키 쓰쿠루를 보며 나 역시 그를 닮아가는 것 같다.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전원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