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라기 팀
1711140 김민지
윤동주 시인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이 있다고 여겨진다. 스스로를 떳떳하게 느끼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감정인 ‘부끄러움’을 윤동주는 자신의 시에서 많이 언급하였다. 그가 살고 있던 식민지 시대에서 윤동주는 지식인이자 시인으로서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자신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뇌하였고 그러한 고뇌의 시간, 자기성찰을 시로 표현하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인 ‘쉽게 쓰여진 시’에서도 그런 그의 부끄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윤동주가 자신의 고국의 국권을 빼앗은 나라,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쓴 ‘쉽게 쓰여진 시’를 정독하며 윤동주의 걱정과 불안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이제는 떠나거나 죽은 어린 날의 동무들을 떠올리며 침전하는 감정을 느끼고 조국과 조국의 투쟁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윤동주는 다다미 방에 앉아 ‘쉽게’ 시를 쓰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쉽게 쓰여진 시’ 라는 제목 자체에서 그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워하며 불안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 속에 희망을 심어 두었다. 윤동주는 부끄러운 자신에게 ‘악수’를 건네며 눈물로 위로하고, 등불로 어둠을 몰아내고 우리나라의 독립이 오는 그 날인 ‘아침’을 기다린다. 외로움과 자기 비판으로 고뇌하면서도 일본에서 독립을 꿈꾸는 시를 쓴 그가 이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이 시가 더욱 안타깝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수록된 다른 시 ‘무서운 시간’에서도 그의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다른 시도 많았지만 이 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무서운 시간’이라는 제목이 그가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자 성찰하는 시간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손 들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독립을 외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윤동주는 ‘나를 부르지 마오.’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이 조국이 부끄러운 자신을 부르는 것이 두려운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립을 꿈꾸는 시를 써 내려가다 결국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그에 대하여 그 누구도 부끄러운 삶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부끄러워한 ‘쉽게 쓰여진 시’들은 이제 일제 강점기 시절 저항의 시로 여겨지고 있고 윤동주는 대표적인 민족 시인이다. 부디 윤동주가 하늘에서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