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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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취향’이라는 것에 큰 의구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것인데, 조금 더 생각하자면 단지 어떤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어떤것을 좋아하는 것과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아주 단순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글쓴이의 딸이 어떤색이 가장 좋은지를 묻고, 어떤 숫자를 가장 좋아하는지 묻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
왜 나는 그 색깔을 좋아하며 이 숫자를 선호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전개된다.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을 100% 존경받으며 살지도, 표현하며 살지도 않고 있다. 그저 사람들에 의해서, 아주 태초로 돌아가면 부모님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취향이라는것에 영향받는 것과 취향과 연결되어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어릴적의 경험인데, 나는 여름에도 패딩조끼를 입고싶어하는 아이였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취향에 따라서 선택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시선에서는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었고 결국 얇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여름을 보내야 했었다. 이러한 경험을 떠올리며 ‘취향은 결국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에 공감 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겨울에 패딩조끼를 선호하는 나의 ‘취향’은 없어졌다.
이렇게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나의 경험들과 책의 한 구절과 연결지으며 우리의 사소한 ‘취향’이라는 것에서 인간의 영역을 파악하며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취향을 분석한 연구들에 의해 밝혀진 부분들이 정말로 맞을지, 적용했을 때 분석한 현상대로 나아갈 지는 의문이지만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하며 그 유행이 모두의 (혹은 대다수의)취향이 된다는 것이 알 수 없는 ‘이끄는 힘’이 존재한다고 봐야할 것 같다.
가장 좋은 영화란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영화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책은 덮는 순간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이 책에대한 의문점과, 정말그런가?이 상황이 그 책에서 이야기 했던 부분인가? 하며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정말 좋은 책이며, 살아있는, 나와 대화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소설과 에세이 같은 감성적인 글을 많이 읽는 편인데, 이 책을 접하며 생각이 많아짐을 느꼈다.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며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표가 많이 등장했다. 가슴 가득히 감명을 받는 독서도 중요하지만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꼈다. 또한 이것이 참 독서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취향’이라는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나 분석적으로 광할한 세계를 펼쳐 알려준 작가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소한 것을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줄 몰랐다. 다각화 된 시각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제목 :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도시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다.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단 하루도 쉴 틈 없이 시끄럽고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라 도시는 인간의 삶이 반영된 공간이다. 그리고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권력의 모습이 보일 듯 말듯 묻어나 있다. 중앙에서 죄수를 감시하는 판옵티콘과 비슷한 모양인 파리의 방사형 도로망,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인을 내려다보는 펜트하우스 등 군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은근슬쩍 배어있다.

 

  이 욕망은 동서양의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공간이라 부르고 서양은 space라 한다. 서양과 달리 한국은 비워있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도시 건축에도 이런 우리만의 공간을 잘 살려야 한다. 과거에는 각자 자신의 자연환경에 맞는 건축이 이뤄졌다. 이런 점은 네온사인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홍콩이나 라스베가스 야경을 보며 멋있다고 하고 국내의 야경은 어지럽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은 바로 그 야경을 보며 별로라고 하며 우리 야경이 더 멋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네온사인을 정보로 받아들이는가의 차이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정보로 받아들이며 싫어하지만 외국인은 정보가 아닌 전체그림으로 인식하며 아름답게 보는 차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어느 곳이나 모든 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전세계 건축은 고유의 맛이 사라졌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하다. 아파트의 형태도 거의 비슷하고 원룸 같은 경우에는 내부마저 비슷하다. 다시 각 지역에 맞는 고유한 건축으로 도시를 살린다면 한국만이 갖고 있는 도시가 탄생할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미 전세계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가 우리 삶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책에서 도시는 진화하는 존재로 설명되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다양한 이유로 진화하고 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생명체가 진화하듯이 도시도 다양한 조건에 따라 변해가며, 이 변화는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사람이 입맛대로 도시를 바꾸고 또 그 도시에 사람이 닮아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도시가 진화하게 된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심결에 지나쳤던 거리들과 건축물들이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엇 때문에 가고 싶은지, 걷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왜 탁 트인 공간을 보면 탄성이 나오는지, 왜 겉이 허름한 그 카페를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이 가르쳐 준 것들로 나는 어떤 건출물, 어떤 공간에 살고 싶은지 명확한 답변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지친 나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은적이 있는가
위로를 받으면서도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는 상대방의 의해 상처받은 적이 있는가.
내가 이책을 선택한 이유는 남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적적할때 듣고싶은 말을 듣지 못할때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때
나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하며 버텨오던 순간들에 회의감이 들면서 나혼자만 이렇게 힘든건 아닌가 내가 이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요즘 나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달콤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태한 나에게 따끔한 일침을 던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며 내가 하고 싶은일을, 내 뜻을 펼치지 못할때
이 책은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던 이야기를 해준다.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게 왜 잘못이야?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마 너에게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어”

“너는 신이 아니야 너는 사람이지 네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쓰고 아무리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상상을 해도 실패할 수 있고좌절할 수 있어

네가 단순히 실패 하거나 좌절하는게 아니라 실패의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 좌절의 절망감에 몸부림칠만한 가치가있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삶에 대한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실패가 두려워 시작 조차 하지 못했던 나에게 나의 인생은 나의 두려움 때문에 망설일 만큼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것을 깨닫고 하고싶던 일을 행할 용기가 생겼다.

 

남에게 고민을 말해도 오히려 내가 이상한 것 같고,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상처받고 스스로 이겨내고 위로하기엔 쓸쓸하고 휑한 마음이 들때 남에게는 위로를 번지르르 하게 잘해주면서 나스스로 토닥 토닥 남에게 말하듯 자신을 달래준 적이 있는가.

남에게 하는 말은 쉬워도 정작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은 정리도 되지 않고 스스로 돌아보기 쉽지 않은 적이 많았을 것 이다. 나역시 그런 내 모습에 답을 찾고 싶었고 이 책은 속 시원한 해답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때로는 나태한 자신에게  때로는 열정적인 자신의 완벽주의 성격이 버거울때, 남의 시선의 상처받고, 좌절과 절망에 앞이 안보일때 세상에 치여 전전긍긍 하며 수고한 나에게 이 책을 읽으며 잘했다고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길 바란다.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제목에선 전혀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은 블랙 코미디 추리 소설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사립탐정 ‘더크 젠틀리’는 흔히 생각하는 ‘셜록 홈즈’와 같은 캐릭터와 대척점을 이룬다. 갈색 가죽 점퍼, 흉물스런 빨간 모자, 우스꽝스러운 초록 줄무늬 넥타이 차림의 모습은 깔끔한 영국 신사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탐사 방식도 남다른데 모든 입자들은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전체론적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 우리가 보기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단서에서 사건을 해결하곤 한다. 또한 ‘셜록’는 불가능한것을 빼고 남은 것이 아무리 그럴듯 하지 않아도 해답이라 하지만 ‘더크’는 불가능해 보이는 해답이  맞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사실 이런 식의 추리는 추리 소설 팬들에겐 전혀 끌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추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혼, 타임머신, 빙의 
,괴물, 북유럽 신과 같이 정석적인 추리로는 예상조차 되지 않는 전계를 보여준다. 이런 전개는 이 책은 쓴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의 문체의 특징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요소들을 소설 전반에 깔아두고 끝으로 가면서 하나하나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가의 전개 방식은 언제봐도 놀랍다.
  이 책은 추리를 바라는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특한 센스의 소설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고 싶다. 사건도 해결도 독자의 예상을 당연하다는 듯이 벗어나는 이 소설은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엉뚱함을 담고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같은 작가의 시리즈 작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도 추천하고 싶다. 이 소설들 모두 다 각자의 독특함으로 가득하며 우리의 상상을 일깨워주는 책이였다. 

노예의 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자유주의 시리즈 60)

 하이에크(1899~1992)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이다. 하이에크는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다. 독일 나치의 침공을 피해 영국으로 피난을 갔다. 하이에크는 영국이 독일처럼 사회주의 체제의 노선을 따라가게 될까 염려하였다. 하이에크는 독일 나치즘의 진상을 파헤쳤다. 독일에서 나치즘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주의 정당이 판을 다 만들어놓았고 나치즘은 거기에 발만 갖다댔을 뿐이라고 하였다.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이 영국에 침투해서 생긴 영국학자들의 사회주의 옹호적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모두 독재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하이에크는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이다. 그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철저히 반대했다. 그렇지만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하도록 정부가 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시장에서의 이해당사자들만이 최적의 정보를 획득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여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시장의 이해당사자들보다 더 많고 좋은 정보를 획득할 수 없고 더 낳은 결정을 선택할 수 없다. 정부관료가 모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한정적일 뿐더러 정부가 시장참여자들보다 더 훌륭한 자원분배를 강제적으로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의 관료는 불완전한 정보로 온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공산주의체제의 국가들이 국민들에게 생활필수품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정부개입으로 인한 개인의 자유 침해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하이에크는 영국 정당이 내놓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경계했다. 진보란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영국을 집어삼켜 독일나치에 대항하는 유럽 최후의 민주주의 보루가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했다. 공산주의혁명은 농민들, 노동자들에 의해 일어나지 않았다.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은 주로 자신의 지식을 맘껏 펼치고 싶어하는 전문가 집단이었다. 민주주의는 체제를 통치하는 정부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근원은 국민이다.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을 꿰뚫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1984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 추천드리는 책이니깐 주의하세요. >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자 자타공인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다룬 소설 중 5손가락 안에 든다는 바로 그 책, 1984년이다.
맨 처음 읽었을 때 결말을 읽고 느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체제에 굴복한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며 막이 내려지는 연극의 느낌을 받았다.

‘1984년’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와 세뇌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나라, 오세아니아가 소설의 배경이다.
현대의 우리 사회와 소설의 배경을 비교해보면 멀지않은 과거에 스탈린이 권력을 잡았던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정부 시절, 북한 등
소설에서 보여준 상황과 비슷한 역사들이 존재한다.
초반부에 윈스턴이 조금씩 깨달음을 얻으면서 일기에 적은 문장이 인상깊다.
“희망이 있다면 프롤에게 있다.”
간단히 말해 민중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주인공은 서술한다. 나는 민중이 힘이고, 지배계층의 힘은 민중에게서 나온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하지만 소설에선 절망적으로 프롤, 민중들은 단 한 명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지배계층)은 이중사고(DoubleThinking)을 이용하여 “그들이 의식을 가질 때까지는 결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단단히 세뇌당해있다.
이 책은 체제, 자신의 신념에 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글실력이 부족해서 표현을 잘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신념 변화, 체제에 대한 설명 등 탄탄한 스토리에 감탄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여운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할 것이다.
당신은 저항하는 프롤이 될 수 있을까?

* 책의 문장 출처는 출판사:열린책들 ver. 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반대가 끌리는 이유>

 

  어느 날, 책 내용이 ‘1, 2, 3, 으로 각 번호 당 길어야 3-4장씩으로 구성된 책에 이끌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게 되었다. 이토록 책이 깔끔하고 명료한데도 결코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의 의미를 말하는 책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줬다.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로 사랑하고 있는 네 명의 남녀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전 체코슬로바키아의 시대적 배경 등 정치적 상황 또한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큰 주제인 사랑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말하고 싶다.


  첫눈에 반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토마시를 사랑하게 된 여자 테레자와 그런 테레자를 사랑하지만 언제나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하는 토마시. 그런 토마시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랑을 나누는 화가 사비나, 그런 사비나의 자유로움에 반한 또 다른 남자 프란츠, 이렇게 네 명의 남녀가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의 본연의 존재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자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자신은 어떤 사랑을 추구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것이 곧 나아가 우리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에픽하이의 어떤 노래 가사 중 우리 한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란 가사처럼 이 소설 속의 등장하는 존재와 사랑은 N, S극처럼 극과 극임과 동시에 하나이다. 작가는 극과 극의 양상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모든 것을 극과 극으로 표현하기엔 복잡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가벼움과 무거움, 불안과 안정, 자유와 구속 등 이분법적인 모습으로 남녀는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자신의 운명은 토마시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임을 아는 테레자는 사비나를 만나러 가는 토마시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의 품을 떠나지 못한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사랑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자신 또한 테레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충분히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경우의 사랑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삶에 권태를 느낀 프란츠가 자유롭고 열정적인 사비나를 보며 사랑에 빠지는 순간, 누군가에겐 자신과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껴본 경험이 생각날 수도 있다. 또한 테레자를 보며 이미 상대방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순간이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토마시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몰래한 사랑을 겪어본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 네 명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사랑의 각기 다른 모습 중 어떤 모습은 옳고 어떤 모습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실은 어떤 이데올로기 속에 갇혀 정의된 기준일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내겐 이 책은 명쾌한 답이 있고 결론이 있어 해결책을 주는 책이라기 보단, 오히려 물음을 주는 책이었다.

 

  어떤 이에겐 특정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고, 납득이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의 감정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모순되는 사랑에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져다 줬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테레자가 될 수도 있고,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생을 이 네 인물로 한정지을 순 없지만 극과 극은 결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왜 이토록 이 책이 유명한지도 생각해보았다. 이성과 감성, 육체와 정신 전혀 다른 지점이지만 지금 내 속엔 공존하고 있고 때론 상황에 따라 격렬하게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면서 가장 묵직할 수 있는 감정을 통해 네 명의 인물들로 작가는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해본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뜻 깊게 읽고 지금까지 계속 읽혀지는 고전이 된 것은 아닐까.

 

  과연 테레자와 토마시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연과 필연의 두 모순된 개념으로 만났던 두 사람은 결국 교통사고로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는 이 결말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허무한 결말로 끝나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삶과 죽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 같았다. 낭만주의에서 극단적인 낭만주의는 곧 죽음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흔히 우리가 아는 결말이 아니라서 다시 책을 넘기며 결말이 이게 맞는 게 확실한 건지 되짚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읽혀질 것 같다. 20, 30, 가정을 이루고 났을 때, 삶이 끝나갈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읽을 때마다 내게 다른 물음을 줄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존재의 물음에 끊임없이 묻고 답해보는 것이 결국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과연 당신은 어떤 것을 좇는 사람인가. 낯섦과 익숙함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노랫말처럼 한 때 내 전부였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 낯선 사람이 되는 순간처럼, 삶은 참을 수 없이 가볍다가도 무거운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인지하지 못한 인간의 민낯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니었을까. 반대가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은 답은 많아도 정답은 없다

아들아, 단 한번뿐인 인생 후회없이 살아라

모든 사람들은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얼마나 시간이 가치 있으며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는 제가 살아온 삶에서 쌓아온 저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비교하며 읽었었습니다. 특히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면 안 된다는 부분에서 이 세상에 똑같은 사건이 일어난 예는 없다라는 말이 깊이 남았습니다. 항상 과거를 보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되지만 참고로 삼는데 그치고 신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 신중함은 자신이 살아가며 경험한 모든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과거를 참고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문점이 남았습니다. 그 외에도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 하나하나가 이런 부분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같구나‘ , ‘이런 부분에서 나와는 다르게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구나와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그 어느 연령대가 읽어도 부족함 없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특히 황금기의 시간을 살고 있는 20대 분들은 현재 자신의 시간 안에서 자기의 길을 찾아야하고 자신의 앞길을 위한 지식도 필요하며 삶의 지혜가 필요한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한번 본다면 저자가 삶을 살아가며 얻은 그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 많은 것들을 앎으로써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알게 된 세상을 사는 지혜를 아들에게 편지로 이야기하는 형식의 책입니다. 책에서 얼마나 독자가 아들을 사랑하는지가 느껴져 저도 제가 더 나이가 들면 저의 자식에게 이런 지혜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도 같다. 지금 내가 너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생이라는 책이다. 살아가면서 이 사회를 통해 얻어지는 지식은 지금까지 출판된 모두를 합친 지식보다 훨씬 큰 도움을 준다. – 책의 일부분에서 발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가 기아의 진실과 구호활동의 현실을 아들에게 얘기하는 대화 형식으로 써낸 책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 제목을 보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계의 절반을 굶주리게 만든 요인들은 정말 다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자연도태설’이었다.
어떻게 사람 입에서 그토록 잔인한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이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덜어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겼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지금 우리가 산소와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굶어 죽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적으로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숙명이란 셈이다.
더 잔인한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그들을 도와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를 울며 안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그들은 말할 수 있을까? 당신 아기의 죽음으로 우리가 산소가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것이 참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도 지금‘자연도태설’의 첫 걸음을 밟고 있다. 각종 언론을 통해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익숙해지고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끔 피골이 상접한 아이의 모습과 같은 자극적인 영상이 나오면 그때서야 안타까워하고 후원하려 전화기를 들지만 이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지구상에 기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그들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당연하고 평범한 일로 여겨지는 것과 기아는 숙명적인 것이라 주장하는‘자연도태설’이 뭐가 다른 것일까?
요즘 뉴스에는 기아 얘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학교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고, 전쟁도 연일 떠들어대지만 기근에 대한 관심은 그만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아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흔하고 평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기아에 대해 관심을 갖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지금은 세계 기아의 실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기근으로 인해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 꼴로 굶어 죽는 등 한 해 수천만 명이 기근에 희생되고 있으며, 또 한 해 700만 명이 영양 부족으로 시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아를 유발하는 배후의 원인들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깊게 생각해보려하지 않았다. 단순히 구호단체들이 보여주는 겉만 보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고, 구호조직의 활동에 있어서의 문제, 부자들의 쓰레기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배불리 먹고 어떤 사람은 굶는 아이러니, 선진국의 이기심으로 인한 사막화와 삼림 파괴,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특히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이 책에서는 기아를 유발하는 상황들이 정치, 경제 질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나서 나 혼자의 도움 가지고는 기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무력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기아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고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기아 문제 해결에서의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당신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해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겠다면 이 책을 읽고 답을 찾기 바란다.

얼음나무 숲 (노블레스 클럽 001)

 여기 천재가 있다. 부모도, 돈도 없는 평민이지만 뛰어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시대를 풍미하는 천재 아나토제 바옐. 그리고 귀족으로 태어났고, 아버지의 의지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으나 실력이 또한 출중해 도시에서 알아주는 천재가 고요 모르페. 자라온 환경을 달랐어도 어릴 적부터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친구가 되고, 음악의 성지 에단에서 음악을 하며 살아간다. 바옐은 자신의 음악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청중들을 보고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돌아다닌다.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바옐을 동경하며 그가 원하는 하나의 청중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고요. 그런 고요에게 항상 냉정하게 대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확고히 굳혀나가는 바옐. 그러던 수많은 연주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설의 악기를 바옐이 손에 넣게 되고, 의문의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데

 

 서로 다른 천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은 고요의 시선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말은 독자는 바옐을 바라보는 고요의 시선뿐만 아니라 그가 느끼는 깊은 심정과 감정 또한 고스란히 느낄 있다는 말이다. 표현이 굉장히 섬세하고 닿아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고요 모르페가 되어있고, 똑같이 바옐을 좇고 있으며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있다. 음악을 주제로 소설이지만, 부담 없이 읽을 있으며, 음악에 관한 경험이나 지식이 있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있다. 어느 정도 읽다 보면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어 책을 손에서 놓을 없으며, 다음이야기를 원하며 읽다가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게 된다. 읽고 책을 덮으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얼음나무숲에 감탄할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글을 읽은 만으로 당신은 얼음나무 입구에 다다랐다. 한걸음만 떼어 바옐과 고요가 기다리는 속으로 들어가보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