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의 저자는 강세형 작가이다. 그녀는 김동률, 테이의 ‘뮤직아일랜드’ 와 이적, 스윗 스로우의 ‘텐텐클럽’ 이라는 라디오 작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10년간 라디오 작가 생활을 하던 것을 그만두고, 자기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바꿨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자신이 느끼고 겪은 에피소드를 엮어 만든 에세이이다. 이 에세이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세상에는 빠르게 걷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겪었던 수 많은 아픔들을 이겨내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원동력이 된 것이 바로 ‘빠르게, 빠르게’ 여서 그럴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제 성장 속도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사고에서까지 이 빠름을 요구하기 시작한 후 부터였다. 그런 세상 속에서 천천히, 느리게 가는 사람들은 뒤쳐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처럼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기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저자의 책이 특히나 눈에 띄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바도 많았고, 마음속에 울리는 구절들도 많았다. 나는 많은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특히 그녀의 친구가 만화가가 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그 이야기가 나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학창시절 만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저자는 매일 만화 그리기와 소설을 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만화와 관련 없는 대학을 진학했고, 만화와 관련 없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친구는 돌연 회사를 사퇴하고 만화를 배우러 일본 유학을 갔다. 친구의 지인들은 “이제 와서 만화 공부를 해서 뭐 하려고 그러냐” ,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필요가 있냐” 등 걱정 혹은 충고를 가장한 비난으로 한마디씩 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기에는 쉽지 않고 더욱이 나이가 들수록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그 결정을 하는 선택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 친구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이 모은 돈을 일본으로 가서 만화를 배웠다. 그러나 그 친구는 4년을 투자했지만 만화가가 되지는 못했다. 이에 사람들은 또 “시간낭비만 했네” , “이제 뭐먹고 살래” “역시 아직 철이 없어서” 등으로 비난을 더한다.
하지만 때로는 “안된다.” “하지마라” 라는 단순한 비난보다는 “넌 할 수 있어” 라는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칭찬을 해주면 어떨까? 싶다. 입에 발린 말조차도 누군가에겐 자신감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 더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 또한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칭찬받길 원한다.
하지만 과연 이 친구의 지난 4년이 정말 가치가 없었을까? 만약 이 친구가 만화가로 성공해서 돌아왔더라면 반응들은 어땠을까? 과연 전에 했던 비난은 없어지고 ‘충고였다’ 라고만 말할까? 아니면 만화가가 되는 게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난 4년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친구가 말하길 “만화 공부를 안 했더라면 그게 더 후회가 됐을거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해 부딪쳐봤다는 것. 그거면 충분한 거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비록 그 친구는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물러섰다. 하지만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처음부터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친구는 ‘경제적 가치’가 목표였던 일이 아닌 만큼 ‘실패’나 ‘성공’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무엇을 더 가치 있는 투자, 회수율 높은 투자로 생각하는가는 어차피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것에 도전한 친구와 라디오 작가를 하다가 그만둔 저자는 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저자와 친구는 매일 큰 틀을 벗어나지 않은 삶이 지겹고, 무기력해지는 내 자신이 싫증난 게 아니였을까?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열정을 잃은 회사원에게 ‘자아’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기에 그 둘은 회사를 그만두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했을 것 같다.
만화가 호랑작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의 책 <천년동화>를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아야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을까. 기다릴 수 없었다. 버티기 싫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작품 ‘천년동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독자분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나와의 공통점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후회와 미련을 남지 않게 하려고 도전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원하는 학과는 ‘사회학과’였다. 내가 무척이나 사회학을 좋아했고, 그쪽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입시에서는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미련이 남지 않게끔 한번 더 도전을 하기 위해 재수를 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배움이 있었다. 나는 재수를 하는 동안 ‘책’에 대한 가치를 배웠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릴 적부터 서점을 운영하셨다. 하지만 그 전까지 나는 ‘책’을 좋아하기보다는 운동을 좋아하고 사회학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재수를 하면서 ‘책의 소중함과 즐거움’ 을 느끼고 ‘사서’라는 새로운 ‘자아’을 봤다. 학창시절에는 주어진 것에만 열중하던 내가 재수를 하면서 비교적 나의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시야가 넓어졌다. 비록 ‘사회학과’에 맞는 성적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차선책이 됐던 ‘문헌학과’에 지망했고 합격했다.
경제학에서 투자는 성공과 실패는 이득과 손해로 이분법 할 수 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투자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가치를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잃어도 그게 배운 거라면 회수가치가 높은 이윤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꼭 ‘성공’시킬 필요는 없다. 나처럼 도전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있고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속도 경쟁에 맞춰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아감’이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성취를 다른 사람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자신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성공이란 결국 노력의 결과물이다.
고생이란 고생 그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고 한다. 죽을 만큼 고생했는데, 그 고생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휴지 조각처럼 아무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 고통이 온다고 한다. 힘이 들어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에 가치가 있다. 미련한 짓이란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삶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는 내 생각에는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인 것 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고 산은 반드시 올라오는 자에게만 정복당할 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에서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 원하는 것을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