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을 읽을 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삶에 대해 비관적이면서 염세적이라고 느껴서 한편으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에너지가 생기고 동기가 부여되기보다는 오히려 퍽퍽한 기분으로 읽게 됐다. 그의 철학을 보면 회의적이라고도 느껴 어느 순간에는 읽다가 허무주의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시선이 어느정도 맞다고도 생각이 드는 점은 결국에 모든 생명의 끝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있다. 그의 말대로 ‘죽음’이 인생의 완성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그저 죽음을 위해 달려간다는 그의 철학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나의 갖고 있는 생각과는 많이 달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고통이라는 것은 결국 내 인생에 함께할 수 밖에 없으며 견뎌내고 나아가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들었던 것 같다.
뒷 부분으로 갈 수록 앞에 있던 내용들보다는 좀 더 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파트들이 있었다.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내용들이라고 느껴졌다. 공통적인 메시지는 내 삶의 주체는 나고 그 삶 속에서 안락함과 행복함만 있다면 과연 지속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삶에서 고통과 절망 고뇌와 같은 불편함이 있어야 그 가운데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파트에서 “평온한 일상, 안락한 행복은 삶에서 그 비중이 극히 작다. 소극적인 삶의 형태이며 인생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매우 소규모다. 반면에 절망과 고뇌는 삶을 적극적으로 변모시킨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분초의 고민과 고통으로 심장을 쥐어짠다.” 라는 구절이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편안 삶을 추구하지만 너무 편해지면 안일해지기 쉽고 그 편안함에 익숙해져버리기에 우리 삶에도 어느정도 긴장감과 불편한 순간들은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된 파트였다.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파트에서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면 신앙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젊은 청년들이 출발선을 떠나보기도 전에 인생을 포기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일찍 주위를 둘러봤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이 자신임에도 이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현상은 오직 인생뿐이다. 우리가 현재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음을 의식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지 못했던 먼 옛날에 감사하고, 우리가 존재할 수 없는 먼 훗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이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나를 포함한 불안감이 큰 현대인들에게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 밖에 없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라는 말이 불안정한 내 마음과 인생이 결코 틀리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힘들게 암기한 지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듯 우리가 흔들리고 고통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보상도 분명하게 존재하겠구나 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전공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here and now’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알 수 없는 미스테리는 우리의 인생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빛나는지 모르며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지금의 우리가 있게 만들었고 미래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의 삶에 감사하고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부처는 밥을 지을 때도 온정성을 쏟는다는 파트에서 부처가 “사람으로 태어난 나의 미천하여 천한 일도 마다할 수 없기에 마다하지 않은 것뿐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부처도 그리하였는데 보통사람인 우리가 삶의 의지의 경중을 따져도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의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기에 의지마저 병들게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듯, 첫 주에 책을 읽었을 때는 “우리는 항상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삶이 허락된 이유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는 오직 이것뿐이다.”와 같은 구절들이 많아서 조원들과 토론하는 시간에 불편한 내용들이 많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던 적도 있었고 죽음에 대해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을 왜 살아야 할까?, 우리더러 인생을 살지 말란 이야긴가?”라는 반문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제목과 걸맞게 우리의 삶의 고통과 절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행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수반해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이미 모든 산전수전을 겪어본 사람만이 해주는 진심어린 위로같았다. 특히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앞으로 살게 되면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