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절대 안 나오는 영단어와 하찮고도 재미진 이야기
문득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하며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짚어보고, 지나온 순간들이 얼마나 값졌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영어 교육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무교육 과정과 대학 입시에서는 영어 과목이 필수이며, 공인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토익 시험은 이미 기본적인 스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더구나 손안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언제든 전 세계와 소통이 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영어는 타국인과 소통하기 위한 기본 도구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영어 교육을 받아왔고, 팝송을 들으며 가끔 영어 원문을 읽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영어에 온전히 흥미를 느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학업을 위해 단어를 외우고 시험에 자주 나오는 표현들을 암기했을 뿐, 단어의 의미나 숨은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일 만큼 여유롭게 영어를 바라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자 뜻조차 제대로 안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내가 영어 단어의 의미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일이다.
이 책은 영어를 학업의 도구로만 여겨왔던 사람들에게 영어 자체에 흥미를 느낄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시험에 자주 출제되지 않는, 하지만 가끔은 그 의미가 궁금했던 사소한 단어들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만약 당신이 학습을 위한 영어에 지쳐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영어를 접하며 기분 전환을 해보길 추천한다. 작가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가 영어에 자연스러운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영어로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작가의 진심을 믿고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영단어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빛과 멜로디
“근데 죽음이 많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에 맴돌던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최근 많은 죽음을 겪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과 죽음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 밖이지만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약하지만 끈끈하게 연결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관점으로 전환되며 소설은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사는 현실이 바빠서 다른 국가의 전쟁에는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전쟁으로 고립된 많은 사람과 그들의 현실은 다시금 그들이 전쟁 한복판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야 한다. 알고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진실은 너무 무겁고 괴로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게 한다. 최근 있었던 참사 역시 그랬다. 수많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오고 떠나왔을지 생각하면 괴롭고 슬퍼져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싶어진다. 소설에서는 우리가 이처럼 마주하지 않으려는 전쟁을 구체화하여 사람들의 절박감과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한다.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 있다는걸…. 반장,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권은은 승준이 준 카메라로 세상과 연결되었고, 알마는 장의 악보로 세상과 연결되었다. 나에게도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나를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 준 친구가 있다. 어린 시절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많이 하지 않아서 친구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겉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와 제일 친한 친구는 자신의 핸드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받아서 일일이 노래를 보내주었고, 재밌는 영화가 개봉하면 나를 제일 먼저 찾아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사소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 노래들이 나의 전부였다. 그 작은 호의는 다음 주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나를 살게 했다. 그 친구와는 요즘도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서로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승준이 그저 가져다준 카메라가 권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처럼, 친구에게는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보내준 것뿐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노래들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취향이 되고, 다른 친구들과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십 년이 넘게 지났지만 둘이 머리를 맞대고 노래가 보내지길 기다렸던 시간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 기억들은 나를 살게 만들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든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쟁을 겪은 살마와 나스차의 이야기에 화가 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이 느껴지다가도 그들을 연결한 단단하고 굳은 권은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권은을 보며 나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어 했던 민영처럼 나 역시 권은과 같이 무언가를 사랑하고 나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그렇게 굳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권은의 선의는 순수한 선의는 아니었지만, 이기심에서 시작된 선의도 결국 누군가를 살리고 살아가게 했다. 그 선의는 다시 선의로 뻗어가고 다시 또 누군가를 살린다. 냉소는 쉽다. 하지만 그 쉬운 냉소 대신 선한 마음과 선한 마음을 연결해서 나아가려는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들이 냉소적으로 변한 요즘의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