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ICT디자인 2553036 신현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처음엔 그저 신경학적인 사례들을 다룬 독특한 책이려니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마치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현미경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병의 사례집이 아니라, 기억, 정체성, 고통, 그리고 존재에 대한 아주 섬세한 이야기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나를 붙잡은 건, C부인이 뇌출혈을 겪고 나서 흐릿하게 떠올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뿌옇지만, 그녀에게는 무언가 잃어버렸던 자신과 다시 이어지는 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에게도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릴 적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이나 함께 웃던 저녁 식탁의 풍경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그런 기억들은 내 인생을 지탱하는 작은 돌멩이들이라, 비록 작고 흔하지만 마음속에서 언제나 무게를 가진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양으로 고통받던 소녀가 스테로이드 약물로 인해 마치 고향 같은 몽롱한 세계에 들어갔다는 장면이었다. 생명이 점점 사그라드는 순간에도 마음만은 포근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보다 더 따뜻한 마무리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 더 오래”보다는 “조금 더 편안히”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의학적 결정이 아니라 존엄에 대한 깊은 존중이라는 걸 느꼈다.
자폐를 지닌 쌍둥이와 조세의 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틀 바깥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때로는 낯설지만 동시에 경이로웠다. 숫자를 음악처럼 느끼고, 시계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그들의 방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 마치 다른 악보 위에서 연주되는 삶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자꾸 익숙한 기준 안에 맞추려 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소중한 감각들이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이 책은 내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정말로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은, 우리의 포용은 말뿐이고 여전히 어떤 기준 안에서만 조건부로 허락되는 건 아닌가? 책을 덮고 나서도 이 질문은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다. 마치 병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해 말 걸어오는 책처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