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발췌:
수 천 개의 광선이 쉼 없이 다발로 타오르고, 멋진 추격전을 펼치면서 그들 모두가 갈구하는 하나의 정점, 천정에 도달하고자 한다.
단지 머리로만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더 이상 그들은 얼음을 밧줄로 엮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금 우왕좌왕하다가 램프를 들고 솟아오른 곳으로 달려가보지만, 그것도 쏟아지는 얼음이 배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할 때까지만이다. 어떤 사람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떤 사람의 얼굴에서는 어둠이 서린다. 밤은 두 가지를 다 숨겨준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외침만이 들릴 뿐이다…
그곳에서 지구의 원심력은 멈추고 천체는 더 이상 위로 떠오르거나 아래로 지지 않는다.
그리고 바이프레히트도 그에게 동조한다. 그들이 모두 죽음을 맞을지라도, 고향도 학술원도 자신들의 발견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될지라도 최소한 자신을 위해서는 황제 프란츠요제프 제도의 규모와 천지학적인 의미의 확실성을 확보해야한다. 파이어는 그것을 원한다.
문학의 힘이란 상상력을 불어넣어주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눈앞에 선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그래서 간접적으로 그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힘.
평가:
- 묘사가 상당히 좋았다.
-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자료와 표를 활용한 점이 좋았다.
‘우현부, 중간 돛을 감아! 첫번째 돛 줄여라! 돛대로 올라가라! 버팀대를 대라! 돛을 내려라…. … 아딧줄을 팽팽하게! 축범의 도르래를 위로!’ 와 같이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는 쓸 수 없는 묘사가 좋았다. 작품 해설을 찾아보니 실제 있던 원정 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했는데, 그 덕분인지 더욱 현실감 느껴지는 묘사였다.
작품의 메인 테마인 혹한의 추위와 공허, 공포, 절망감의 묘사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 썰매와 함께 빙하 틈 사이로 빠져버린 순간과 82위도에 깃발을 꽂기 위해 3번간 떠났던 여정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배가 처음 얼음에 갇혀버린 순간의 아득한 절망감.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 하지만 자연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홀로 남겨지는 고독의 공포. 잊히는 두려움. 그런 부분들이 좋았다. 그리고 상황이 절망적인 만큼, 찾아오는 희망의 벅차오름과 자연의 장엄하고 아름다움이 더욱 강조되어 좋았다.
또한 실제 일지처럼 작성된 페이지나 인용구만 들어간 단락, 아예 표로 작성된 사망자 명단등 꽤 독특한 구성으로 작성된 부분들이 많았다. 소설이 아닌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 들어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서술자의 입장에서 ‘죽었다’ 로 끝나는 2줄짜리 짧은 문장이 후반부에 상세한 각색으로 풀어지자 더욱 죽음의 무게가 와닿는 기분이었다.
상세하고 세세한, 사실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건 거대한 자연보다도 홀로 남는다는 고독이었다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