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발췌:
이 경우에는 하나의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괴롭더라도 안개 속에서 눈앞에 나타나는 것들을 응시하든가, 아니면 유유히 안개 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것이다.
맥머피는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것을 지금을 알아채려 하고 있다. 그건 수간호사 한 사람만이 아니라 콤바인 전체, 즉 진짜 커다란 힘인 온 나라에 걸쳐 있는 콤바인이다. 수간호사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 관리 중 한 사람 일 뿐이다.
나는 손을 뻗어 문신을 만져 보고 싶었다. 아직 그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너무 조용히 누워 있어 아직 살아있는지 그의 몸을 만져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거짓말이다. 그가 살아 있는 걸 모를 턱이 없다. 그의 몸을 만져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만져보고 싶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인간이라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들을 만질 수도 있다. 나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거짓말이다. 이 또한 진실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동성애자라면 그와 다른 것도 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에 만지고 싶을 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제어반을 힘껏 들어 올렸다. 전깃줄과 연결되어 있던 부속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제어반을 무릎까지 들어 올려 한쪽 팔은 몸체에 두르고, 다른 한쪽은 그 밑을 받쳤다. 얼굴과 목에 크롬이 닿아 차가웠다. 나는 그물 창 앞에서 한 바퀴 돌고는 그 탄력을 이용하여 창문을 향해 제어반을 던졌다. 소리가 굉장했다. 유리 조각이 달빛을 받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잠든 대지를 깨우는, 밝게 비차는 차가운 물 같았다
“억압된 자유와 강요된 삶, 정신병동을 매개로 현실 사회를 드러내는 섬뜩한 은유. 거대 구조의 톱니바퀴에서 희생된 무수한 개인들을 위한 진혼곡, 그리고 한줄기 희망.”
[장점]
- 1. 재밌다.
첫 페이지부터 한 100페이지까지는 무감각하게 페이지를 넘기지만 정신병동에 맥머피라는 인물이 들어오면서 부터 점차 몰입감이 생긴다. 500페이지 가량 되는 책을 슥슥 읽게한다. 개인적으로 ~소설인 이상, 작가는 읽는 이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이야기를 구성해야하는 의무, 내지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면모에서 이 책은 잘해줬다 생각한다.
1-2. 묘사가 독특하고 재밌다.
인물을 묘사할 때 과장이 굉장히 강하게 들어간다.
”수간호사는 노골적으로 본성을 드러낸다. 입가의 미소가 일그러지면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변한다. 그녀의 몸은 더욱 부풀어 올라서 짐을 너무 많이 실어 모터 타는 냄새가 나는 거대한 트랙터만큼 커진다. 나는 숨을 참으며 ‘오, 이런! 이번에야말로 크게 한판 붙겠군!’ 생각한다. “ 정도로 과장이 쌔다. 처음에는 이게 진짜인지 과장인지 고민하면서 읽었는데 후에는 이런 과장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비유를 하자면 보통 소설은 맑은 수프에 소금을 적당량 쳐서 “음. 짜구나!” 라는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이 소설은… ’그는 16시간 동안 졸여 형체도 남지 않은 걸죽한 분말죽에 암염 덩어리를 통째로 가져와 갈거나 썰지도 않고 그대로 넣어버렸다‘ 식의 묘사인 느낌.
- 2. 소설로 보여주는 현실, 내포된 의미와 비평.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맥머피는 그 누구도 들 수 없다고 말한 배전판을 들어올리고자 한다. 결코 불가능하다며 웃는 정신병동 환자들을 뒤로 하고 맥머피는 거대한 배전판을 쥐고 뜯어내려 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비웃었지만 나사가 흔들리고 전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본 정신병동 환자들을 모두 침묵에 빠진다. …’정말 배전판을 들어올리는 거 아니야?’, ‘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결국 맥머피는 들어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점부터 정신병동 사람들은 달라졌다. 그 거대하고 무거운 배전판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수간호사의 권력도, 강압적인 병동 분위기도 변치 않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였다.
결국 배전판은 들어올려진다. 병동은 와해되고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더 이상 순응하지 않는다. 비록 맥머피는 들어올릴 수 없었지만, 맥머피의 도음으로 자신을 되찾은 브롬든이. 배전판을 들어올려 창문을 부수고 저 멀리 달아난다. 때마침 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 장면을 보면서 설국열차의 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있어서 벽인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문이다’. …책을 읽는 우리는 어떠한가? 현실에서의 들어올리지 못할 배전판은 무엇이고, 벽처럼 보이는 문은 무엇인가. 합리로 위장한 강압과 부조리는 무엇인가.
깊게 푹 빠질만한 장편 소설을 찾는 사람, 작품 속 다양한 메세지와 비평에 대해 몰두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