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과 과학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격차를 줄이고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고 생각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빈부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인가? 오히려 격차가 벌어지고 현재의 사회 문제들은 더 심화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의 비관적인 질문에 김초엽은 다정하게 대답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네 번째 단편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인 안나가 나온다. 안나는 경제적 효율을 위하는 연방으로부터 가족을 잃게 된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둘러 그녀를 우주정거장에서 쫓아내려고만 한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데, 같은 우주에 있다는 말은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 경제적 효율을 중시하는 우주 연방의 모습은 효율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현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효율이 떨어지고 경제적 이익이 없다는 명목 아래에서 수많은 제도가 사라지고 있다. 제도로 도움을 받던 수혜자들은 한순간에 내쳐지게 되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은 외면한다. 효율만을 따지는 세상에서 안나는 비효율적이고 실패할 것이 분명한 여정을 떠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가야 할 곳을 향해서 떠나는 안나에게선 망설임이 없다.
다섯 번째 단편인 “감정의 물성”은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되었던 단편이다. 나는 감정에 쉽게 흔들리고 쉽게 감정에 매몰되곤 한다. 그때마다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하고 그 사실에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보현의 행동과 감정을 어설프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과 물건은 깊은 연관관계를 가진다. 사람들은 물건에 그때 자신의 감정을 담고 그 물건은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 물건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영화표 한 장, 책 한 권, 어쩌면 그냥 돌멩이 일지라도 그 물건에 담긴 감정은 사람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 정하가 보게 되었던 모습처럼 나 역시도 계속 가라앉게 되는 감정에 슬픈 영화를 찾아서 울면서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영화는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감정을 위한 것이었다. 감정은 온전히 내가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감정의 물성”에는 대단한 sf 기술이 숨겨져 있지 않다. 마약이라는 어쩌면 허무한 결말까지 단편을 완성한다.
여섯 번째 단편인 “관내분실”의 지민은 평생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분실된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으려 노력하던 지민은 끝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그녀를 다시 세계에서 이어주려고 한다. 어머니가 되기 이전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여성의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사회 문제다. “관내분실”에서는 출산 이후 개인의 삶은 육아를 위해 포기한 여성들을 세계에서 분리되었다고 표현한다. 세계에서 분리되어야만 했던 여성들을, 가깝지만 멀게 느껴졌던 나의 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7개의 단편에서 다양한 우리는 다양한 이해를 마주하게 된다. 데이지는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희진은 루이를, 남자는 안나를, 정하는 보현을, 지민은 은하를, 가윤은 재경을 이해하게 된다. 이후의 세계가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김초엽의 단편에서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어쩌면’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단편에서 마주하는 다정한 이해 속에서 나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포기했던 것들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