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장편소설)
최진영 작가의 읽으면 먹먹해지는 두 책 중 한 권이다. 하나는 ‘구의 증명’이라는 책이고, 나머지는 ‘해가 지는 곳으로’이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전세계를 뒤덮어 버린 바이러스가 나타난 후의 이야기다. 전세계 사람들이 삽시간에 죽어가고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잔혹하고 끔찍한 미신이 세간에 돌아다닌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 친절한 만남이 이뤄지는 것,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그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람들에게마저 무감각해진 공간 속에서도 절박한 사랑이 피어난다. 재난이나 재앙 속에서 사랑이 이겨낸다는 소재는 흔하게 쓰이곤 한다. ‘해가 지는 곳으로’는 포스트 바이러스나 아포칼립스, 멸망한 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이 모든 걸 이겨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바이러스가 퍼져 인간들에게 죽음의 문턱을 눈 앞에 보이도록 만들었지만,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든가 바이러스와 관련한 뉴스나 지식은 나오지 않는다. 음식을 찾아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무기를 찾아 안전하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만 가득 나와 과연 바이러스가 사람을 이렇게 궁지로 내몰았는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궁지로 내몰았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책을 읽을수록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이 꽤 나오지만, 그 와중에 강력한 전염성과 높은 사망률을 자랑하던 바이러스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만 보이면 경계하고 총과 칼로 무장하고 피가 낭자하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없더라도, 무기가 없더라도, 사람은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서울은, 한국은, 타국은, 세계는 인간적일까?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보고 있을까. 삶의 절박함이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감각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유명한 문구 중에 하나인 ‘생명은 여전히 고귀한가./살인은 여전히 죄악인가.’가 바이러스 속 전쟁을 대하는 무장군단들을 꿰뚫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을 사랑과 생명으로 나눠 관점을 달리 읽었을 때, 생명의 관점에서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무기가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서너 명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무기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지 못할 걸 알면서도 생명을 지키는 모습이 고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목숨을 위협 삼아 협박 받는 상황에서 여태 사람을 여럿 죽이고 리볼버를 든 상대를 잭나이프로 그어 죽인 살인을 죄악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누군가를 죽이면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죽였다고 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은 농산품, 누군가는 공장 폐수로 죽어가지만 그 공장을 통해 나온 공산품을 먹고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내 말에 상처를 받아 잊지 못할 수도 있고, 행동도 그렇다. 그럼에도 생명은 여전히 고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죄악이라고 불리는 살인을 단 한 순간도 간접적으로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도리’와 ‘지나’는 사랑하지만 먹먹하게 느껴졌다. 끔찍하고 잔혹한 세상 속에서 지나는 도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삶의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서도 서로는 서로를 기적처럼 만날 걸 기대하면서도 다시는 못 만날 걸 알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걸 기대하면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이 오가는 세상에서 멈추지 않고 걸어간다. 나에게 이런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둘의 사랑이 실은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