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위험한 과학책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책을 읽으며 현재 한국에서 쉽게 보이는 언론 상황과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저널리즘 상황을 비교하였을 때 크게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고 쉬이 읽힌다는 것은 이 소설이 얼마나 고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정보가 빠르게 흐르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이러한 집단적 매장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주변에 벌써 여러 명의 카타리나 블룸을 보기도, 떠나보내기도 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미 잠재적 카타리나 블룸이기도 하다.
카타리나 블룸의 분투는 더욱 집단적이게 된 기업과 언론, 익명성의 그림자에 숨은 대중들에게서 개인은 어떻게 자신을 총을 빼 들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 들게 한다.
작 중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차이퉁과 같은 언론에서 멋대로 휘두르는 폭력과 함께 익명의 대중들 또한 더욱 능동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수많은 SNS와 댓글들을 통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혓바닥에 개인은 마치 껌처럼 어떠한 통제권을 갖지도 못한 채로 씹히다 단물이 빠지면 툭 뱉어진다. 그리곤 바로 너무나도 쉽게 다음 껌을 꺼내 씹는 것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화형대에 오른 개인은 평소 자신이 정말 신뢰하는 지인들에게서도 찜찜한 의심을 거두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지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외친다 한들 이미 대중에게 짓밟힌 호소는 그저 무력하고 허망한 메아리일 뿐이다. 결국 언론의 비도덕적 행태를 저지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동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인뿐만 아니라 언론을 이용하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의 책임의식에 대한 재고와 동시에 자정작용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와 가십, 숏 폼 컨텐츠, AI를 활용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무엇이든 감시당하고 녹음 당하며 기록되는 사회. 물론 이전부터 쭉 있었지만, 이젠 교묘히 모습을 바꾸어 우리가 알아채지도 못할 방식으로 더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까지 태연자약하게 우리를 옭아맨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아닌 척 하지만 어쩌면 맘 속 저 깊은 곳에선 서로에 대한 불신이 뿌리내리는데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일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빛나는 성과들을 보며 문득 살기 좋아졌다고 느끼게 되지만 그 반짝임 한 꺼풀 아래 이면에 정말 소름 끼치는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린 쉽게 잊곤 한다.
비단 저널리즘 뿐 아닌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옛 시대와 비교도 안 되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그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방종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눈이 먼 채 행복을 찾으려 하는 헛된 반복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바른 길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