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보다 일찍 죽었을 때 일컫는 단어가 없다고 들었다. 그 슬픔이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렇다고 흘려들은 적이 있다. 그 상황을 엿본다면 이 소설일 거라고 생각한다. 뇌사라는 비극의 주인공인 미즈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오루코의 모습을 미즈호가 지켜봤다면, 첨단 과학 기술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어린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미즈호가 죽은 시간은 언제일까? 여전히 소고 안에서 심장이 뛰고 있으니 살아있는 걸까? 미즈호의 죽은 시간은 수영장 사고가 일어난 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와카바가 만들어준 반지를 찾으러 들어간 깊은 수영장, 한없이 끝없이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없던 7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가 11살까지 엄마가 붙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가오루코의 사랑과 집착 그 어느 사이든 이해는 된다.
뇌사로 판정하고 장기기증을 하려던 순간 딸은 팔이 살짝 움직인다. 나 같아도 가오루코처럼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로 살아 있는 아이처럼 만들어 소개하고 간병하는 건 사랑을 넘어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접할 수 있던 가오루코와 미즈호는 운이 좋았다. 다른 뇌사 사건이 일어난 사람들에게는 꿈도 못 꿀 도전이었으니까. 호시노가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호시노가 애인인 마오를 떠나 보내면서도 미즈호에게 몰두했기 때문이다. 미즈호 뿐만 아니라 가오루코의 영향도 있었지만.
마지막 미즈호의 장례식에서 에노키다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에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가즈아사와 이혼 직전 가오루코가 관심을 갖고 있던 남자였다. 그 남자도 끝까지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가오루코가 그 남자를 놓친 건 내가 보는 입장으로는 너무 아쉽다.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글쎄… 에노키다를 잡을 여지와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힘든 가오루코였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긴 한다.
가오루코가 하는 간병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광기 서린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후반부를 다 읽어갈 때쯤 든 생각이다. 야쿠토의 생일임에도 경찰을 불러 난동을 부리는 행동에서 정말 충격을 받았다. 굳이 저렇게 마음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너무 극단적인 건 아닌가. 충격적이고 가오루코를 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야쿠토의 부모의 모습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 순간 모든 감정이 극에 달하고 절정이어서 그랬을까. 야쿠토의 입장에서 보기엔 가장 기억에 남고 잔혹한 생일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