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는 형태로 존재하고, 흐르는 길이 완만히 방향을 틀며 변화해간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저 한 사람 안에서 이토록 물길이 바뀐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여 어떤 지형 변동을 일으키게 될까요?”
“어디에 계시거나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 속에 계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곳에 함께 서서야 그 다음이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처음 썼을 때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런 희미한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작가의 말 중에서–
피프티피플은 병원과 병원 주변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귀에 벌이 들어가서 병원을 찾은 환자, 그를 진료하는 의사, 싱크홀 추락 사고를 겪은 사람, 병원 지하에서 근무하는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인물이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기도 하여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인물들은 책 속에서 서로 퍼즐처럼 연결되어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입체적이면서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읽는 내내 각각의 캐릭터가 정말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깊게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책 속 인물들이 50명이 넘고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다 읽고 나면 뚜렷하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없다. 하지만 퍼즐같이 인물 모두가 나란하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본인만의 이야기를 가진 채 서로의 옆자리를 채우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 책에 “한 작품의 창작자와 그 소비자는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각별히 맺어진 사이이며 사실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어쩌면 이 내용이 작가가 본인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닮은 시선을, 독자에게 그런 따뜻한 시선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인문학이 점점 소외되어간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인문학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연히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 알려주는 인간적인 삶과 그 해석은 과학이나 기술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인문학은 사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이 필수가 된다. 인문학으로 사람들 하나하나에 작은 파동이 생겨 큰 파동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주는 힘이 아닐까.
로봇 시대, 인간의 일(개정증보판)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멋진 신세계
지금 쓰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 (엄대섭과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추억한다)
1960년대 초 전국의 공공도서관의 수는 겨우 18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80년대 초 공공도서관은 10배가량 늘어 160여곳이 되었지만 도서관이라고 하면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으로만 인식되었다고 하며, 도서관에 들어갈 때 입관료를 받았고 도서관 안에서 자료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빌린 책은 도서관을 나갈 때는 반납해야 했으며, 책을 집에 빌려가고 싶으면 보증금을 내고 대출회원에 가입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것이 80년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모습이다. 엄대섭 선생님은 이러한 도서관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마을문고 설치, 이동도서관 보급, 입관료 폐지 등 도서관개혁운동을 하셨고, 이에 대한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변화된 도서관을 누리고 있다. 엄대섭 선생님과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서관은 지금처럼 자리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쓰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 (엄대섭과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추억한다)
지금 쓰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 (엄대섭과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추억한다)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퓰리처상 수상작)
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들었던 의문이다.
왜 서양의 백인을 생각하면 부유하고 지적이며 선진화된 이미지가 떠오를까?
총균쇠는 이러한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총균쇠.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불평들의 원인이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이해가 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인지는 읽기 전 알 수 없었지만 읽으면서 지리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2부에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다. 2부는 내가 전에 인상 깊게 봤었던 다큐멘터리 영화인 ‘지구생명체’라는 영화를 떠오르게 만들어주었다. 소, 돼지, 오리 등 우리가 평소에 먹고 있는 동식물이 어떻게 가축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었다. 고기를 원하면 우리는 마트에서 손쉽게 손질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이 사례처럼 번식적인 면에서는 성공을 거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손질된 고기가 되기까지 고통 받는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먹이사슬 중 가장 위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중심적인 지구가 된다는 것은 나도 일부분 동의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고통 받는 개체들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의 인간에게도 큰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인간을 고통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 또한 이러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 일으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은 생명체가 공존하며 비폭력적인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보면 깜짝 놀랄수도 있다. 엄청나게 두꺼운 사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떄문이다.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철학분야에서 한번 쯤 보았을 유명한 책이다. 유명한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책인 만큼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 나와 가치관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책, 같은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지만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신기했고 흥미로웠다. 1학기 때 ‘이갈리아의 딸들’ 이라는 책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총균쇠와 비슷한 점이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평등하지 않고 차별이 가득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차별이라는 단어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총균쇠와 같은 차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도서들은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방향성을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차별을 다루고 있는 책을 주제로 내년 독서클럽도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