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평소에 한국적인 사랑과 정이 요구되는 감성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좋아하던 SF장르를 한국에서?라는 생각과 이질감을 느끼며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편견과는 다르게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에서 겪거나 생각했을 감정들을 흥미로운 소재들로 풀어내서 전혀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사랑과 정이라는 감정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그 감정들을 강하게 또는 억지로 감동을 이끌어내는 상황을 만드는것이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겪는 문제와 상황, 감정들을 SF로 풀어내어 다시 한번 현실에 의문을 제기 할 수 밖에 없었던 책이다.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를 적어보았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릴리의 얼룩이 특별한 정보값을 갖지 않는 하나의 특성일 뿐이었지만 지구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릴리를 마음껏 멸시하고 혐오할 수 있는 하나의 낙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하나의 특성이었던것들을 지구의 사람들은 ‘결점’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결점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며 공간조차 분리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서 자라온 올리브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았다. 릴리는 올리브의 행복을 위해 마을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자라난 마을 사람들이 비개조인들을 위해,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지구를 그렇게 바꿔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스펙트럼
현대사회에서도 그러한 어떤 ‘도구’ 없이는 대부분 소통하지 않는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혹은 어떠한 목적이 있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과 소통을 가지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그런 도구들에서 떨어져 도구들 없이 순수한 관계를 맺어가는 희진과 루이가 가볍고 일시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한편으로는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어릴 적에 휴대폰도 없이 그저 놀이터에서 만나던 친구들과 순수한 마음으로 감정을 교감하던 순간들이 떠올랐지만,
희진이 그 행성을 다시 찾지 않고 행성에 대한 정보를 넘기지 않은 것은, 마치 내가 어릴적 친구들을 수소문해 찾아도 지금의 도구들을 버릴 수 없는 나와 친구들은 과거만큼이나 서로를 순수한 마음으로는 만날 수 없을 것이고, 과거를 재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금의 새로운 관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술들 사이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은 어떠한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만나기 힘든 현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감정의 물성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보현은 자신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하에게 말했다. 정하는 보현을 위로하려 노력하지만, 마지막에서야  위로할 수 있는 어던 언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터 우울과 함께하게 되었다. 우울의 원인은 그 당시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의 우울의 원인은 나 또한 명확하게 정의 할 수 없다. 누군가 원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는 말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슬픔에 가득 차 있고, 어느 날은 공허함에 가득 차 있고, 또 다른 날에는 행복해하기도 하다. 보현의 생각에서 반대로 보자면, 우울에는 명확한 해결책이 없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해나 배려를 원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울’이라는 감정에 중독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보현의 저 말이 가장 인상깊었던 점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울을 정의 할 수도 없고, 통제 할 수도 없다. 보현은 어쩌면 영켜있는 현실을 뒤로하고 우울체의 공허를 통해 조금은 우울을 통제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놓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재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사람들은 재경을 닮은 다른 약한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래서 결함이 있는 존재를 중요한 자리에 올리면 안 된다고. 표준인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비난들은 분명 재경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재경은 우주비행사로 선정된 이후 대중들이 말하는 약한 집단의 대표가 되었다. 재경의 업적과 그가 연구원이었던 사실을 뒤로 한 채 여자, 동양인, 미혼모와 같은 어쩌면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조건들까지 여러 프레임이 씌워져 화제가 되었고 관심과 비난을 받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재경은 그 누군가들의 대표가 되고싶어했을까? 그저 한 사람이 그저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재경을 개인으로 바라보고 싶다. 현실에서 또한 단순히 여성, 남성 혹은 인종으로 만으로도 프레임을 씌우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업적이나 그 사람의 본질은 뒤로 한 채 그러한 프레임으로 많은 것들이 판단되고, 다른 내용은 흐려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프레임들에 갖혀 상대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

 단편 소설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채 하기도 전에 소설이 끝날 듯했다. 그런 내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첫 단편 소설집이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짧은 시간동안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하였다. 장르가 판타지나 액션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일상을 이 책에 담았다. 남녀 간의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 성소수자 차별, 학교 폭력 등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지만 내 지인이 겪는 일임을 알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기적으로 보이는 인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의 생각과 행동이 정당화된다. 나의 관점에서는 이기적인 행동일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었을 때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것 인가 말 것인가, 바람을 필 것인가 마음을 접을 것인가. 한 상황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어떤 선택도 비난할 수 없다. 누구나 가치간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잔인하다는 표현도 어울리는 것 같다. 아들에겐 한없이 관대하지만 딸에게는 여자가 조신해야 한다며 큰소리도 마음껏 못 내고 대들지 못하게 끝없이 억압하는 엄마. 못된 엄마처럼 보이지만 그가 자라온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알고 이를 답습했음을 알게 되면 쉽게 비난할 수 없게 된다. 그에게는 자식은 반항해서는 안 되고, 부모에게 복종해야 하지만 아들은 예외인 것이 당연하다. ‘여자가 목소리가 너무 크면 안 된다’ ‘여자가 어딜 함부로 대드냐’ ‘딸내미가 애비 밥 상 차려야지’ 주변에서 건네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인 그를 누가 쉽사리 비난할 수 있겠는가. 최은영 작가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상황을 잘 녹여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같은 성별을 좋아한다니 그건 비정상이야. 세상이 이렇게 말해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여자친구가 잘해야 남자친구 기가 사는 것 아니겠어? 남자친구가 사랑하니까 집착도 하는 것이지. 세상이 그렇게 몰아가는데 아니라고 용기내어 소리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제목과 맞지 않게 소설 속에는 ‘무해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 무해한 줄 알았던 사람은 나의 무지에서 나온 착각이었고 그에게 나는 오히려 ‘유해한 사람’이었다.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낸 주영이 효진에게 과연 무해한 존재였을까. 이런 사람들의 속마음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풀어내며 이들에게 더욱 공감하게 만든다. 잔잔한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주제를 담은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수이는 자신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도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경은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수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사춘기부터 나는 줄곧 운명의 사람을 꿈꿔왔다. 영원한 운명의 사랑, 운명의 친구. 나는 그런 것들이 반드시 인생에 한번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교류하며 인생을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운명’을 찾기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투자하거나하며 지냈었던 것 같다.

  2020년에 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는 일본에서 살고있는 남자친구를 1년간 만나지못하게 됐다. 올해까지도 남자친구가 유학생이었다면 학교를 휴학하거나, 학기 등록 후 학교에 가지않더라도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올해부터 회사원이었다. 언제쯤이면 나아지겠지, 하던 시간들이 막연히 흘러 남자친구를 마지막으로 봤던 계절인 겨울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남자친구와 그 전에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남자친구를 내 운명의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아주 의지했었다. 그는 성품이 원채 너그럽고 자상한 성격이었고 그런 나를 잘 받아줬다. 또, 유학생 시절에는 ‘학생’이라는 어떤 여유가 있었기때문에 그 너그러움이 배 였었다. 올 해 봄. 취업 후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예전처럼 마냥 매달릴 수 없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실을 가지고 있었다. 물질적인 상실보다는 소중한 이의 부재, 빼앗긴 관계, 애정 결핍 등 비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미도리의 상실, 나오코의 상실, 나가사와의 상실 등이 마치 길을 걸어가다 돌부리에 발이 걸리듯 책의 진행에 산산히 널부러져 있었다. 그 돌부리에 발을 걸려 잠깐 멈춰서서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듣는 것이 이책의 진행방식이라면, 나는 나가사와의 돌부리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보냈었다. 나가사와의 이야기 초반 부, 나는 나가사와가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다. 첫번째 토론시간에 나가사와가 여자들이랑 자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와타나베가 몇명정도냐고 물었을 때 70명은 넘는다고 말했던 부분에 대해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러면 신경쓰고 있는거 아니냐고 말하며 웃었다. 나가사와는 이야기의 진행에서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감정에 대한 서술이나 쏠림없이 줄줄히 늘어놓는 식의 등장이 많았고, 나는 그것이 예술작품 특성상 어떤 사건이나 등장인물, 배경에 대한 서술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설명으로 인식했다. 
  나가사와의 유학 전 하쓰미와 와타나베, 나가사와 셋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나가사와는 하쓰미에 대해 의연한 듯 보이고, 하쓰미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을 꽤나 길게 늘어놓는다. 역시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한 말투로 말이다. 여기서 나는 나가사와의 행동에 이상함과 의문을 느꼈다. 정말 괜찮다면, 나가사와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하쓰미의 죽음으로 뭔가가 사라져버렸고, 그건 참을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어. 이런 나에게조차.”

  하쓰미의 자살 후 나가사와의 상실을 보며 나가사와에 대한 진행방식은 작가의 의도였다고 생각했다. 나가사와는 사실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학업에 대해서, 아무 여자들을 만나 잠자리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은 일과인듯 설명했지만 그런 것들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어떤 관계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아무렇지않다는 자기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그런 나가사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하쓰미를 잃고나서야 그는 자신을 마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는 나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믿었고, 나가사와는 믿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와 나가사와 모두 결국 사람은 본질적으로 ‘나’의 곁엔 자신 외엔 아무도 영원할 수 없다는 상실을 겪었다.

  나와 남자친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가장 아래에는 남자친구와 나 각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믿고 그에게 나로부터의 여유를 주기로 했다. 나 또한 남자친구로부터의 여유를 얻었고, 다른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더 좋은 관계가 됐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성숙에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내가 영원히 혼자라는 사실에 공허함을 느낀다. 영원한 사랑은 몰라도 영원한 사람은 없으니.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이는 나 자신 뿐. 우주의 팽창 가운데 점점 멀어지며 각자의 고독함을 중력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실의 시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 책은 인터넷을 통한 독서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들의 달라진 독서 능력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작가는 극도로 변해버린 자신의 독서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극단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비판하며 우리는 기억력 향상을 위해 앞으로 단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고 인터넷을 통한 독서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원래의 독서패턴(책을 통한 독서)를 되돌리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너무 과하게 모든 것을 비판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쭉 읽어서 원하는 내용을 찾는 것이 아닌,  띄어 읽기가 익숙해졌다 하면서 이는 우리가 책을 더 이상 읽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발전했고 더 이상은 책에서 자료를 찾는 것이 아닌 인터넷 속에서 제대로 된 자료를 찾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게 되었다. 즉, 우리의 읽기 패턴의 변화는 우리는 퇴화가 아닌 발전이다. 물론 인터넷 속에 있는 수많은 블로그 속 자료들이 모두 믿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의견이 뚜렷하게 드러난 책 역시 주관적인 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책의 저자는 컴퓨터가 막 생길 당시부터 살아왔던 사람이고, 나는 컴퓨터가 이미 상용화된 세계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변화와 이 사람이 생각하는 독서의 변화의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올해 10월에 개정판이 출시되었는데, 나는 그 이전 버전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 자체가 너무 현재 사회의 변화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개정판은 더 비판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어떤 변화를 가지고 출판이 되었는지 궁금해지기는 하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힌 만큼 기대를 했지만, 나의 견해와는 맞지 않는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쁜 책이라는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책을 읽으며 흥미롭게 읽지는 못했지만 나의 관점을 다잡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떠한 면에서 내가 차이를 느끼는 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중에 시간과 체력이 된다면 개정판을 읽고 작가의 변화나, 나의 관점의 변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저자는 IT 기술이 우리의 사고능력을 빼앗고 있고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IT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의 변화가 생겼다. 지식의 깊이보다는 정보를 얻어내는 데 효율성과 속도가 중요시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보고 ‘우리가 인터넷을 통한 맥락 없는 정보만 추구하면서 사고하는 방식은 아주 경박해졌으며 이에 걸맞게 뇌구조까지 물리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스마트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만큼 더 스마트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사고능력을 빼앗기고 멍청해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가 생기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글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원하는 정보만을 찾아 넘긴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요구하는 능력도 바뀌었다. 많은 정보를 알고 기억하는 것보다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빠른 판단을 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정보를 기억하는 것은 보조기억장치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방식이 바뀐다고 인류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글씨가 등장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글쓰기가 기억력을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했지만, 우리는 글쓰기를 이용하여 소설을 써서 책으로 팔거나, 교과서를 만들어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체계가 생성되었고, 그 체계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IT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누구보다 가슴 설레어하는 IT 미치광이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마냥 거리낌 없이 IT 기술을 이용하였는데 IT 기술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었고 기술 발전의 전과 후를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의 주장과 나의 생각을 대조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의미있었다. 이 책을 주제 도서로 독서클럽 활동하였는데, 조원들과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아서 나름 주제도서로 적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이 대체적으로 어려워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IT 기술의 부정적인 의견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대가없는 행복이 지속될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올리버 색스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질문한다. 그 중에서 큐피트병을 다룬  파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는 파트였는데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매독에 걸린 사람은 “지금 매우 행복하니 병을 적당히만 치료하고 싶다.”라고 의사에게 말했고 환자는 노년기임에도 불구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댄스를 즐겼으며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행동했다. 주위사람들은 환자에게 과거로 돌아간것 같다며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실제로 보기에도 그녀는 매우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명백한 질환으로 분류되는 매독을  치료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본인도 치료를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건강해 보였다. 나 또한 큐피트병에 걸린다면 치료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않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

 친구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책이다. 사실 이 독서토론을 통하지 않고도 따로 읽어보려 했던 책이지만, 조원들과 그 친구 모두가 친구인 점을 계기로 함께 나눠보고자 책으로 선정했었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너무 좋았다던 친구의 추천, 서점에서 짧게 읽어본 경험만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설, 작가의 말로 마무리한다. 에피소드별로 2명 혹은 3명의 주인공이 나오고 자기 이야기를 서술한다. 주인공들은 10대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 상황을 겪고 있었다. 주제는 참 다양하다. 동성애, 가정폭력, 자매, 우정, 가족, 사랑. 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서도 일상이 녹아있어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웠다. 어린, 어렸던 주인공들이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어찌 보면 가감 없이 묘사하는 작가 덕분에 읽는 내내 화도 나고 가슴이 아리고, 착잡하고 등등 여러 감정을 느꼈다.
 
책 본문이나 해설 속에서 와 닿는 구절이 너무너무 많았다. 에피소드별로 여러 줄거리를 소개하기보다도 구절들을 가져오는 게 이 책을 나타내기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무너진 마음의 조각들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이 정도 일에 연연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살아, 너만 겪는 일인 것처럼 유난 부리지 마,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 책은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감정과 끝이다. 주인공들에게 각자의 끝이 있고 그 끝으로 가기까지 느꼈던 감정들이 잔혹하리만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소설인 동시에 현실을 보여준다. 단순히 우울하지도, 뻔한 행복한 결말도 아닌 현실 그 자체.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라는 해설 속 말에 백번 공감했다. ‘무해’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무해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공감을 많이 했던 부분은 자기합리화, 자기 위로 부분이었다. 내가 잘못된다고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지만, 내 세상은 멸망한다. 힘들지만, 다들 이러고 산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꿋꿋하게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박수받는다. 과연 내가 힘든 티를 내는 것이 괜찮을까? 너무 징징대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항상 하는 나에게 이 책은 많은 위로를 준다.
 
나도 추천받았던 책이지만 또 다른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데미안(초판본): 블랙 스카이버(가죽) 금장 에디션(양장본 HardCover)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데미안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내가 선과 악에서 갈팡질팡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뒤돌아보고 성찰하며 나의 내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말이 정말 인상깊었다.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좁은 나의 시야를 깨고 도전하며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또한 내 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같은 나의 조력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부터 나와 함께 살아가고계신 부모님까지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다. 도전하고자하는 그 마음, 포기하지않으려고하는 의지 그리고 곁에서 이끌어주는 조력자까지 함께한다면 좁은 이 우물을 벗어나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내 자신이 될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내 자신이다. 데미안이 결국 싱클레어 자신이었던 것처럼, 나는 나를 위해 성장하고 더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

   처음에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만 보고
무해한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가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누가 무해한 사람인지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는 무해한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무해한 사람인줄 알았으나 아니었고 완전히 유해한 사람도 아닌 그런 식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한없이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차갑게 대하고 나쁜 말로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과 동시에 한없이 잘해주기만 하는게 무해한 사람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읽을 수록 빨려들듯이 빠르게 읽어나가지만 읽은 후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여러 단편소설들은 이야기가 사건을 중심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며, 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느꼈다. 그럼과 동시에 여성, 성소수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실제 사회에서 차별, 억압을 받는 듯이 소설 내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친구, 연인, 혹은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서 겪는 감정과 상황에 몰두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이 겪은 상황과 느낀 감정들이 정말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느껴져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감정이나 관계에 집중할 수 없는 바쁜 일상에서 깊은 감정을 느끼고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오늘부터의 세계]

이 책은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세계에 대해 저자 안의경과 세계 7명의 석학이 인터뷰를 다룬 내용을 담고있다.
7명의 석학은 각각의 분야의 내노라하는 인물들로 코로나19의 위기가 갖는 의미와 변화할 미래를 예측한다.
이들은 서로 방향을 내놓기도, 전혀 다른 방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 속에서 7명의 석학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는 ‘기후변화’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진 않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일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막연히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있고, 남극과 북극의 면적은 줄어들고 있다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들이 생태계뿐 아니라 인류와 온 지구를 병들고 아프게하고 있었다. 현재 코로나19의 주요 원인도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멍청한 인류는 여전히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고, 쓸데없는 힘만 소모하며 지정학적 갈등만 빚어내고 있다. 사실상 책임을 져야할 것은 우리 모두인데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없고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 든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라는 얼토당토 않은 명분을 내세우고 모든 일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나는 인간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물 종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인간은 자연앞에서는 무력하고 작은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그린뉴딜’도 사실상 지금 하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적극 실행해야 한다. 말로만 시행하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몸소 실천하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들을 말이다. 닉 보스트롬이 말한 것처럼 아직 지구상에는 강력한 협력 능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21세기에서 협력 능력이 부족한 상태라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사실 이 책은 독서토론을 위해 읽게 되었지만,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했다.
사소한 생활습관까지도 살펴보도록 하고, 이전까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환경과 협력에 관심을 갖게 했다.
인터뷰 형식으로 써져있어서 읽기도 쉽고, 질문형식으로 오가는게 대다수라 그 속에서도 ‘나의 생각은 어떠한가’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