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에 이끌려 ‘노르웨이의 숲’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실 읽기 전까지는 좋아하지 않는 책이었다. 주변 지인들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편견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날이 선 시선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필력과 책에 묘사된 6-70년대 일본의 풍경은 그 시절을 전혀 느끼지 못한 나 마저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우려했던 것 보다 받아 들일 수 있는 내용이었고, 오히려 책의 향기에 취한채로 며칠을 보냈다.
‘상실의 시대‘.
현재를 살아가기에 그 이름을 현재에 끼워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나 전염병의 만연으로 이전과 크게 다른 생활을 하게 된 이상,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은 우리 각자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적어도 나는 통신 회선을 통한 소통이 내가 구축한 인간관계와 그에 대한 나의 정의에 작은 실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이나 집단과의 관계에 있어 초연하다고 여겼으나, 크게 도는 전염병으로 방에 있는 시간은 확실히 많아졌고 사람인지라 여러 문제에 대해 헤아리게 되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사람이나 다른 무언가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은 끊어지거나 사라지게 될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 뿐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인연이 오고 갔다. 그리고 그중 대개는 소멸되듯 사그라졌고, 전염병은 그것을 다그쳤다. 물론 그 만남들이 절대 헛것은 아니리라. 내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간에 아주 미세한 작용은 끊임없이 일어나 나를 조금씩 바꾸었겠지. 그럼에도 현재 나는 관계에 대해 작지만 어느 정도 상실감을 느낀다.
분명 전염병이 끝난 후 아무렇지 않은 듯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인연들과 만나며 즐거운 듯 지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두고 있지 않을 뿐, 상실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아마 나는 관계에 초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앞에 두어 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읽는이에 따라 우울하고 눅눅한 느낌이 들 수 있는 책이지만 글을 통해(그것이 어떤 종류건 간에) 타인을 특정 감정에 빠지게 하는 것은 대단하다. 그러한 글 중 하나가 상실의 시대가 아닐까.
이방인 (세계문학전집 266)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방인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읽는 독자들을 이방인으로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고 있을 때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방인은 일반적인 감정으로 전개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읽히다가 갑자기 어떤 사건이 펑하고 터져서 책을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부분이 꽤나 곳곳에 있었다. 예를 들어, 뫼르소가 태양 때문이라는 이유로 아랍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고 뫼르소가 살인죄로 법정에 섰을 때 법정이 구성되는 내용들이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였다는 부분보다는 죽이기 전에 뫼르소가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보였던 무관심한 태도 같은 평소의 도덕성에 대한 부분으로 재판이 이루어진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이 이방인이라는 책 안에서 뫼르소는 이방인이다. 자신이 피고로써 있는 법정 안에서도, 평소의 자신의 생활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이방인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이방인이라는 것은 이 사람의 인생은 무관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관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죽은 다음날 자신의 애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뫼르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뫼르소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될 수 있다.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자신의 감정에 거짓말 없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사회에 어울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마주보면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이나 이념과 다르면 이방인으로 취급한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이 맞지 않다면 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려고 하거나 인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로 이끄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방인도 나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책의 내용 자체는 끝까지 못 읽을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서 여러 가지 깊은 철학적인 생각을 해봐야지 이 책의 진면목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