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 그릇

나는 그동안 어떤 말들을 사용해 왔을까.
감정을 턱없이 티내는 말 혹은 깊은 내면으로 감추는 말.
가까운 가족들의 경우는 전자가 많았고,
친구들이나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후자를 많이 사용해왔다.
하지만, 둘 다 나의 진실된 말들은 아니었던 것을 깨달았다.
가족들에게는 순간의 감정이 앞서서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뒤돌아서면 바로 후회를 했지만,
자존심과 어색함때문에 사과를 하거나
의미를 정정하지 못했고
친구들에게는 하고싶은 말도 제대로 못해서
그냥 보살같은 이미지로 남아,
정작 나 자신이 없는 채로 인간관계를 유지해와서
더 나를 드러내기 힘들어졌다.
나의 말그릇 안에는 무엇이 담겨있었을까.
모르기는 몰라도, 정말 내 것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로 표기한 진짜 나다운 말.
그것이 무엇인가, 나도 작가처럼 고민을 해봐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항상 듣는 역할을 자처했던 나는,
말하기는 부족해도 경청능력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듣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때문에 나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고,
이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게 된 것도 같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내가 듣기는 들었어도
과연 잘 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듣고싶은대로 듣는다고도 하는데,
내 경우가 그러했던 것 같다.
내 귀를 거쳐간 왜곡된 말은 내가 전한 그말이
다른 사람에게 그에 대한 적의감을 생기게 만들기도 했으며, 혼자 오해하고 있다가 물어보면 왜 뒷북이냐며 답답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나는 듣고 나서 반응이라고는
그냥 그랬구나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짓게 해버리기도,
성급한 조언을 하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쉽게 헤아리지 못해서 말을 꺼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잘못된 예시들 속에서
내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필요하다면 조언을 해주고,
필요하지 않다면 위로와 공감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
사실 이 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말하기. 듣기. 조언 기술 이런 것보다도,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향을 정해주는 북극성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이 책을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고,
그렇기에 내가 결국 한 번더 읽게 된 것도 같다.
평소에 생각이 부족한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사고력을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기억을 삼킨 소녀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화 결정)

 과거를 잊고 미래를 기억하는 소녀.
그동안 봤던 미래 예견 시리즈와 조금은 차별성이 보이는
과거의 잊혀진 기억. 그 대신 기억하는 미래.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
주인공 런던은 이러한 자신의 특별함 때문에
과거에 얽혀 있던 기억들을 되찾기도 하고,
독자들과 함께 착각을 하게 유도하였다가
실마리가 밝혀져 깨달음을 크게 던져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보다도 
내 마음을 몰입하게 만든 것은
바로, 루터라는 소년이다.
푸른 눈을 가진 로맨틱 가이.
그를 사랑했던 런던말고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숨도 쉬지않고 죽어있던 연애세포들이
하나 하나씩 깨어나 기지개를 피는 기분.
심장이 간질간질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다음에는 캣 패트릭의 미스터리 소설말고도
로맨스소설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라는 남자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아마, 그녀에게 운명이란 ‘무언가’였을텐데 오베에게 운명이란 ‘누군가’였다”
“모든일에는 설명서가 있기 마련인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 받는 쪽만 축복을 받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주는 쪽 역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주인공 오베는 세상 일에 불만이 많고, 까칠한 남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끝까지 읽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된 요인이 중요한 것을 결정하듯, 그의 표현방식은 조금 까탈 스럽지만 그게 그의 진짜는 아니었다.
오베라는 남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운명이라고 믿었던 아내, 소냐의 죽음으로 인해 하루하루 자살을 결심한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딱히 없었어도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녀 말고는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살 계획은 그의 표현으로 얼간이 같은 이웃들이 이사오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긴다. 거주자 지역에 차를 들이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어겨 오베의 화를 돋구고, 전혀 연도 없었던 고양이를 오베의 집에 살게하고, 빌어먹을 운전을 하나도 모르는 임산부가 도와달라고 하고, 옛 친구 르네를 지키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오베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들이 도움을 청하고,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베가 까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던 것 때문일 것이다. 오베는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해서 자신이 대신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기차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계획한 자신의 죽음을 방해한 선로에 발작을 일으키며 떨어진 남자를 못마땅해하며 대신 구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오베의 성격이 좋다. 그의 까칠함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의 오래보고 주는 정이 좋아졌다. 그덕분에 살 만해진 마을이 좋아졌고 하얀셔츠를 입은 복지국 사람들과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혼자 사는 인생은 오베의 어린시절 같을 것이다. 오베는 소냐라는 선물을 만나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소냐의 죽음 이후에는 이웃들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다. 물론 이웃들 역시도 이웃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 자체가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베와 함께 지낼 수 있었겠지만 오베 역시도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관계가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베만의 정의로움,
오베만의 다정함,
오베만의 굳건함,
오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조남주 장편소설)

72년생인 어머니와 99인 나의 중간쯤 되는 사람, 
82년생 김지영씨.
저도 여자로 태어나서, 지영씨의 마음을 알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희생적이고,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짐을 다 지고 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자유를 꿈꾸고 있는 저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당대 시대적인 것들, 남아선호사상 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힘이 드는 세상.
육아휴직 문제부터 시작해서, 시댁에만 가고 친정에는 가지 못하는 며느리들, 집에서 쉬는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여도 아이를 낳고서는 어쩔수없이 여자쪽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살림을 하는건 여자고 남자들은 도와주는게 당연한 것, 젊을때 남자형제를 뒷바라지 해야하는 입장. 너무나도 여성이 살아가기에 불리하고 힘이 드는 세상은 여성들에게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요구하는 것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잘은 모르지만,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셨다고 하셨는데, 5남매 3남 2여로 이루어진 집안에서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항상 어렸을때는 공부를 잘했었다는 이야기를 밥먹듯이 하시는 걸로 보아 김지영씨와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겠죠?
철없는 어린시절에는 오히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대신 저를 돌봐주시는 할머니만 따르려고 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품은 것도 사실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네요.
맘충, 저도 사실 단어 자체에는 벌레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서도 그동안 저는 자기 자식들만 위하고, 남들에게 이기적인 엄마들을 보면서 남들이 똑같이 비판을 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들에게도 저희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었을 텐데.
같은 여성으로써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철 없는 나날을 반성합니다.
김지영씨의 바램처럼 저 역시도 점점 더 여자들도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요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떠들석하다. 뉴스는 물론, 서점에 가도 이를 다룬 책들이 베스트 셀러 존에서 다양하게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시대’.라 하며 앞으로 인류는 계속해서 이러한 질병관련 위기를 결코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듯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향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대학생으로서 이에 관해 공부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중 이번에 학술정보관에서 관련 강연이 열린 것을 보고 행사에 신청하게 되었다. 
강연을 듣고 ‘콜럼버스의 교환’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인류의 탄생과 함께 발생하고 쇠퇴한 질병들과 의학의 발전과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하니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대비해 어떻게 우리가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 지금 미래를 이한 어떤 준비를 할 수 있는지 등. 와 같은 사색의 필요성을 느꼈다.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저자와의 만남’ 강의로 접하게 된 도서다. 문명과 질병이라는 주제는 현재 코로나 시대와 딱 맞는 주제였다. 1시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강의였지만 생각할 거리가 충분한 강의였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감염병은 지금까지 인류와 항상 함꼐였지만 문제가 된 것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부터였다. 유럽의 흑사병 사태때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서운 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흑사병만큼 무서운 코로나가 현대의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것이 감염병 대유행의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정착생활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바이러스에 적응하고 바이러스와 앞으로 공존해야한다는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현재 코로나19를 걸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또한 목숨도 잃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큰 질병을 처음 겪지만 과거에도 이러한 큰 질병이 있었다. 우선 그리스에서 일어난 아테네 역병, 로마 시절때 일어난 안토니누스 역병,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일어난 흑사병,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에이즈 등이 있는데 이러한 질병들은 보면 대체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일어났던걸 볼 수가 있다. 문명이 발달된 도시에서 인구가 많고 상호작용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이 발생될 수 있다고 유추해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거래를 하면서 유럽에 있던 질병들이 원주민에게 퍼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의 죽었던 것처럼 문명이 질병을 옮겨 이제는 질병이 전세계로 퍼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별 수 없다고 느껴지며 과거에 비해 발달해진 건강 수준과 의학 등을 이용해 최대한 억제시키고 퇴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팬더믹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강연을 들으며 나는 감염병에 대처해온 역사가 궁금해져 간단하게나마 조사를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분투한 조정의 모습을 보며 언제나 병이라는 것은 인간이 쉽게 손쓸 수는 없는 어려운 상대임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역병이 돌 때 감염자를 격리하여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시한 세종이나, 전염병의 발생 양상에 대해 고찰하고 문병을 할 때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 서술한 정약용의 사례를 보며 지금처럼 첨단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과학적으로 사고하였다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유럽인들이 유럽의 병원체를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옮겼듯, 세계가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한 국가에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제적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피해를 최소하하기 위해 각국의 투명하고 발빠른 대처와, 그것이 힘든 국가를 위해 기꺼이 지원하고자 하는 연결된 국제사회를 바라 본다.
(참조기사: “[코로나19 석달] 조선 500년 역사 속의 전염병과 교훈”. 김동남. 2020.04.10.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40. (2020.10.09.)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강의를 듣고 책을 엄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맨 처음 보여주신 사망률곡선(?)도 재밌었는데,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질병의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지금의 전염병사태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는데
오늘 아침 뉴스에서 아프리카 돼지 열병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인류 또한 언제든지 가축처럼 전염병이 속수무책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과 이미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콜럼버스의 교환은 새로운 시작이면서 동시에 재앙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는 여러 작물을 얻었고 홍역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퍼지면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희생당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 간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감염병이 퍼진 것이다. 하지만 의식주의 개선, 노동 개선, 의학 기술의 발달 등으로 우리는 여러 감염병들을 이겨냈다. 이렇게 문명이 재앙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건강 증진의 기회도 가져다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요즘의 코로나19라는 감염병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감염병을 이겨냈던 앞에서 처럼 방심하지 않고 방역에 최선을 다한다면 예전의 우리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전체뿐만이 아니라 나와 나의 가족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