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장편소설, 유년의 기억)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어두운 면을 담은 소설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점점 읽어나가면서 내 생각과 편견을 깰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단 주인공이 겪은 일제강점기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전쟁 당시 주인공의 삶은 비참하고 어두웠다. 처음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에 초점을 두었고, 중간부터는 주인공의 사춘기와 주변 인물과 환경에 주인공이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과 주인공의 경험을 빗대어 읽었었다. 그렇게 읽다보니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이 이해가 갔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못하는 상황이 몇번 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은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을때 다들 고향생각이 났고, 향수를 건들였다고 했다. 박완서 작가 소설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문체자체가 담백해서 좋았다. 비유도 비유지만 그때 느낀 점과 경험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게 좋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도 있었다. 첫번째로 오빠의 정체성이었다. 처음에 주인공의 오빠는 조용하지만 똑똑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 사상에 관여를 하고,  가족보다는 정치 사상과 그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오빠의 태도가 이해가지 않았다. 친구들 또한 그렇게 느꼈다. 소설에 실제 인물을 썼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오빠의 속사정과 마음을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답답한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리고 소설 전체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추측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소설 전체가 답답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역사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고, 사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성,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주인공이 서울에 간 후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못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 소설이 가장 신선했던 점은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모녀관계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성이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남성과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보다 여성들이 주인공인 소설이 더 몰입이 되고, 소설과 더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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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에서는 본격적으로 로마 문명, 중세 문명과 디자인을 위주로 다루는 내용이었습니다.
첫번째로 제일 기억에 남는거라면 아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치는 현대에서도 무게 분산이 좋아 다리 건축에서도 사용하는 구조의 다리입니다. 실제로 우리 발도 무게 분산을 위해 발바닥을 보면 가운데가 띄워져 있습니다. 근데 평소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치구조가 콜로세움에도 사용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콜로세움하면 무슨 이미지인지는 알지만 건축구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요즘보다 많이 발전하지 못한 옛날 건축기술을 생각해보면 그런 높은 건축물을 쌓으려면 무게 분산이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치형의 구조로 층을 쌓은거고 특히나 내리쬐는 태양을 가리기 위해 태양을 가리는 막을 설치해 열었다 닫았다 했다는걸 들으면 얼마나 실용적으로 건축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보여주신 예시들의 로마 디자인들은 실제로 반원, 원주 모양의 디자인이 정말 많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느낀 건 도형중에서도 원은 호감, 안정감을 나타내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기법내에서도 안정감을 나타낼 때는 원안에 들어가 있는 컷을 많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건축물에서 큰 기둥을 세우는건 크고 딱딱한 네모난 기둥이기 때문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원을 사용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상후반 스테인드 글라스나 트레이서리, 모자이크 기법등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여주셨는데 현대에서도 게임 디자인이나 아름답고 신성함을 표현할 때 천장을 넓게 하는 등 이 고딕 양식은 인테리어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여전히 고딕 양식을 좋아하고 보러가며 아예 그 분야만을 좋아해서 그 시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예술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문명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강연을 보면서 배경도 알고 교수님의 설명도 듣게 되어 여러 정보를 알게 되고 좋았습니다. 물론 1~2회차만 있는 강의 영상이라 옛날과 이집트~유럽만 디자인에 대해 알아봤지만 다음에 된다면 동양에서도 우아하고 멋있는 디자인이 많기때문에 동양에 관련한것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얼핏보면 단지 과거의 디자인과 현대를 비교하는게 중점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곳에 문화적 배경을 설명해주면서 생긴 디자인에 유래나 원리등도 같이 설명해 주어서 인테리어 관련으로 배우시는 분이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인테리어 전공은 아니지만 배경이나 건축도 좋아해서 실제로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다음에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에 대한 역사를 조사하고 그것이 생긴 원리를 조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직선이 아닌 이상적인 건축 형태를 위해 착시 기법이 쓰인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현대에서도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나 열기때문에 바닥에서 짓는게 아닌 한 층을 띄워서 건축하듯이 그 시대당시 이유가 있어서 생긴 건축물, 디자인의 공통점이 있을것입니다. 그런걸 직접 조사해보는것도 좋은 테마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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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디자인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고 새로운 디자인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였다. 그래서 교수님이 초반에 디자인을 문명적 관점으로 보신다고 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디자인은 문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니 이해가 쉽게 되었다. 특히 강의 초반에 나온 서울에 있는 독립문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동안은 독립문을 들어보기만 했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 강의를 통해 독립문을 서재필이라는 분이 스케치하셨고 프랑스의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독립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건축물을 볼 때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현대의 디자인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장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갔는데 사실 현대의 디자인은 과거의 디자인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대단해 보이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현대의 디자인, 건축은 많이 발전했고 그만큼 다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드는 것이 많다. 만약 과거의 디자인, 건축이 없었다면 현대의 디자인, 건축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의 디자인, 건축을 볼 때는 연관된 과거의 디자인, 건축을 함께 보는 것도 큰 배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테마주제로는 ‘과거와 현대의 미디어의 흐름과 미래 예측’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꽤나 오랜시간 우리 옆에서 즐거움을 줬는데 과거에는 어떤 미디어가 유행했고 어떠한 흐름으로 흘러갔는지 알고 싶다. 또한 현대의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과거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또 미래에는 어떤 미디어가 유행할지, 어떠한 방식일지 예측하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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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은 1회 독서프로그램을 듣고 쓴 후기이다.
교수님 강의초반에 디자인과 문명을 엮어서 소개하실 때 어떻게 디자인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보편성에 의해 전수된다는 것인지 초반에는 뒷 내용을 몰랐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는 디자인을 하면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게 개발하기 위해 특수성을 강조시키고 사는 세대가 다른 인간들은 살고 있는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보편적으로 디자인이 비슷해지지 라고 생각했다. 근데 교수님이 보여주신 예시들 중에서 고인돌이나 오벨리스크, 불상 등을 보고 이해가 갔다. 또한 내가 생각했던건 작품성이 드러나는 순수예술이어서 잠시 혼란했던것 같다.
디자인의 원형은 고대인들이 했던 행동 중에서 유래되어 우리도 하고있는 행위 중 하나라고 설명하셨는데 실제로 생각해보니 대나무 판에 글을 새겨 줄로 묶었던 책 방식은 여러 장수의 종이를 고정시켜 만든 책이 되었고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전자책도 흰배경에 검은 글씨가 기본인걸 보면 종이책에서 나온 디자인이 전자책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수님이 중간에 제품 디자인의 원형을 말씀하실 때 나온 뗀석기 또한 흥미로워서 조사해보니 우리가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발전한 이유도 사냥에 효율적인 무기를 만들기 위해 갈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인간은 원래 디자인을 하려는 마음은 세대가 달라도 갖고 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표면의 모습을 깔끔하게 하기위해 갈았다는 설도 있다. 이런 얘기를 보면 사람들은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 인간의 DNA에 의해 전수되며 그 문화에 맞게 편의성이 추가되며 디자인 되는게 맞다고 예상해본다.
1차시 영상만 봤는데도 디자인의 유래나 염두해야할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 쪽을 배우면서 보다 멋있고 희귀해보이는 디자인을 선호했다. 물론 그런 디자인이 나쁜건 아니지만 그 디자인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생각하면서 하게되면 인체공학적이면서도 한번에 알아볼수 있게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디자인과 그 당시 문화와 문명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설명해줬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진정한 제품, 인테리어 등 디자인을 하려면 독특하고 그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이 책에서 나온대로 그 옛날부터 전해진 스펙트럼 내에서 따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보면서 과거 제품이나 디자인에서 유래되어 생긴 현대의 제품이나 디자인을 조사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테마가 될것 같다. 나도 이 후기를 쓰면서 책에 대한 디자인을 파보니 이런식으로 유래가 되었겠구나를 느꼈고 찾아보니까 뿌듯하고 영상을 보고나서도 깊게 이해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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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보기전에는 사실 어떠한 건축물이나 물건, 문신같은 것들을 바라볼 때, 그 대상들을 깊게 바라보기 보다는 그냥 느낌으로만 판단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강연을 들으면서 모든 것에는 역사가 존재 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확실히 제가 바라보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저 건축물은 왜 저런 디자인을 가지고 왔고,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짧은 강의 시간이었지만, 저의 견문을 확장 시켜주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디자인을 보든 간에 전보다 주의깊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바라볼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분석한 것을 토대로 저 또한 저의 삶의 디자인이 변화해 나갈 것 같았습니다.

강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로마와 그리스 건축양식이 매우 달랐다는 점 이었습니다. 로마가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이면서 비슷할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두 나라의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매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나 로마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용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실용적인 건축디자인을 설명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물건을 살 때 미적인 부분보다는 실용적인 부분을 위주로 선택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로마를 설명하실 때 더욱 집중해서 듣게 되었는데, 하나하나의 로마의 건축물을 설명해주시고 그리스의 건축물과 비교하여 말씀해 주실때마다 그 건축물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었고 그걸 사용하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들이 상상되면서 생생하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1차시 강의와 더불어서 그때의 양식이 지금의 건축물에 영향을 주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놀라웠습니다. 문명의 관점에 따라서 건축의 양식 변화하고 건축술의 발전속도도 달라지고 방향성이 다른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암흑의 시대라고 평가 받았던 고딕 양식이 과거에는 천대 받았음에도 현재는 중세의 문화를 이끌어 갓던 주역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사실 또한 놀라웠습니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바깥은 여름]은 총 7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공통적인 주제라하면 죽음과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52개월이 지난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휴게소에서 데려와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오래된 커플의 이별, 언어의 소멸, 소식 없는 아버지가 보낸 여자친구의 죽음, 어느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남편의 죽음까지 다양한 죽음과 상실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주인공들이 죽음과 상실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 순간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섬세하게 풀어준다.
[입동]에서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라는 문장은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문장같아 기억에 많이 남았다. 
얼마 전, 자주보던 SNS 속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하늘로 먼저 떠나 보내게 되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로 인해 큰 상실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이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었던 것 같다. 
[가리는 손] 속 ‘네 안의 어떤 것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그중 내가 준 것도 있을까. 만일 그게 내가 준 것도 네가 처음부터 가진 것도 아니면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라는 문장으로 주인공이 느낀 불안함을 가져볼 수 있었다. 또한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사람이며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쯤 경험 할 수 있는 정말 사소하고 스쳐지나가는 상황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더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었고 정확한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따뜻한 분위기와 대비되게 이 책의 내용은 무척이나 차갑고 쓸쓸하다. 
제목과 대비되는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죽음과 이별에 대해 계속해 생각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독서 클럽을 통해서 김애란 작가님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김애란 작가님의 성함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책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나에게 있어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처음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의 제목은 나에게 무언가 따뜻하게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책의 내용을 읽기 전에는 굉장히 따뜻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의 내용은 모든 단편 소설들이 어둡고, 슬프고, 극복해내기 힘든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저리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책에 담긴 내용들은 전부 허구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우리가 살면서 겪을 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외면해왔던 어두운 삶의 이면을 작가가 비극적인 화자를 설정함으로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유한한 삶과 욕심
 늙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어린 남자아이의 이야기인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나지만 다른 생명과 함께 잠들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평범해보여도 사실은 우리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생긴다는 것, 타자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삶이 유한한 우리에게는 슬픈 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슴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나는 이 단편 소설을 읽고 매일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책 속의 아이의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이 나에게 있어서도 죄책감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꾸며진 욕심에 속은 채 삶을 살고 있어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매일 나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들을 위해서 나의 어떤 것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 무엇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질문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Double fault
 이 책의 또 다른 단편 소설 중 ‘풍경의 쓸모’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부모님의 아들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대학 시간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심에 대학학과장 곽교수의 음우 운전사고를 덮어준다. 하지만 곽교수는 자신의 약점을 가진 그가 임용 자리에 서는 것을 반대하며 주인공을 떨어트린다. 또한 주인공은 아버지가 함께 사는 여자가 아프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하며 비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단편 소설은 욕망으로 인한 비극을 보여준다. 더블 폴트란 테니스에서 서브를 2번 연속 실패한 것을 의미하는데 주인공의 비극적인 모습을 강조시킨다.
 나 역시 이렇게 좋지 않은 일들이 한 번에 여러 개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나의 삶을 한탄하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게 나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욕망이 아니라 성공하고자 하는 적당한 욕심만 갖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부재를 느끼는 사람들이 공통점으로 갖는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단편 소설의 마지막 이름과 같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은 나에게도 와닿았다. 물론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한 부재는 겪어보지 못하였지만 이 소설들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언젠간 나에게 일어날 일들이라고 느껴졌다. 유한한 삶을 사는 한 이러한 비극들은 꼭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이 책은 화자와 독자에게 정확한 해답을 주진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우울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일들에 위로해주며,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해답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애란 작가님의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고 작가님의 글을 쓰는 능력이 타고난 것 같다. 독서클럽을 통해서 읽으며 친구들과 교수님과 얘기하는 내내 재미있었다. 교수님께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져주셔서 다 같이 더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실에 대한 주제를 마음에 와닿게 해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집을 읽었다. 총 7개의 단편이 들어있으며 전체적으로 이별에 대한 슬픔과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나는 먼저 책 제목이 왜 “바깥은 여름” 이라고 지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 단편들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별을 경험하고 슬픈 감정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활기차고 따뜻한 외부와는 다르게 침울한 이 인물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것은 ‘건너편’과 ‘침묵의 미래’이다. 
  ‘건너편’의 주인공인 이수와 도화는 노량진에서 만난 연인이다. 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나 도화만 합격하고 이수는 불합격하게 되었다. 공무원이 된 도화는 점점 어른의 세계에 들어섰고, 거리감을 느낀 이수는 공무원 시험을 접고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소설 속 현재 시점에서 도화는 이수에게 마음이 사라져 이별을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별을 말하려고 할 때마다 일이 생겨 자꾸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이수는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일찍 오겠다고 말했으면서 술에 만취한 상태로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도화에게 말도 없이 보증금을 가져가기도 한다. 수산 시장에서 무리해서 돔을 사서 먹던 와중에 이수가 회사를 관두고 몰래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도화에게 들키고 만다. 결국 도화는 이수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별하게 된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인 ‘건너편’이 이수와 도화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둘은 공무원이라는 같은 미래를 향해 걸었지만 사실 같은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잠시 길을 걷다 서로 마주친 것일 뿐, 다시 엇갈린 상태로 제 갈길을 걸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침묵의 미래’는 독특하게 화자가 인물이 아닌 언어 그 자체이다. 후두암에 걸려 죽은 한 사람의 언어로, 이젠 쓰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언어였다. 열명 이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소수 언어로, ‘소수 언어 박물관’에 전시된다. 천여명의 소수 언어 사용자들은 이곳에서 동물원의 동물마냥 전시되어 매일 전시실 안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전시된다. 만약 한명 뿐인 소수 언어 사용자가 죽으면 그 언어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중앙은 소수 언어 박물관을 만들어 소수 언어의 다양성을 존중, 보호해주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양성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수 언어 사용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중앙식으로 맞췄고, 언어의 고유성을 해친다며 타 부족끼리 대화도 못하게 했다. 이런 박물관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언어가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기쁨도 잠시 부모는 이곳에서의 고통을 아이에게 물려주기 싫어 몰래 아이를 바깥으로 빼돌린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소수 언어 박물관’에 등장하는 중앙 분수대가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실제로도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설이었으며, 커다란 구 안에 다양한 언어들이 다같이 어우러져 반짝인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가 같은 곳에 섞이며 화합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는 분수대가 사실은 다양성을 배척하고 있는 박물관과 매우 상반된다고 느꼈다. 그리고 제목인 ‘침묵의 미래’의 의미도 생각해보았다. 다양한 언어들이 이 박물관에 존재하고 있지만 중앙은 이 언어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다.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고, 소수만이 언어 사용자라는 것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사실상 침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침묵의 미래는 분명 좋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제목인 ‘침묵의 미래’는 소수 언어 박물관의 어두운 미래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처음 독서토론을 시작할 때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이여서 읽을 때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책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책은 자유라는 주제를 잡고 내용을 전개되는데 교수님이 처음 자유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하셨을 때 억압을 받는 것이라고 답변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생각을 기준으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억압을 받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하면서 책을 읽어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사랑과 자유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사랑을 할 때 우위에 서는 것, 계산적으로, 합리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사랑을 할 때 갑의 입장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랑을 할 때 상대방에게 온전히 줄 것을 주고, 사랑을 마음껏 해주는 것이 사랑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것이라는 책의 내용을 보고 내가 감정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너무 감정적인 자유를 억압하려하지는 않았나싶어 나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랑과 자유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에 반문하게 되기도 하였다. 책 중에선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내게 어떻게 하는가와 무관하게 그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데이트 범죄, 가스라이팅 등 범죄에 관한 부분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상대방이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해도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 혹은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사랑의 자유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독서클럽을 할 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의 주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나는 어떤 자유를 침해받고 있는가?’였다. 당시 독서토론을 할 때는 종교의 자유와 주거의 자유에 대해 말을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정말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정부의 정책은 일차원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자유를 억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 그런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 큰 자유를 억압하게 될 여지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당장 밖을 나갈 수는 없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이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다양한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유의 억압은 자유를 위한 자유의 억압이 아닐지 생각하게 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입장에 공감도 하고, 반대가 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그에 따른 나만의 근거를 만들어가면서 자유에 관한 나의 의견을 확립해갈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장편소설)

분명 내가 겪어왔던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다른 배경의 소설이지만 어쩐지 모를 공감과 적적한 추억이 느껴졌다.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언제 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됨을 매번 느꼈다.
 20세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면 전쟁과 죽음, 참담함을 다루고 있는 작품(기록)을 많이 접했었는데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20세기 한국을 바탕을 다루고 있는 소설치고는 평화롭게 느껴졌다. 영웅담이 아닌 민간인의 삶을 다뤄 과거 그들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던 부분, 전쟁통 속에서도 학교에 다닐 수 있던 나, 박완서 작가님 특유의 객관적이면서도 잔잔한 문장이 그런 느낌을 받게 해준 것 같다.
 여러가지 고민해볼 것도 많고 나눌 이야기도 많은 책이지만 갑자기 끊겨버린 듯한 이야기 탓에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만족감은 적은 것 같다. 만약 책에 관한 토론을 더 하게 된다면 박완서 작가님은 왜 현저동으로 피난을 온 시점에서 이야기를 끊으셨을까에 대한 토론을 나눠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