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같이 과거에도 인류에게 큰 영향을 줬던 질병이 있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잘 극복해으며 정확한 정보와 독의 말서의 힘으로 코로나19를 함께 이겨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지혜와 지식을 쌓아가길 바라는 교수님말씀이상깊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발견으로 인해 질병의 교류가 일어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질병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받았다. 초기에는 공존하는 방법을 잘 찾지 못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존하면서 원주민들의 피해는 점점 줄어들었다. 코로나 질병도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줄어들것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못이기는 질병은 없으며, 과거에는 의약의 힘보다 의식주의 힘이 질병을 이기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한 청결,냉난방도 중요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생활을 지나서, 큰전쟁, 또한 여러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혼란이 이었음에도 급속도록 사망률이 줄었고, 사람들이 더 오래오래 살고 있다. 또한 암과 같은 큰 질병도 극복해나가고 있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전혀 하지 못했다면 4월 3800만 이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막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 19는 장기전으로 갈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다같이 힘든 시기에 다같이 힘을 모아 하루빨리 코로나 19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대 문명과 질병
감염병중 질병 퇴치와 건강 증진의 주요한에 대해서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강연을 들다.
첫번쨰로 의.식.주 생활의 향상이 필요하고 두번째는 유소년 노동을 금지하고 8시간 노동과 임금 개선 마지막으로 산업재해 방지 등을 필요로 하고
세번째는 의학,의술의 발전이다. 난치병을 퇴치하고 사망률을 감소시켜 수명연장 등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인간의 노력으로 꾸준히 발전시켜온 인류의 공동자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의 공공성인데 질병과 건강은 개인과 가정의 문제이나 사회,국가, 인류 공동체가 함꼐 해결 해나가야 할 문제이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들이 수많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동물들의 질병이 옮겨서 사람들에게 퍼질지 모르기 때문에 대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강연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고 코로나 종식 이후 대처로 국제적으로 연대가 필요하고 약자에 대한 지원등 여러방면에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현재 코로나 시대에 살고있다. 국내에서는 2월 초에 발생한 첫 번째 확진자로 시작해, 지금은 (2020년 9월 21일 기준) 23,045명에 육박해있다. 2월과 3월에는 엄청난 마스크 부족난으로 사재기, 생필품 등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 등이 있었다.
사실, 이번에 코로나처럼 질병이 대유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이전에 그리스 최강의 도시 ‘아테네’에 창궐한 페스트, 이 책의 제목처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남아메리카로 전파된 홍역과 천연두, 이와 반대로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매독, 이후에 중증 호흡기 증후군 SARS, 조류독감, 신종 인플루엔자 등등 인간은 수많은 질병들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경제도 확 달라졌다. 코로나 이전 시대(코로나 유행 이전)에는 장사가 잘 되던 대학가에 있는 상점들이, PC방 등, 자영업자들은 하나 둘씩 망해가고 있고, 대신 배달 업체들의 엄청난 양의 배달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쓰여지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의 양도 정말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환경은 아픔을 호소하고 있고,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겨울이었으면 얼어죽어야 할 해충들과 벌레들이 기상이후로 인해 지금도 판치고 있다.
수업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수능은 연기되었으며, 원래였으면 이때 대학 축제 기간이지만, 초 중 고등학생 할 것 없이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으며, 정말 필요한 실습, 시험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갈 일도 없어졌다. 이로 인해, 언택트 시대의 시작은 더욱 빨라졌다.
언젠가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끝날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 빨리 종결되어 다시 많은 사람들이 웃는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조금 아쉬웠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강연이라서 그런가,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아 황상익 교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다소 힘들었다.
우선 강연을 듣던 중 내가 놀란 부분은 19세기~20세기초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공장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15~17세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이루기위해 노력하고, 그 꿈을 꾸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야할 그 나이대에 그 지역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냈다. 이후 교수님께서는 여러 질병을 시대순으로 나열하시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6세기 콜럼버스의 교환, 즉 질병의 교환으로 인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멸종과 인간이 10년을 노력해서 퇴치한 유일한 역병 두창(천연두)이다. 전자는 인간의 나약함 후자는 희망을 느끼게 해줬다.
이러한 오묘한 감정을 간직한 채 강연을 듣던 중 한국이 코로나 방역을 전혀 못 했다면 감염자는 4월 초까지 3800만명이였을 것으로 추산된다고한 네이처 학술지의 인용은 나의 흥미를 다시금 일깨웠다. 거리두기와 방역이 코로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인용이였다.
이후 Q&A를 끝으로 강연은 막을 내렸다. 좋지 않은 화질과 음질로 인해 뒷 맛이 씁슬했다. 강연을 듣던 중 ‘아 내가 저 자리에서 직접 강연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을 정도로 아쉬웠지만 내용들은 매우 유익했다. 비록 비대면이기는 하나 좋은만남이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책은 보지 못했지만, 황상익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역사에 남을 정도로 인류에게 큰 피해를 끼친 질병들과 원인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또 여러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건강, 방역 수준을 보며 다시 한 번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uc 버클리에서 쓴 논문을 보면 방역을 하지 못했다면 4월달에는 3천800만명이 감염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는 지리 특성상 우리나라는 좁고 밀도가 높기 때문에 초기 방역을 못하였을때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방역을 잘 한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다함꼐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1차, 2차가 다시 발생하긴 했지만, 전세계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 수준은 매우 미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를 다함께 해처나가서 극복하여 다시 코로나 이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시대에서 코로나로 큰 문제점을 다르게되면서 문화의 상화 변화과정을 잘 알수있었다. 동물과 식물 다양한 미생물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보존하면서 서로 교환하면서 문제점을 알게되었고 콜럼버스가 과연 신대륙을 발견했을때가 좋은건가에대해도 잘 다러줫던거같다
어렸을때 우리는 흔히 위인전에서 콜럼버스를 전해 막연히 신대륙을 발견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있었고 커서 그런관점에서만 볼만한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못했는데 이책을 통해 좀 더 콜럼버스라는 인물에대한 명암,유럽인들의 입장에선 고마운 존재겠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선 끔찍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라 하면, 불편해지고 과도하게 진지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연애, 가족, 심지어는 먹는 것에 이르기 까지. 이 책은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기는 공간인 식탁을 둘러싼 다양한 소재를 통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는 매 끼의 식사때마다 또 다른 동물은 살생을 당하는 모순적인 행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열심히 만두를 빚은 후 종교적 신념으로 만두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왜 미리 말하지 않느냐는 무지하고 잔인한 한마디, 아기가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 엄마에 대해 진정한 모성이 없다 말하는 입들. 아직도 우리는 타인의 먹는 행위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며, 폭력적이고, 무지하다. 나는 입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에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저녁 내가 먹은 음식은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의 선호이며 누가 만들었으며 그로인해 희생되는 것은 무엇인지. 또 그 식탁에서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대상은 있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쯤 타인에 의해 나의 먹는 행위에 대한 무심한 비난을 들어봤다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를 계속 상처주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랐다고 해서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