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
-<햄릿> 3막 1장 57:91 中 일부
본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알려진,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고, 햄릿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절이다. 죽는 것은 다만 잠드는 것, 그 뿐이라면 두려울 일은 없으나 잠든 후 우리가 꿈을 꾸듯, 사후에 보게 되는 것이 악몽일까 두렵다는 햄릿의 대사는 몹시 시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햄릿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햄릿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꼽으라면 나는 햄릿의 이 대사와 거트루드가 오필리아의 죽음을 알리는 대사 사이에서 한참을 방황할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한 번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셰익스피어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실로 언어의 마술사라해도 좋았다.
어린 시절 처음 햄릿을 접했을 때 내가 본 것은 지금과 같은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 중학생을 위해 이야기글로 편집되어 나온 것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이 모두 순화되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고쳐낸 책에는 지금같은 매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그랬다.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나는 비극을 싫어했기 때문에 더 그럤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몹시 좋아하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처음 접한 인상은 변하지 않았어서, 셰익스피어가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사실 그때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전부 소설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렴풋이 들어는 봤던 것도 같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그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니까, 햄릿도 원래 소설이 아니라 극본인 거군요? 하고. 템페스트에 대한 인상은 흐릿하지만 그 뒤 찾아보았던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인상은 꽤 선명하다. 햄릿, 십이야, 뜻대로 하세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모두 어린 시절 소설로 읽었던 때와는 달랐다. 그것은 그 문장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에도 몹시 난해하고, 내가 이해하기 곤란했다는 것 외에도, 내용이 그랬다.
지나치게 차별적이었다!
일단 남녀차별이 끔찍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었다. 당시에 미약하게 나마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중이었음에도, 나는 사실 사회문제에는 늘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런 내게도 느껴질 만큼 철저하게 차별적이었다. 거트루드에 대한 햄릿의 그 수많은 폭언, 가여운 오필리아를 향하는 냉대는 사랑하는 이를 끊어내려는 것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워 보였다. 햄릿은 지나치게 신경질적이고, 늘 화가 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였다. 아니 어머니가, 그것도 왕비인데. 재혼 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그런 식으로 저열하고 폭력적인 언어들을 사용해 질타해야했나? 오필리아는 대체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나는 도저히 아름다운 문장들에 심취할 수 없었다. 가여운 여성들의 처지, 의외로 괜찮은 왕인 것 같은 클로디어스 등을 보다보니 햄릿이 좀 더 이성적이었으면 괜찮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도저히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다시금 햄릿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이제 더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는 또 깜짝 놀랐다. 나도 글을 한 번 써보겠다고 이리저리 궁리했던 날들이 지난 후라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에 봤던 것보다 이 번역이 훨씬 훌륭해서 일수도 있겠다. 다만 나는 이 말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대사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지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들. 그리고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상황들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햄릿은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독선적이고 예민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 미숙한 데가 있는 젊은이었으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슬퍼하는 아들이고 왕자였으며, 인간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펼친 책에서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햄릿을 세 번에 걸쳐 읽었다. 처음은 초등학생 무렵이었고, 다음은 중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대학생 시절.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같은 책을 읽어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들 한다. 나의 경우에는 완전히 같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감상은 비슷할 것이다. 처음 읽은 햄릿은 재미가 없었고, 다음에 읽은 햄릿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비로소 이제야 나는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 똑같은 사람을 잃었는데 어째서 당신은 나만큼 슬퍼해주지 않느냐는 원망, 연인의 부정을 의심하는 괴로움,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고통, 그런 삶에 대한 회의와 그럼에도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의 여러가지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꽤 놀랍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 아닐까. 언젠가 또 많은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가 기대가 된다. 그러니 그때를 위해서, 짧은 글이나마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남겨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