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재발견
바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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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운 세계사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건축물에 대해 소개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갔던 것 같다. ‘파르테논 신전의 변종들’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우리나라 서울 덕수궁까지 원이 그려지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에렉테이온 신전이라고 해서 여성적 신전의 대명사와 같은 신전의 사진이 기억이 남는다. 이오니아식 의상을 입은 여성의 형상이 기둥으로 되어 그 시대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던 게 신기하기도 했다. 옛날에 신전은 성역과 도시국가 아테네의 방위요새라는 두가지 역할을 하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내용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3학년 때 배운 세계사는 되게 지루하고 외워야만 하는 과목이어서 공부하기 싫었던 기억이 나는데 스토리 텔링식으로 설명해주셔서 정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이 강의 내용이 바로 ‘바우 하우스’라는 책의 내용이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꼭 책을 한 번 정독해보고 싶다. 로마 문명이 실용주의라는 것 역시 작년에 배웠던 내용으로 시험도 봤던 걸로 기억한다. 아는 내용이 나와서 좋았다. 로마가 실용주의가 된 이유와 실용주의에 관한 일화,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수로, 하수로, 경기장 등의 도시인프라와 같은 공공시설들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재미있었고 특히, 아치형의 건축물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볼정도로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로마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실용주의였다. 로마하면 콜롯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말 보고 싶은 건축물 중 하나인데 이 역시 로마의 양식인 80개의 아치로 구성된 원형구조물이다. 그 당시에는 권위주도적인 측면에서 백성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그 모든 불만을 잠재울만큼 향락의 공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현재 세계적인 유명 건축물이 되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신전이라고 불리는 판테온 역시 창의적 구조와 기하학적 미학이 합쳐져 굉장히 호화스러운 인테리어을 갖춘 돔 구조물인데 다신교 국가인 로마 제국에서 특정 신이 아닌 모든 신에게 바친 신전이라고 한다. 영상 속 사진만 보아도 굉장히 성스럽고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어떻게 제작되었을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사회 활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공간이었던 로마 공공 목욕장이 너무 신기했다. 체육관, 음악당, 도서관, 음식점, 가게, 실내 정원등이 포함된 복합시설이었다고 하는데 정말 독특했고 21세기인 현재 저런 공간이 있다면 정말 국가 명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2번의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책의 내용을 스토리 텔링식의 강의로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자주 읽게 되지는 않는데 이렇게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기억에 더 잘 남고 의미있던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진로 혹은 심리와 같은 내용의 책으로 이런 활동이 또 있다면 무조건 참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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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독서 아카데미는 ‘디자인: 문명의 관점에서 시작하다’ 주제로 1차 강연에 이어서 연결되는 강의이다. 2회차 강의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디자인의 변화와 그와 같이 변화하는 문명에 대해서 나온다. 강의의 첫 부분에는 청동기 시대 때 유럽 문명의 첫 단추인 에게 해 문명에 대해 나왔다. 에게 해 문명은 해양 문명으로 한 나라가 아닌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과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과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인들의 공동체 문화이다. 무역, 상업 중심에서 비즈니스적인 타협하고 협상하는 융통성 있는 문화로 발전했다. 미노스 문명은 자유분방한 문명으로 물질이 풍요로워서 여유롭고 장식이 많고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했다. 그 후 그리스 신전에 대해 나왔는데 그 중 파르테논 신전은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보여준다. 파르테논 신전은 형태미를 중시하는 그리스 신전 건축에 따라 직선이 아닌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기법들을 동원해 완벽하고 이상적인 건축 형태의 표현을 나타냈다. 이러한 파르테논 신전을 따라 모방한 변종이 있고 덕수궁 석조전도 그 예이다. 에렉테이온 신전은 여성적 신전의 대명사로 여성의 형상이 기둥으로 사용된 케리아티드가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언덕 위의 도시로 성역과 폴리스 아테네의 방위요새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 로마는 도시와 국가를 초월한 제국이다. 로마 문명의 정체성은 실용주의로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그리스와는 반대된다. 로마 문명의 강점은 응용력과 기술력, 혁신성과 공학적 성취, 조직력과 시스템적 사고이다. 그로 인해 경기장, 공중 목욕탕과 같은 공공시설이 발달했다. 콜롯세움은 원형극장으로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거대한 향락의 공간이었다. 로마가 실존적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기독교 문화이었다. 그 후 중세 양식에 대해서 배우는데 고딕 양식은 중세의 꽃으로 르네상스 시기의 저술가들이 선조들의 작품을 경멸적으로 회고하면서 이름을 붙였다. 고딕의 뜻은 로마문명의 대부분을 파괴했던 북방의 야만인 고트족의 양식이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테티앤 대성당이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예이다.
1,2회 독서 아카데미를 수강하면서 인류 초기의 디자인과 문명부터 중세시대 디자인과 문명의 변화까지 배울 수 있었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양장본 HardCover)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과거에는 사랑을 할 때 법과 규범 , 관습으로 통제받았는데 중매혼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첫날밤을 치를 때까지 얼굴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근대에 들어 연애결혼이 전세계로 확산되었던 것이고, 사랑과 관계는 더 이상 결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사랑과 관계만을 유지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즉 코트십이 늘어난 것인데 코트십이란 “결혼전의 교제를 뜻하는 말”로 달리 표현하면 유혹이라는 뜻이다. 연애결혼이 늘어난 19세기 코트십과 유혹에 관련한 책이 나왔는데 ‘유혹자의 일기’ 라는 책이다.
살면서 갑자기 고백을 받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유혹자의 일기라고 하면 단순한 로맨스 소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 책은 미학적 사랑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소설로 다룬다. 키스에대한 철학적 논의나 정의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남자주인공 요하네스는(26) 쾌락주의자이다. 하지만 여성을 유혹해서 쾌락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 유혹의 하는 계획을 탐닉한다. 즉 여성을 정복하는걸 즐기는 남자란 말인데 굉장히 이상한 취미를 가진 것 같다.
그는 순수한 사랑에 무관심하다. 오히려 또다른 흥미로운 사랑이 찾아오길 바랄뿐이다.
이 소설의 여자주인공인 코델리아는 16이죠. 쾌락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인 요네하스는 10살차이나는 코델리아를 예술처럼 즐기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유혹하는 단계를 좋아해서 코델리아를 유혹하는 그 과정을 게임으로 느끼며 즐기는 묘사가 나온다. 또 본인만의 규칙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을 쟁취하려고 하지만 보통 유효기간은 6개월에서 4년이었다. 즉 결혼으로 이어져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부장적이고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수 있다. 여성은 남성을 통해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본질적으로 그녀 스스로 자신을 위한 존재가 될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똑같다. 그동안의 여성들과 똑같이 버려졌다. 사실 코델리아 스스로가 파혼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길 이소설은 사람들이 사랑에 또다른 것으 얹어서 탐닉한다던가 정복한다는 또다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사랑 자체만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일침을 날리는 것 같았다. 코델리아를 유혹하는 단계의 쾌락으로 느낀 요하네스는 반성을 해야할 것 같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양장본 HardCover)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시작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는 악인은 없다.
모든 가정의 행복의 방식은 각양각색인데 사랑이 넘쳐나는게 당연히 좋은 것 이라고 할수 있다. 사랑이 없는 것 보다 넘치는게 좋다. 하지만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꼭 한쪽또는 양쪽이 한눈팔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나 카레니나’ 이 책은 사랑밖에 모른다는 사람들이 왜 사랑밖에 모르는가 서술해 두었다.
이 책의 주인공 부부는 사랑이 늘 없었다. 아내인 안나가 브론스키와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남편 카레닌은 이혼을 거부하고, 러시아 귀족사회에서 불륜은 매장받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안나는 귀족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안나라는 딸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브론스키네 집에서는 남자가 불륜을 저지른 것은 흠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실을 용인한다. 오히려 안나는(엄마와 딸이름이 같음) 불륜을 저질렀던 여성에게 조차 비난의 손가락질을 견뎌내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자살을 선택했고 이여자 저여자 불륜을 일삼았던 브론스키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종교를 깨닫고 그녀 없는 삶을 살아가길 힘들어 했다. 다행히도 카레닌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안나를 자신의 딸로 삼는다.
이 책에서 카레닌은 둘의 불륜 때문에 신앙에 종교에 더 깊숙이 파고 들었고, 브론스키는 신앙처럼 사랑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봤는데 사랑이나 종교를 동일선상에 두고 사람들은 모두 사랑과 용서를 해야하지만 보복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 인간이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된다. 알기 쉽게 인간의 법을 어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범죄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카레닌을 보면 그녀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이혼 요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도 신앙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사랑이나 용서를 한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양장본 HardCover)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사랑을 약속한 남편이 출세주의에 빠져 다른나라 공주와 혼인을 하겠다고 메데이아에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둘에겐 사랑의 결실로 낳은 자식들이 있었다.
남편 이아손은 그것이 우리가족에게 좋은 일 이라면서 때가 되면 메데이아를 첩으로 삽겠다고 한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공주의 아버지에게 떠나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래서 메데이아의 친한 친구가 자식이 없었기에 그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고 공주와 공주의 아버지 그 외 주변 인물들을 다 죽이고 이아손을 살린다. 그리고 자식들 마저 죽였다.
그래서 메데이아가 그당시 사람들에게 최악의 악녀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이 소설은 기원전 431년에 쓰여진 책이라 가부장적인 시대에 쓰인 책이다. 그래서 초기에 이책이 나왔을 때 굉장히 비난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16세기가 되고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 책은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메데이아는 자식들을 죽였는데 자신의 자식들을 소유물이라 생각해서 죽인것일까? 자식들이 낳은 사람의 소유물인지 아닌지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