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최초의 의심 | 그웬다 본드 장편소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 이미 본 것을 소설로 접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지만, 새로운 등장인물과 같은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읽어보니 오히려 더 확장된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의 프리퀄 같은 느낌을 받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경제의 큰 흐름에서 기회를 잡는 매크로 투자 가이드)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왜 스타벅스 주식을 사야할까? 지루한 경제분야의 책 중에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책이 어려워 읽는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경제를 바라보게 되는 값진 시선을 얻었다. 책 제목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장편소설)

이 소설은 마지막이 피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내가 흔히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각자 개인의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었다. 각 개인의 끔찍한 삶들을 보여준뒤에 마지막에서는 그들이 다같이 있던 곳이 영화관이라는 것에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영화관에 가서 본 사람들이 그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뀌게 해 준 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장편소설)

내가 읽었던 소설중 가장 설레고, 또 현실적이며, 감정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본 후에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이 남았었다. 말도 안되지만 주인공인 진솔과 건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한 소설이다. 

죄와 벌 1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죄와 벌>을 완독했다. 시험기간을 포함하여 거의 한달 반가량 붙잡고 있었지만 나름 처음 읽어낸 장편이라 뿌듯하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의 인생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재미있었다. 어떤 것에 흥미를 쉽게 잃는 편인 나는, 단편 소설도 한 번 질리면 바로 덮어버린다. 그런 내가 이 길고 긴 <죄와 벌>을 읽을 땐 단 한번도 흐름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매 순간이 몰입의 연속이었다. 누가 나에게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죄와 벌>을 읽으라고 할 것이다. 다만, 러시아 문학 특유의 긴 이름과 다양한 별명에 더해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장광설 때문에 읽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한번쯤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죄와 벌>은 살인자의 심리를 비추는 심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자의 이성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그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종국적으로는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 사랑, 고뇌를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심리묘사, 구원, 이성주의에 대한 지적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럼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주요 포인트를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다.

심리묘사

이 소설이 내 인생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 첫 번째가 바로 ‘심리묘사’이다. 나는 소설의 심리묘사를 참 좋아하는데, 감정이 빨려 들어가 마치 다른 세계로 인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가 극적일수록 심연의 느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심리묘사에 아주 능통하다. 라스콜니코프가 격정, 소냐의 순수한 마음,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광기와 절망 등 심오하면서도 양극단의 감정들을 한 작품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은, 인물의 대사가 과하게 긴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을 수 있다. 이게 바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특유의 장광설인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난 이 장광설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를 통해 문제 상황과 인물 심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몰입하면 마치 트랜스 상태처럼 종종 숨 쉬는 것을 잊을 때도 있는데, 그때 나는 문학 읽기의 쾌락을 느낀다. 특히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장광설은 최고의 몰입도를 선사한다.

이성주의 지적

나는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이 이성주의 혹은 계몽주의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의 사상을 두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하나의 악으로 수천의 선을 얻을 수 있다면 악을 행해도 좋다.’, ‘세상엔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있는데, 비범한 인물은 죄를 넘어선다.’ 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은 비범한 사람인지 평범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한 그는 그럼에도 소냐의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는데, 저자는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라고 언급한다.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저자가 ‘이성주의(계몽주의)에 대한 경계’를 암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라스콜니코프의 이론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 맞지만, 그는 법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했다. 그 점이 내가 공감하고 배우고 싶은 점이다. 사회에 얽매이는 자만이 존재한다면, 누가 이 세상을 다음 단계로 이끌 수 있을까. 또한 이성과 감성에 대해 나는 그 둘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주의와 휴머니즘 그 사이 어딘가. 그곳에서 세상을 발전시키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소중함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는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감옥에서 인생의 의미를 자문하지만, 결국 자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외부에 대해 귀를 닫고 자기기만의 늪에서 혼자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는 미래가 있었고, 소냐의 사랑 덕분에 그 미래에 발을 딛게 되었다. 주인공을 심문했던 포르피리의 ‘삶을 소중히 하라’는 조언도 생각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에 “삶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하는데, 사람의 인생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기

요즘 자주 듣는 스월비(Swervy)의 January Embers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Ember가 ‘잉걸불’이라는 뜻인데, 다 타지 아니한 장작불을 의미한다. 라스콜니코프의 삶, 다 타버려서 회색으로 죽을 뻔 했던 그의 삶이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삶이 잉걸불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모두 잉걸불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우리는 여기저기에 치이고, 지치며 다 타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더 타게 해줄 어떤 것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노숙자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편의점 알바생이 된 노숙자는 예상치 못하게 편의점 주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작은 호의로 큰 도움을 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현실의 각박한 사회에서 한줄기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 이미예 장편소설)

오랫동안 꿈꿔왔떤 꿈백화점에서 일하게된 페니를 시점으로 꾸려나가지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유치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꿈에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꿈은 왜꾸는 것일까? 보통 꿈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인상깊었던 것, 혹은 정말 원하는 것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들이 주가 된다.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는 꿈을 꾸고나면 우리는 딱 깼을 때 잠시나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꿈으로나마 나의 진정한 꿈을 경험해봤다는 것이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꿈이라는 것을 자면서 꾸는 꿈으로 풀어나갔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되고싶은 꿈에대해서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데미안(초판본)(1919년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이 책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에밀 싱클레어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자기 성찰적 이야기이다. 
그는 어릴적 데미안이라는 멘토를 만나 , 데미안과 그 어머니를 지향하며 자아를 찾아 나가기 시작하며 그 과정속에서 방황도 하며 , 전쟁이라는 환경속에서도 마침내 온전한 자아를 찾아낸다. 
싱클레어는 내면적 탐구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아를 찾는데 사실 이건 그다지 특별할것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 여기서 조금 주목할점이 있다면 , 싱클레어의 자아는 나말고 다른이들을 존중하면서 한층 더 발전하게되고 , 그 자아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청소년기~대학생 무렵에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중에 다른 또래와의 교류를 거의 다 끊어버리고 , 타인을 배척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다.
그런 그는 대학생활을 하며 데미안과 그 공동체속에서 생활하며 이제는 데미안과 자신을 제외한 다른이들이 이상적으로 불완전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더이상 그들을 배척한다거나 무조건적이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잘못됬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땅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 속에서 싱클레어는 한층 더 성숙한 자아를 보여주게 된다. 
두번째로는 그의 자아가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와의 사랑속에서 자아를 향한 수련을 계속해나가고 있었는데 1차세계대전이 그 방해물이 되고만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그동안은 미성숙하다고 무시하던 타인들 또한 공동의 책임을 다하며 운명을 향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마침내 포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후 그는 야전병원에서 데미안과 조우한뒤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찾게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인간은 예기치못하고 원하지않는 고통과 도전속에서 진정한 성장을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온실속 화초는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는것을 . 
싱클레어 또한 데미안과 그 어머니의 품속에서 행복했으나 마음 한켠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망에 시달렸고 결국 진정한 깨달음과 자아는 전쟁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볼때 , 나는 인간이 성장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선 내면의 탐구 , 비판적 사고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 싱클레어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성장에 마침표를 찍는것은 바로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자세와 , 내가 원하지 않는 현실의 고통과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곧 싱클레어가 진정한 신으로 모신 아브락사스 ( 선과 악 모두를 포용하는 신) 의 모습 아닐까? 
이외에도 이 책에서 주는 교훈은 여러가지이다. 현실에 책임지는 자세 등등 .. 하지만 내가 감명깊게 느낀바 위주로 적어보았다. 
우리 세대는 이전 그 어느세대보다 빠른 변화와 발전속에서 살아가야할 세대라고 생각된다. 
그 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고 혼란에 빠지기도 쉽고 지치는 순간이 올것이다. 
그 순간마다 소설 데미안의 싱클레어를 따라 나만의 자아를 찾아가보면 어떨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그림을 배울때 해부학을 먼저 배운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응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플롯이라는 이야기의 뼈대는 그 가짓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응용한 이야기들은 셀수 가 없다. 이 책은 창작을 함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뼈대를 제공한다. 컨텐츠를 만드는 직업을 원한다면 꼭 필요한 책이다..
 

최강의 인생 (세상의 뻔한 공식을 깨부순 게임 체인저들의 44가지 법칙)

 결국엔 사람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  발버둥 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목표를 크게 잡아야만 한다. 작은 목표에 익숙해지다보면 자신의  유전자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할테니 말이다.
그러니 목표를 크게 잡자. 원하는 모습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원하는 것을 이룬 자들의 스타트였다.